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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7 -

우리는 국민학교 등교 길은 동네 앞에 모였다가 저학년부터 모아서 출발시켰다.
맨 나중에 6학년과 통학반장이 뒤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등교를 했다.
뒤에서 몰고 간 셈이지요.
마을마다 학교에서 6학년 중에 덩치가 있는 학생을 뽑아서 통학반장으로 임명을 했습니다.
저는 5학년 때부터 통학반장을 맡아서 했습니다.
동네에서 학교까지는 꼬빡 십리(4k)길이었다.
책과 필통을 책보로 싸서 등에 메고 뛰진 않았지만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1시간이 걸렸다.
나무로 만든 필통속에서 연필이 뛸 때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책가방은 중학교나 입학해야 들고 다녔고 그 때는 하나도 없었다.
거리도 워낙 멀기도했지만 구비구비 산모퉁이를 돌고 인가도 없는 외딴길도 있어서 몸이 약하거나 여자아이들은 입학 적령기인 8살을 지나 한두살 많게는 세살 더 자라서 입학을 시켰습니다.
비포장 도로인 신작로는 마을마다 면에서 구역을 정해서 장마철이 끝나면 냇가에서 자갈과 모래를 지게 바재기로 짊어지어 나르면서 장마에 푹 꺼진 신작로를 고르게 만들었다.
이장님께서는 면에서 할당된 신작로를 마을 가구수로 나누어 다시 말뚝을 박아가면서 집집마다 할당을 했다.
집집마다 할당받은 신작로 오른쪽에 갓길에 자갈과 모래를 냇가에서 퍼다가 길쭉하게 쌓아놓았다.
그렇게 쌓아 놓은 자갈과 모래를 장마철이 지나고 움푹 파인 곳을 군에서 땅고르는 커다란 기계가와서 신작로를 반듯하게 고르고갔다.
국민학교 등하교 길은 늘 굵은 자갈길이었고신작로 양쪽에 가로수로 커다란 포푸라나무가 있었습니다.
고목인 포푸라나무에는 버섯이 피기도 했고 가운데가 썩어 껍질만 있는 속이 텅빈 나무도 있었다.
신발은 기껏해야 타이어표 검정고무신이었다.
겨울철이 아니고는 양말을 신은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고무신을 신고 조금만 걷다보면 발에서 땀이나서 새까만 때꼬장물이 생기고 신발이 미끄러위서 벗어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운동회나 체육시간에는 맨발로 달리기도하고 공도 맨발로 찼다.
등교길 중간에 괴일이라는 마을앞에 회(세멘트)다리가 있었다.
날씨가 따뜻한 5월부터 여름까지는 물이 있고 시원해서 괴일 다리밑에 나병환자(문둥병)들이 몇명이 비닐을 치고 양은솥을 걸고 살았다.
항아리에 뱀을 잡아 놓았다가 끓여 먹기도 했고, 그 옆에는 동냥으로 얻어 온 곡식자루가 있었다.
다리밑에 있는 나병환자들이 어린이 피를 빨아먹으면 문둥이병이 낫는다는 헛소문이 어린아이들을 공포에 떨게했다.
그래서 하교길에 그 회다리를 건널 때는 절대 뛰지말고 살살 기다시피 조심스럽게 건너라고 통학반장이 저학년 아이들에게 가르켰습니다.
혹시나 낮잠이라도 자고 있는 나병환자들이 깰까봐서 그랬지않나?싶습니다.
혼자는 무서우니까 여러명이 모여서 그 회다리를 건넜다.
눈썹이 없고 얼굴에 흉터가 있고 손가락이 없으며 중절모를 꾹 눌러 쓴 나환자는 정말 공포의 대상이며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집에 혼자 있을 때 손이 없어서 쇠로 된 갈쿠리를 내밀면서 동냥을 달라고 할 때는 얼른 부엌으로 달려가 좀도리 쌀을 담아 놓은 단지에서 한바가지 떠다 주었다.
옛날엔 동냥을 하는 동냥아치들이 참 많았다.
동냥으론 쌀과 보리, 식은밥을 주기도했다.
또 스님들도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목탁을 두드리면서 시주를 받으러 다녔다.
나환자나 동냥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그때는 거의 집집마다 개를 묶지않고 키웠고 그 많은 개들이 한꺼번에 짓어대니까 엄청 시끄러웠다.
그렇게 온동네 개가 짖으면 숨기도했다.
도심지에는 넝마주이들이 있었다.
넝마주이는 양아치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5.16군사혁명 이후까지 있었다.
