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산림녹화사업으로 헐벗은 산에 산사태를 방지할 목적으로 가장 빠르게 자라는 아카시아와 싸리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때는 산에서 나무를 베다가 장작을패고 밥도 하고 군불을 땠습니다. 그래서 헐벗은 산이 많았거든요. 80년대 중반에 중국에가서 두만강에서 바라본 북한 산이 헐거벗은 산이 많더군요. 우리나라도 60년대는 헐거벗은 태반이었지요. 가을철에는 국민학교 다닐적에 싸리나무 씨앗을 학생들한테 의무로 채집해오라고 했습니다. 싸리나무는 2미터 정도 높이로 자라나는 낙엽활엽수이다. 가지가 옆으로 덥수룩하게 나는 특성이 있으며, 잎 가장자리는 톱니 없이 밋밋합니다. 싸리나무꽃은 보라색과 분홍색이 어우러진 작은 꽃이었습니다 싸리나무도 뿌리도 많고 가지가 많이 번지기 때문에 산사태를 예방하는데 좋은 나무였습니다. 옛날엔 마당을 쓸 빗자루를 싸리나무를 말려서 만들었습니다. 남자들은 전방에서 군복무를 하셨던 분들은 싸리나무를 채취해서 빗자루를 만들어보신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아카시아나무는 너무 빠르게 자라고 뿌리에 혹이 있어서 번식력이 좋은 나무입니다. 그런데 아카시아나무가 너무 크게 자라서 산을 망가뜨리기도 했습니다. 가시가 많고 번식력이 좋아서 결국은 아카시아나무를 없애는데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아카시아나무를 자르면 곧바로 새순이 올라오고 뿌리채뽑으면 땅속에 잔뿌리가 있어서 다시 새순이 올라옵니다. 저희산에는 군에서 유실수를 심는다고 밤나무를 온산에 심었습니다. 매년마다 밤나무밑에 풀을 깍아서 지게로 짊어지고 집으로 옮겨서 퇴비를 만들었습니다. 6-70년대 퇴비증산을 장려했던 기억나시지요? 비료공급이 모자라서 오로지 퇴비를 거름으로 논밭에 농사를 지었습니다. 여름에 밤나밑에 풀을 깍아야 가을 이맘 때 알밤을 줍거든요. 장대로 밤송이를 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985년대까지 알밤을 줍고 밤을 털었습니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작은어머니, 저희 부부가 종일 밤을 줍고 털어서 시장에 나가야 흔히 말하는 일당도 안되었습니다. 한하디로 부가가치가 없는 가성비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밤나무밑에풀도 깍지않고 알밤수확을 포기했습니다. 그 중에 개량종 밤나무가 4그루가 있습니다. 밤송이가 사과 크기만해서 밤이 제법 큰 밤입니다. 밤나무가 있는 산에 산소가 3봉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벌초를할 때마다 4그루 밤나무아래만 풀을 깍습니다. 그래야 알밤을 주을 수 있거든요. 올해도 그 무더운 날씨에 벌초를 하면서 밤나무밑에 풀을 깍았습니다. 어제 굵은 알밤을 줍는다는 부푼마음으로 장화도 신고 배낭을 메고 밤을 주으러 갔습니다. 제사를 모실 때도 쓰고 이번 주말에 내려온다는 손주도 줄려고 즐거운 마음으로 산에 갔습니다. 어느 분이 알밤을 먹는 맛보다 줍는 마음이 더 즐겁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밤나무 아래를 보는 순간 "아"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떨어진 알밤과 밤송이도 다까서 알밤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어떻합니까? 밤나무를 찾아서 가시넝쿨을 헤치면서 알밤을 주어왔습니다. 알밤이 절반 이상이 벌레가 먹었습니다. 어떤사람 덕분에 가시넝쿨을 헤집고 다니느라 종아리에 상처가 많네요. 집에 내려와서 마당 한켠에 있는 사과대무가 제법 달렸더군요. 잎이 무성할 때는 몰랐는데 엄지 손가락만한 대추가 색깔이 변하면서 많이 보였습니다. 보라색으로 변한 대추는 달고 맛있더군요. 생각보다 많이 땄습디다. 고추건조기에 살짝 말려서 하우스에 널어 놓으면 잘 마른답니다. 올해는 대추가 알이 굵게 달린 해인가 봅니다. 색이 든 대추를 한줌 냉장고 야채박스에 보관했습니다. 옛날엔 나락 타작을하면 논바닥이나 마당, 신작로 등에 벼를 말려서 필요할 때마다 방아늘 찧어서 쌀을 먹었지요. 그래야 밥맛도 좋고 쌀을 오래 보관해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기계로 나락을 훑어서 곧 바로 창고로 실고 갑니다. 물수매를 한다고 하더군요. 오랫만에 신작로에 나락이 널려있어서 반갑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쩌면 정겨운 모습이라 할까요? 오랫만에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늘은 흐릿하더니 쌀쌀합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그러셨군요. 저희 한쪽산에도 낙엽송을 심었었습니다. 지금은 간벌사업으로 다 베어냈습니다. 낙엽송은 나무 자체가 잔가시가 많아서 손바닥에 가시가 많이 박히기도 했습니다. 한 때는 전봇대로도 사용했었지 않나요? 가느다란 나무는 건설현장에서 아시바라고 지금은 철제로 쓰지만 사다리같이 쓰였지요. 지금도 시골집에 낙엽송나무로 만든 사다리가 있습니다. 낙엽송나무가 심어진 골짜기는 가을에 노랗게 낙엽이질 때 이뻤지요. 또 리기다소나무도 조림을 했었습니다. 