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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글

자유주제·자유게시판
새순이 돋고,
꽃이 피고,
바람결이 부드러워지는 4월입니다.
계절이 이렇게 변하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도 새로운 희망이 자라나길 바랍니다.
힘들었던 지난 계절은 그저 다음 봄을 위한 시간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어제 3월은 너무나 힘든 한달이었습니다.
정치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경제는 더 말할나위없이 나락으로 떨어졌고,
특히 몇사람의 불조심을 실천하지 못해서 일어난 영남지방의 산불로 온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재산피해와 많은 인명피해가 있어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집을 잃고 망연자실한 어르신들을 볼 때는 눈시울이 적셔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따뜻한 봄날 4월에는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한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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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자유게시판
봄은 1년중 가장 거친 숨겨진 얼굴이 있습니다.
봄은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가 있지만 거친 얼굴을 감추고 있기도 합니다.
봄의 특징인 건조, 꽃가루, 강풍, 황사가 있습니다.
이 4가지 특징을 봄철 날씨의 4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1년중 가장 건조한 날씨가 3월과 4월에 있습니다.
습도가 가장 낮은 시기가 3, 4, 5월입니다.
봄철 꽃가루는 꽃가루 알레지가 있는 사람들은 가장 괴로운 계절이기도 합니다.
강풍은 내륙에 강풍특보와 바다에 풍랑특보가 12월을 제외하고 4월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1년중 농사가 시작하는 시기라 농촌에서 비닐하우스가 망가지는 피해가 많고,
이번 의성 산불이 강풍으로 시간당 8.2k속도로 번졌다고 합니다.
봄의 불청객인 황사가 3, 4, 5월에 발생합니다.
산불이 봄에 가장 많이 발생하고,
벚꽃이 피는 시기가 봄철입니다.
꽃샘추위까지는 아닌 것 같지만 쌀쌀한 날씨가 며칠 있다고 합니다.
아마 이번에 쌀쌀한 날씨가 지나가면 따뜻한 봄날씨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영남지방에 단비가 내려서 산불진화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뉴스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잔불도 깔끔하게 처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말부터 벚꽃축제를 준비한 지자체가 많을텐데 산불로 어수선한 분위기라 차분하게 치러질 것 같습니다.
팜모닝회원님 여러분들께서 농사철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연재해도 예방해야겠지만
인재로 인한 재난은 없어야겠습니다.
아침공기가 차갑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산불에 재산과 인명피해를 입으시고 집을 잃은 이재민 여러분께 힘내시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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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자유게시판
어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입니다.
오늘부터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는 날입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인데
아직도 추운방을 빼지 않는 날씨입니다.
춘분에 속담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24절기 중 더위에서 추워지거나 추위에서 더워지거나 하는 절기가 추분과 춘분이라는 뜻으로 춘분이 지나면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때문에 추운 날씨가 풀린다는 뜻으로
"덥고 추운 것도 추분과 춘분까지다!"라는 속담이 있다.
춘분은 농사의 시작을 준비하는 춘경의 시기이기 때문에 이 시기에 이 때에 농사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풍족하게 지낼 수 없다는 뜻으로
"춘분날 밭을 갈지 않으면 일 년 내내 배부르지 못한다."라는 속담도 있다.
삼월 바람이 실제로 차갑다는 뜻이 아니라 따뜻한 3월 바람에도 추위를 타는 사람들에게 놀리는 속담으로
"삼월 바람에 설 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오늘부터 20도를 넘나드는 봄날씨랍니다.
아직은 아침공기는 쌀쌀합니다.
한낮의 기온이 따뜻해지니까 미세먼지가 또 난리네요.
바깥에 외출할 때는 마스크를 꼭 해야겠습니다.
일교차가 심한 날씨라 감기 조심하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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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자유게시판
☆주전자에게서 겸손을 배운다 ☆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4년마다 있는 선거에서
매번 떨어지는 후보가 있었다.

잘 생긴 얼굴에 높은 학력,
언변까지 뛰어난 그였지만,
어쩐 일인지 매번
낙선의 고배를 맛봐야 했다.

어느 날,
그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억울하다며 솔직한 말을 원했다.

그때,
한 친구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자넨 인사를 뒤로 받잖아!”
거만함이 그의 패배 원인이었던 것이다.

잘 생긴 얼굴, 높은 학력,
뛰어난 언변도 겸손만 못했다는 얘기다.
한 세상 살다보면, 하찮아 보이는 것에서도
삶의 교훈을 얻는 경우가 참 많다.

자기 것을 주면서도
몸을 숙이는 주전자와 물병은
가진 걸 다 줄 때까지 몸을 숙이고 또 숙인다.

곧 낮은 자세다.
자기 몸을 숙여야만 남에게 줄 수 있다는 것.
꼿꼿한 자세로는 줄 수 없다는 것.

‘겸손’의 의미를
누구라도 알 수 있게 풀어놓았다.
가진 걸 다 줄 때까지 몸을 숙이고 또 숙인다.
주전자와 물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겠다.

저 하찮아 보이는 물건이
그 어느 교과서나 강의보다도
커다란 가르침을 주고 있지 않은가

잔이 물을 얻으려면
주전자 보다도 더 낮아져야 합니다^^

이 글을 읽고 느낀바가 많습니다.
특히 권력을 가진자들이 아쉬울 때는 고개를 숙이다가 목이 뻣뻣해지는 현상이 많지요.
권력이라는 힘과 부를 가진 사람들이 겸손해지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세차게 불던 꽃샘추위와 봄바람이 잦아 들었습니다.
지난 며칠은 한겨울보다 더 어설픈 날씨였습니다.
털달린 오리털 파카를 입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강원도 지방에는 대설주의보가 있어서 엄청나게 눈도 내렸더군요.
오늘부터 낮기온이 20도를 넘나드는 봄날씨가 이어진다고 합니다.
어제 농협에가서 밑거름용 비료랑 올 텃밭에서 사용할 것들을 준비해왔습니다.
봄철에 심은 완두콩과 감자는 심었습니다.
완두콩은 움이 트기 시작하더군요.
감자는 비닐속을 뜯고 하나씩 빼먹는 재미로 씨감자 4k를 심었습니다.
이제 1년 내 먹을 고추를 심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며칠전에 부숙이 잘 된 퇴비를 뿌리고 경운기에 쟁기를 달아서 깊숙하게 갈아 엎었습니다.
로타리로만 갈면 깊히 갈아지지 않아서 가끔씩은 쟁기로 갈곤 합니다.
갈수록 고령화되는 농촌에서 일하시는 농부님들이 바쁘실 때가 돌아왔습니다.
특히 일손을 많이 덜어주는 농기구에 따른 안전사고도 많게 발생하고 있답니다.
안전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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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와 💦 (물)
인간에게 생기는 치매는
나이 먹고 늙어서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치매는 물을 잘 마시지 않아 생기는 병 중 하나입니다.

우리 몸은 면역체계가 가동 됩니다. 물이 부족하면 물이 없어도 살 수 있는 부분부터 물 공급을 줄여 나갑니다.
이 때가 물을 잘 마시지 않는 30대부터 입니다.
4~50대 부터는 더 마시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 몸 중 어디가 먼저 늙어갈까요. 피부입니다. 피부가 말랐다고 죽지 않습니다. 피부가 늙어 갑니다.
그래도 물이 부족하면 어디를 줄여 나갈까요. 장기입니다. 이 때는 5~60대가 되겠네요. 그래서 이때부터 여기저기 아파지는 곳이 많아지는 겁니다.
물론 그동안 많이 사용하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 물이 부족하면
뇌에 물 공급이 잘 되지 않습니다. 뇌가 아프기 시작 합니다. 그래서 노인이 되면 질환중에서 뇌 관련 질환이 많습니다.
물 부족은 만병에 근원입니다.
반대로 물 만 잘 드셔도 질병 80%는 스스로 낫는다고 합니다.
물을 잘 드시면 치매 예방도 치매도 늦출수 있습니다.
문제는 물이 목에 걸려서 먹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옛날 노인들이 하시는 말씀중에 물도 되서(되어,세어) 마시지 못한다며 한 모금도 못 마시는 노인들도 많았습니다..

사람이 늙어서 죽을 때는 몸에 수분이 거의 빠져나가 양자 파동이 없을 때 죽습니다!
물을 자주 마시는 습관을 들이세요.
우리 모두 좋은 습관으로 건강합시다!
모든건강과 질병은 식생활 습관과 평소 생활습관이 90% 이며 부모로부터 유전으로 물려받은 질병도 습관으로 고칠 수 있다.

溫水는 補藥
우리가 상온(常溫)의 물만 마셔도 몸은 몰라보게 건강해 진다. 냉수는 체온을 떨어뜨리는 데 체온이 1도 떨어질 때마다 면역력은 30% 기초대사력은 12%씩 떨어진다.
냉수는 소화, 혈액순환,효소의 활성기능을 떨어뜨린다.
냉수는 체내 산화를 촉진시켜 노화를 촉진한다.
암세포는 저체온 상황에서 활성화 되고 고체온에서는 얼씬도 못한다.
우리가 병에 걸리면 일단 몸이 불덩이가 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몸이 스스로 알아서 체온을 높여 몸속에 들어온 병균을 죽이거나 퇴치하여 살리려는 생명의 자생능력이다. 몸이 따뜻해지면  더 이상 지방 비축이 필요없구나 라고 인체가 스스로 판단해 음식을 과다 섭취하지 못하게 하거나 몸속의 지방 비축을 스스로 제어한다.
몸이 건강해지려면 일단 가정에서부터 생수나 식수를 냉장고 안에서 밖으로 끌어 내도록 하라. 
세상 살기 싫으면 냉수를 자주 마셔라!

