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전주 유일기
농민·텃밭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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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으로 마늘을 캐고 참깨씨앗을 넣었습니다. 마늘을 캐고 촉촉한 땅에 보들보들한 땅이라 발아가 잘 되어습니다. 어제 가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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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 경진대회 -
오늘은 578돌 한글날입니다.
요즘은 그냥 국경일이라 쉬는 날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제가 현직에 근무했던 학교가 상업학교라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을 잡아서 가정에 보탬을 주고자 상업학교에 진학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전주시내에 거주하는 학생들보다 무주, 진안, 장수, 남원, 임실, 순창, 정읍, 고창 등 도내에서 많은 학생들이 전주로 유학을 온 셈이었습니다.
시내에 연고가 없으면 그나마 형편이 조금 나은 집은 하숙을 시켰지만 대부분 월세로 방을 얻어서 자취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때 하숙비는 쌀 6말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저희반 한 아이는 바로위에 오빠랑 이간 장방(二間 長房)을 월세로 얻어서 오빠 빨래도 다해주고 도시락까지 싸주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이간 장방이란 길다란 방을 가운데 미닫이가 달린 두개의 방을 말합니다.
상업학교에서 은행이나 대기업에 취업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그 때는 오로지 상업고등학교 출신만을 신입행원으로 뽑을 때였습니다.
은행이나 대기업에 취직을 하기위해서 성적도 우수해야 했지만 특히 주산과 부기, 타자 자격을 꼭 따야하는 필수조건이었습니다.
은행이나 대기업의 추천서는 반드시 "용모 단정하고 주산2급, 부기2급, 한글타자2급, 영문타자3급 이상의 자격을 가진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추천하라는 단서가 붙었습니다.
지금같이 계산기와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이라 모든 이자계산이 주판으로 할 때라 이 세가지 종목의 자격증은 필수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세가지 자격증을 다 따는 학생들은 IQ도 높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매년 한글날이면 한글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서울에서 전국 상업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글타자 경진대회가 열렸습니다.
아마 상업학교에서는 중앙에서 실시하는 이 대회가 가장 큰 대회였던 것 같았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학교에서 매년 타자경진대회에 출전해서 많은 수상을 받았습니다.
해마다 워낙 좋은 성적을 냈기에 전국 상업학교에서 가장 경계했던 학교가 제가 근무했던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눈을 가리고 고사리같은 손가락으로 타자기 자판을 두드리는 훈련을 하는 학생들이 노력한 결과를 전국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수상을하고 돌아왔습니다.
대상은 받으면 대기업이나 특별한 기관에서 특채를 하기도했습니다.
계산기와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사라진 주판과 타자기가 80년대말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한글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전국대회가 열렸던 사라진 타자경진대회를 떠 올려봅니다.
저는 지금도 제 이야기를 핸드폰으로 써내려갑니다.
쓰다가 틀리면 다시 쓰면되고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요?
옛날 시골에선 면사무소에 들락거리는 동네 이장님께서 동네 아이들 출생신고를 해주셨습니다.
메모지에 적어서 출생신고를 했더라면 틀린이름과 생년월일이 없었겠지요.
이장님께서 면소재지에 나가셨다가 친구분들 만나서 막걸리한잔 하시다가 깜박해서 이름도 생년월일도 틀리게 올려진 일이 많았습니다.
지금 한창 가을걷이를할 때입니다.
옛날 10월은 공휴일이 많았습니다.
10월 1일 국군의 날.
10월 3일 개천절.
10월 9일 한글날.
10월 24일 UN가입일.
또 여학교이고 시골에서 농사지으신 부모님 일손을 도와드리는 농번기 방학이 모내기철과 가을걷이 때 2-3일정도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김장방학도 했던 것 같습니다.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은 주일에 교회에 나가서 기도를 드리는 것이 삶의 일과이며 방법이듯이 저는 공휴일과 주일은 시골에 내려가서 부모님 일손을 도와드리는 것이 제 일과이며 도리였습니다.
어쩌면 장남이라 제 의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습니다.
산에 알밤을 주어야했고,
주말에 내려가서 나락을 베어 논에 세워서 말렸다가 다음 주말에 집으로 날라서 발로 밟은 공상으로 타작을하고,
논두렁에 심은 콩을 거둬드리고,
들깨도 털고,
고구마도 캐야했고,
이렇게 가을걷이가 끝나면 쌓아놓은 나락을 마당과 넖은 공간도 모자라서 신작로에까지 널어 말려서 광에다 넣고 필요할 때마다 방아를 찧었습니다.
이렇게 말린 나락은 밥맛도 좋고 오래동안 보관해도 쌀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10월부터 11월까지 열번 이상을 다녀와서야 가을걷이가 끝납니다.
그 많은 공휴일과 일요일을 편하게 쉬거나 나들이를 가을걷이를할 때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요즘 곳곳에 가을축제가 많더군요.
저는 사람들이 너무 북적거리면 혼란스러위서 축제가 끝나면 한바뀌를 도는 편입니다.
어디를 놀러가더라도 주말은 피해서 일정을 잡는 편입니다.
요 며칠동안 고춧대를 뽑아내고,
비닐 걷고 고추끈도 다 치우고,
고추말뚝도 한쪽에 쌓았습니다.
퇴비를 뿌리고 혹시나 가스나 있을까?염러되어 경운하고 며칠뒤에 마늘을 심을려고 합니다.
늦더위가 있어서인지 고추가 많이 달려있는데 아까워서 따다가 이웃에 나눔을 했는데 이것도 보통일이 아니네요.
깊어가는 가을에 늘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아침 뉴스에 청소년들한테 "족보"가 뭐냐고 물었더니,
"족발과 보쌈세트"라고했다네요.
족보(族譜)
어느 가정이나 책상 한귀퉁이에 꽂아있는 한 족속의 게통과 혈통 관게를 밝혀 놓은 고귀한 책.
