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함박눈이 내리는 주말 아침입니다.
KBS에서 매주 토요일 아침에 방영된 황금 연못이라는 프로를 시청했습니다.
60대 이상인 분들께서는 많은 공감을 하는 프로라 가끔씩 즐겨보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노래하는 시인 박인희가수님께서 심순덕 시인의 시를 낭독하더군요.
황금연못에 출연한 사람은 물론이고 많은 시청자들이 눈시울을 적시더군요.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나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이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들어도 가슴이 아파옵니다.
내 아이들에게 후회없는 아버지가 되어야 겠습니다.
심순덕 시인의 이야기는 하늘나라에 계신 저희 어머니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정말 늘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같이 시청하던 아내가 "꼭 당신 어머니 이야기네요"하더군요.
남들은 일하시다가 마무리 하시고 쉬시는데도 계속일을 하시고 계시는 어머니한테 부하가 나서 큰소리로 이제 그만하시라고 소리만 질렀던 제가 많이 부끄럽습니다.
남들은 동네 어귀에 있는 둥구나무 아래서 쉬시고 계시는데 그 꼬부라진 허리로 지팡이를 짚으시면서 산비탈길을 오르락내리락 하셨습니다.
특히 머슴살이가 사라진 후에는 일꾼들 밥상을 차릴 일이 없으셔서 어머니 식사 시간은 정해 있지 않았습니다.
해가지고 깜깜해서야 집에 들어 오셨습니다.
제가 주말에 내려가서 일을 도와드리면 이제 그만하자!라고 집에 들어 오셨습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떠난 것을 보신 후에 다시 논밭으로 나가셨습니다.
저를 보내시고 또 호미를 들으셨습니다.
그렇게 자식들 위해서 애쓰셔서 지금 저희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께서 너희 엄마 때문에 잘먹고 살 수 있잖느냐?하시면 듣기가 싫었었습니다.
참외껍질을 벗겨서 속살은 자식들 먹이시고,
울 어머니는 껍질을 드셨습니다.
빨간 수박속을 자식들 먹이시고,
껍질에 붙은 하얀속살을 숫가락으로 긁어 드셨던 어머니였습니다.
그 옛날 식량이 부족해서 보리밥을 혼식으로 정부에서 장려를 했지만 거의 강제였습니다.
밥솥에서 위에 쌀이 섞인 밥을 자식들 퍼서 먹이고 당신은 맨 바닥에 있는 보리만 퍼서 드셨습니다.
겨울철에 무우를 썰어서 넣은 무우밥을 해먹었습니다.
약간 질퍽하기도 했지만 무우밥을 싫어하는 저희들한테는 밥솥위에서 밥을 퍼주고 밥솥바닥에 있는 무만 퍼서 드셨습니다.
저희형제들은 부모님 모시고 해외여행을 몇차례 다녀왔습니다.
그러던 중 학년말 방학을 이용해서 일본 벳부쪽으로 온천여행을 가게되었습니다.
저희 6남매 부부와 부모님.
시간되는 조카들해서 20명이 넘게 부산항에서 비틀이라는 배를 타고 출발했죠.
제 막내 동생이 일본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으면서 일본생활을 해서 그 동생이 부모님과 형제들 조카와 사촌 동생네도 같이 여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이드없이 동생이 부모님을 위주로 여행계획을 준비했습니다.
가족여행이 빠듯하지도 않고 여유로워서 좋더군요.
그땐 일본에 들어갈려면 입국수속에서 지문인식을 해야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지문이 안나오는거예요.
여권 만들때도 어렵게 만들었거든요.
출입국관리소에서 지문이 안나오니
입국을 안시키는거예요.
결국은 사무실까지 들어가셔서 바듯이 통과했답니다.
얼마나 일을 하셨으면 손가락이 다 닳아서 지문이 안나왔을까요?
주무실 때도 발뒤끔치가 벌어지고 다헤져서 이불에 부프러기 생긴다고 버선을 신고 주무셨던 어머니였습니다.
발바닥에 궂은살이 박히고,
몇군데 갈라져서 양말이나 버선을 꼭 신고 주무셨습니다.
바세린을 듬뿍 바르시고요.
어쩌다 등이 가려워서 "등좀 긁어주셔요"하면서 등을 내밀면 어머니 손바닥은 너무나 꺼끄럽다기 보다는 아프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손바닥이 쇠수세미 같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손주들 얼굴한번 만지시지 못하셨습니다.
여린 손주들 피부에 그 억센 손바닥이 행여나 상처를 주지나 않을까?해서요.
정말 우리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침에 박인희 가수님께서 심순덕 시인의 시를 낭독하는데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어머니를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열흘남짓 지나면 여섯번째 제사를 모시기에 더 어머니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