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챙겨주는 결혼기념일 행사를 당겨서 하고, 당일에는 칠불암에 들렀다가 바닷가로 가서 갈매기 울음소리를 축하곡으로 여기며 옛 추억을 더듬으며 걷다가 양 볼이 시리다 싶을 즈음 전망이 좋을 것 같은 카페를 찾아 커피 맛을 음미하며 지난 얘기에 푹 빠져들리라 마음먹었었는데, 손자가 감기에 걸려서 유치원에 못 갈 것 같다는 아들 전화를 받고 갑자기 열차 여행을 했다.
오는 도중 "이제 기차 탔어? 언제 올 거야?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어?"라는 손자 전화에 도착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서너 번은 손목시계를 봤지 싶다.
역에 마중 나온 손자를 안아 보니 처지지 않고 밝은 것 같아 안심을 하고 누구랑 잘 건지 물었더니 예전과 달리 "오늘은 엄마랑 자고 내일부터 할아버지랑 잘게"라고 하기에 조금은 서운했지만 감기 탓이라며 위안을 삼았다. 결혼기념일! 둘이 오붓하게 기억될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겠지만 이처럼 갑자기 유행하는 감기에 노출되어 유치원에 못 가는 손자랑 숨바꼭질, 아지트 놀이, 유령 놀이를 하며 특별하게 보내는 것도 좋으리라.
속설에 생일은 늦춰서 하는 건 안 된다고 했지만 결혼기념일은 미뤄도 되겠지.
커피 한잔을 내려서 마시는데 "할아버지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라고 하기에 아니라고 했더니 "근데 왜 그렇게 하얀 머리가 많아?"라고 한다. 빵 터졌다.
이렇게 한바탕 웃을 수도 있고 손자 돌보는 조부모는 치매 확률도 떨어진다니 올해 결혼기념일은 유익하면서 보람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