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에 학도병으로 참전 용사이신 아버지. 전쟁 후 황해도 고향으로 돌아 갔지만 공산당 횡포에 부모님과 여동생.그리고 가까이 지내던 이웃 5섯가족을 데리고 죽을 고비를 넘겨가면서 남쪽으로 내려오셔서 빈몸으로 갖은 고생을 하시고 40대 중반에 여동생이 살고 있던 단양으로 자리를 잡고 농사를 시작 하셨다. 지금 연세가 90대 중반 이시지만 경운기 . 관리기는 나보다 더 잘하신다. (가장자리가면 돌려 드려야 하지만) 20살이 넘은 애마 세바퀴 오토바이를 가장 중요시 하시고 밭.밭이 돌아보시며 조언(잔소리에 가까운)을 아끼지 않으신다. 피복 비닐은 벗겨 놓으면 이틀이 못가 경운기로 운반해 주시는 울아부지. 책력을 보시고 언제 뭘 해야 하는지 일러 주시는 울아부지. 오늘도 침대에 누워 폰만 들여다 보는 나지만 거실에서 팥을 고르고 계시는 울 아부지. 건강하니 오래오래 사실길
건강해 보이시는게 참보기가 좋아 보이시네요? 저의 아버님께서도 군생활 다하시고 제대 한달정도 남겨놓은 싯점에 6.25 전쟁이 시작되어 다시 전쟁에 참전하시고 3년의 군생활 전쟁에 참전하시었는데 전쟁터에서 중공군이 막내려올때 부대원이 모두 전사를 하였는데 아버님과 다른 한분하고 두분만 살아 돌아 왔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아버님도 북한군과 중공군에 여러번 잡혀있다가 탈출하고 또 탈출하고 하시면서 부산미군부대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두만강 전선까지 갔다가 부산 부대에까지 돌아오시면서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속병을 계속달고 다니시다가 향년 92세에 8년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님의 아버님께서 살아 계실때 효도를 많이 하십시요? 부모님께서 지켜주신 나라가 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잘먹고 잘살수가 있는것 이니깐요^^ 국가에서 정말 유공자로 대우하고 보살피고 해야할 국가유공자는 독립운동가,6.25참전용사,베트남 참전용사 이런분들이야 말로 국가와 민족을 위하고 나라를 구하신 진정한 국가유공자가 아닐까요? 님의 아버님을 뵈니 저의 아버님 생각에 장문을 올리네요^^ 정말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