족보를 족발과 보쌈세트로 이해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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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농기구 관리법을 공유해주세요
다쓰고난 농기계는 기름칠을해서 햇볕이 직접쐬지않는 곳에 포장을 덮어 보관해야합니다.
특히 타이어는 까만천으로 덮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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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자유게시판
1960년대에 산림녹화사업으로 헐벗은 산에 산사태를 방지할 목적으로 가장 빠르게 자라는 아카시아와 싸리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때는 산에서 나무를 베다가 장작을패고 밥도 하고 군불을 땠습니다.
그래서 헐벗은 산이 많았거든요.
80년대 중반에 중국에가서 두만강에서 바라본 북한 산이 헐거벗은 산이 많더군요.
우리나라도 60년대는 헐거벗은 태반이었지요.
가을철에는 국민학교 다닐적에 싸리나무 씨앗을 학생들한테 의무로 채집해오라고 했습니다.
싸리나무는 2미터 정도 높이로 자라나는 낙엽활엽수이다.
가지가 옆으로 덥수룩하게 나는 특성이 있으며, 잎 가장자리는 톱니 없이 밋밋합니다.
싸리나무꽃은 보라색과 분홍색이 어우러진 작은 꽃이었습니다
싸리나무도 뿌리도 많고 가지가 많이 번지기 때문에 산사태를 예방하는데 좋은 나무였습니다.
옛날엔 마당을 쓸 빗자루를 싸리나무를 말려서 만들었습니다.
남자들은 전방에서 군복무를 하셨던 분들은 싸리나무를 채취해서 빗자루를 만들어보신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아카시아나무는 너무 빠르게 자라고 뿌리에 혹이 있어서 번식력이 좋은 나무입니다.
그런데 아카시아나무가 너무 크게 자라서 산을 망가뜨리기도 했습니다.
가시가 많고 번식력이 좋아서 결국은 아카시아나무를 없애는데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아카시아나무를 자르면 곧바로 새순이 올라오고 뿌리채뽑으면 땅속에 잔뿌리가 있어서 다시 새순이 올라옵니다.
저희산에는 군에서 유실수를 심는다고 밤나무를 온산에 심었습니다.
매년마다 밤나무밑에 풀을 깍아서 지게로 짊어지고 집으로 옮겨서 퇴비를 만들었습니다.
6-70년대 퇴비증산을 장려했던 기억나시지요?
비료공급이 모자라서 오로지 퇴비를 거름으로 논밭에 농사를 지었습니다.
여름에 밤나밑에 풀을 깍아야 가을 이맘 때 알밤을 줍거든요.
장대로 밤송이를 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985년대까지 알밤을 줍고 밤을 털었습니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작은어머니, 저희 부부가 종일 밤을 줍고 털어서 시장에 나가야 흔히 말하는 일당도 안되었습니다.
한하디로 부가가치가 없는 가성비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밤나무밑에풀도 깍지않고 알밤수확을 포기했습니다.
그 중에 개량종 밤나무가 4그루가 있습니다.
밤송이가 사과 크기만해서 밤이 제법 큰 밤입니다.
밤나무가 있는 산에 산소가 3봉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벌초를할 때마다 4그루 밤나무아래만 풀을 깍습니다.
그래야 알밤을 주을 수 있거든요.
올해도 그 무더운 날씨에 벌초를 하면서 밤나무밑에 풀을 깍았습니다.
어제 굵은 알밤을 줍는다는 부푼마음으로 장화도 신고 배낭을 메고 밤을 주으러 갔습니다.
제사를 모실 때도 쓰고
이번 주말에 내려온다는 손주도 줄려고 즐거운 마음으로 산에 갔습니다.
어느 분이 알밤을 먹는 맛보다 줍는 마음이 더 즐겁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밤나무 아래를 보는 순간 "아"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떨어진 알밤과 밤송이도 다까서 알밤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어떻합니까?
밤나무를 찾아서 가시넝쿨을 헤치면서 알밤을 주어왔습니다.
알밤이 절반 이상이 벌레가 먹었습니다.
어떤사람 덕분에 가시넝쿨을 헤집고 다니느라 종아리에 상처가 많네요.
집에 내려와서 마당 한켠에 있는 사과대무가 제법 달렸더군요.
잎이 무성할 때는 몰랐는데 엄지 손가락만한 대추가 색깔이 변하면서 많이 보였습니다.
보라색으로 변한 대추는 달고 맛있더군요.
생각보다 많이 땄습디다.
고추건조기에 살짝 말려서 하우스에 널어 놓으면 잘 마른답니다.
올해는 대추가 알이 굵게 달린 해인가 봅니다.
색이 든 대추를 한줌 냉장고 야채박스에 보관했습니다.
옛날엔 나락 타작을하면 논바닥이나 마당, 신작로 등에 벼를 말려서 필요할 때마다 방아늘 찧어서 쌀을 먹었지요.
그래야 밥맛도 좋고 쌀을 오래 보관해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기계로 나락을 훑어서 곧 바로 창고로 실고 갑니다.
물수매를 한다고 하더군요.
오랫만에 신작로에 나락이 널려있어서 반갑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쩌면 정겨운 모습이라 할까요?
오랫만에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늘은 흐릿하더니 쌀쌀합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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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
정술님.
날씨가 쌀쌀합니다.
갑자기 찾아온 가을날씨에 당황스럽네요.
다행하게도 염려했던 18호 태풍이 중국쪽으로 급선회를 했다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네요.
이 때 우리나라에 그것도 강력한 대형태풍이 달라들면 어쩔까?걱정이었습니다.
지금 한창 들녂에 가을걷이가 한참이거든요.
어제 배추에 추비를 주고 비를 맞혀서 기분이 좋더군요.
오늘은 안과에 진료예약이 있어서 텃밭에 나가질 못했습니다.
매매공에서나 잠깐씩 볼 수 있더군요.
오빠분이 제 이름과 같으시다고 하셨지요.
이것 또한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회원님들 중에 몇분이 안부도 묻고 전할 수 있어서 이 또한 감사할 일이 아니겠어요~
혹시 저한테 연락한번 주시면 그동안 제이야기를 아이들이 편집해서 책을 한권 보내드릴까 합니다.
010 3678 3870으로 연락한번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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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자유주제·자유게시판
TV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싣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네 가지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의 감정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 "희로애락(喜怒哀樂)이다.
70년대 TV는 이런 온 나라 국민들에게 이런 희로애락을 전달하는 기계였다.