서울의 경우 40∼50곳에 거지들이 모여 살았으며, 동냥뿐만 아니라 넝마주이를 하기도 했다.
넝마주이는 "사설막"(대원들을 거느린 주인인 ‘조마리’가 관리하는 막), "자작"(개인 또는 가족단위로 만든 막) 방식의 조직을 갖추고 등에 짊어진 망태기와 집게를 사용하여 폐품을 수집하여 판매하면서 생활했다.
넝마주이도 떼지어 다닐 적엔 공포의 대상이었다.
오늘 날 페품수집의 원조가 아닐까?싶다.
구불구불하고 자갈이 깔려있던 신작로가 반듯하게 만들어지고 아스콘으로 포장되면서 포푸라나무는 사라졌다.
담양 메타쉐콰이어길과 진안 메타쉐콰이어길이 사진작가들의 출영장소가 되듯이 커다란 포푸라나무가 양 옆으로 있는 반듯한 신작로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경북경주벼10129박병기
벼농사와밭농사15년째·
전북전주 유일기님
께서는 시인입니다
정말로 유년기 시절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습니다
ㆍ전북전주 ~~~
ㆍ경북울진 ~~~
뿐만아니라 전국 대다수가 어떻게 똑같은 신작로 사정이 닮았는지 ?
ㆍ저역시 초등학교가
멀어서 9살에 입학했습니다
덩치도 제법이었고요
운동회때 공책 연필
달리기해서 타온 상품으로 다음학년
운동회때까지 사용했지요

건강관리 잘하시고 복많이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그러셨군요.
저도 운동회 때 맨손달리기, 장애물경주, 손님모시고 달리기, 청백계주, 마을단위로 계주 나가면 무조건 1등을해서 공책 10권이상은 기본이었습니다.
학교가 멀어서 거의 뛰다싶이 학교를 다닌 덕분에 달리기는 자신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체육대회에서도 달리기는 늘 선수로 뛰었습니다.
관임 갖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날씨는 엄청 좋으네요.
어제 내린비로 참깨가 잘 올라오고 있더군요.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경북경주벼10129박병기
벼농사와밭농사15년째·
농장 울타리에
장미꽃이 피었습니다
경남창원고연호
즐겁게 농사를짓고있어요·
6~70년대의 보리고개의 유년시절을 아련하게
떠올리게한
그때그시절 회상하며
잠시나마 추억에 잠겼 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즐겁게 농사일하시면 덜 피곤하시지요!
전주 수목원에 장미를 보러왔는데 아직은 아니군요.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네요.
다들 커피를 들고 다니네요.
얼마나 풍요로운 세상입니까?
충남태안조명희
비움이 채움임을 ...·
전주천맑은물이 그나마 천변길로 시민들휴식처가
되어 보기에 좋습니다.
인후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제고향은 수몰되듯이
형체가 찿기 어려워졌네요.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지금은 비가 자주 내려서 전주천이 깨끗합니다.
서신동 아래보에 수달도 있답니다.
고향분이라 더 반갑습니다.
충남부여포도22041
옛추억을 그려보네요
그때 비도 엄청 오는것같고 비온뒤는 신작로위에 미꾸라지라 하늘에서 떨어진듯 엄청 많았는데.

국민하교 다닐때 추억을하면서 한페이지씩 넘겨보는 시간을 가져보네요
옛추억 회상 하는글 감사합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소나기가 내리면 정말 지붕에서 미꾸라지도 내려왔어요.
갑자기 소나기가 멈추면 물이 고인 곳에 고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고요.
비그치면 신작로가 많이 파인 곳이 많았었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회지에서 자란 사람들은 모르는 일이지요.
경기고양안복순
신자로를 걸을때면 발이작은 나는 큰돌사이에발이빠져서너무아팠던기억.조금이라도 편한곳 으로걸으려 이리저리 걸었던기억이 납니다.학교가 멀어서저두아홉살에 학교를 입학했지요.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제 초등학교 여자동창은 누나 친구들입니다.
동창이지만 누나 친구들이라 존칭을 씁니다.
달아서 바닥이 밀릉밀릉한 타이어표 고무신 바닥에 작은돌이 박히면 아팠지요.
경기동두천안호식
옛 생각에 눈물이날려고 하네요 좋은추억 되새겨 주신것에 감사 드립니다 건강하세요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감사합니다.
요 며칠 아침공기가 쌀쌀하더니 콧물감기에 잡혔네요.
밤 기온이 차가우니까 고추도 크질 못하고 있습니다.
