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 밤에는 단조로운 일상의 옷을 벗고 빛바랜 추억 주머니를 허리춤에 차고 뒷짐을 진 채 어슬렁어슬렁 세상을 기웃거리다가 아늑한 길목에서 추억 하나쯤 더 만들어 볼 일이다.
황금빛으로 빼어나게 섰던 은행나무들이 한바탕 거방지게 불어오는 뒤바람에 부르르 떨다가 오한을 느끼거나 또는 심한 격정으로 우수수 나뭇잎들을 쏟아 놓는 안타까움에 같이 젖어 보기도 하고 늘 맑은 빛으로 하늘에 총총 떠 있을 것 같던 별들도 가끔은 화로 속 불씨처럼 가물가물 잿빛 속으로 사그라지고
기울던 하현달이 준비 안 된 이별로 심 한 우울증에 걸린 듯 야윈 얼굴에다 흥건하게 묻어내는 애잔한 서글픔도 보면서 밤이 저물 즈음, 담벼락에 기대선 으스름한 가로등 아래서 연민의 술 몇 잔에 잔뜩 취한 단풍잎들이 서성이거나 널브러졌다가 갑자기 찾아든 회오리바람과 스텝을 맞추며 어우러지는 춤사위도 보면서 마음으로나마 그리운 님 불러내어 대충대충 스텝을 맞춰가며 왈츠나 탱고, 그것이 어려우면 블루스나 고고에 취했다가 엄마의 품속이나 고향처럼 기억될 추억 하나 더 만들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