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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10 -

우리는 야간통행금지와 장발단속 그리고 미니스커트 단속을 당했다.
통행금지령(通行禁止令) 또는 통금(通禁)은 일정 시간에 일반인의 통행을 금지하는 제도로 주로 야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원칙적으로 분쟁이나 재난이 있을 때에 치안 유지를 위해 오직 제한적으로만 시행되었다.
어린이나 청소년의 보호를 위해 시행되기도 했다.
야간통행금지는 밤에 허락받지 않는 사람은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지금도 밤에 치안이 좋지 않는 곳이 있고 과거에는 더 심했을 것이다.
이에 따라 범죄율을 낮추고자 과거에 많이 사용했던 규범이다.
그 당시에는 어차피 횃불이나 호롱불외에는 별다른 조명이 없고 해가지면 일반인들이 할만한 야외활동이 없어 그다지 불만이 없었다.
1945년 시행되었다가 전방 휴전선부근과 해안 일부 군사시설이 있는 지역을 제외하고 1982년1월5일 전면 해제되었다.
밤 10시에서 다음날 4시까지는 일반인들이 시내를 다니지 못했다.
그 후 밤 12시부터 다음날 4시까지로 변경되었다.
12시가되면 싸이렌이 울리고 야간통행증이 없으면 즉결심판을 받고 경찰서 보호실에서 밤을 보내야했다.
신정연휴기간, 광복절, 크리스마스, 재야의 밤 등 특별한 날은 해제되었다.
1970년대 초중반의 장발 단속 정책은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6.8혁명의 영향을 받은 문화가 한국에 수입되자 당시 정권에서 청년들의 문화를 막음으로써 통제 분위기를 활용하여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막으려 한 의도가 있었다.
6.8혁명이란 1968년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거대한 변혁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미니스커트와 장발은 주류 문화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문화 새로운 시대를 바라는 젊은이들의 열망이 함축돼 있었다.
1971년 9월 24일 정부는 퇴폐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를 10월 1일부터 단속한다는 방침을 발표했고,
미니스커트와 장발도 포함돼 있었다.
단속 첫 날인 10월 1일 전국적으로 2,600명이 적발되었다고 한다.
장발단속에 걸렸는데 머리깍기를 거부하면 경범죄로 즉결심판에 넘겨졌고 장발인 상태로 예비군훈련에 참가하면 불참처리됐다.
장발단속은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에게도 적용되었는데 1970년 홍콩 배우 성룡이 당시 우리나라에 입국하면서 단속에 걸린 적이 있었다.
한 때는 바가지를 엎어 놓은 바가지 모양의 머리가 유행하기도 했다.
장발단속은 80년대 들어서면서 없어졌지만 이를 단속하는 근거 법안의 장발에 관한 내용이 없어진 것은 1989년입니다.
한국에서는 가수 윤복희가 입은 것이 최초로 알려져 있지만 미니스커트는 당시 적령기 미혼 여성의 정장이 되어버렸다.
유신정권이 들어서면서 장발과 함께 미니스커트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당시 경찰들은 풍기단속 등의 이유로 대나무로 만든 30cm자를 가지고 다니며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여성들의 치마 길이를 단속하기도 했다.
당시 단속 기준은 무릎 위 20cm에 걸리면 경범죄처벌법에 의해 처벌을 받았다
"호황기에 미니스커트를 입는다"는 치마의 길이로 경제 상황을 알 수 있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길거리에서는 보행법규를 위반한 사람을 단속하여 한쪽에 노끈으로 선을 만들고 그 선안에 세워두기도 했다.
횡단보도에서 한쪽발만 내려가면 괜찮았고 두발이 다 내려가면 교통단속반이 멀리서 지켜보다가 쫒아와서 적발되었다.
사회 분위기와 물가상승도 차갑게 느껴집니다.
웃픈 이야기도 있습니다.
90년대까지만해도 자동차를 운전하시다보면 이런 일을 몇번은 격었을겁니다.
도로변에 화이바를 쓰고 멎진 오토바이를 타고 교통단속을 하는 교통순경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전주시내를 벗어나면 완주경찰서 소속의 교통경찰이 있었고,
완주군을 벗어나면 임실경찰서 소속의 교통순경이 있습니다.