모레는 한자리숫자로 내려간다고 하네요.
옛 이야기 자주 올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전근초
쓰신글. 모아서. 책을내도. 될것같내요 그시절로. 돌아간듯. 눈에보일듯한. 옛추억을. 떠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감사합니다.
제 칠순 때 아이들이 글을 모아서 책을 만들어서 형제들 지인들께 나누었습니다.
지인들 선배들께서 팔순 때 또 한권 만들라고 하네요.
그냥 제 생활일기입니다.
영농일기도 되고요.
감사합니다.
옛날 추억을 자주 소환해서 올려볼까?합니다.
충남부여이명희
요즘 전주에서 올라오는 소식들이 참정겹네요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고맙습니다.
글쓰는 방법도 기술도 없이 제 이야기를 올려드린 것입니다.
여기에 맞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농촌일기라 생각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경남함안어설픈촌넘
옛생각이 아스라이 납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포푸라나무에서 매미소리가 엄청 들렸거든요.
신작로를 다시 걸어보고 싶습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으네요.
감사합니다.
전북임실채기섭
오늘 날이 춥슴니다.컨디션 관리 잘들 하세요.담벼락에 나와 사는 이것 뭘까요.대가 자주색 임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기온이 어제밤에 뚝 떨어졌습니다.
어린모종들이 냉해를 입지나 않을지?염려스럽습니다.
경북구미김정춘
유기농·
표현이 제게도 너무나 새롭게 떠오르네요,검정고무신 양손에들고
맨발로 달리기도하고
모든장난감은 손수 만들어 쓰고
장남이다보니 더욱그러했지요
부산강서내 사랑색소폰
유일기 선생님 글
정말 옛추억이 새록새록합니다.
너무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저도 유 선생님 글을 읽고나니 왜눈가에 이슬이 맺힐까요~

고향 생각나서 유년시절 친구에게
전화 하기가 왜 이렇게 겁이날까요?

고향친구 보고싶어 전화라도 하다보면
친구는 하나 둘씩 운명을 달리했고,
혼자서 지난날들 추억이라고 되살리다보면 유선생님의 글과 너무나 꼭같은 일들의 연속인것은
같은하늘 아래 살아서 그럴까요?

여름 소나기가 한번 퍼붓고 나면 정말 하늘에서 떨어진듯 미꾸라지가 마당에 기어다니고 있었지요~

할머니께서는 궁금한 손주녀석에게 궁금증을 풀어주실 유일한 친구처럼 "이 미꾸라지는 무지개를 타고 올라갔다가 비가개이니까 하늘에서 떨어 졌단다" 라고 하셨지요

여름날, 하교길 까만 고무신에 자갈길을 걷다보면
자동차 먼지는 콧구멍을 자극하지만 포푸라 나무에서 귀청 떨어지게 울어대는
매미를 한우쿰씩 잡아서 방에다 풀어 놓으면, 염치도 없는 매미 이놈들이 밤새도록 울어대는바람에 잠을설치기도 했더랍니다.

저희 동네 앞 횡천강(청학동 하류)에는 버들강아지 피는 봄철 穀雨 무렵에 섬진강 하류에서 銀漁새끼가 올라와서 계속 청학동 아래까지 올라가서, 자라다가
나락이 익고 가을 추수가 시작될 즈음에는 회기성 어류라 알을 낳기위해 떼를지어 내려오는데, 이 때에는 냇가에서 빨래하던 아낙네들도 보를 넘어오는 팔둑처럼 큰 은어를 몇마리씩 다라이에 줏듯이 담아서 찹쌀넣고 은어죽을 맛있게 끌여 먹던시절이 많이들 생각케합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감사합니다.
탱자나무를 잘라서 자치기대를 만들었지요.
단단해서 막대기로 치면 멀리나갔거든요.
저도 종손이라 집안에 할일이 많습니다.
감기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경북포항당촌(기북)
적당히 즐기자·
나와 같은 연대의 삶 그 자체를 주제가 되어 잠시나마 동심으로.....
좋은글 감사합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감사합니다.
많은 추억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가끔씩 올리겠습니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경북고령가야산자락한수덕
그렀네요
시골 어릴때 산넘고 물건너 10리길 ㅡ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네요
감사합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장마철엔 물건너 동네에 사는 친구들은 섶다리가 무서워서 등교를 못하게 했습니다.
국회의원 잘 뽑으면 다리를 놓아주었지요.
감사합니다.
