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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공주심수연
팽나무 3년차·

●어머니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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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남 보라고 씻는다냐!

머리 감으면 모자는 털어서 쓰고,
목욕하면 헌 옷 입기 싫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것이 얼마나 가겄냐 마는
날마다 새로 살겄다고 아침마다
낯도 씻고 그런거 아니냐!

안 그런다면 내 눈에 보이지도 않은
낯을 왜 맨날 씻겄냐!

고추 모종은 아카시아 핀 뒤에
심어야 되고
배꽃 필때 한번은 추위가 더 있다 .

뻐꾸기가 처음 울고 장날이 세번 지나야 풋보리도 베어서 먹을 수 있었다.

처서 지나면 솔나무 밑이 훤하다
안하더냐. 그래서 처서 전에 오는 비는
약비이고, 처서 비는 사방천리에
천석을 까먹는다고 안 허냐!

나락이 피기 전에 비가 좀 와야할텐디...

들깨는 해뜨기 전에 털어야 꼬타리가
안 부러져서 일이 수월코,
참깨는 해가 나서 이슬이 말라야
꼬타리가 벌어져서 잘 털린단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든 살펴 감서 해얀다.

까치가 집 짓는 나무는 베는 것이 아니다.

뭐든지 밉다가도 곱다가도 허제.
밉다고 다 없애면 세상에 뭐가 남겄냐!

낫이나 톱 들었다고 살아있는 나무를
함부로 찍어대면 나무가 앙갚음하고,

괭이나 삽 들었다고 막심으로 땅을 찍어대면 땅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 것이다.

세상에 쓸 데 없는 말은 있어도
쓸 데 없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나뭇가지를 봐라.
곧은 것은 괭이자루,
갈라진 건 소 멍에,
벌어진 건 지게,
가는 것은 빗자루,
튼실한 건 울타리로 쓴다.

나무도 큰 놈이 있고 작은 놈이 있다.
야문 놈이나 무른 놈이나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람도 한 가지다. 생각해 봐라!
다 글로 잘 나가면 농사는 누가 짓고
변소는 누가 푸겄냐.

밥하는 놈 따로 있고 묵는 놈도 따로
있듯이 말 잘하는 놈 있고,
힘 잘 쓰는 놈 있고, 헛간 짓는 사람있고 큰집 짓는 사람 다 따로 있다.

돼지 잡는 사람,
장사 지낼 때 앞소리 하는 사람도
다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라도 없어봐라.
그 동네가 잘 되겄냐!

살아보니 그닥시리
잘 난 놈도 못 난 놈도 없더라.

지나고 보니까 잘 배우나 못 배우나
별 다른 거 없더라 .

사람이 살고 지난 자리는 사람마다
손 쓰고 마음내기 나름이지
배운 것과는 상관이 없더라.

거둬 감서 산 사람은
지난 자리도 따뜻하고
모질게 거둬 들이기만 한 사람은
그 사람이 죽고 없어져도 까시가 돋니라.

어쩌든지 서로 싸우지 말고
도와 가면서 살아야제.

다른 사람 눈에 눈물 빼고 득 본다 싶어도 끝을 보면 별거 없니라.

누구나 눈은 앞에 달렸고,
팔다리는 두개라도 입은 한개니까
사람이 욕심 내 봐야 거기서 거기더라.

갈 때는 두손 두발 다 비었고,

말 못하는 나무나 짐승에게
베푸는 것은 우선 보기에는
어리석다 해도 길게 보면 득이라...

모든게 제 각각 베풀면 베푼대로 받고
해치면 해친대로 받고 사니라.

그러니 사람한테야
굳이 말해서 뭐 하겄냐!

나는 이미 이리 살았지만 느그들은
어쩌든지 눈 똑바로 뜨고 단단이 살펴서 마르고 다져진 땅만 밟고 살거라.

개가 더워도 털 없이 못 살고,
뱀이 춥다고 옷 입고는 못사는 법이다.

사람이 한 번 나면 아아는 두 번 된다더니,
어른은 되지 못하고 애기만 또 됐다.

인자 느그 아아들 타던 유모차에
손을 짚어야 걸어댕기니
세상에 수월한 일이 어딨냐!

하다보면 손에 익고 또 몸에도 익고
그러면 용기가 생기는 것이제...

다 들 그렇게 사는것 아니겄냐...