70년대에 시골에 TV가 있는 몇 집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다.
4개의 다리가 있고 양쪽에는 스피커가 있고 가운데 약간 볼록한 브라운관이 있었다.
브라운관이 있는 곳은 여닫이가 있어서 TV를 시청하는 시간이 아닐 때는 손잡이를 당겨서 브라운관을 닫았다.
TV상자 위에는 수건을 깔고 액자나 화분을 올려놓고 장식을 했다.
안방에 장식장으로 차지했다.
TV를 시청할려면 지붕 제일 높은 용마루위에 안테나를 달아야했다.
언덕이나 높은 위치에 있는 집은 안테나 설치가 수월했다.
안테나 방향을 돌려가면서 TV의 화면을 잡았다.
라디오도 안테나를 뽑아서 요리저리 돌려가면서 방향을 잡아야 잡음이 없이 잘 들렸다.
오후 5시부터 애국가를 시작으로 TV가 방영되고 밤 12시가 다되어서 애국가로 TV방영이 끝이난다.
기나긴 겨울철에는 빠른 저녁식사를 하고 동네 사람들이 TV가 있는 안방으로 모여들었다.
특히 일일드라마를 하는 시간대에는 좁은 방이라 서서 TV를 시청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TV가 애국가를 마지막으로 찌지직하면서 종료가되면 할머니께서 안방을 빗자루로 쓸었는데 흙이 한줌 나왔다.
그때는 하드보드라는 장판으로 방바닥을 깔았다.
지금도 할머니께서 쓰시던 작은방에 매끌매끌하고 윤기가 나는 하드보드장판이 깔려있다.
할머니 살아 계실적에 들기름으로 닦기를 여러차례 하셨기에 지금도 하드보드장판이 멀쩡하게 깔려있다.
비닐장판은 군불을 때면 아랫묵에 구들장이 뜨거워서 누렇게 타기도 했지만 하드보드장판은 아무리 군불을 많이 지펴도 눌지않고 뜨끈뜨근했다.
요즘 찜질방에가서 허리를 지지듯이 뜨거운 하드보드장판에 누워있으면 최고의 찜질이 되었다.
겨울철 눈이라도 내려서 질퍽거리는 길과 마당에서 바지 끝이나 양말에 묻은 흙이 따뜻한 방안에서 말라 방바닥에 다 떨어진다.
지금이야 골목길도 마당도 다 세멘트나 아스콘으로 포장되어서 흙이 묻을 일이 없다.
그 때 당시 온 국민들이 시청했던 드라마 여로였다.
시내에도 여로를 방영하는 시간에는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한다.
연세드신 어르신들께서 TV를 시청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드라마가 여로가 아닌가?싶다.
1977년부터 한여름을 등골이 시원하게 했던 전설의 고향은 1주일에 한번 방영했는데 묘지에서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치며 입가에 빨간 피를 흘리고 있는 귀신모습은 무섭고 떨리는 프로였다.
전설의 고향을 시청하고 집에 돌아갈 때는 서로 손을 꼭 잡고 다녔다고 한다.
레슬링이나 권투 축구같은 인기있는 스포츠를 중계하는 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에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프로레슬러 박치기 왕 김일선수가 일본에가서 박치기로 승리를 하는 장면은 온 국민을 신나게 했다.
특히 같이 활동했던 일본 프로레슬러 대표인 안토니오 이노끼와의 시합장면은 전세계가 중계를 할 정도로 대단했다.
우리보다 덩치가 훨씬 큰 서양선수들도 김일선수의 박치기에 쓸어졌다.
그 후 박치기왕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어서 학생들 단체관람으로 많은 사람들이 김일선수의 박치기를 박수를 치면서 관람했다.
또 그 때는 권투가 유행했다.
배고프고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서 악착같이 얻어 맞으면서 권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세계권투협의회인 WBC와 WBA의 세계챔피언 벨트와 동양챔피언 벨트를 여러개 차지하고 있을 때라 권투중계도 대단했다.
적지인 파나마로가서 카라스키야와의 시합은 홍수환선수의 4전5기의 실화를 실현했던 경기였다.
홍수환 선수가 파나마에가서 카라스키아에게 경기내내 끌려다니다가 역전승을 거두면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하는 영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11호의 달 착륙의 전세계가 중계를 했다.
7월16일 미우주센타에서 발사된 우주선이
7월 20일 인간이 처음으로 달에 발을 디뎠다.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한 걸음의 주인공은 미국의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이었다.
그는 자신이 달에 첫 발을 내딛는 장면을 시청하고 있던 6억 명에게 대장면을 보였다.
1983년 6월 30일 "누가 이사람을 아시나요"라는 타이틀로 KBS 특별생방송으로 진행된 453시간의 남북이산가족찾기는 온 국민을 감동과 기쁨, 울음으로 역사적인 방송이었다.
아마 우리나라 TV역사상 가장 많은 시청을 했다고 본다.
이렇게 TV는 뉴스와 드라마, 코메디, 교양프로, 스포츠 중계 등으로 희로애락을 같이했다.
제18호 태풍 끄라톤이 3,000m가 넘는 산이 200개나 있는 대만을 관통하고 해상에서 따뜻한 바닷물에 힘을 얻어 대형태풍으로 바뀌면서 우리나라도 직간접적으로 피해가 있을거라는 예보입니다.
올들어 두번째 대형태풍이라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우리나라는 한라산과 지리산이 태풍을 많이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듯이 대만에 그 높은 산이 많아도 태풍의 위력이 사그라들지않나 봅니다.
아직은 세계기상청들이 예상하고 있는 태풍의 진로가 유동적이긴 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에 적잖은 피해가 있지않을까?싶습니다.
며칠전에 남원에 다녀왔는데 벼멸구피해가 심하더군요.
원형탈모같이 동그랗게 까맣게 죽은 벼가 있고 어떤 곳은 거의 수확이 불가능할 정도더군요.
지금 한창 가을걷이를 하는 시기인데 태풍까지 겹치면 큰 걱정입니다.
새달들어 비가 조금 내리더니 추위가 온 것 같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10월 한달도 건강하시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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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자유게시판
날씨가 더워서 늦고추가 제법 많이 달렸습니다.
늦고추라 조금 매운맛이 강합니다.
혹시 고추건조기에 넣을 때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평상시보다 온도를 높인다든지?
혹은 낮게 한다든지?
언젠가 한번 들어본 일이 있는 것도 같아서요.
물론 늦고추는 고추장도 담그면 되는데
추석명절 지나고 붉게 많이 익어서요.
고추농사를 많이 하시는 회원님들께서는 무슨 방법이 있지나 앓을까?해서 올려봅니다.
이번주에 태풍이 남해안으로 진로를 변경해서 우리나라를 거친다는 예보가 있습니다.
그래도 찬 고기압이 태풍을 밀지나 않을까?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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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자유게시판
♡ 행복한 사람
엄상익 변호사가 올린 글입니다.
읽다가 가슴에 닿아서 올려드립니다.

