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무소주이생기심 ·
어제 못 지킨 계획을 지키려고 김밥 한 줄, 커피, 로얄살루트 두 모금, 물 한 병을 챙겨 산행에 나섰다.
아직 단풍이 절정을 이루지는 않았으나 하늘빛과 공기에서 가을이 무르익었음을 알 수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낙엽은 부서지고 저음의 풀벌레 소리가 숲 분위기를 더욱 적막하게 한다.
가파른 깔딱 고개를 오를 때는 포기하고 그냥 돌아설까 하다가도 정상에서 김밥을 안주 삼아 마시는 양주 두 모금의 유혹이 더 강하기에 긴 숨을 여러 차례 몰아쉬며 올랐더니 풍경, 바람, 술맛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산행을 하는 동안에는 번뇌의 늪에서 벗어나 무념무상의 시간이 지속되면서 살아 있음이 증명되는 것 같아 좋다.
내려올 때는 허리가 좀 아프지만 햇살 듬뿍 비치는 곳에 트리하우스 한 채 지어 고요를 깨우는 듯 깊은 골짜기에서 가끔 들려오는 고라니 울음소리를 벗 삼아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가 인생'이라고 했듯 농사가 바쁘지 않을 때는 산을 자주 찾아 삶을 반추하며 의미 있고 후회 없는 하루하루를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