어제부터 뉴스에 날로 늘어나는 우리나라 치매환자에 관해서 뉴스가 나오고 있네요.
노인 10명중 1명이 치매환자라고 합니다.
현재 100만명의 치매환자가 있어서 본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한가정의 가장이 갑자기 치매를 앓게 되면서 가정이 파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치매환자 간병비며 치료비가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지출이 있어서 감당하기가 힘들다는 치매환자 가정의 이야기를 듣고 먼 남들 이야기가 아닌 듯 합니다.
유심히 뉴스를 듣고 있었는데
아침에 지인이 이런 메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래도 치매예방에 도움이 되지나 않을까?해서 올려봅니다.
이번 주말에 전국으로 비소식이 있고,
그런다음 꽃샘추위가 있다는 예보입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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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자유게시판
♡비밀번호♡

세상 짐 다 짊어진 듯
혼자 마트를 돌며 이것저것 장을 봐온
남편은 서툰 솜씨로 요리를 해 늦은 밤 상을 차리더니 티브이 위에 있는 아내 사진을 상 앞에 올려놓고는
"여보…. 잘 지내지?
거기에선 남편 자식 챙기느라 애쓰지 말고 편히 쉬어"
…....
"살았을 땐 당신이 차려준 상을
이젠 내가 차리네그려"
…......
작은 그리움이 커질까
두려움을 눈물로 감추더니
밤을 지키는 별들의 손짓 따라
소주 두어 잔을 입에 털어 넣어 보지만
그럴수록 또렷이 짙어지는 그리움 때문인지 액자 속 아내 얼굴만 매만지던 남편은
살아있을 때 따스운 밥 한 번
차려준 적 없는 무심한 남편인 게 미안해서인지 소주잔을 눈물로 채워가다 낮에 아들들에게서 온 문자를 꺼내어 읽어 내려갑니다
(아버지….부부 동반 해외여행이라 빠질 수가 없네요.)
(아버님 죄송해요
지수 아빠 미국 출장 따라갔다 올게요.)
(할아버지….아빠 외박한 것 때문에 밤새 싸우더니 엄만 짐 챙겨 나갔고 아빠는 아직도 자고 있어)
"자식새끼 키워봤자 허탕이라더니
애미 죽고 첫 기일인데…. 쯧쯧…."
자식이라는 물통에 물을 부어준 걸로 감사함을 느끼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넣어주고 있느냐에 의해 평가되는 효도라는
기준이 삶의 한 페이지로 넘기기엔 턱없이 아파오는 가슴을 부여잡고 오늘도 애꿎은 술잔에 푸념을 담습니다
"여보….나도 이제 당신 곁으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
"더 있다가 오지 왜 벌써 오냐고 구박하는 건 아니지?"
…....
아내마저 떠나버린 텅 빈집에서
혼자 어떻게 버텨왔는지
남편은
며칠 전 아침을 밟고 들른 의사가
한 말을 곱씹어 봅니다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위암 4기입
니다 수술하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밀려가 버린 삶의 흔적들을
새벽이 내리는 길에 그려놓으며
꼬박 밤을 새운 남편은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앨범들을 펼쳐놓고
파란 하늘 품으로 떠나보낸 아내에 대한 그리움들을 조각조각 맞추어 가더니
"진수냐….이 아비가 너희한테 할 말이 있으니 형들한테 연락해 이번 주말에 집에 한 번 들리거라"
비틀어도 눈물밖에 나오지 않는 시간의 강을 건너 마주한 일요일 저녁
불편한 마음을 얼굴에 그려놓은
세 아들과 며느리들에게
"나도 이제 네 엄마 곁으로 가야 할 것 같구나"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둘 풀어 놓는 아버지의 말에 놀라기는커녕 병시중과 돈 걱정에 얼굴 살이 찌푸려지던 아들 내외 앞에 소리 없는 눈물로 쓰여진 통장 하나와 도장을 내밉니다.
"이게 뭐예요 아버지?"
"그동안 이 애비가 모은 돈이다."
그제야 구겨진 얼굴이 펴진 자식들은
통장 속 금액을 확인해 보는데요
"이게 얼마야? 십억…."
가슴 저 밑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슬퍼도 시들지 않는 꽃이 되어 말하는
아버지를 보며 묻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십억을 유산으로 저희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이세요?"
"단, 조건이 있다."
"뭔데요?"
"간병해 달라거나 효도하면 준다는 조건 같은 거 말하실 건 아니죠?"
"그런 건 불효자인 너희한테 요구하지 않겠다."
"그거 아니면 다 좋아요"
"내가 죽기 전에 이 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내면 너희 돈이 되겠지만 만약 못 알아내면 이 돈은 독거노인재단으로 넘어갈 것이야."
"좋아요!!
그까짓 숫자 네개 정도야…. 하하"
그날 이후부터
삼 형제 내외는 밤잠을 설쳐가며
자신들이 태어난 날, 결혼기념일, 자식들 생일, 등등 수없이 비밀번호를
은행에 가서 넣어보았지만,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비밀번호는 결국 찾지 못한 채
10억의 돈은 독거노인재단으로
넘어가고 말았고
실망한 자식들은
새벽을 따라나선 별처럼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
0908인 걸
영원히 알지 못한 채….