경남사천박용숙
어쩜 60년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다시 떠 올리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저희들 어린시절 이야기입니다.
70년대 이야기니까 70대들께서는 많이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경북경주벼10129박병기
벼농사와밭농사15년째·
경주입니다
농장 울타리에
장미꽃이 갈때마다
반겨줍니다
농장 (놀이터)에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있다가 보면 옆지기님이 전화와서
오늘은 몇시에 집에들어 오냐고 제촉하면 이것저것
치우고 집도착은
나날이 어두워서
귀가 합니다
동네 대농인들은 벌써 저녁먹고 잠잘시간에 들어온다고 바가지
박박 ㅎㅎ~~~
난 ^^가짜농부인감^^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장미의 계절입니다.
시내 울타리에 빨간 넝쿨장미가 이쁘네요.
저도 텃밭이 제 놀이터입니다.
아내는 우리 슈퍼마켓이라고 하고요.
라디오 하나 호주머니에 넣고 이것저것 하다보면 한두시간은 금방 지나갑니다.
요즘 고추가 예년에 비해서 더디게 크네요.
아마 밤기온이 차가워서 그런가 봅니다.
두분이서 늘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인천강화임창빈
어린시절 추억이
아련하네요.
세월이 너무 빠르네요.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한 생활하세요.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배고프고
힘들었지만 그 시절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같은 세상을 기대했을까요?
앞으로 더 좋은 세상이 있을까요?
내일을 살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꼭 행복 하십시요.
축복의 날 되시기를....♡♡
전북전주찬영농장
글을 어쩌면 그렇게 실감나게 앞에 보여지는것 처럼 잘 쓰세요
섬세하고 세밀하게 그때의 실상을 잊지도 않고 기억해줘서 너무놀랍고 좋네요 늘 잘 읽고 응원 합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글쓰는 방법을 배운 것도 아닙니다.
그냥 생활일기를 써내려간 것입니다.
누구나 어릴 적 추억을 갖고 계시지요.
읽어주시고
관심 갖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을 살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꼭 행복 하십시요.
축복의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전북전주박병규
내 고향은 쪽구름
먼지가 물신풍기는
신작로 길을 따라
2km정도가면 속칭
한내(큰물길이라는 뜻)가 있지요
서쪽에는 전주팔경 비비정(지금은 완주 팔경 )이 있고요
또 익산평야와 옥구평야의 젖줄 이며 금빛 은빛 출렁이는 한내
모래무치 메기 빠가
실뺌장어 민물게 등등 갖가지의 물고기가 많이 서식했던 곳
국민학교 다닐적엔
매일 나의 놀이터도
되었고
또한 익산과 전주의
뭇 사람들이 해수욕 물놀이 장소가 되는 곳이기도 했고요
옛날 어릴적 고향 생각이...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옛날 고향은 늘 추억거리입니다.
흙과 자갈길이 세멘트나 아스콘으로 덮히고,
초가집이 기와나 함석으로 덮혔죠.
그래도 고향은 늘 포근한 곳입니다.
옛모습이 아련하시지요.
전북군산박동혜
스승에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 수록 높아만 가네~
저가 고등학교 사춘기 시절에 진짜 우연히 이곳에서 만나뵌 선생님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선생님 💕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감사.
늘 조심하고
항상 건강하기를~^
강원춘천안비
배추 선도농가
먼곳에 사시는분이 쓰신글이 강원도 산골에 살던 내모습 내 국민학교때 와 같을까요?
하나도 안틀리고 또같아요
글 감사하게 봣습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강원도나 전라도나 다 같지요.
우리나라이니까요.
때아니게 설악산에 눈이 내렸다고 하네요.
연한 고추모랑 호박모~
어떻합니까?
경북포항복사꽃마을 이창식
우리동네 옜날 이야기 같네요 . 책보자기 어개 비스듬하게 메고 달리기 하면 일본말로 빈 벤토(도시락)에 반찬통 소리가 달그락 거리면서 뛰었지요! 우리 어린때는 일본말을 많이 셨었지요!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그렇지요.
벤또. 간셍 등 일본어를 조금씩 사용했지요.
어깨에 둘러맨 책보속 필통에서 연필 구르는 소리가 났지요.
할머니께서 합천 해인사에 동네에서 놀러다녀오시면서 나무필통을 사다주셨거든요.
감사합니다.
편안한 저녁 보내시길 바랍니다.
경남거제김삼철
텃밭은 내 놀이터 ♡·
찔래순,버찌,
피끼(잔디순 ) 도 먹었지요 60년전 이야기 입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며칠전에 찔레순을 끊어 먹어보았습니다.