요즈음은 이따금씩 세상을 힘겹게 건너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을 통해 본다.

새벽 1시반에 지하철역을 청소하는 60대쯤의 여성이 보인다.

플랫폼 벽 아래 의자 주위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빗자루로 쓸어내어 쓰레받기에 담는다.
수세식 변기를 세제로 닦고 반들반들하게 윤을 낸다.

저런 여성들의 수고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악취 없고 깨끗한 지하철역이 되는구나를 알았다.
노조가 파업할 동안 파리의 지하철역에 진동하는 지린내를 맡아본 적이 있다.
낙서가 가득하고 더러운 뉴욕의 지하철을 탄 적도 있다.

화면 속의 그녀는 밤일이 끝난 후 혼자 사는 단칸 지하방으로 돌아가 밥을 먹는다.
잠시 후 그녀가 다른 일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백화점의 종이 쇼핑백들이 방바닥에 가득 쌓여있다.
그녀는 종이 쇼핑백에 플라스틱 손잡이를 끼우고 있다.
한 장 끼우는데 10원, 몇시간을 일하면 8000원을 번다고 했다.

그외에도 그녀는 공공근로나 일거리만 있으면 마다하지 않고 다 하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그녀가 방에 앉아 슬퍼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제 번 돈으로 오늘을 살고 생존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
그걸 보면서 가슴이 찡하고 내가 편하게 사는 게 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변호사를 40년 하다 보니까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보았다.
소아마비로 어려서부터 다리가 불편한 여자 판사가 있었다.

