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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음
유모 ㅋ 내기 거짓말

서당아이 셋이 길 가다가
돈 한 푼을 주웠습니다.
나누어 가질 수도 없는 일이라
거짓말 제일 잘한 아이가
갖기로 했습니다.

첫째 아이가
"우리 아버지는 바람이 세어
지리산이 쓰러진다고
지게 작대기 들고 받치러 갔단다."

둘째 아이는
"우리 어머니는 날이 가문다고
열 마지기 논에 오줌누러 갔단다" 고 응수했습니다.

나머지 아이의 거짓말은
"우리 누나는 장마가 길다고
바늘, 실을 가지고
찢어진 하늘을 꿰매러 갔단다."

판결을 낼 수 없자
서당 훈장을 찾아가
심판해 달라고 했습니다.

"거짓말 내기를 하다니 이런 못된 버릇이 있나.
이 훈장은 평생동안
거짓말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단다"고 하자
엎드려 있던 세 아이가
일제히 고개를 들고
"야 훈장님이 이겼다.
한 푼은 훈장님 차지다"
알 수 없음
감사합니다
알 수 없음
좋은글 입니다
삭제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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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구미선영~~
농사공부 만점자
지란지교를 꿈꾸며 책에나왔던 막역지우를뜻 하는글인가요^^~ 좋아하는 글귀이네요~~
경북청송김철원,바람산인
고추를 주로 하고있네요·
옛날에 작은 시골 마을에 어린나이에 일찌기 초시를 통과한 머리좋은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소년은 안타깝게도 혀가짧아 발음이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해서 더 이상의 과거나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 장가를 간후엔 마을에 조그만 서당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공부가 재대로 진행 되지 못했습니다 천자문을 가르치던중 선생왈"바담 풍" 선창을 하니 학동들이 따라서"바담 풍"하는지라 이 선생님 답다워 소리치길"나는 바담 풍 해도 너희는 바담 풍 하란 말이다"이러니 공부가 되겠어요 ㅎㅎ 설렁 했나요 죄송합니다
경북구미선영~~
농사공부 만점자
이성민님~~~ 잠바 더 입으세욤~~~
알 수 없음
하하하하하
웃었답니다 ㅋ
눈이나빠 폰을 ㅋ
큰방에
가져다놓고
엄마랑 거실에서 지내거든요
눈이 쉼 해야 될거같아요 ㅋ
고운밤 되십시요
경남사천정일선
ㅎㅎ ㅎ 재미있네요
경북구미선영~~
농사공부 만점자
스승님이 최고의 고수시네요🤣🤣🤣
경북칠곡이성민
답변왕
5직2농·
고수는 거짓말 하면서 눈하나 꿈벅이지 않는 포커페이스 유지를 잘하는 ...^^
강원화천사과20730
즐기며 농사짖는 할매~·
첫 소절부터 웃음이 펑~
날이 좋으니 몸이 노골노골한데 이참에 한바탕 ~
낮과밤의 기온차가 심합니다.
한숨자고 일어나 정신이 번쩍 듭니다.
경기화성안재성
귀농,어 준비중·
ㅎㅎㅎ 매일이 즐겁네요.^^!
알 수 없음
달인들 👍
경북예천준농원
이 시간도 글을 일고 감사합니다.🍎🍒
경북성주성주 농업인
출석왕 축하해주세요 ·
앞으로 아프지 말고 지금 처럼만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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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어머니의 여덟가지 거짓말. 이 이야기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시작(始作) 되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의 아들 이었습니다. 우리는 음식(飮食)조차 충분(充分)하지 않았습니다. 식사(食事) 시간이 되면 어머니는 종종 제게 당신의 밥그릇에서 밥을 덜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더 먹어라 얘야. 나는 배가 부르구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첫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제가 자랄 때, 인내심(忍耐心) 강한 어머니께서는 자주 시간을 내어 가까운 강에 고기를 잡으러 가셨습니다. 잡은 물고기로 제 성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영양가(營養價) 있는 음식(飮食)을 만들어 주시려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잡은 고기로 끓인 신선한 생선국은 제 식욕(食慾)을 돋웠습니다. 국을 먹는 동안 어머니는 제 옆에 앉아 제가 먹은 생선(生鮮)의 뼈에 남은 살을 발라 드시곤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젓가락을 사용하여 손대지 않은 다른 생선(生鮮)을 어머님께 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님은 곧바로 그 생선(生鮮)을 저한테 넘기며 "네가 먹어라. 나는 생선(生鮮)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두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그런 후, 제가 중학교(中學校)에 다닐 때였습니다. 학비(學費)가 필요하자 어머니는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성냥공장에서 성냥갑을 가져와 풀로 붙이는 일을 하셨습니다. 겨울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저는 아직도 주무시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작은 양촛불 아래서 잠을 이겨가며 성냥갑을 붙이는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어머니, 이제 그만 주무세요. 밤이 늦었어요. 내일 아침에도 일 나가셔야 하잖아요." 