옛날 그 맛있었던 맛이 아니더군요.
입맛이 이렇게 변했을까요?
감사합니다.
경남거제김삼철
텃밭은 내 놀이터 ♡·
옛날 생각남니다
어릴적 풍경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읽어주신 회원님들께서는 옛날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으신가 봅니다.
시골에서 코 흘리면서 뛰놀던 골목이 더 생각나잖나요?
돌 다무락 넘어로 친구들을 불러내고요.
마땅한 놀이가 없어서 운동장에서 간셍이라는 여러종류가 있어서 편갈린 놀고 그랬었지요.
벗나무 열매 버찌도 따먹고요.
찔레순 드셔보셨나요?
연해서 달작지근했지요.
경기양주자연으로
자연으로 돌아가자...·
그때 그시절로 잠시 돌아갑니다.
지금은 옛시절 다니던
국민학교와 중학교가
폐교되고 면내에 학교들이 통폐합되어
그마져도 학생수가 손에 꼽을정도라니 격세지감을 느낌니다.
한때 한학교 국민학교 학생수가 6~7백명쯤
되었던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운 시절 회상의 글 감사합니다.
햇볕은 따사로우나 바람은 차갑습니다.
여긴 또 비올바람이 부는듯 합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남원 시내에 110년의 역사가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생이 한명도 없다고해서 놀랬네요.
구 도심시라 그러나 봅니다.
면소재지에 학교가 없어지면 유지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통폐합이 되어야하는데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죠.
충남태안조명희
비움이 채움임을 ...·
제고향 전주시 인후동!
예전엔 신작로 양쪽 또랑엔
미꾸라지 메기 빠가사리등이
있었죠.
빠가사리에 한번 쏘인뒤론
다신 물속에 손을 넣을수없었죠.
잠시 옛시절에 접어봅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동향이시네요.
한벽루에 민물게도 있었어요.
다리에 털달린게요.
지금 빠가사리는 귀하신몸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전주천에 팔길이 만한 잉어들이 노닐고 있습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부산강서
내 사랑색소폰님.
감사합니다.
52년생인 저도 초등친구들은 많이 멀리 간 친구들이 많답니다.
저희 고향 섬진강 상류인 요천이라는 냇가에도 나라꽃이 필 때면 은어들이 올라왔습니다.
냇물을 막아서 대발로 그물을 쳐서 은어를 잡기도 했습니다.
맨손으로 은어를 잡아보기도 했습니다.
글을 올려주심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너무 옛이야기를 잘 표현하셨네요.
항상 조심하시고
늘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편안한 저녁 보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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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3 - 우리세대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제가 다녔던 국민학교는 자갈길을 십리를 걸어서 다녔습니다. 비포장된 자갈밭 십리길을 고무신을 신고 등하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체구가 약하거나 여자아이들은 국민학교 입학 년령인 9살에 입학을 하지않고 2-3년 후에 입학을해서 국민학교 동창이 친구의 형과 누나뻘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화단에는 어느 학교나 똑같이 수군장군인 이순신장군 동상과 한글을 창조하신 세종대왕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친 반공소년 이승복어린이 동상이 있었습니다.  또 책 읽은 소녀상의 석고상과 유관순열사의 동상도 있었다. 학교에서 대변을 성냥갑에 담아오기(회충 검사용), 나락모가지 주워오기, 쥐꼬리 잘라오기, 못자리 나방 잡아서 성냥갑에 넣어오기, 솔방울 가져오기도 했고, 겨울철 난로에 땔깜으로 쓸 장작도 가져오기, 여름방학 마치고 등교할 때 퇴비 가져오기, 자그마한 손으로 봄 식목일엔 나무를 심고, 여름에는 신작로에 동네마다 구역을 정해 코스모스를 심어 가을에는 길가에 자동차가 지나가면 뿌연 먼지속에 한들한들 이쁜 코스모스꽃을 보았으며 학교내에서는 통일동산을 꾸몄습니다.  우리는 돌멩이 같이 입에서 깨지지않고 녹지않아 단맛을 오랫동안 맛볼 수 있어 이름 붙여진 독사탕, 말랑말랑한 젤리와 유과, 라면땅, 아폴로, 크라운산도 등과 같은 과자와 쫀드기, 달고나, 띠기 같은 불량식품을 먹고 자랐으며 동네마다 울려 퍼졌던 새마을노래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새마을운동이란 것에 익숙해서 어김없이 아침 동틀 무렵 동네 가운데 있는 높은 정기나무에 매달린 주둥이가 커다란 나팔모양의 확성기에서 울려퍼지는 새마을 노래를 듣고 자랐습니다.