명문 여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고시에 일찍 합격하고 판사가 되었다.
그녀가 있는 판사실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그녀는 내게 다음 번 세상에는 청소부가 되더라도 매춘부가 되더라도 정상적으로 걸을 수만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그 말의 진정성이 내 가슴 깊숙이 스며들었다.

천만명의 기독교 신도들이 애창하는 찬송시를 지은 여성 시인을 여러번 만났다.
심한 뇌성마비로 그녀의 몸은 작동기능을 거의 잃었다.

물체같이 굳어버린 몸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두 손가락과 높은 아이큐의 두뇌뿐인 것 같다. 혼자서는 무엇도 할 수 없다.

이따금씩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그녀에게 가서 목욕시켜주는 봉사를 하는 여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목욕을 시켜 주고 돌아갈 때 혼자 몸을 닦을 수 있는 것만도 행복이라고 느꼈어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뇌성마비의 그녀는 유일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으로 카톡을 통해 내게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변호사님 한번 입을 테이프로 막고 손발을 꽁꽁 묵고 사람들 사이에 쳐 박혀 있어보세요. 그게 60년 넘은 일생을 지내온 제 상태랍니다.’

나는 그 머리 좋은 찬송 시인이 다리를 절더라도 혼자 일어나 걸을 수 있다면, 혼자 목욕을 하고 밥을 먹을 수 있다면, 분명 행복해 할 것 같았다.

나는 가난하고 험한 삶의 밑바닥에서 맑은 샘물같은 행복을 퍼 올린 사람을 보기도 했다.

노동자 출신 시인인 그는 폐암 말기였다.
달동네 꼭대기 어두컴컴한 임대아파트 방에 혼자 누워 있는 그를 찾아갔다.

세상의 고난은 모두 그를 찾아와 있는 느낌이었다.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난과 고독, 병과 늙음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고통의 바다인 이 세상의 마지막 파도에 그는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그의 입에서 엉뚱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같은 죽어가는 환자가 하루종일 누워있을 수 있는 방이 있다는 게 감사해요.
이웃의 중학교에서 급식에 남은 누룽지를 가져다줘요.
성당에서 나물 반찬을 가져다 냉장고에 넣어줘요.
목욕 봉사를 하는 분이 더러 와서 몸을 씻겨줍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투명한 이슬이 맺힌 호박꽃이 보입니다.
누가 호박꽃을 밉다고 표현하나요?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저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 시인은 내가 만난 후 죽을 때까지 몇 달 동안도 매트리스 아래 공책과 연필을 놓고 시를 쓰다가 죽었다.
그는 내가 그의 마지막 시집을 내줬으면 하는 것 같았다.

어젯밤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환한 달빛 띠가 펼쳐진 번들거리는 밤바다를 보았다.
하늘에는 총총한 별들이 떠있었다.
멀리서 색색으로 반짝이는 보석같은 부둣가의 불빛들이 검은 바다 위에서 물결쳤다.