오늘도 당신은 좋은일만 있을겁니다.💕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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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경기이천감자17947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는 글 감동깊게 보았 읍니다
강원평창농산물에 진심구병안
답변 고수
농산물에 진심을 담다·
아무리 아옹다옹해도 갈 때는 빈 몸으로 가듯이 마음 비우고 귀농하니 여기가 바로 천국 인것 같습니다 항상 소풍가듯 살아 가려고 하는 행복한 귀농인
충남공주심수연
팽나무 3년차·
하다보면 손에 익고 몸에도 익고
그러다보면 용기도 생기고
개가 덥다고 털없이 못살고
뱀이 춥다고 옷 입고는 못사는 법
뭐든지 밉다가도 곱다가도 허제
밉다고 다 없애면 세상에 뭐가 남겠냐
다들 그렇게 사는거 아니겄냐
<어머니 말씀>이 귀에 맴도네요
경남고성_고성농장
많은 걸 생각케 하는 좋은 글입니다.
전남여수박종언
즐거운 먹거리 만들기·
비도 오고 차 한잔의 여유늘 만끽하며~~^^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경기안성양촌혁
명언 중 명언주신 분께 감사감사 드립니다.
달력이 없어도 시계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갈겁니다.
경북청도심재명
좋은글 감사합니다
어리시절 생각 나게하는 글이네요
팜모닝 로봇
공식
오늘의 글 정말 공감이 많이 되네요! 🌟 사람들이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우리 모두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세상이 더 행복한 곳이 될 거예요. 💕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유주제모임의 연관글