오늘 지인이 보내준 메세지입니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시사하는바가 커서 올려봅니다.
다음주에 꽃샘추위가 잠시 있다는 예보네요.
이달 말쯤 벚꽃구경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환절기에 따뜻하시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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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이 완연한 날씨입니다.
어제는 완두콩을 심었습니다.
초록 빛깔을 띠는 전세계에 식재료로 많이 재배되는 완두콩이 있습니다.
"스파클"이라고 종묘상에서 새가 싫어하는 약품을 처리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노랗고 쪼그마한 작은 메주콩 정도의 크기인 토종 완두콩도 있습니다.
원래 완두콩은 서늘한 곳을 좋아해서 늦가을에 심어 5월말부터 수확을 합니다.
봄철이라 크게 소독을 하지 않아도 잘자라고 열매도 많게 달리는 재배하기 편한 작물입니다.
남부지방에는 작년 가을에 심어서 지금 쯤 한뼘 크기로 새싹이 올라왔습니다.
몇년전에 저도 늦가을에 배추를 뽑고 심었는데 겨울에 싹이 다 얼어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때 쯤 심으면 작년에 심은 완두콩보다 조금 늦게 수확을 합니다.
작년 가을에 조금 심었던 토종 완두콩은 싹이 손가락 한마디 정도인데 겨을을 잘 버티고 얼지 않았습니다.
초록 빛깔의 완두콩은 단 맛이 있어서 떡을 할 때도 넣고 밥에도 놓아 먹으면 아주 맛이 좋습니다.
서리태나 팥은 밥에 물이 들지만 완두콩은 물도 들지않고 맛있습니다.
다 익은 완두콩은 콩까지채 삶아서 까먹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비가 있어서 땅이 조금 질퍽거리더군요.
대신에 완두콩이 싹이 잘 틀 것 같습니다.
까치 여러마리가 전봇대에 앉아 있었습니다.
약물처리가 되어있는 콩을 심으면 까치나 꿩이 빼먹지 않는데 집에서 씨앗을 보관했다나 심으면 새들이 다 빼먹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직포를 다 씌우고 새싹이 어느 정도까지 자랄 때까지 덮어 놓습니다.
보름 정도면 새싹들이 다 올라옵니다.
세네알씩 심었으니까 싹이나면 튼튼한 것으로 2개씩만 남기고 나머지는 뽑으면 옆에서 뿌리가 흔들리니까 가위로 잘라냅니다.
고추말뚝을 박고 줄을 세네번 매주면 넝쿨손이 있어서 잘 타고 올라갑니다.
완두콩은 툭별하게 많은 거름도 필요없고 봄철이라 병충해도 별로 없어서 재배하기가 편합니다.
주말까지 20도 가까이 온도가 상승하다가 다음주 초에 꽃샘추위가 잠깐 있을거라는 예보입니다.
환절기와 미세먼지 때문에 건강관리 잘 하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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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조상님들께서 농사일을 하셨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우리 조상님들께서 농사짓는 일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농기구가 없고 오로지 쟁기로 논밭을 갈고 호미나 괭이로 땅을 파서 농사를 지을 때였으니까요.
서로 이웃끼리 돕지 않고는 그 많은 일을 해나가기가 힘들었습니다.
특히 농사는 때를 놓지면 1년 양식을 얻지 못하기도 했으니까요.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서로 일을 번갈아가면서 도우는 것을 품앗이라 합니다.
품앗이는 일하는 때와 계절에 관계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김장을 할때도 이웃끼리 돌아가면서 차례대로 했습니다.
논에 풀을 매는 것을 김매기라 했습니다.
1년에 세번정도를 김을 매야했습니다.
이때도 품앗이를 했습니다.
70년대에 손으로 밀고 다니면서 잡초를 제거하는 기계가 나왔습니다.
줄을 떼서 모를 심은 논에는 밀고다니면서 김을 맸는데,
다랑이 논은 줄없이 모를 심어 벼포기 사이가 일정하지 못해서 김매는 기계를 밀고 다닐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만해도 경지정리가 안되어서 거의 다랑이 논이었습니다.
정부에서 경지정리 작업을 해서 논빼미가 크고 반듯하게 논을 만들었고 경운기와 트랙터라는 농기계가 등장해서 조금은 농사일이 수월해진 셈이었습니다.
이양기라는 기계로 모내기를 하고나면 눈에 잡초가 나지않게 제초제를 뿌리면서 김을 맬 필요가 없어졌죠.
저희 초등학교 다닐 때만해도 논에 피사리를 하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피사리를 하고나면 종아리에 시커먼 거머리가 붙어서 피를 빨아 먹기도 했었습니다.
시골 초가집은 2-3년마다 지푸라기를 엮어서 지붕을 얹어 줄 때도 품앗이를 했습니다.
저희집은 억새로 지붕을 얹었기 때문에 한번 억새로 얹어 놓으면 매년 지푸라기로 용머리만 틀어서 얹으면 오래갑니다.
이때도 산에 억새가 많지 않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지붕에 억새를 얹었습니다.
소를 키우는 집이 많지 않아서 소를 빌려다 논 한마지기를 갈고 대신에 하루 일을 해주었습니다.
저희집에는 손으로 돌리면서 옷을 짓는 재봉틀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재봉틀로 옷을 만들어주시고 대신에 저희집 농사일을 도와주시기도 했습니다.
수작골이라는 이웃마을에 사시는 아주머니께서는 매년 설추석 명절 다 재봉틀로 옷을 지어드리고 저희집 농사일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때는 광목이나 삼베같은 것으로 적삼과 바지 두루마기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초등학교 다닐적 운동회 때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었습니다.
저희 형제들이 청군도 있고,
백군도 있었습니다.
이때 다우다라는 옷감을 흰색과 청색을 사다가 어머니께서 고무줄을 넣은 반바지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길쌈을 할때도 이웃끼리 품앗이를 했습니다.
요즘 말하는 상부상조하는 것이겠지요.
지금도 저희 고향에서는 애(哀)사시에 마을분들이 일손을 놓고 묘역준비를 도와주시곤 합니다.
옛날에는 상여가 나갈때도 서로 도와가면서 품앗이같이 상여를 메고 亡人을 보내드렸습니다.
애경사가 있을적에도 온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음식을 만들고 손님접대를 같이했습니다.
지금은 장례식장과 상조회사가 있어서 모든 일을 도맡아하기에 수월한셈이죠.
요즘같이 물질만능 시대와 자기본위로 살아가는 세대들한테 품앗이를 알 수 있을까요?
오늘은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로 땅속에 들어가서 동면하던 동물들이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무렵입니다.
경칩에는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합니다.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꽃샘추에에 깜짝 놀라서 다시 동면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쌀쌀한 아침 기온입니다.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추위가 물러나면 농촌에서는 농사일이 시작되겠네요.
늘 조심하시고
올 한해도 대풍을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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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쯤이면 꽃샘추위가 있다.
꽃샘추위란 초봄에 날씨가 풀린 뒤 다시 찾아오는 일시적인 추위를 가리키는 고유어이다.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듯이 춥다고 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
꽃샘추위가 오면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사람들은 옷을 두껍게 입고 다닌다.
꽃샘추위는 시베리아 고기압에 의한 것이다.
즉 겨울의 한기는 시베리아에서 유입되며 겨울에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을 받는 곳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꽃샘추위 비슷한 늦추위가 있다.
한반도나 동북아시아 등지에서 나타나는 기후 특징 중 하나이다.
오늘은 새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특히 학생들은 입학도 하고,
새학기를 맞이해서 한 학년씩 올라가고,
새로운 담임 선생님도 새로운 친구도 만나게 되어서 긴장을 하게 된다.
선생님들도 새학기에 새로운 학생을 맞이 할 준비로 긴장을 갖기도 했다.
학생들이나 선생님들도 새학기에 긴장해서인지 꼭 있는 이때 꽃샘추위에 감기를 앓은 교사들도 학생들도 많다.
그래서 심한 기침과 고열로 소아과와 호흡기내과에 감기환자가 급증하기도 했다.
저도 3월중 신학기엔 연례행사로 어김없이 목감기를 앓아서 일주일정도 감기약을 먹고 고생을 했었다.
꽃샘추위가 있는 3월 새학기에는 교실에서 기침을 하는 학생들이 정말 많았다.
올해도 엊그제까지만해도 22도를 웃도는 날씨라 전국 곳곳에 따뜻한 날씨가 많았는데
오늘 새학기를 맞이한 학생들이 기나긴 방학을 마치고 새로운 교실로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맞이하고,
반편성을 해서 새로운 친구들 만나는 날이라 많이 긴장하리라 생각한다.
특히 처음 입학한 어린아이들은 얼마나 긴장될까?
어른들도 작장을 옮기고,
이사를 하면 어설프잖아요?
날씨라도 포근했으면 좋으련만 불어닥친 꽃샘추위라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한 학생들이 힘들어 하지나 않을까?염려스럽기도 한다.
"꽃샘이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2-4월 초봄에도 꽃샘추위가 있다는 뜻이고,
"꽃샘추위는 꾸어다 해도 한다"는 꽃샘추위가 꼭 온다는 뜻으로 꽃샘추위와 관련된 속담도 있다.
이번 꽃샘추위가 지나가면 급속하게 기온이 올라갈거라는 예보가 있다.
4월에는 일찌기 무더운 날씨가 있을거라는 기상청 장기예보도 있다.
어제 오전에 비가 내리고 오후에 그쳐서 텃밭에 나갔다.
내일 새벽부터 비소식이 있어서 부직포를 벗긴 마늘과 양파밭에 고자리파리약을 살포했다.
지하수도 연결하고,
블루베리나무에 유박을 주고 상토로 덮어주었다.
감나무와 사과대추나무 전지는 또 차가운 바람 핑게로 또 미뤘다.
영동할매가 내려와서 그런지?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었다.
두아들한테 아가들 어린이집과 학교에 등교할 때 따뜻하게 입혀서 보내라고 당부를 했답니다.
아침 뉴스에도 곳곳에 많은 눈과 강풍특보가 내려지고 있다고 하네요.
꽃샘추위에 따뜻하시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문뜩 시인 신복순님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2월과 3월"

봄을
빨리 맞으라고
2월은
숫자 몇개를 슬쩍
뺐다.

봄꽃이
더 많이 피라고
3월은
숫자를 꽉 채웠다.