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바탕으로 생활환경 개선과 소득증대를 목적으로 한한 범국민적인 지역사회개발 운동을 시작하면서 1972년 6월 20일 박정희대통령이 직접 작사한 새마을 노래가 대도레코드회사가 음반을 만들었다. 1절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2절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3절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4절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 조국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이 새마을 노래는 전국적으로 군대에서 기상나팔같이 새벽이면 울려 퍼졌습니다. 나무울타리 담장과 흙담장을 없애고 초가지붕을 기와로 이양하고 울통불통한 골목길을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반듯하게 넓혔다. 파란색 새마을 모자는 필수품이었다. 지금도 베트남 등 동남아 신흥국가에서는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을 모델로 우리나라 지도자들을 초청해서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제 친구가 농촌지도소를 퇴직하고 베트남에서 연수원장을 맡아서 베트남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새마을교육을 시키고 있어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습니다. 새벽 6시에 기상하고 아침체조와 구보를 시작으로 새마을교육을 모델로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교복을 입고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때는 학과목에 교련과목이 있어서 교련복으로 갈아입고 목검으로 제식훈련과 총검술 및 구급법을 익혔고 운동장에서 열병식을 했습니다. 교련복은 군복과 같았습니다. 교련모와 요대랑 각반도 찼습니다.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향도라는 완장을 찼다. 국민학교때도 교복을 입었고, 모자에 학교를 표시하는 교포를 달았으며 웃도리에도 학교를 표시하는 단추를 달았습니다. 바지는 딱 달라붙는 쫄바지에서 일자바지로 다시 나팔바지로 유행을 탔고 중.고등학교 때는 학생주임 선생님께서 등교길에 복장지도를 하면서 나팔바지를 입은 학생들을 혼내키기도 했다. 카라 한쪽에는 교포를 한쪽에는 학년을 표시하는 아라비아숫자의 뺏지를 달았습니다. 시내에는 머리가 긴 장발단속도 있었고, 무릎위로 너무 짧은 미니스커트단속도 있었다. 밤 12시가되면 싸이렌이 울리고 이 때부터 야간통행금지 시간이어서 순찰중인 경찰에 붙잡히면 파출소로 연행되어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4시까지 보내야했다. 아마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통행금지라는 제도가 있었던 것 같다. 야간에 통행이 필요한 사람은 경찰서에서 야간통행증이라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했다. 그러다 1982년에 해제되었다. 또 우리는 운동회 때 "다우다"라는 나이론천으로 만든 백군은 하얀 체육복으로 청군은 파란 체육복을 만들어 입었고 곤봉, 마스게임, 단체무용, 줄달리기, 방울치기, 박터트리기 등 수없이 연습해서 시원한 가을에 접어든 10월 초에 지역잔치인 운동회를 기억합니다.  체육복은 집에서 어머니께서 재봉틀로 박음질하시고 고무줄을 넣어서 만들어 주셨다. 달리기 계주는 키순대로 7명씩 조를 짜서 키가 작은아이들부터 달리기를했다. 저는 늘 맨 마지막조로 편성되었다. 맨손달리기, 장애물을 통과하는 달리기, 쪽지를 주어서 쪽지에 적힌대로 사람을 찾아서 하는 달리기 등 세가지 달리기가 있었다. 쪽지에 "안경쓴 사람"이라고 적혀 있으면 안경쓴 사람을 찾아 손잡고 달리기를 했다. "교장 선생님"이라고 적혀있으면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달리기를 하면 된다. 그런데 교장선생님께서는 꼭 넼타이를 매시고 구두를 신고 양복을 입고계셨다. 그래서 빨리 뛰시지를 못했다. 그야말로 복불복이었다. 운동회의 하일라이트는 청백계주였다. 마을단위로 계주도 있었다. 우리는 하교길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왼쪽가슴에 손을 얹고 가던 길을 멈춰서서 태극기가 다 내려질 때까지 엄숙한 자세로 있어야하는 국기 하강식을 했습니다. 어느날 박정희대통령이 지나가는데 군인 한명이 국기하강식을 그냥 지나친 것을 보고 그 부대에 보고하여 영창을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걱정을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을 하지 않는다. 태어나서 부모한테 빚지고 살면서 은행에 빚지고 죽을 때는 자식한테 빚지고 평생 빚만지고 사는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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