이렇게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웃으시며 "얼른 자거라. 얘야, 나는 피곤(疲困)하지 않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세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마침내 입시가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회사에 요청해 하루 쉬고는 저를 시험장에 데려다 주셨습니다. 태양(太陽)이 몹시 뜨거운 날인데도 그 무더위 속에서 끈질긴 어머님은 몇 시간이나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시험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어머니는 곧바로 저를 반갑게 맞이하시고는 시원한 물을 제게 따라주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땀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컵을 어머니께 건네 드리며 먼저 드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얘야 어서 마시렴. 나는 목마르지 않구나." 라고 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네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아버지께서 병(病)으로 돌아가시자 불쌍한 어머님은 가장(家長)의 역할(役割)을 하셔야 했습니다. 우리가 필요(必要)로 하는 것을 어머님 홀로 해결(解決)하셔야 했습니다. 우리 가족(家族)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고통(苦痛) 없는 날이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家族)의 상태(常態)는 점점 악화되었고, 우리 집 가까이 살던 친절한 삼촌이 가끔 도와주었습니다. 이웃들은 종종 어머니에게 재혼(再婚)하시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고집스럽게 그들의 조언(助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저는 더 이상의 사랑은 필요 없어요." 라고 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다섯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제가 학업(學業)을 마치고 직장(職場)을 얻고 나니, 어머니께서도 이제 일을 그만두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시장(市場)에 가서 몇 가지 야채를 파시면서 필요(必要)한 돈을 버셨습니다. 다른 도시(都市)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종종 어머님께 필요하신 데 쓰시라며 돈을 보내드렸지만 어머니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심지어 돈을 제게 다시 돌려보내기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내겐 돈이 충분히 있단다." 라고 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여섯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학사 학위(學位)를 받은 후, 저는 석사(碩士) 학위를 받기로 했습니다. 회사의 장학 프로그램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마침내 그 회사에 입사(入社)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남은 인생(人生)을 즐길 수 있도록 모시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사랑스러운 어머니는 아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나는 혼자 사는 게 편하구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일곱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어머니는 노년(老年)에 위암(胃癌)을 앓게 되었고 병원에 입원(入院)해야 했습니다. 저는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지만, 제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필하기 위해 고향(故鄕)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는 수술(手術)을 받고 나서 쇠약해진 몸으로 침대에 누워 계셨습니다. 너무나도 늙어 보이는 어머니께서 깊은 생각에 잠겨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미소(微笑)를 머금으려고 애쓰시는 어머님의 노력(努力)이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병이 어머니의 몸을 약화시킨 것이 분명했습니다. 어머니는 너무 연약하고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너무나 아팠습니다. 어머니는 간신히 힘을 모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말거라. 얘야... 나는 아프지 않단다." ​ 그것이 어머니의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거짓말이었습니다. 이렇게 여덟 번째 거짓말을 하시고는,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어머니는 영원히 눈을 감고 소천 하셨습니다. 참외를 특별히 좋아하시던 어머니가 너무나 그리운 아침, 맛있는 참외를 깎아 드리고 싶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사랑하는 하루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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