짧지만 우리들 마음을 미소짖고 따뜻하게 하는 시네요.
음력 2월이 짧은 이유는 음력 7월과 8월을 길게 하려고 그랬나 봅니다.
여느달보다 이번 음력 2월을 빠르게 지나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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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국민학교 다닐 때 초승달과 그믐달을 구분하기가 헷갈릴 때가 많았다.
초승달은 음력 3일경부터 7일까지 오른쪽이 밝고 서쪽 하늘에서 저녁에 나타나고,
그믐달은 음력 24일경부터 말일까지 왼쪽이 밝고 새벽에 동쪽에서 볼 수가 있다.
손톱의 하얀 부분을 보고 초승달과 그믐달을 구분하기도 했었다.
오른쪽 손톱에 하얀 동그란 부분이 왼쪽으로 있어서 그믐달이고,
왼쪽 손톱에 하얀 동그란 부분이 오른쪽으로 있을 때 초승달이라고 알려주기도 했었다.
어제 새벽 하늘에 왼쪽이 밝은 그믐달을 보니 정월이 다지나가고 음력 2월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음력 2월 초하루는 영동할매가 내려왔다가 세상을 두루 돌아보고 2월 20일경에 올라간다는 음력 2월입니다.
그래서인지 음력 2월은 유난히 바람이 많고 쌀쌀한 날씨가 많은 달이기도 합니다.
영동이란?
靈(영묘할 영)
動(움직일 동)
영(靈)적인 힘이 동쪽에서 일어나서 온다.
영등할매.
영둥할매.
지역마다 다르게 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동할매는 바람과 비를 몰고 오는 신이라고 했습니다.
이 때 영동할매가 딸을 데리고 오면 너그러운 날이라 바람만 불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성질을 자주내 비와 바람이 같이 온다고 해서 예전부터 딸을 며느리보다 더 좋아했나 봅니다.
그래도 비와 바람이 같이오면 그해는 풍년을 기약할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이맘 때 보리고랑에 파란 새싹을 시샘이나 하듯이 진눈개비가 내려 꽃샘추위가 있기도 합니다.
또 이날은 머슴날이라고도 했습니다.
옛날 농경사회때 1년동안 새경을 받고 고용되어 농사일을 도와주는 사람을 머슴이라 불렀습니다.
상머슴은 90k들이 백미 15가마니를 작은머슴은 10가마니를 새경으로 받고 한해동안 사랑방에서 지내면서 집안일과 농사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가을일이 끝나면 겨우내 군불을 지필 수 있는 나무를 하고,
사랑방에서 멍석과 가마니, 산태미 등 농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저희집 사랑방에는 동네 머슴들 여러명이 모여서 화투로 두부내기도 하면서 기나긴 겨울밤을 같이 지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때 쌀가마니는 볏짚으로 짠 가마니 기억나시나요?
마대포대가 나오기전까지는 지푸라기로 가마니틀에서 짜낸 가마니를 사용했습니다.
가마니에 대나무를 찔러 넣어서 쌀을 한웅큼 빼먹기도 했습니다.
대나무 끝을 사선으로 뾰쪽하게 만들어서 가마니를 찔러 쌀을 빼고 가마니를 위아래로 당기면 구멍이 메꾸어지는데 이것을 삿대라고 했습니다.
보리나 나락을 공판할 때면 농산물 검사원이 삿대로 찔러서 수분과 품질을 비교하면서 등급을 매겼습니다.
검사원의 지시에 따라서 등급 도장을 가마니에 먹물을 묻혀서 찍었습니다.
이때 삿대로 뺀 보리와 나락은 모아서 술값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때 리어카로 나락가마니를 실고 면소재지 공판장에 나와서 1등급을 받으면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과일의 당도를 체크하는 기계가 있듯이 습도를 재는 기계가 있어서 습도를 체크하지만 그 옛날에는 검사원 손으로 습도를 체크하고 수분이 많다고 지적당하면 햇볕이 잘드는 곳에 멍석을 빌려서 잠시 널었다가 다시 검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리어카가 없는 집에서는 십리길을 지게로 짊어지고 공판장으로 나락가마니를 날랐습니다.
저희 고향에서 서울까지 쌀 한가마니를 철도 수화물로 부치면 지푸라기로 만든 가마니라서 새끼로 꿰맨 사이로 쌀이 흘러나오기도 하고 쥐가 먹기도하고 수화물로 옮겨 실을 때 꼬챙이에 구멍이나서 쌀이 새어나오기도해서 가마니가 홀쭉 했다고도 했습니다.
90k들이 쌀가마니를 재는 저울은 커다란 막대저울로 달았습니다.
가마니를 저울 갈쿠리에 끼우고,
큰 막대를 양쪽에서 들어 올리면 저울추를 근대에 맞춥니다.
저울추가 올라가면 덜어내고,
저울추가 내려가면 바가지로 더 퍼 넣어서 추를 수평되게 맞추는 저울입니다.
동네마다 1개씩 있어서 사용하고나면 바로 마을회관에 갔다 놓았습니다.
그러다 추가 달린 앉은뱅이 저울로 방앗간에서 달아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농사를 많이 지은 부자집에선 두명의 머슴을 고용했습니다.
지난 가을걷이를 마치고 여유롭게 겨울을 보내다가 서서히 농사일을 시작할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머슴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하루를 쉬게 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날이 지나면 농사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머슴들은 "썩은 새끼줄에 목을 맨다"는 속설이 있었습니다.
영동할매가 오는 날은 쑥떡을 해 먹었습니다.
마당에서 안반에다 잘 삶은 찹쌀을 떡메로 떡을 치고,
콩고물은 볶은 콩을 절구통에 넣고 빻아서 가는 채로 걸러서 만들었습니다.
냉장시설이 없던때라 둥그렇게 만들어서 살짝 말렸다가 조금씩 뜯어서 콩고물에 버물러서 보름정도까지 먹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쑥을 뜯어 새끼줄로 묶어서 말렸습니다.
그래서 쑥인절미가 쓴맛도 있고 쑥색깔도 까맣고 질겼습니다.
지금은 쑥 새순을 뜯어서 소다를 넣고 삶아 냉동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사용하니까 쓴맛도 질기지도 않고 쑥인절미 색깔도 얼마나 이쁩니까?
또 콩을 볶아서 콩주머니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날은 산에가서 빨간 황토흙을 퍼와서 대문밖에 양쪽으로 한웅큼씩 10여군데에 놓기도 했습니다.
사립문 양쪽에는 대나무 가지를 꺽어다 꽂아 놓았습니다.
아마도 잡귀를 쫒아낸다는 속설이었겠죠?
또 지난 겨우내 날렸던 연을 정지에 있는 살강에 한쪽에 오색실과 함께 매달아 놓았습니다.
정한수를 떠놓고 어머니께서는 두손을 합장하고 가화만사성을 소원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부엌 부뚜막에 정한수도 떠놓지 못했고 사립문 앞에 황토흙도 뿌리지 못했지만 날마다 이렇게 하시면서 자식들 출세와 건강 그리고 부자되기를 바라셨던 어무이를 생각하면서 영동할매가 오는날 텅빈 집을 한번 둘러보러 다녀올려고 합니다.
어느 회사에서 전직원들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연사가
"태어나서는 엄마의 말씀을~
결혼하면 아내의 말을~
운전할 때는 네비게이션의 여자 말을~
이렇게 세 여자의 말을 듣고 살면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어찌보면 세상살이가 맞지 않나!싶습니다.
박목월 시인은
"2월의 봄은 베개밑으로 온다"라고 했습니다.
올해 봄은 조금 빠르고 따뜻할거라는 기상청예보입니다.
벚꽃의 개화시기는 "600도의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2월1일부터 낮 최고기온을 합계해서 600도에 도달해야 벚꽃이 핀다는 법칙이 있어서 벚꽃 개화시기를 600도 법칙이라 한답니다.
겨울이 길어서 봄꽃의 개화시기가 늦지나 않을까?했는데 3월과 4월에 따뜻한 날씨가 일찍 찾아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년보다 6-7일 봄꽃의 개화시기가 앞당겨질꺼라는 예보가 있더군요.
봄은 꽃의 계절이고 희망의 계절입니다.
봄은 가장 많은 시인들이 시를 쓰고 모든 사람들이 가장 즐거운 노래를 부르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웠던 세시풍습이 사라져가는 것이 많이 아쉽습니다.
봄에 농부들은 땅을 새로 일구어 씨앗을 뿌릴 준비를 할 때입니다.
오늘 아침도 영하의 기온이지만 낮부터는 기온이 올라가서 주중에는 15도 이상 올라간다고 하네요.
주말에는 봄을 재촉하는 비소식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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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지 말자.♤

우리는 노후에 대해서 착각을 합니다.
7대 착각이라고 해서 일곱 가지를 주로 얘기합니다.

첫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실제로 나이가 들어 보면요, 절대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70세 때하고 75세 때하고 큰 차이가 나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니라 나이가 차면 굉장히 힘들어 진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노후 준비를 차분히 해야 됩니다.

만약에 60이다. 아직도 40년이 남았어, 그건 거짓말입니다.

그 40년의 삶의 질이라고 하는 건 팍 떨어지기 때문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것 그 착각에서 깨셔야 됩니다.

둘째, 인생은 60부터인 줄 안다. 인생은 60부터 내리막 길입니다.

인생은 60부터가 아닙니다. 한가지 여기서 인생이 60부터 라고 하는 의미가 있는게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 인생은 60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인생은 60부터 입니다.

그 외의 것은 착각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셋째 죽을 때까지 일해야 되는 줄 안다. 수많은 노후에 관한 책들이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 ‘100세 시대이기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 일해야 된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90살, 100살 까지 일하고 있는 분들을 자꾸만 거론 하면서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

이런 얘기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몇 명 없습니다.
그런 분들 어쩌다가 한 두 분이지 일반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건 착각입니다. 늙어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생각할 때는 80 정도 까지 자기의 취미생활 이라든가 이런 걸 하면서 또는 일자리가 있으면 일을 하시되 가급적이면 노후에는 즐기면서 노시기를 권합니다.

아주 멋지게 노십시오. 그것이 노후 생활의 바람직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넷째는 100세 시대라 40년 더 살 줄 안다. 그건 착각입니다. 세상과 만나면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전부 건강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 병원에 가 보면 그리고 요양원에 가보면 앓아 누워 있는 분들이 엄청 많다는거 잊지 마십시오.

“99세까지 팔팔하게 3일만 앓다 사망하자” 99세까지 팔팔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99세까지 팔팔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셔야 됩니다.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냐 하면 "44 44"
44, 사랑하며 사시고
44, 사람답게 사세요. 이것을 저는 오히려 권합니다.

다섯째, 자기만은 멋지게 늙을 줄 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착각 입니다. 늙으면 다 노후에 멋쟁이라고 해봤자 그렇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나만은 그래도 멋지게 늙을 줄 안다는거 착각 이라는거 잊지 마시고 자기관리 잘하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막연히 무슨 수가 있을 줄 아는데. 그건 착각 입니다. 준비하지 않으며 보람찬 노후, 멋진 노후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막연히 ’잘 되겠지, 무슨 수가 나겠지, 국가가 알아서 해주겠지‘ 국가가 뭘 어떻게 알아서
해줍니까? 그 착각에서 깨시기 바랍니다.

일곱째, 그래도 나만은 예외일 줄 압니다. 그거 착각입니다.

다 똑같습니다.
다 나이 들면 몸도 아프고, 건강도 해치고 일거리도 없어지고, 주변에서 싫어하고, 꼰대가 되고, 다 똑같습니다. 예외없이 노후가 온다는 것. 노후 대비 잊지 말고 잘
준비 하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지인이 보내 온 글인데
공감이 갑니다.
김형석교수님같이 100세가 넘어서 강의도 하시는 사람이 흔한 일은 아닙니다.
어쩌다 그런 분이 계신셈이지요?
오늘 이 세상 소풍 마치고
간다 해도 미련은 없는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어제 그렇게 세차게 불던 바람도 잦았네요.
내일이 지나면 한낮에는 따뜻한 봄기운이 있을 것 같습니다.
겨우내 움추렸던 몸과 마음이 풀릴 것 같습니다.
그동안 추위를 핑게로 게으름도 폈습니다.
텃밭에 감나무 전지도 해야하고,
마늘밭에 부직포를 벗기고 풀도 뽑고 웃거름도 해야하고,
가장 빠르게 1년 내내 먹을 왼두콩도 심을 준비를 해야해서 마음이 바쁘네요.
늘 건강 유의하시고
즐거움만 가득한 시간 되시길 기원합니다.
글과 함께 오늘 새벽에 그믐달을 찍어서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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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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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지밀을 생산하는 정식품 정재원회장님 이야기입니다. ♡
너무 감동적이어서 올려드립니다.
이번 추위도 다음주부터 평년기온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농사일 하시는 농부님들께서 빠쁠 때가 돌아온 것 같습니다.
겨우내 움추렸던 몸이라 무리하시지 마시고 쉬엄쉬엄 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소년은 급사(給仕)였다.
황해도에서 보통학교만 졸업하고 서울에 왔다.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그는 대중목욕탕 심부름꾼부터 모자가게 점원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의학강습소의 급사 자리를 얻게 됐다.

등사기를 밀어서 강습소 학생들이 볼 강의 교재를 만들어내야 했다.

“자연스레 교재를 들여다봤죠.
용어가 어려워 옥편을 뒤져가면서 독학을
하다 보니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는 의대에 다니지 않아도 시험만으로도 의사 자격증을 딸수 있었거든요.”