걸으면서 행복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하루하루에서 작은 성취와 기쁨을 발견해 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번 폴라산이 많은 비를 뿌리고 물러난 뒤 하늘에 가을이 왔습니다.
새벽엔 홑이불을 끓여당기게 되더군요.
엄상익 변호사의 글을 읽고 제가 본 한사람이 생각납니다.
제가 안과를 많이 이용하는데 그 병원에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 한분 이야기입니다.
병원이 개원한지가 40년이 넘어서 이제는 호남에서 규묘가 제법 큰 안과병원이 되었습니다.
안과 종합병원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이 병원에서 개인병원으로 개원하면서부터 지금까지도 병원 청소를 하시고 계십니다.
지금은 7층의 건물이라 여러명이 나누어서 하십니다.
제가 자주 다니는 병원이라 인사를하고 지냈습니다.
올해 73살이고 저와는 동갑이더군요.
30대부터 병원 청소를 하기 시작했더군요.
슬하에 2남1녀가 두었습니다.
삼남매를 다 서울대학교를 보냈답니다.
큰아들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세종시에서 부부가 같이 근무를 하고,
둘째는 광주에서 부부가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딸은 시내 종합병원에서 과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흔히 자식들 잘 키웠으니까 이젠 일을 그만 둬도 되지않느냐?라고 말한답니다.
지금이니까 탕비실도 있고 휴계실이 있지만 옛날에는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창고 같은 한쪽 청소용품을 모아둔 구석진 곳에서 점심도시락을 먹었지 않았을까요?
또 지금이야 자식들 다 잘키웠고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지만 30대 젊은 새댁 꽃다운 나이에 얼마나 힘들고 무시당하고 애로사항이 많았을까요?
그 때는 자식들 키우느라 어쩔 수 없이 일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도 핸드폰을 옛날 폴더을 쓰고 계시더군요.
또 얼마나 성실하시게 일을 하셨으면 지금까지 한곳에서 일을 하고 있을까요?
이런 경우를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자식들 삼남매를 서울대학에 보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제가 그랬습니다.
이제 그만하셔도 되지않느냐?
자식들이 제발 일좀 그만 하시라고 한답니다.
지금은 100명이 넘은 직원들이 실장님으로 불리더군요.
웃으시면서 "놀면 뭐하느냐?"하시더군요.
긴글 읽으시느라 애쓰셨습니다.
군산 아버지한테와서 아침 드시고 주무시는 아버지옆에서 끄적거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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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禁)줄 -
금줄(禁)은 삿된 것을 금한다는 의미로 쳐 놓는 줄을 말한다.
"삿되다"는 인간생활에 해를 끼치는 것을 접근시키지 않고 침범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남녀에 따라 남자아이일 때는 고추와 숯, 청솔가지를 세개씩 끼웠고, 여자아이일 때는 청솔가지와 숯을 왼쪽으로 꼰 새끼줄에 꽂아서 사립문 기둥에 매달았다.
이 때 매달고도 못질을하면 눈에 못이 찔려서 실명이 있을 수 있다는 속설에 못을 박지않고 양쪽 기둥에 매고 금줄 중간은 조금 처지게 했다.
금줄은 삼칠일 21일동안 쳤다.
21일 동안은 세이레 동안이다.
이레는 일곱 날을 뜻한다.
옛날엔 일곱이레를 부모님께서 정성을 다해서 조그만 시루에 시루떡을하고 촛불을 시루떡 가운데 꽃고 손을 비비면서 무병장수하라고 치성(致誠)을 드렸다.
요즘은 이레를 모르고 지나가더군요.
고추, 솔잎, 숯 등은 살균력이 있는 물질인데 옛날에는 산후조리를 잘못해 죽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저런 살균력이 있는 것으로 금줄을 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기성세대들은 출생신고를 늦게해서 실제 나이와 두세살 많게는 다섯살 차이가 나기도 한다.
또한 산후 금줄의 설치는 외부인에게 자녀 출산 소식을 알리고 아기의 면역력이 약한 시기에 외부인이 출입을 제한하도록 하여 영아 사망률을 낮추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영아가 사망했을 때는 자갈로 낮게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시골에서는 가끔씩 야산이나 산 모퉁이에 죽은 어린아이를 묻은 자갈로 된 둥그런 묘를 볼 수가 있었다.
이와 같이 산모가 있는 장소는 물론 누군가가 죽은 초상집,
(죽은 후 시간이 지난 시신이 있는데다 어쩌면 병으로 죽었을지 모르기 때문에)
병자가 있는 집, 
전염병이 도는 지역 등 당시로서는 미신적 의미지만 격리의 용도로 사용된 경우가 많다.
간장을 담은 항아리에도 금줄을 두르기도 했다.
금줄 자체를 신성시하다 보니 금줄에 대한 여러 가지 금기사항이 생겼다.
금줄을 친 당산나무를 범접하면 몸이 상하거나 죽는다는 속설이 있기도 했다. 
금줄을 친 집을 출입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그래서 금줄을 친 집은 함부로 드나들지 않았다.
비록 가족이라 할지라도 부정(不淨)에 노출된 경우에는 출입을 삼가야 한다.
부정에 노출된 경우란 상(喪)을 당한 사람을 보거나 초상집에 다녀 온 사람,
상여를 본 사람,
동물을 죽였거나 사체를 본 사람,
병자, 거지, 백정 등을 말한다.
이 때는 사립문앞에 볏짚을 태우고 그 볏짚위를 세번을 건너 왔다갔다를 하면서 연기에 쐬고 들어오기도했다.
혹시라도 몸에 붙은 귀신을 매운 연기로 쫒아내는 방법이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 외에도 선돌에 감거나 장승에 감거나 우물에 감거나 장을 담고 난 뒤 장독대에 감기도 한다.
금줄의 재료로는 짚과 숯, 한지, 솔가지, 고추, 청솔가지 등이 있다.
짚은 도작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토지, 청정한 식물, 다산의 의미한다.
숯은 더러운 것을 태운 다음 남은 것으로 다른 물질을 정화하는 의미한다.
한지는 가장 깨끗한 색으로 눈에도 잘 띄어
신성한 공간임을 표시한다.
솔가지는 푸르고 바늘처럼 뾰족하여 어떠한 부정한 것이라도 막을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고추는 남아를 상징 노란 고추씨를 통해 부귀를 기원한다.
청솔가지는 여아를 상징하며 정절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행복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내 마음이 따뜻하면 진짜 행복한 것이 아닐까요~
14호 태풍이 상해에 도착했다가 온대성저기압으로 바뀌면서 진로를 급회전하여 우리나라에 많은 비를 뿌렸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찜통같은 더위였는데 일부지역에 피해를 안겼지만 더위를 물러나게한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너무 날씨가 뜨거워서 데어서 죽기도하고, 축처진 배추였는데 이번 많은 비에 무름병이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올해는 왜 이렇게 벌레들이 많은지요?
소독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네요.
이대로 두다간 배추를 못먹을 수도 있겠구나?염려스럽습니다
잎사귀는 다 갉아먹고 거미줄같이 줄기만 남은 배추가 태반이네요.
오늘 고추를 빻을려고 늦고추를 꼭지를 땄습니다.
지금까지 수확한 고추를 다 섞어서 빻아야 하니까요?
늦고추라 확실히 고추가 작고, 맵고, 씨가 많고, 겉이 얇더군요.
고추장을 담글 때는 늦고추도 괜찮긴 합니다.
왜 소비자들께서 두물세물 고추를 선호하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리고 매운 고추보다 덜 매운 고추를 좋아합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으로,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을 이르는 말로 신조어인 소확행(小確幸)을 실천하는 나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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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세워져 가는 사랑

친구의 소개로 직업 군인을 만나게 된 어느 여인이 있었습니다.