리기다소나무도 별로 쓸모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그 시절에 애쓰셨습니다. 제 이야기를 읽어 주시고,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김제들녘엔 지푸라기로 땔감을 사용하셨지요? 제 아내가 완주군에서 지푸라기로 밥도 하고 군불도 때다가 솔잎으로 불을 지피니까 어찌나 좋아했던지요? 파란 불꽃이 연기도 없이 화력이 쎄거든요. 그래도 박정희대통령이 산림녹화와 퇴비증산으로 벌거벗은 산이 우거지고 토양이 양분이 가득했었지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일상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환절기에 건강관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처음뵙는 박정호님. 감사합니다. 정호님께서도 그 시절을 겪으셨네요. 먹거리는 모자랐지만 콩 한조각도 나누어먹었던 정이 듬뿍있는 세상이었지요. 웃 어르신들 얼마나 힘드시게 사셨습니까? 알밤을 주으면서 아내랑 옛날 이야기를 했습니다. 참 불쌍하시게 사셨던 분들이 많으셨지요. 제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퇴비를 한다고 머리에 풀을 이고 십리길을 걸어다니셨군요. 저희도 꼭 십리길이거든요. 마를풀을 묶어서 어깨티를 해서 둘러메고 갔지요. 처음 뵙는 이미숙님. 제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새볔에 제 이야기를 써봤습니다. 제 이야기를 공감하시는 이미숙님. 가끔씩 올리겠습니다. 통영수산시장에 자주 들렀는데 요즘은 가보질 못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그러셧군요. 74년 가을에 휴가를 얻어서 가을걷이를 하러갔었습니다. 처음 심은 통일벼가 알맹이가 전혀달리지 않았습니다. 한마지기 훑어야 싸래기 두어말 나왔습니다. 그 때 지도소공무원하고 대판 싸웠던적이 있었습니다. 저희집은 꽤많은 통일벼를 심었는데 벼만 뻣뻐싸게 서있어서 완전 머슴들 새경도 못줄 정도였지요. 지금 같으면 보상이라도 받지요. 그렇게 한해 벼농사가 망하고 그 뒤로 통일벼를 심지않았습니다. 그 때 아끼바리라는 품종이 나와서 그렇게 밥맛이 좋더군요. 76년 8월에 제대했는데 그 때부터 머슴살이가 사라졌습니다. 저희 마을에 어르신들께서 저희집 머슴을 안 살아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옛날에 봉급이라고 쥐꼬리만큼인데 애쓰셨네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1세기에20세기 얘기 나열하니 ,유기현. 전설 따라 삼천리? 고진감래? 힘 들었던 그 시절 회상하면 희비.만감이 교차. 하네요 언젠가 가족 앞에서 고생담.헝그리 정신 얘기하니. 딸래미 옛날 사람들은 지혜가 부족하고. 머리가 안. 좋았다. 하네요 그래서. 딸. 이름 지혜라 지었나? 아닌데 그. 말은. 태어난. 한참 후 얘긴데 그건 그렇고 어디까지 진도 나갔지? 큰일 이구만 횡설수설 갈팡질팡 오락가락 병원 문 열었나? 응급실 가요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그때는 학교가 최소 십리 길 지금 와. 생각하니 하체. 운동에 맑은 공기 그렇기에 서정적 감성도 알고 포켓 사전 암기하며 걷다가 정신일도? 남의 논 바닥에 빠지고 후유증? 그때 공부를. 얼마나 했던지 눈이 흐려저 못생긴 할매도 이쁘게 보이는 후유증 단점도 남아세요
유일기님의 글을 접하면 공감과. 마치 제 삶의 일대기가 스케치. 된 듯 합니다 제 할머니 1896 년 태생에 자주 저에게 하신 말씀 내가 니 애비 때문에 보리밥 먹는다 지금도 그 목소리 제. 귓전에 머문 듯 합니다 부안태생에 어릴 적 우리 논.밭 밟지 않고 못 다녔다. 했는데... 조부께서 큰 정미소를 갖고 계셨기에 제 간접적 자랑? 방바닥 기어 다닐때 손에 잡히는게 삼이었고 그 영향? 지금도 감기.몸살 모르며 아는 것 하나는 실버 우먼? 이쁜건 압니다
그렇지요. 머슴들 따라서 산에 가서 가리나무랑 솔방울을 주어왔지요. 지금은 조명희님 말씀대로 산에 들어갈 수가 없답니다. 오늘 고추말똑뽑고 씻는데 허벅지에 가시에 긁힌 자국이 제법 많네요. 산에 다녔던 길도 없어져서 다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주뵐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카시아는 콩과식물이라 스스로 비료를 만들어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서 다른나무 들이 상대적으로 잘 안큰것 처럼 보인것입니다. 지금은 산림토양에 양분이 많아 아카시아는 크지 못하고 소나무, 참나무 등의 나무가 월등히 잘 자라고 있습니다. 아카시아는 이제 산에서 보기 힘들고 도로변 절개지 같은 햇빗 잘들고 척박한 토양에 더러 보일 뿐입니다. 이제는 아카시아가 같은 밀원식물도 감소하고 봄철 일시에 모든 꽃이 개화하여 꿀벌도 감소하고 농작물 수분(수정)에 많은 장애가 발생되는것 같이 안타깝습니다.
저희 산에 아카시아를 뽑느라 애먹었습니다. 그 때 그라목손인가를 나무밑둥에 바르기도 했지요. 그래서 아카시아나무가 사라진거였군요. 최재우님께서는 나무에 많은 지식을 가지고 계시네요. 지금은 기름보일러가 많아서 산에 나무를 하러가는 사람들이 적지요. 그래도 젊은 사람들은 화목보일러가 있어서 저희산에 죽은 나무랑 밤나무를 베다 때라고 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