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삶을 가르치다"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자동차
꼬박 나흘을 달려 찾아간
인도 서북부 히말라야.
자동차 길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해발
5,360m의 타그랑고개
지대가 너무 높아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갈색의 민둥산이
아득하게 이어졌다.
산소가 적어 보통 사람은
숨쉬기조차 힘든 언덕 너머엔
2,000년 동안 이곳을 지켜온
록파족이 살고 있다.
구름마저도 험준한
히말라야를 넘지 못해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곳이다.
영하 40도의 맵찬 날씨를 견디도록
집은 돌로 쌓았는데,
록파족은 겨울철인
10월에서 3월까지만
이곳에서 생활한다.
나머지 반년은 보름에 한번씩
자그마치 열두 번이나
가축들을 몰고 풀을 찾아
여기저기 떠돈다.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그들,
의식주 모두가 열악하기 짝이 없다.
백여 마리의 양과 염소에
한 가족의 생계가 매달린 그들에게
혼인으로 인한 형제들의
재산 분할이 불가능하자
일처형제혼 등
일처다부제가 만들어졌다.
생존을 위해 그들이
선택한 궁여지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의
특이한 결혼풍습보다는
어느 노인의 죽음 의식과
거기에 깃든 그들의
생사관에 더 큰 관심이 쏠렸다.
3월 말, 봄이 되면 그들은
가축의 방목을 위해
겨울을 보낸 돌집을 나선다.
처음 자리 잡은 곳에서
보름 남짓 머물면 풀이 바닥나
새로운 곳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난다.
남자들은 이삿짐을 싸고
여자는 가는 도중 먹을
음식을 마련하는데
시아버지인 일흔여덟 살의 노인은
성치 못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시무룩하다.
물이 있는 다음 정착지까지는
대략 40에서 80km.
움직임이 더딘 고산지대에서
사흘을 꼬박 걸어야 한다.
하지만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은 오늘 가족과 함께
떠나지 않는다 이젠 너무 늙어
며칠씩 걷기에는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세월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자연의 순리.
자식들은 노인을 위해
혼자 지낼 텐트와
두툼한 옷을 준비한다.
버터차와 밀가루빵 등
한 달 치 식량을 남겨두고
떠나는데 다시 돌아왔을 때
노인이 살아 있으면
또 한 달 치를 마련해 준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한 달을 넘겨
살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이 고독한 죽음 의식은
노인과 가족 간의 타협이 아니다.
힘든 이동을 거듭해야 하는
고산지대의 오랜 풍습으로
노인 스스로의 결정과
가족들의 수긍이 만든
고립이고 헤어짐이다.
손자에게 마지막 차를 대접받는
노인은 착잡한 표정을 짓고
아들과 손자는 울음을 삼킨다.
정든 사람과의 이별을 두고
열여덟 살의 손자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자
쉰두 살의 아들도 걸음이 휘청거린다.
새로운 생을 받기 위해
몸을 바꾸는 것이니
슬퍼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극진한 신앙도 이 순간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긴 인연에 비해 짧은 이별,
노인은 모든 걸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심경을 묻는 기자에게
'나도 27년 전에
아버지를 이렇게 했다.
자식들을 탓하지 않는다.
행복하기만 빌 뿐이다' 라고
노인은 담담히 마니차를
돌리며 허공을 바라본다.
그들에게 죽음은
두려움이나 절망이 아니다.
삶의 끝자락에서 걸려
넘어지는 문턱이 아니라,
이번 생과 맞닿은
또 다른 삶으로 건너가기 위한
매듭이고 통로다.
늙고 병든 몸에서 벗어나 스스로
평온을 찾아가는 구도의 길이고
일상의 수행이 일러준
혼자만의 여행이다.
눈 맑은 그들에겐
저 히말라야 정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신성한 발걸음인 것이다.
가축들을 앞세우고 멀어져 가는
자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노인은 자리에 눕는다.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는다.
몸을 티베트 말로
‘루’라고 하는데 이 말은
‘두고 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거대한 자연의 품 안에서
신에 대한 겸손을 배워왔을 노인,
원망이나 미련 없이 죽음을
받아들인 그의 영혼은
몸뚱이를 남겨둔 채
이제 어디로 떠날 것인가.
이마 위로 테 굵은 안경이
벗겨지고 손톱 밑이 까만
그의 손이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죽음의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근본적인 까닭은 단 하나,
태어났기 때문이다.
태어났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다.