임실군 경계를 지나면 남원경찰서 소속의 교통경찰이 나와있습니다.
남원 시내를 벗어나면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삼거리에 요천 검문소가 있습니다.
70k의 거리에 꼭 3-4차례는 교통단속을 거쳐야했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기준속도를 웃도는 속도로 운행하기도 하지요.
어김없이 한쪽에 살짝 숨어있다가 수신호로 차를 세웁니다.
그 시절에는 면허증 밑에다 5,000원권 지폐를 끼워놓고 다녔습니다.
접어진 5,000원권 지폐랑 같이 면허증을 제시하면 5,000원권 지폐만 꺼내고 면허증을 돌려주면서 "안전운전 하십시요"하면서 거수경례를 하였습니다.
다 그런것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동료들이랑 차한잔하게 해주십시요"하면서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했습니다.
어느 날은 요천 검문소에서 안전띠를 안맸던가?해서 검문을 당했는데 호주머니에 현금이 없어서 면허증을 맏겨놓고 시내에서 현금을 인출해서 5,000원을주고 면허증을 찾기도 했습니다.
성실하게 교통업무를 보았던 교통경찰분들한테는 죄송합니다.
그 때는 국도지만 2차선이라 중앙분리대가 없어서 건너편에 교통경찰이 있으면 상대방 차에다 비상등을 깜박이면서 교통경찰이 단속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미덕아닌 미덕도 있었습니다.
날씨가 더워지고 있습니다.
건강관리를 잘 하셔야겠습니다.
인천강화이정민
2025년 내 직장·
그니절에. 나도. 살앗는데... 애국가. 울려 퍼지면. 가슴에 손ㅇㆍㄴ고... 나뿌기만 한게 아님니다 그 시절엔 미덕이라도 있엇는데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국기 하강식이 있는 시간에는 길가다가도 잠시 멈춰서 가슴에 손을 얹었지요.
국기하강식에 참여하지 않은 병사가 있어서 영창도 보냈다고 하더군요.
전북전주노정태
그 시절이 그립네요
농사도 그때가 힘은 들었지만 지금처럼 화학비료도 많이 주지 않았네요.
정감어린 귀한 글
감사해요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산에서 풀을베고 말려서 지게로 날랐지요.
아침 일찍 아버지랑 일꾼들이 쌓아놓은 풀을 작두로 썰어서 차곡차고 쌓았습니다.
몇차례 뒤집기를 하면 김이 모락모락나면서 하얗게 분이 뜨면서 발효가 되었지요.
가을에 보리를 심을 땨 보리고랑에 뿌리고 보리씨앗을 넣었지요.
화학비료는 마을마다 조금씩 나와서 주민들이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퇴비로 논밭을 가꾸니까 땅이 살아있었지요.
반갑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전남광양빛그린 김용화
장마시작~농작물피해주의·
되돌아회상하니 가슴이뭉클하며 눈물이 나올뻔 ...정말 애국가 울려퍼지면 길가다가 가슴에 손 올리는 장발단속. 미니스커트단속. 잊었든 그때가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멍하니 생각에 잠겨본다. 요즘 젊은세대들은 이해할수없는일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난리나죠?
MZ세대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고추 곁순 따주고왔습니다.
날씨가 더우니까 고추가 막 크기 시작하네요.
주말 행복하십시요.
충남아산권석민
Don't giveup·
즐겁게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고맙습니다.
저의 일상을 표현한 것입니다.
오후에 비소식이 있어서 조용하게 작물에 흡족하게 내려주기를 바랍니다.
중부지방에는 요란한 비소식이라 행여나 강풍에 피해가 없을지 염려스럽습니다.
어제는 고추 곁순을 따 주었습니다.
전남광양빛그린 김용화
장마시작~농작물피해주의·
더운데 수고하셨습니다. 즐거운 주말보내셔요.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감사합니다.
자가소비용으로 텃밭에 여러가지 작물을 심었습니다.
오늘은 완두콩도 따와서 한 웅큼 삶았습니다.
달작지근 하네요.
손주들이 완두콩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