주경야독으로 의사고시에 매달린 지 꼬박 2년,그는 20세에 의사고시에 합격했다.
주변에선 국내 최연소 의사라고 축하해줬다.
시험에 합격한 해인 1937년 서울 성모병원의 의사가 됐다.

병원 생활은 평탄했지만 수십 년 뒤 그의 인생을 바꿔놓는 사건이 생겼다.

뼈가 앙상하고 배만 볼록 솟아오른 갓난아기 환자가 병원에 온 것이었다.

“아이 엄마는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아이를 업고 꼬박 하루 걸려 왔다고 했어요. 어렵게 얻은 아들이라며 ‘제발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요.
차트를 보니 병명이 ‘소화불량’이었는데,
아이는 끝내 세상을 떴습니다.”

어떤 의사도 아이를 살릴 수 없었다.

이후에도 복부 팽만으로 병원을 찾은, 적지 않은 신생아들이 설사만 하다가 무력하게 죽어갔다.

의사가 된 청년은 자책과 의문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원인 모를 병으로 죽어가는 이 아이들을 언젠가는 고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이제는 유학을 가보자.’ 당시 43세였던 그는 의사 초년병 시절에 접했던, 소화불량에 걸린 신생아들을 고칠 방법을 찾기 위해 의학 선진국으로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때가 가장 큰 선택의 기로에 놓였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주변에서는 반대했다.
그에게는 아내와 6남매가 있었고, 의사로서의 안정된 삶도 보장돼 있었다. 하지만 아이
들을 살려내야겠다는,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떨칠 수 없었다.

“영국 런던대에 공부하러 갔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어요. 곧장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UC메디컬센터로 건너가 미국에도 비슷한 증상이 있나 샅샅이 뒤져봤지요.”

1964년, 그는 도서관에서 소아과 교재를 읽다가 무릎을 쳤다.
바로 ‘유당불내증(乳糖不耐症·lactose intolerance)’이 소개된 대목이었다.

20여 년간 지녀온 의문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유당불내증은 우유나 모유의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 증상을 가진 신생하는 모유나 우유를 소화하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고 만다.

우유 대용식을 만드는 게 급선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린시절 어머니가 끓여줬던 콩국을 떠올렸고, 그 길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서울 명동에서 ‘정소아과’를 운영하며 아내와 함께 우유 대용식 개발에 매달렸다.

아내가 콩을 맷돌로 갈아 콩국을 만들면 그는 콩국의 영양이 충분한지 분석했다.
병원 지하에 실험용 흰 쥐를 잔뜩 갖다 놓고 콩국을 먹인 쥐에게 유당불내증이 나타나
는지 등을 실험했다.

주변에선 “정소아과 원장이 미국에 다녀오
더니 이상해졌다” 고 수군댔다.

이렇게 3년 남짓 연구한 끝에 두유를 개발해냈고 이것을 설사병에 걸린 신생아들에게 줬다.

병상의 아이들은 눈을 뜨면서 기력을 차렸다.
콩에는 필수영양소(단백질 40%, 탄수화물 35%, 지방 20%)가 들어 있지만 유당은 들어 있지 않다. “인생에서 최고로 기뻤던 순간”이었다.

설사병을 앓는 아이의 부모들 사이에서는 ‘정소아과가 용하다’는 입소문이 났다.
전국 각지에서 그를 찾아왔다.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환자가 몰리자 두유 수요가 달렸다.

자연히 아픈 아이들에게 부족함 없이 두유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결국 정재원은 1973년 ‘정식품’이란 회사를 세워 두유 대량 생산에나섰다.

콩국이 식물성 우유라는 점에 착안해 식물(vegetable)과 우유(milk)의 영문명을 합쳐 ‘베지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당시 56세였던 그는 다시 한번 도전의 길에 접어들었다.
“개인 병원만 운영하다 기업을 이끄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지요. 하지만 신생아들을 살리려면 창업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어요.”

그가 사명감을 갖고 만든 베지밀은 지금도 두유업계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창업후부터 올해(5월말 기준)까지 만들어진 두유는 총 130억 개다.
이를 나란히 세우면 서울∼부산을 1630차례 오갈 수 있다.

‘인류 건강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고저’를 정식품의 창업이념으로 정한 그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성찰이 있어야 기업이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진정한 성장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의 이야기다.

그는 생존해 있는 한국 재계의 창업주 중 최고령이다.
우리 나이로 99세인 그는 올 1월 ‘백수연
(白壽宴)’을 치렀다.
백수연을 한자로 쓸 때는 ‘일백 백(百)’에서 ‘한 일(一)’을 뺀 ‘흰 백(白)자’를 쓴다.
100세보다 한 살이 적은 99세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다.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은 아내인 고(故) 김금엽 여사와 사이가 각별했다.
그는 서울 성모병원에서 의사생활을 하던 시절 아내를 만났다.
고아였던 아내는 수녀원에서 자랐고, 성인이 된 뒤 가톨릭 계열인 성모병원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내로라하는 집안에서 중매가 여러 건 들어왔지만 그는 모두 거절했다. ‘박꽃처럼 예뻤던’ 아내 때문이었다.

공부하는 여성이 드물 때였지만, 그는 아내에게 유학을 권했다.
아내가 일본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해인 1942년 두 사람은 부부가 됐다.

정 명예회장은 “선 봐서 결혼했더라면 처갓집 눈치가 보여 40대에 유학도, 50대에 창업도 선뜻 하지 못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와 함께 두유를 개발한 아내는 정식품의 ‘각자대표’ (1973∼1987년)를 맡아 사업에서도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줬다.
그런 아내는 2004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정 명예회장은 아내의 장례식장에서 턱시도를 차려 입고 조문객을 맞이했다.
그의 턱시도는 황해도고향에서 올린 결혼식 때 입었던 예복이었다.
부부는 반세기 넘게 ‘결혼의 징표’인 턱시도와 면사포를 간직했다.
턱시도를 입은 정명예회장은 아내의 관(棺) 속에 흰색 면사포를 넣어줬다.
백발의 노신사는 아내에게 예(禮)를 다해 그렇게 작별 인사를 했다.