무남독녀로 자란 그녀는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너무나 씩씩하고 남자다운 매력에 반해 자신이 먼저 프로포즈를 하는 바람에 만난지 육개월 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해서 살다보니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남자다웠던 매력은 너무 말이 없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무뚝뜩한 성격은 재미가 없었고 일만 열심히 하는 타입이다 보니 조금씩 실망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모든일의 우선권을 시댁부터 두는 권위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는 불만감도 커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필 친정아버지의 기일과 시댁의 제삿날이 하루의 차이가 났습니다.

그러다보니 시댁에서 음식을 장만하느라 친정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친정 엄마 혼자서 쓸쓸히 제사를 지내야 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가 없다보니 마음만 아플 뿐이었습니다.

결혼한지 3년째가 되는 어느 날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내일 모레가 너의 아빠 제삿날인데 이번엔 내가 너무 아파서 그러니 네가 좀 와서 도와줄 수 없느냐고 힘없이 부탁을 했습니다.

감기 몸살로 심하게 앓고있는 엄마가 오죽하면 전화를 했을까 딸은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아내는 이번 제사는 친정으로 가면 안되겠냐고 남편에게 슬쩍 물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한 마디에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럼 우리 집 제사 음식은 누가 만들고?"

아내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남편의 무뚝뚝한 대답에 더욱 더 큰 실망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제사 음식을 장만하고 있는 며느리를 시어머니께서 살짝 한쪽으로 부르시더니 친정 어머니께서 많이 아프시다니 빨리 친정으로 가서 어머니를 도와 드리라고 하며 용돈을 쥐어 주셨습니다.

아마 남편이 어머님께 이야기를 한 것 같았습니다.

부랴부랴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서서 버스를 탄 아내는 기쁜 마음으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 나 지금 친정가는 길이에요. 당신이 어머니에게 말했어요?"

남편은 고맙다는 말도 하기 전에

"나 바빠!"

한 마디를 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친정집에 도착하자 문 앞에 어디서 많이본 차가 있었습니다.

남편의 차였습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남편이 직접 음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놀란 아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친정엄마가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 글쎄~ 이 서방이 새벽같이 와서 수도랑 변기를 고쳐주고 집안의 꺼진 등까지 다 갈아 끼워줬단다.

시장에서 장까지 봐와서 저렇게 직접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보통 솜씨가 아니야.

나보고는 꼼짝말고 계시라고 해서 난생처음 호강을 누리고 있는 중이야~"

엄마는 행복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고 딸은 남편에게 달려가 품에 안기어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마움이 가득 담긴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새로 갈아낀 전등의 등불이 오늘따라 두 사람을 유난히 밝게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대나무가 높게 설 수 있는 이유는 곧아서도 아니고 단단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대나무의 뿌리가 땅속의 흙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기 때문입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 가면서 사람들이 서로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의 힘이 아니고 능력도 아닙니다.

그것은 때때로 서로를 위해 흘려준 눈물과 서로의 기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속에서 함께 기댐이 되어줄 수 있는 착하고 선한 삶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함께 기대어 있을 수 있도록 서로 서로 두손을 굳게 잡아 주심으로 여러분 모두 아름다운 나라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옮긴 글 -

아침에 지인이 보내준 글을 읽다가 너무 아름다워 공유하고 싶어서 올립니다.
어제 어느 분이 "움켜쥔 행복은 빨리 전염시켜야 대한민국이 행복한 나라가 되니 마구마구 전염시켜 주세요"라고 하더군요.
이세상이 아름다운 일들로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갑자기 많은 비가 쏟아지니까 혼란스럽네요.
그렇게 기다렸던 비소식인데
14호 태풍 폴라산이 중국에 도착했다가 온대성저기압으로 바뀌면서 우리나라로 급회전하여 많은 비를 몰고 오게되었습니다.
메마를 땅이라 산사태도 염려되고,
곧 벼베기에 들어설 누렇게 익은 나락이 벼이삭이 비에 무거워서 쓰러지지나 않을까?걱정이고,
내일까지 내린다는 비소식이 하늘이 하는 것을 누가 말릴 수 없잖습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더위는 있었지만 태풍이 하나도 없어서 얼마나 다행입니까?
비피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비내리는 아침이라 바깥출입도 못하고 커피한잔 마시면서 끄적거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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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사는 4대까지 지낼까?"

추석 대명절을 보내고 한번쯤 읽어보심 좋을 듯 해서 긴 글이지만 옮겨와 게시해 봅니다.

''기(氣)와 영(靈)의 세계''

우리는 전통적인 관례로 4대조 이하 조상님들께 제사를 올린다.
왜 하필 5대조나 6대조가 아닌 4대조 이하일까?
오대조부터그이상은 묘재를 택일해서 제사를 모신다.
보통은 음력 3월과 10월에 모신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그 기(氣)의 파장이 약 100(120)년 동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氣)의 파장이 변하지 않으므로 자기와 파장이 같은 후손과 함께 할 수가 있다.