그리움 - ※ - 그리움 !!! 몇해 전, 미국 어느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시험문제를 냈다. 시험문제는 "첫 글자가 M으로 시작하는 단어중 상대방을 끌어 들이는 성질과 힘을 가진 단어를 쓰시오" 였다. 정답은 magnetic(자석)이었다. 그런데 85% 이상의 학생들이 답을 mother(엄마)라고 썼다. 고민하던 선생님이 마침내 mother를 정답으로 처리했다는 실화가 전해진다. 학생들이 M으로 시작하는 말로 상대를 끌어들이는 성질을 가진 단어를 "마더"로 기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얼마 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1위로 선정된 단어 역시 어머니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은 젖 먹는 자기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동자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한다. 사진전시회에서 최우수작품으로 선정된 작품을 감동 깊게 본 적이 있다. "기다림"이라는 제목의 사진으로 해질 무렵 동구밖 느티나무 아래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의 뒷모습이다.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했다.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이리라. 그림이 주는 메시지는 기다림과 그리움이었다. 어머니는 기다림과 그리움의 대명사이다. 여자는 어릴 적엔 아버지를 기다리고, 성장하여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자식이 외출하면 그 자식을 기다리게 된다. 기다릴 수 있고 그리워 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사랑은 그리움이고 기다림이다. 그래서 그리움과 기다림은 사랑의 또 다른 말이다. 전쟁이 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을 가다 폭탄이 떨어지면 아버지는 짐 보따리를 잡고 몸을 숨기지만 어머니는 아이들을 안고 방패막이가 되신단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동물세계에서도 볼 수 있다. 어느 시골에 화재가 났는데 불이 꺼지고 난 다음 날 광에 들어가 보니 암탉이 병아리들을 품은 채 새까맣게 타 죽어 있었고 병아리들은 모두 살아있었다는 실화가 전해진다. 가족여행을 간 자식이 늙은 어머니를 홀로 둔채 돌아가 버려 경찰이 양노원에 입원시켰다는 소식들이 있다. 놀라운 것은 그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과 주소를 결코 대는 일이 없다고 한다. 자식은 어머니를 버려도 어머니는 자식을 결코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살아 계셔 번거로왔고 불편한 불만의 시기도 있었다. 그래서 부모는 어릴 적엔 디딤돌, 나이들면 걸림돌, 더 늙으면 고인돌이라는 말이 있다. 어머니! 모든 인간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고향같은 존재이다. 모든 것을 다 품어 주시고 모든 것을 다 주고도 기억하지 않는 어머니! 그건 영원한 향수이며 불러도 불러도 자꾸만 그리운 마음의 고향과 같은 이름이다. 이 세상에서 나 보다 나를 더 사랑했던 그 분이 바로 그리도 그리운 나의 어머니셨다. □아내 아닌 여인과 한번의 데이트   얼마 전에 나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을 만나러 갔다. 실은 내 아내의 권유였지만...   어느 날 아내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그녀를 사랑 하잖아요. 인생은 짧아요. 당신은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해요" 아내의 그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근데 여보, 난 당신을 사랑해"   그러나 나의 말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알아요. 그렇지만 당신은 그 녀도 사랑하잖아요."   내 아내가 만나라고 한 다른 여자는 실은 내 어머니이시다. 미망인이 되신지 벌써 몇 년... 일과 애들 핑계로 어머니를 자주 찾아 뵙지 못했었다.   그날 밤, 나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같이 영화도 보고, 저녁 식사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의아해 하시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냐? 혹시 나쁜 일은 아니지?"   알다시피 내 어머니 세대는 저녁 7시가 지나서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나쁜 소식일 거라고 믿는 세대다.   “그냥 엄마하고 단 둘이 저녁도 먹고, 영화도 보고싶어서요.  괜찮겠어요?”   잠시 후 어머니가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그러자꾸나".   다음 날 저녁, 일이 끝나고 차를 몰고 어머니를 모시러 갔다. 금요일 밤이었고 나는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기분에 휩싸였다. 첫 데이트를 하기 전에 갖게 되는 가슴 두근 거림 이라고나 할까...   도착해서 보니 어머니도 다소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벌써 집 앞에 나와 기다리고 계셨는데 근사한 옛 코트를 걸치고, 머리도 다듬으신 모양이었다.   코트 안 옷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두 분의 마지막 결혼기념일에 입으셨던 것이다. 어머니의 얼굴이 애인을 기다리는 소녀 같이 환한 미소로 활짝 피어 났다.   어머니가 차에 오르시며 "친구들에게 오늘 밤에 아들과 데이트 하러 간다고 했더니 모두들 자기들 일인 양 들떠 있지 뭐냐"  하고 말씀하셨다.   어머니와 함께 간 식당은 최고로 멋진 곳은 아니었지만 종업원들은 기대 이상으로 친절했다. 어머니가 살며시 내 팔을 끼었는데 대통령 영부인이라도 되신 것 같았다.   자리에 앉자 어머니가 "내 눈이 옛날 같지가 않구나" 하시면서 메뉴를 읽어 달라고 하셨다.   메뉴를 반 쯤 보다 눈을 들어보니 어머니가 향수에 젖은 미소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계셨다..   "네가 어렸을 때는 내가 너한테 메뉴를 읽어 줬는데..."   그 말을 듣고 내가 말했다.   "오늘은 내가 읽어 드릴게요. 엄마."   그날 밤 우린 특별한 주제도 아니고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였지만 즐거운 대화를 나누 었다. 어머니와 끊임없이 옛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침내 대화의 밑천이 바닥이 났다....   빙긋이 웃으시며 어머니가 말했다.   "다음에 또 오자꾸나.  단 다음번은 내가 낸다는 조건이야."   어머니를 다시 댁에 모셔다 드렸는데 헤어지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를 안고 볼에 키스하며 내가 그 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씀 드렸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감사하다며 말했다.   "멋진 저녁이었어.  그렇게 할 수 있게 말해줘서 고마워." "어머니와 좋은 시간이었던가 보지요?" 아내가 말했다.   "정말이지 기대 이상이었어."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사랑하는 어머니가 심장 마비로 돌아가셨다. 그것은 너무 순식간 이어서 나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어머니와 내가 함께 했던 식당에서 편지가 도착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아무래도 다음 번 데이트 약속은 지킬 수 없을 것 같구나.  정말 그럴 것 같다.  그러니 이번엔 너와 네 처가 둘이서 너와 내가 했던 것처럼 함께 즐겼 으면 한다.  너희 식사비용은 내가 미리 다 지불했다. 그리고 너와 내가 함께 했던 그 날 밤의 시간들이 내겐 얼마나 뜻깊은 일이었는지 네가 꼭 알아주면 좋겠다!  사랑한다! 엄마가'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동안 우리와 함께 할 것인지 모르고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만약,  님의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시다면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만약 안계시다면 오늘의 당신을 있게 하신 어머니를 한 번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옮긴 글 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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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어머니의 여덟가지 거짓말. 