너무 감동적이라 퍼와서 올려봅니다.
오늘도 좋은일만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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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니게 입춘(立春)한파가 대단하게 지나갔습니다.
입춘한파가 지나가고 두번째 절기인 우수(雨水)가 있으니 곧 봄이 오겠거니?했습니다.
눈이 녹아서 비나 물이 된다는 날이고
곧 날씨가 풀린다는 뜻으로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라는 두번째 절기입니다.
그러나 입춘한파가 대단했는데 우수가 그냥 있을 수는 없다는 듯이 우수한파가 길게 일주일 내 이어진다는 예보네요.
어제 낮부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기온마저 뚝 떨어졌습니다.
이번 우수한파도 겨울 못지 않은 날씨일 것 같습니다.
지난 6일이 말날이라 장을 담그는 날이었는데 워낙 눈도 많았고 어설퍼서 우수에는 날씨가 풀리겠지?하고 오늘로 미뤘습니다.
바람도 차갑고 기온도 뚝 떨어졌지만 며칠 전에 풀어 놓은 소금물도 있어서 장을 담갔습니다.
오늘이 정월들어 두번째 말날(戊午日)입니다.
옛부터 음력 정월의 말날에 장을 담그는 이유는 기(氣)의 왕성함을 상징하는 말처럼 왕성하고 풍요롭기를 바라는 의미이고,
말이 콩을 좋아해서라고도 전해집니다.
"늙은 말 콩 더 달란다"는 옛말이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또 말피가 검붉어서 그렇게 잘 우러나와 맛있는 간장이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어서 말날에 장은 담는다고 했습니다.
지난 늦가을에 잘 익은 대두(메주콩)를 잘 삶아 옛날 사랑방에서 썻던 나무토막 베개만하게 사각으로 만들었습니다.
햇볕이 잘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지푸라기로 엮어서 메주를 매달아서 말렸습니다.
얼마전만해도 잘 말린 메주를 사과박스에 지푸라기를 깔고 메주를 담아 바닥에 전기장판을 깔고 이불로 뒤집어 씌워 뜻뜻한 곳에서 메주를 띄웠습니다.
옛날에는 구들방 아랫묵에다 멱다리에 솔잎과 지푸라기를 넣어서 메주를 띄웠습니다.
어른들께서는 메주 뜨는 냄새가 구수한 냄새라고 하시는데 퀘퀘한 냄새는 좋은 기억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농산물 건조기가 있어서 건조기에 띄우기도 합니다.
비닐봉투에 지푸라기를 깔고 메주를 나누어서 넣고 비닐봉투 주둥이를 바람이 통하지않게 묶습니다.
40도로 3일간 숙성시키고 이틀 후에 비닐봉투를 열면 메주 뜬 냄새가 구수하게 납니다.
몇년 전에 구입한 간수빠진 소금을 미리 풀어서 찌거기를 가라앉혔습니다.
간수가 덜빠진 소금으로 배추를 간치면 김치가 쓴맛이 있다고합니다.
그래서 간수가 다 빠진 바슬바슬한 소금을 스텐통에 풀었습니다.
염도를 재는 기구가 없어서 눈대중으로 소금을 풀었습니다.
달걀을 띄워서 500원짜리 동전정도가 잠기면 염도가 맞다고 합니다.
잘 말린 항아리에 짚을 태워서 소독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요즘은 지푸라기 대신에 신문지를 태워서 소독을 하기도 합니다.
깨끗하게 손질한 메주가 적당히 잠기도록 소금물을 항아리에 채웁니다.
그 위에 빨간 건고추와 숯 대추를 올립니다.
숯은 옛날엔 설 명절날 아랫방에 군불을 지피면서 아버지께서 하얀분이 있고 두들기면 쇳소리가나는 참나무숯을 준비했습니다.
지금은 불을 때는 부엌이 없어서 화목보일러를 쓰는 고향 친구한테 부탁을 해서 얻어왔습니다.
아내 친구네랑 이모님댁에 숯을 나눔했습니다.
숯이 없으면 꼭 넣지 않아도 된다고도 합니다.
메주가 소금물에 뜨지않게 대나무를 휘어서 눌러놓습니다.
이렇게 누르지 않으면 메주가 떠올라서 햇볕에 노출되어 곰팡이가 피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항아리를 새끼줄로 둘렀습니다.
아가가 태어나면 사립문 앞에 부정타지 말라고 금줄을 매달았습니다.
새끼줄을 치고 남자애가 태어나면 고추와 숯 그리고 솔가지 등을 달고,
여자애가 태어나면 고추대신에 종이를 끼워서 부정한 일을 한사람은 출입을 막는 것과 흡사합니다.
요즘은 항아리 뚜껑이 유리로 만들어져 있어서 햇볕을 많이 받아 장이 쉽게 색깔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담근 장은 60여일 지나면 치대는데 맛있는 된장을 먹기 위해서입니다.
간장보다는 된장을 먹을려고 장을 담그는 것 같습니다.
2말(16k)정도를 장을 담그면 한해 걸러서 장을 담그기도 합니다.
요즘 마트나 시장에 나가보면 메주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장을 담글 수 있게 숯이랑 고추도 곁들여 있더군요.
소금물만 풀어서 장을 담글 수 있게 소포장도 있답니다.
메주콩을 학독이나 절구통에 넣고 빻아야 콩알맹이가 남고 하는데 물고추 가는 기계에 갈아서 메주를 만들기 때문에 이쁘고 매끈하게 잘도 만들었습니다.
너무 인스탄트식품에 물들여진 먹거리에 음식건강을 위해서 발효식품을 만들어 먹어야 되겠구나!싶습니다.
이번 우수추위가 지나면 봄이 오는 소리가 있지 않을까?싶습니다.
또 보름 후에 있을 세번째 절기인 경칩(驚蟄)에는 설마 경칩추위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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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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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입춘한파는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강추위였습니다.
추위도 삼한사온이 아니라 꼬빡 일주일이 길게 강추위와 강풍이 있었고,
올들어 가장 많이 내린 눈이 꽁꽁 얼어 붙고 그늘진 곳은 다저져서 빙판길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늘진 골목길은 자동차와 사람들 발자욱에 다저져서 얼음이 있는 곳이 많습니다.
정월대보름 날인 수요일에나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서 그때나 눈과 얼음이 다 녹을 듯 합니다.
오늘 아침 기온은 아직도 차갑습니다.
보름달하면 정월대보름과 추석 한가위 때의 보름달이 떠오릅니다.
정월대보름날 보름달은 차가운 날씨라 하늘이 맑고 선명해서 총총한 별들과 더불어 한가위 때 보름달보다 더 선명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 정월대보름달은 낮에 전국적으로 눈과 비소식이 있어서 볼 수가 있을런지요?
내일 정월대보름 추억 이야기를 소환해봅니다.
음력 정월 14일은 작은보름이고 15일은 큰보름이라 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의 농경사회 때는 설과 추석명절 그리고 정월대보름을 3대 명절로 여겼다고 한다.
정월대보름날은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 등 특별한 음식이 있었다.
달이 먼산에서 올라오면 달을 맞이하고 보기 좋은 곳에 달집을 짓고 달이 뜨는 방향으로 달집문을 만들었다.
우리 고향에서는 마을에서 좀 높은 당산제를 지냈던 잿마당에다 달집을 지었었다.
옛날에 정지에서 물을 받아 그릇을 씻었던 오래 된 구시를 거두어서 달집을 만들어서 태웠다.
대나무를 끊어다 높게 세워 달집을 만들고 산에서 생솔가지를 베다가 달집을 삥 둘렀다.
달집은 생솔가지라 다 태울 때 까지 불이 꺼지면 액운이 있다는 속설에 지푸라기로 달집 가운데를 메꾸고 군데군데 지푸라기로 불쏘시개를 넣어서 달집이 잘 타게 만들었다.
기다란 대나무로 달집을 세우는 것은 달집을 높게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대나무가 불에 타면서 톡톡 대나무가 튀는 소리에 귀신을 쫒아낸다고 했다.
달집에 불을 부치고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저마다 소원을 빌었다.
아낙네들은 저고리의 동정을 떼서 달집에 던저 태우면서 소원을 빌었다.
며느리가 애기가 없는 가정에서는 애기를 점지해 주시라고 천지신명(天地神明)님께 두손모아 빌었고, 가족들 건강과 무엇보다도 올해 농사가 풍년을 기약하는 소원을 빌었다.
달집 태우는 불에 콩을 볶아 먹으면 부스럼이 없다고해서 볶아서 먹었다.
정월대보름에는 쥐불놀이를 했다.
논두렁에 불을 질러서 해충과 들쥐를 없애는 불놀이다.
밤에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뚫고 철사로 손잡이를 만들어서 나무토막을 넣고 불을 붙여 "망우리야"하면서 빙빙 돌리면 요즘 폭죽놀이 같았다.
"망우리야"는 아마도 망월(望月)의 사투리였지 않나 싶다.
그때는 깡통도 쉽게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쥐불놀이가 끝나면 내년에 또 쓸려고 사랑채 실겅 한쪽에 걸어 놓았다.
이때 관솔은 쥐불놀이를 하는데 최고였다.
관솔은 송진때문에 불이 잘 붙고 불이 오래동안 붙어 있었다.
신작로에서 횃불을 돌리면서 웃마을 아이들과 거리를 두고 싸움아닌 싸움을 하기도했다.
어느날 신작로에 가운데가 썩어 텅빈 가로수로 포푸라나무 고목이 있었는데 그 속에다 불씨를 넣어 그 큰 포푸라나무가 다 타버리기도했다.
정월대보름에 더위팔기라는 풍속이 있었다.
남에게 더위를 파는 풍속으로 정월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친구나 이웃을 찾아가 이름을 부른다.
이름을 불린 사람이 무심코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 또는 "내 더위 네 더위 맞더위"라고 외치는 더위팔기가 있었다.
정월대보름에는 꼭 먹어야 할 음식이 있었다.
지난해 여름 말려 둔 아홉가지 묵은 나물로 만든 묵은 나물 반찬이다.
고사리, 호박고지, 가지고지, 시래기, 취나물, 도라지, 고구마순, 토란잎, 아주까리잎
등 9가지 이상의 묵은 나물을 먹었는데 지역마다 나물의 종류는 다양했다.
우리 할머니께서는 토란잎과 아주까리잎을 늘 말리셨다가 정월보름에 들기름에 볶아서 먹었다.
묵은 나물로 부족한 영양분을 섭취하면 그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쌀, 조, 수수, 팥, 콩 등 다섯 가지 곡식을 섞어 만든 오곡밥도 있었다.
찹쌀에 대추, 밤, 잣, 참기름, 간장 등을 넣고 버무려 찐 약밥을 먹기도 했다.
또 부럼깨기가 있다.
정월대보름 아침에 깨물어 먹는 땅콩, 밤, 잣, 호두 등의 단단한 열매를 부럼이라 하는데 부럼을 깨물면 이가 튼튼해지고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꼭 챙겨 먹었다.
정월대보름날 아침에 마시는 데우지않고 차가운 술을 귀밝이 술이라 했다.
귀밝이술을 마시면 1년 내내 귀가 밝아지고,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다고 해서 차디찬 술 한모금씩 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보름날은 성이 서로 다른 세 집 이상에서 밥을 먹어야 그 해 운이 좋다고 해서 양푼을 들고 다니면서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오곡밥을 서로 나눠서 먹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농경사회로 정월대보름에 피해야 할 금기사항도 있었다.
비린내나는 생선을 먹으면 몸에 부스럼이 생기고 여름에 파리가 들 끓는다고해서 생선은 먹지 않았다.
정월보름날 아침에 마당을 쓸면 복이 나간다고해서 오전에 빗질을 하지 않았으며 오후에 빗질을 할 때도 복이 들어오게 마당 안쪽으로 쓸었다.
또 정월보름날 칼질을 하면 부정을 탄다고하여 음식은 전날 다 준비했다.
대보름이 안지나서 일하는 것은 상놈이니까 그렇지~~라고 했다.
"나무 아홉 짐 하고 밥 아홉 그릇 먹는다"는 속담처럼 부지런히 일하고 자주 밥을 먹는 것을 말한다.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농사준비에 농촌에서는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머슴들은 썩은 사내끼(새끼줄)로 뒷동산에 올라 목을 맨다고 했다.
쉴 수 있는 시간은 다 지나고 일을해야해서 나온 말이다고 생각한다.
농사일이 시작되었으니 부지런히 일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세시풍속이 사라져가는 것이 아쉽다.
​내일 오후부터 눈비가 그치기 시작한다니까 정월대보름 보름달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둥그런 보름달을 보면서 마음속에 품고 있는 소원을 빌어 보시고,