1대를 25(30)년으로 하면 4대조 100(120)년이 된다.
돌아가신 분은 100(120)년 동안의 바로 자기의 가족이나 후손과 함께 할 수가 있는 것이다.

4대조 이하의 조상영들은 후손과 파장이 맞으므로 후손과 함께 할 수 있고 후손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영향력도 음과 양으로 좋은 쪽과 나쁜 쪽 양갈래이다.
그것은 모두 그들 조상영의 생전의 사람됨과 인격 그리고 업보에 따라 나타난다.

살아 생전에 착하고 어질게 살아 높은 영계에 가 계신 조상영은 후손을 위해 여러가지 도움을 주고 보살펴 주려고 애쓰지만,
생전에 인간됨이 천박하거나 악독했던 사람, 혹은 어려서 세상물정 모르고 죽은 소위 철부지 귀신들은 후손을 못살게 굴고 온갖 나쁜 짓을 서슴치 않는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조상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후손의 몸을 빌지 않으면 안 된다.
조상은 영(靈)으로 존재하고,
영은 곧 기(氣)이므로 물질인 육체가 없이 기만으로는 아무것도 행할수가 없다.

즉 천지조화가 불가능한 것이다.
파장이 맞는 고로 4대조 이하 조상영은 그 후손의 몸에 임할 수 있다.
조상의 영혼이 후손의 몸속에 들어오는 것은 우리가 텔레비젼의 채널을 맞추어서 어떤 특정 방송국의 방송을 수신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생유어사(生由於死)하고 사유어생(死由於生)이니라.
삶은 죽음으로부터 말미암고 죽음은 삶으로부터 말미암느니라.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지상에서의 죽음은 천상에서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제삿날은 천상에서의 생일날과 같은 것이다.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백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

이 말씀과 같이 사람의 몸은 육체와 유체로 구성되어 있다.
육체(肉體)는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물질적으로 된 몸이고,
유체(幽體)는 ‘그윽하다, 숨어있다’는 뜻의 유(幽)자를 쓰는데 이는 보이지 않는 몸이라는 뜻이다.

육체 속에는 넋이 깃들어 있고,
유체 속에는 혼이 깃들어 있다.
혼은 유체보다 더 영적이며,
유체는 혼이 깃들어 있는 그릇이라 할 수 있다.

육체와 유체는 혼줄로 연결되어 있는데 혼줄이 끊어지면 죽음에 이른다.
육체를 버리면서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천상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제사는 내 생명의 뿌리에 대한 보은이다.

죽은 사람에게는 왜 절을 두 번 하는 것일까?

설날 같은 명절 때 할아버지나 부모님께 드리는 세배는 한번 절을 합니다.
그에 비해 돌아가신 조상님의 제사를 지낼 때는 절을 두 번 합니다.

이처럼 산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절하는 횟수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음양사상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1은 양을 뜻하고 2는 음을 뜻합니다.
즉 살아있는 사람은 양이고 죽은 사람은 음이랍니다.

그래서 절의 횟수도 음양으로 구분하여 산사람에게는 한번 절을 하고, 죽은 사람에게는 두 번 절을 한답니다.

상을 당한 초상집에 가서도 이런 경우를 쉽게 접하게 됩니다.
돌아가신 분의 영정 앞에서는 두 번 절을 하고 상주 분들에게는 한번 절을 하는 거죠.

참고로 절에는 2배, 3배 뒤에 반절이라고 해서 붙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절 뒤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간단하게 숙이는 것을 말합니다.

산사람한테는 한번 절하는 일배 뒤에는 반절이 안 붙지만 죽은 사람에게 하는 재배나 혹은 불교에서의 삼배 같은 절에는 반절이 붙는다는 것을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따라서 엄격히 말하면 죽은 사람에게는 두배 반을 절한다고 여기시면 됩니다.

그리고 절은 무엇보다 공손하게 올리는 것이 예의입니다.
절을 할 경우 그 손가짐도 헛갈리는 분이 많은데, 산사람에게 절을 할 때는 남자는 왼손을 오른손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절을 하고, 여자는 그와 반대로 오른손을 왼손 위에 올려놓고 절을 한답니다.

반면에 죽은 사람에게 절을 할 때는 위 경우와 남여 각각 반대로 하면 된답니다

추석명절과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다녀와서 제사를 돌이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 효학박사 교육학박사
孝泉박종윤님의 글을 옮겨왔습니다.

모처럼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졌습니다.
어제 완전 찜통같은 더위를 이번 비로 물러날 것도 같습니다.
13호와 14호 풀라산이 중국 상하이로 상륙한다고 예보입니다.
그러나 14호 풀라산은 중국 저장성에 상륙했다가 열대저기압으로 바뀌어서 장마전선과 함께 우리나라 남해안으로 진로를 변경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올들어 태풍이 하나도 없어서 물이 부족하고 바닷물이 너무 뜨거워서 양식장에 고기들이 죽어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조용한 태풍이 우리나라를 지나면서 바닷물을 한번 뒤집었으면 합니다.
어느 분이 "움켜쥔 행복은 빨리 전염시켜야 대한민국이 행복한 나라가 되니 마구마구 전염시켜 주세요"라고 하더군요.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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