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무소주이생기심 ·
오늘은 읍사무소에 가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여성 농업인 바우처를 신청하고 밭으로 가 어제 많이 분 바람 때문에 비뚤어진 CCTV 카메라 방향을 바르게 조종하고 한 바퀴 둘러봤다.
지속된 가뭄에 복숭아나무가 목마른 듯 보였으나 관수 파이프 속이 얼음으로 가득 차 있을 것으로 추정되어 지하수를 올리면 수중 모터가 터질 것 같아 갈증을 해소해 주지는 못했다.
오는 길에 촌집에 들러 우편물이 왔는지 확인했으나 빈 통이다. 예전엔 싫었던 휴대전화 카톡 소리도 요즘은 반갑게 여겨지는데 연하장은커녕 어떤 소식도 담겨 있지 않으니 조금 실망스럽다.
내가 잊힌 게 아니라 각종 고지서든 청첩장이든 모든 게 휴대전화로 전달되다 보니 그럴 것이라고 위안하며 집으로 향하는데 집사람이 "또 점심은 뭐 먹지?"라고 한다.
풍문에 여자들은 삼식이(집에서 삼시세끼 다 먹는 남편을 이르는 말)를 싫어한다던데 하는 생각이 떠올라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아무거나 먹지 뭐, 했더니 "그런 메뉴는 없다."기에 식탁 위에 굴러다니던 배홍동이 떠올라 비빔면으로 하자고 하여 낙찰됐다.
오후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헬스장에 갔더니 건강하게 살려는 어르신들이 북적인다.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며 후손들을 위해 평생 농사만 짓다 가신 분들이나 현재 요양원에 계시는 분들보다 조금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런 호사를 누린다 싶어 송구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근력을 키우기 위해 기구를 한두 개 더 들거나 밀 때 고통스럽다.
오는 길에 참새가 방앗간에 들르듯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견과류가 덧입혀진 과자를 곁들이며 한숨 돌릴 때는 행복하다.
이렇듯 잡념에 매몰되기도 하고 고통과 행복감이 수시로 교차되는 게 하루이고 그게 모여 인생이 되는 것 같다.
작물

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