어서 빨리 우리나라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정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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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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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한파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내일부터 혹독하게 차갑던 날씨도 평년기온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수요일에 전국적으로 비소식이 있더군요.
지난주 중에 내린 많은 눈이 대로변은 제설작업으로 다 녹았지만 골목길은 건물에 가려서 완전 빙판길이었습니다.
수요일에 비나 내려야 눈이 녹을 것 같습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귀"는 존귀하고 소중하다는 뜻이고,
"천"은 낮고 보잘 것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속담에서 말하는 것처럼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에서는 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등급이 존재합니다.
40년을 넘게 한곳에서 청소를 하시고 계시는 어느 시니어 여자분의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제가 다니는 안과병원이 있습니다.
전주에 안과로 원장님께서 안과로 개원한지가 4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다 안과병원으로 승급해서 입원실과 수술실 분야별로 여러명의 안과의사 선생님들이 있고 직원이 100명 정도가 있는 안과 종합병원입니다.
개인안과병원에서 안과병원으로 승급을 할려면 시설면과 의사들의 숫자도 있어야 하나 봅니다.
단순하게 눈의 치료만 하는 곳이 아니라 안구은행을 다루는 의료재단으로 제법 규묘가 큰 7층 건물의 안과병원입니다.
제가 눈 때문에 오래전부터 진료를 보는 곳입니다.
몇년 전에 망막수술 때문에 사흘간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병원에 청소를 담당하는 여자분들이 몇분계십니다.
그 중에 저와 같은 연배가 되는 미화를 담당하는 여자분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이분께서는 현원장님께서 개인병원을 개원할 때부터 병원 청소를 담당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40년이 넘게 일을 하고 계십니다.
지금이야 탈의실도 있고
휴게실도 있습니다.
옛날 청소부는 창고에서 옷도 갈아 입어야했고,
그곳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했습니다.
7-80년대 청소하는 분들의 모습과 환경을 생각해 보십시요?
소외받는 직업이었잖아요?
병원 청소일을 하시면서 2남 1녀를 훌륭하게 키웠더군요.
제가 자주 들리는 병원이라 눈인사를 나누는 정도였습니다.
같은 연배라 쉬는 시간에 대화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30대 때부터 병원 청소일을 하기 시작했더군요.
병원의 산 증인인 셈이지요.
장남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행정공무원으로 세종에서 같은 직종의 아내를 맞이해서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둘째도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전남 광주에서 부부교사로 근무를 하고 있고요.
딸은 전주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과장으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갓 결혼한 새댁이 병원 청소부로 자식들 삼남매를 서울에 있는 대학을 보냈고
자식들 삼남매를 서울대와 연세대를 진학시키고 행정공무원과 교사 그리고 의사를 시킨 아주머니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이젠 일을 그만 하셔도 되지않느냐?라고 했더니 놀면 뭐하느냐?고 하시더군요.
지금도 핸드폰은 폴더폰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누구나 이렇게 자식들 훌륭하게 키웠으면 호사를 누릴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도 직원들 출근하기전 새벽에 출근해서 청소일을 하고 계시는 분의 이야기였습니다.
지금은 병원 규묘가 커서 미화를 담당하는 여사님들 몇명이서 나누어 일을 하더군요.
환경이 좋아져서 휴게실이 있어서 짬짬이 쉬는 시간도 있고 도시락 대신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합니다.
당신이 처음 청소일을 할 때와는 모든 환경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같이 일을 하는 다른 분들은 불만이 많다고 하더군요.
그 여사님은 옛날 혼자 진료실이며
환자 대기실 화장실을 도맡아서 청소를 하면서 창고같은 곳에서 쭈그리고 잠시 휴식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자기가 할 일을 마치면 쉴 수 있는 자기들만의 공간인 탈의실과 휴게실이 있어서 휴식시간도 편안하게 보낼 수가 있는데도 불만이 많다고 하더군요.
지금이야 병원은 금연지역이라 담배꽁초와 재떨이를 치우는 일도 없어졌지요.
그 옛날에는 환자 대기실에서도 흡연이 가능했었습니다.
의사들도 진료실에서 흡연을 했었으니까요.
처음엔 자식들 키울려고 젊은 나이에 청소실을 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놀면 뭐 하느냐"라는 자부심을 갖는 마음으로 40년이 넘게 한곳에서 청소일을 하고 있는 이른넷의 나이에 들어서는 어느 시니어의 이야기를 올렸습니다.
누구나 자식들 훌륭하게 키웠으면 이젠 편하게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며칠 전에도 안과를 들렀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새해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유튜브나 다움에 들어가셔서 "서울의 새벽 3시"라는 동영상을 보시면 참고 되겠습니다.
저도 그 영상을 보고 글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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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부터 눈이 소복하게 내렸습니다.
담장위에 눈이 옛날 동화책에 장독대에 소복소복 쌓인 눈처럼 소복하게 쌓였습니다.
기온이 그렇게 차갑지 않아서 빗자루로 눈을 치우는데 잘 뭉쳐지더군요.
오래전에 SBS에서 방송된 이야기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동창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흐믓하면서도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선생님을 존경했던 시대 이야기입니다.
오랫동안 이어온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라는 프로가 있다.
그야말로 세상에 이런일이 있구나?를 알리는 장수프로의 방송이다.
다재다능한 능력과 그야말로 희안한 일들을 제보받아 촬영을해서 방송되는 프로다.
엣날에는 목요일 저녁에 방송되다가 화요일 저녁으로 편성되었다가 최근에 목요일 저녁으로 비슷한 프로로 방송시간대을 옮겼다.
우연찮게 TV를 시청하다가 이 시간대에 방송되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라는 방송을 시청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선생님 묘소에서 50년동안 열리는 초등학교동창회를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서울 서이초에서 학부형의 갑질 시달림을 못견디고 故인이 된 선생님 사건을 계기로 교단에서 각자 겪고 있던 아픔과 고충이 세상 밖으로 알려졌습니다.
심지어는 교육부 사무관이라는 작자는 지아이 담임한테 우리 아이는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이 듣기 좋게 돌려서 말해도 다 알아듣는다” 등 내용이 적힌 이메일을 보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교육부 사무관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담임을 교체하고 갖은 갑질을 하고 있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교육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옛날에는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매를 맞으면 집에가서 부모님한테도 매를 맞았다.
엣날 이야기입니다.
오늘 세상에 하나뿐인 초등학교 동창회를 소개하는 시간에 요즘 교육계에 어떤 깊은 교훈을 안겨주는 시간이었다.
강원도 철원
어느 작은 마을에서 토성초등학교 22회 올해로 60살이되는 중년 아저씨들의 아주 특별한 동창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방송팀이 찾았다.
시간이 되자,
초등학교 동창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너무 편해 보이는 복장들이었고 심지어 낫과 갈쿠리 그리고 전기톱까지 꺼내 들었다.
그냥 시골에서 평범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이동한 곳은 산이었는데,
산을 출입할려면 산림청의 허가를 받아 출입을해야 하는데 지역 군 담당부서에서도 출입을 할 수 있도록 열쇠를 제공했다.
무더운 날씨에 준비한 장비로 제초 작업을 시작하는 친구들 사이로 양지 바른쪽에 넓직한 공터 끝에 비석이 하나 보였다.
이곳은 이들의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인 이병덕 선생님의 묘소였다.
1974년 1월,
너무 추운 겨울날에 비워두었던 방에 연탄을 피다가 연탄가스 사고로 일찍이 세상을 떠나셨다.
선생님은 한창 예쁠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약혼자도 있었다고 기억한다는데 가족의 동의하에 학교 근처에 묘소가 마련됐다고 한다.
약 4년이 지나 중학생이 된 제자들이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가 충격적인 모습을 봤는데 무슨 일인지 산소가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아 잡초로 뒤덮여 있었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날부터 지금까지 선생님 묘소를 관리하기 시작했다고한다.
함께한 1년이란 시간은 짧지만 당시 선생님에 대한 기억 때문에 매년 때가 되면 벌초하고, 명절이면 성묘를 한다고 한다.
그 세월만 벌써 50년 가까이 됐다.
대체 제자들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선생님의 그리움 때문이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동창회,
고인이신 이병덕 선생님묘는 철원군에서 무연고 묘로 파묘를 하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 때 선생님 언니 한분이 오셔서 모셔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자들이 어떻게 처리하실건지요?라고 묻자 화장해서 유골을 뿌린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제자들이 "선생님을 우리가 잘 모시겠다"라고 선생님 언니한테 허락을 받았다.
무연고로 파묘를 할 지경까지 왔는데 제자들이 앞이 환한 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묘비를 세우고 모시기 시작했다.
그 때만 해도 매장문화라서 이장을 하기 위해서 파묘를 하는데 곱디고운 옷을 네벌까지 입혀서 매장되어 있었다.
아마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서 이쁘게 영면하시라고 이쁜 옷을 네벌이나 입히셔서 안장을 했나 싶다.
옷을 태우고 화장을해서 지금 산소에 모시고 매년 동창생들이 모여서 벌초를 하고 있는 시간을 소개했다.
머리에 흘리는 땀을 닦을려고 수건을 동여매고 벌초를 마치고 준비해간 제수를 돗자리를 깔고 놓고 모두 재배를 하고난 뒤 준비해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담소하는 60대의 중년이 된 초등학교 동창회가 너무 아름답고 따뜻했습니다.