이 이야기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시작(始作) 되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의 아들 이었습니다. 우리는 음식(飮食)조차 충분(充分)하지 않았습니다. 식사(食事) 시간이 되면 어머니는 종종 제게 당신의 밥그릇에서 밥을 덜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더 먹어라 얘야. 나는 배가 부르구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첫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제가 자랄 때, 인내심(忍耐心) 강한 어머니께서는 자주 시간을 내어 가까운 강에 고기를 잡으러 가셨습니다. 잡은 물고기로 제 성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영양가(營養價) 있는 음식(飮食)을 만들어 주시려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잡은 고기로 끓인 신선한 생선국은 제 식욕(食慾)을 돋웠습니다. 국을 먹는 동안 어머니는 제 옆에 앉아 제가 먹은 생선(生鮮)의 뼈에 남은 살을 발라 드시곤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젓가락을 사용하여 손대지 않은 다른 생선(生鮮)을 어머님께 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님은 곧바로 그 생선(生鮮)을 저한테 넘기며 "네가 먹어라. 나는 생선(生鮮)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두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그런 후, 제가 중학교(中學校)에 다닐 때였습니다. 학비(學費)가 필요하자 어머니는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성냥공장에서 성냥갑을 가져와 풀로 붙이는 일을 하셨습니다. 겨울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저는 아직도 주무시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작은 양촛불 아래서 잠을 이겨가며 성냥갑을 붙이는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어머니, 이제 그만 주무세요. 밤이 늦었어요. 내일 아침에도 일 나가셔야 하잖아요." 이렇게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웃으시며 "얼른 자거라. 얘야, 나는 피곤(疲困)하지 않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세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마침내 입시가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회사에 요청해 하루 쉬고는 저를 시험장에 데려다 주셨습니다. 태양(太陽)이 몹시 뜨거운 날인데도 그 무더위 속에서 끈질긴 어머님은 몇 시간이나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시험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어머니는 곧바로 저를 반갑게 맞이하시고는 시원한 물을 제게 따라주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땀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컵을 어머니께 건네 드리며 먼저 드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얘야 어서 마시렴. 나는 목마르지 않구나." 라고 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네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아버지께서 병(病)으로 돌아가시자 불쌍한 어머님은 가장(家長)의 역할(役割)을 하셔야 했습니다. 우리가 필요(必要)로 하는 것을 어머님 홀로 해결(解決)하셔야 했습니다. 우리 가족(家族)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고통(苦痛) 없는 날이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家族)의 상태(常態)는 점점 악화되었고, 우리 집 가까이 살던 친절한 삼촌이 가끔 도와주었습니다. 이웃들은 종종 어머니에게 재혼(再婚)하시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고집스럽게 그들의 조언(助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저는 더 이상의 사랑은 필요 없어요." 라고 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다섯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제가 학업(學業)을 마치고 직장(職場)을 얻고 나니, 어머니께서도 이제 일을 그만두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시장(市場)에 가서 몇 가지 야채를 파시면서 필요(必要)한 돈을 버셨습니다. 다른 도시(都市)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종종 어머님께 필요하신 데 쓰시라며 돈을 보내드렸지만 어머니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심지어 돈을 제게 다시 돌려보내기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내겐 돈이 충분히 있단다." 라고 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여섯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학사 학위(學位)를 받은 후, 저는 석사(碩士) 학위를 받기로 했습니다. 회사의 장학 프로그램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마침내 그 회사에 입사(入社)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남은 인생(人生)을 즐길 수 있도록 모시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사랑스러운 어머니는 아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나는 혼자 사는 게 편하구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일곱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어머니는 노년(老年)에 위암(胃癌)을 앓게 되었고 병원에 입원(入院)해야 했습니다. 저는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지만, 제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필하기 위해 고향(故鄕)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는 수술(手術)을 받고 나서 쇠약해진 몸으로 침대에 누워 계셨습니다. 너무나도 늙어 보이는 어머니께서 깊은 생각에 잠겨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미소(微笑)를 머금으려고 애쓰시는 어머님의 노력(努力)이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병이 어머니의 몸을 약화시킨 것이 분명했습니다. 어머니는 너무 연약하고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너무나 아팠습니다. 어머니는 간신히 힘을 모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말거라. 얘야... 나는 아프지 않단다." ​ 그것이 어머니의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거짓말이었습니다. 이렇게 여덟 번째 거짓말을 하시고는,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어머니는 영원히 눈을 감고 소천 하셨습니다. 참외를 특별히 좋아하시던 어머니가 너무나 그리운 아침, 맛있는 참외를 깎아 드리고 싶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사랑하는 하루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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