74년에 20대 꽃다운 나이에 돌아가신 선생님을 60이되는 중년의 10여명의 남녀 졸업생들이 선생님묘에서 동창회를 하는 모습은 오늘 날 높게 평가받는 최고의 아름다운 초등학교 동창회가 아닌가요?
어쩌면 요글래 정말 감명깊고 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소개한 시간같아서 저 또한 기분이 흐믓한 시간이었습니다.
올 겨울들어 독감환자가 엄청 늘었다고 합니다.
때 아니게 입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고요.
오늘 아침에는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오전까지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습니다.
눈길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해뜨고 바람이 엄청 있어서 많이 차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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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쿨대회
옛날 정월 대보름날이나 추석 명절에 작은 동네에서 콩쿨(콩쿠르는 프랑스어)대회가 있었다.
노래자랑을 콩쿨대회라고 했다.
정월 대보름에는 날씨가 추워서 주로 추석 명절에 콩쿨대회가 열렸다.
명절을 끼고 열렸던 가장 큰 이유는 명절을 맞이하여 고향을 찾는 사람들에게 같이 어울리는 한마당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객지에서 돈을 벌고 고향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금전적으로 찬조를 받기도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4H라는 농촌 젊은이들의 단체가 있었다.
4H클럽은 농업 구조 개선과 농촌 생활 개선을 목적으로 설립된 세계적인 농촌 청소년 단체다.
4H란 머리(Head), 마음(Heart), 손(Hand), 건강(Health)을 뜻하는데 명석한 머리, 충성스런 마음, 부지런한 손, 건강한 몸을 지향하고, 건전한 민주시민을 양성하여 지역사회와 국가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단체였다.
국기 게양대에 가운데 태극기가 있고 양쪽으로 새마을기와 4H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었다.
마을 입구마다 녹색으로 4H를 상징하는 네잎클로버를 새긴 돌에 마을 4H이름을 새겨서 세웠다.
정부에서 지원도 많았고 4H경진대회는 큰 행사였다.
우리동네 4H가 주최가 되어 추석명절에 콩쿨대회를 하기로 했다.
남원읍내 소리사에서 앰프를 빌려 잿마당 큰 정기나무 높은 곳에 나팔모양의 스피커를 사방으로 달고 무대를 만들었다.
우리마을에서 콩쿨대회를 한다고 붓으로 큼지막하게 써서 인근 이웃 마을에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다.
날자와 시간, 장소, 상품을 적은 포스터라기보다는 알림장이었다.
우리 마을은 장수군과 경계를 하고 있어서 장수군에 속해 있는 가까운 번암면 수작골과 논실이라는 두곳 동네에도 포스터를 붙혔다.
이때는 마을마다 껄렁껄렁한 애들이 몇명씩 꼭 있었다.
괜스리 가오를 잡는다고 얼쩡대면서 시비를 걸기도해서 싸움판이 나기도했다.
그래서 지서(파출소)에 신고를 해서 치안을 부탁했다.
그때는 지서에 부탁을 하면서 식사비를 따로 전달하기도 했다.
지금 같이 마이크가 성능이 좋지 않아서 잡음도 많고 소리도 맑지 않았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잘 들립니까?"는 어린 시절 흔하게 듣는 소리 였다.
우리 세대의 경우 어린시절에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과 이웃 마을에서 열리는 콩쿨을 한 번쯤 구경했고 주위 분이 참가해 보지 않은 분이 거의 없을 것이다.
콩쿨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노래깨나 한답시고 폼을 잡던 이 마을 저 마을 동네가수들이 총 출동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노래방이 없던 시절이다 보니 지금처럼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드물었던 시절이었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은 동네 사람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삼삼오오 노래자랑 무대가 설치 된 잿마당으로 모여든다.
이웃 마을 처녀총각들도 모여 들었다.
임시로 만든 무대 옆에 수북하게 쌓아 놓은 시상품들을 보며 노래를 신청한 사람들은 노래도 부르기 전에 먼저 상품에 눈독들을 들인다.
시상품으로 탁상용 라듸오, 둥그런 벽시계, 큰 양은 솥과 냄비세트, 플라스틱 반찬 세트 통, 주전자, 양동이 등 다양했다.
각 상품에는1등, 2등, 3등, 인기상 등 종이로 만든 드림이 길게 매달려 있어 출연자들이 시상품에 눈독을 들이며 열심히 노래를 부르면서 입상의 의지를 다졌다.
양은 솥과 노란 양은 냄비세트는 인기 만점이었다.
그러나 그중에 가장 인기있었던 것은 대상으로 받는 탁상용 라디오였다.
1960년대만 해도 TV가 없던 시절이라 라디오의 인기야 두 말 하면 잔소리였다.
너도 나도 라디오에 눈독을 들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접수를 받아서 사회자가 순서대로 소개를하고 부르면 무대에 올라와서 노래를 불렀다.
완전 라이브로 하기 때문에 박자와 가사도 많이 틀리게 부르기도했다.
면단위로 하거나 조금 규묘가 큰 콩쿨대회는 기타로 반주를 하는 사람을 초대해서 더 흥겹게 하기도했다.
당시 심사는 4H회장과 이웃마을 4H회장 몇명을 초대해서 심사를 부탁했다.
이와 같이 연례행사처럼 꾸준히 콩쿨대회와 유명 연예인들이 극장에서 하던 쑈가 1970년에 들어서면서 집집마다 텔레비젼이 들어오고부터 우리 곁에서 소리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볼거리 없던 내 어린 시절에는 콩콜대회와 천막을 치고 봤던 영화와 극장 쇼 만큼 좋은 구경거리였다.
추억이란 세월과 함께 멀어져 가는 강물이 아니고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다시 내게 새록새록 흘러 나온 것 같습니다.
멀어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추억이 요즘 몇 방송사에서 토롯트 가수를 뽑는 프로가 새삼 새롭게 느낄때가 많다.
어쩜 그리 노래를 잘할까?
어쩜 그리 잘 생겼을까?
음악 반주에 맞춰 리듬감과 운을 살려 이야기하듯 노래하는 음악 형식인 요즘 랩(rap)보다 트롯이 우리세대에는 좋은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뽕작이나 트롯은 나이 든 가수들의 전용물이었는데 젊은이들이 퍼포먼스와 같이 노래를 부를 때 훨씬 좋아 보였습니다.
화려한 조명과 음향에 잘 생긴 것들이 노래까지 잘하니 더 이뻐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입춘이 지났는데
추위가 만만치 않습니다.
삼한사온의 날씨가 아니고
이번주부터 다음주초까지 길게 최강한파와 일부지역에 대설주의보까지 내렸습니다.
추위만 있어도 견딜만 했는데 많은 눈까지 겹치면 심란하거든요.
연세드신 분들께서는 바깥출입을 삼가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특히 노인들께서 감기로 인한 폐렴이 전파되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그룹 클론 출신인 구준엽의 아내 대만 배우인 서희원이 젊은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만병의 근원인 감기를 따뜻하게 하셔서 예방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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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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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구둣소리♤
내가 사는 곳은 단독주택이다.
단독주택은 대부분 나이든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나이든 사람들 신발은 슬리퍼 아니면 바닥이 폭신폭신하고 편한 운동화가 대부분이다.
골목 안쪽에 4가구가 살고 있는데 바로 앞집에 3-4십대쯤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들이 살고 있다.
아침에 출근길이면 총총총 걸어가는 똑똑똑 하히힐 구둣소리가 골목에 들린다.
아침마다 들리는 똑똑똑 구두 소리가 싱그럽다고 할까?
웬지 정겨운 소리같기도 하다.
단독주택에는 젊은이들이 거의 살지 않는다.
그래서 해가지고 나면 번잡한 시내와는 전혀 다르게 고요하다.
8-9십년대만해도 골목에 아이들이 많아서 차에 흠집을 많이 내기도 했다.
골목에 주차해둔 차에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면서 차뒷쪽으로 몸을 숨기고 가지고 놀던 막대기를 들고 좁은 담과 차사이를 드나들면서 차에 흡집을 내기도 했다.
골목에서 뛰어 노닐다가 주차된 차사이를 다니면서 빽미러와 안테나를 망가뜨리기도 했다.
그때는 빽미러를 지금처럼 주차하면 자동으로 접히는 시스템이 아니라 손으로 일일이 접어야했기 했고 라디오를 키면 안테나가 솟아 오르고 오래되면 안테나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깜박 잊고 그냥 내리다보면 가끔씩 빽미러가 덜렁거리고 안테나는 부러저있기도 했다.
기성세대들은 결혼해서 신혼살림도 셋방살이로 들어가서 시작했다.
작은방이라도 있으면 전세나 월세를 받고 세를 놓곤 했다.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초등학교가 교실이 모자라서 저학년은 2부제 수업까지 했었다.
아이들이 어찌나 많은지 수업이 끝난 오후는 골목이 시끄럽기까지 했다.
지금은 어린아이 울음소리는 시골마냥 들을 수가 없다.
아파트가 곳곳에 세워지면서 젊은이들 삶이 편한 아파트로 옮겨졌다.
주택 셋방살이도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고봉밥마냥 셋방살이도 생소한 단어일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골목에서 똑똑똑 구둣소리를 들으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힘찬 발걸음이라 생각한다.
1960년대를 대표한 트로트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남일해님의 "빨간구두 아가씨"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이 노래는 당시 한국사회의 변화와 젊은이들의 문화를 생생하게 담아내는 노래로써 조금은 젊잖은 회식자리에서 많이 불리어지는 노래였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내일이 입춘인데 입춘추위가 일주일 내내 길게 강력한 한파가 이어진다고 합니다.
아마 이번 추위가 올 겨울 마지막 한파가 아닐까요?
오늘도 똑똑똑 구둣소리마냥 힘이 넘치는 하루를 보냈으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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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달보다 짧은 특별한
겨울의 끝자락
2월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르지 못한 날씨
건강관리에 각별히
유의하시고

계절의 변화속에서
배움을 얻으시고
작은 일상속에서

보람된 즐거움이
가득한 2월되시길
기원합니다.

다음주 중에 긴 강력한
추위가 있다는 예보입니다.
마지막 추위가 아닐까?싶습니다.
팜모닝 회원님들 모두
따뜻하시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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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하얗게 덮힌 설날 아침입니다.
온가족 둘러앉아 오손도손 정담나누며 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신지요.
설을 맞아 올 한해 가정에 설레임과 희망이 가득하고 사랑과 온정이 넘쳐 더 많이 웃는 행복한 날들이 쭉 이어지길 기원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유일기 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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