처음 왔던 그대로
다시 돌아가는 길,
그 길을 히말라야는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대자연으로 돌아가 그 속에서
하나가 되는 시간이다.
‘죽음은
태어남을 뒤쫓고
태어남은 죽음을 뒤쫓아
그것은 끝이 없다’고
그들의 경전 '티베트 사자의 서'
는 말하고 있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듯이
죽은 자는 무엇으로든
반드시 세상에 다시온다는
믿음으로 모든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는 사람들,
죽음의 하늘길을 열기위해
그것과 홀로 마주하는
비감한 모습이 차라리 숭고하다.
이들은 평생 떠남에 익숙하다.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생명이 남아있는 부모를
저승으로 보내는 것도
이승의 인연으로 받아들인다.
지상의 거인 히말라야의
가혹한 자연과 이천년
세월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
어쩌면 그 덕에 어느 문명보다
자연에 가까운 전통을 배우고
이어왔는지 모른다.
‘죽음을 배우라.
그래야만
삶을 배울 것이다.’
설산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돌풍 한 자락이 하늘의
소리를 전하며 칠흑 같은
벌판을 짐승처럼 내닫는다.
7월 9일
5
2
Farmmorning
퇴근 후에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자동차 검사소에 잠시 들렸는데 브레이크 휠실린더
오일누유로 수리시간이 반나절
소요된다고 해서 낼
점심시간에 다시 차 수리하도록 맡겨놓고
퇴근길에 인도하기로 약속하고 돌아오는데
집사람 전화 왈 참깨논에 물이 고여서 참깨놈이
물에 취해 큰놈들은
넘어져 노끈으로 열심히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하우스에서 지줏대
챙겨서 삽 괭이등등
챙겨서 놓고 허기진
배를 막걸리를 단숨에 세 잔 마시고
후다닥 참깨논에 가서 참깨 지줏대
세우고 고인물 배수로 작업해서
응급처치 했는데
어제 마신 고랑주가
원망스럽기도 하네요
막걸리만 마시면 무탈한데 마을 동생이 쟁반짜장에
고랑주가 정신을 못
차리게 해 어제 오후에 땡처리 일 못한게
오늘 과부하로 쌩긋
웃으며 되돌아 오네요.~~~
막걸리는 뒷탈이 없는데 고랑주는
앞으로 노노노~~~
또 잠잠하던 순간이
소나기가 비웃듯
내리치네요.
다들 비 피해없도록
잘 하세용
23년 6월 26일
6
11
Farmmorning
오늘이침 충북 영동영상1도
서리가왔어요
포도 블루베리 피해가 없으면 합니다
자동차유리가 얼어네요~~
포도는 비닐 있어서 괜찬을것도 하구요 블루베리 는 꽃이 피는시기라 어떨지~~
다른지역은 괜찮나요~~
23년 4월 26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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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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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만약 집과 자동차를 몽땅 팔아
교회에 헌금하면 천당에 갈까요?" 하고
주일 학교 학생들에게 물었다.
"아뇨."라고 아이들은 모두다 대답했다.
"그럼, 교회청소를 매일 하면
천당갈까요?"
"아뇨."
"그럼 내가 동물들을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면 천당갈까요?"
"아뇨."
"그럼 어떡해야 천당에 갈 수 있죠?"
그러자 뒤에 앉아 있던 다섯살 먹은
사내아이가 외쳤다.
.
.
"죽어야 갑니다."
#2. 🌾😛😝
약국에 한 사나이가 와서
"딸국질 멎게 하는 약 좀 주세요" 한다.
약사는 "예~잠시만요" 하면서
약을 찾는 척 하더니 사나이의 뺨을
철썩 갈겼다.
그리고는
"어때요? 멎었지요.하하" 하였다.
그러자 사나이는
약사를 한참 째려 보더니,
"나 말고 우리 마누라야 임마"
#3.🍄😛😝
개띠인 삼식이가 아침을 먹으며
스포츠 신문 운세란을 보니
오늘의 개띠, '무슨 일을 해도 운수대통,
재물운'도 있단다.
마침 저녁에 고교 동창 부친상에 조문을 가야하는 삼식이 손뼉을 치며 외쳤다.
"아싸! 개띠,
오늘 운수 대통이라 오늘 저녁에 니들은 다 죽었다.
오늘은 내가 고스돕타짜다.
이노므 짜슥들, 어디 한번 맛 좀 봐라."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마누라가
한심하다는 듯 한마디 던졌다.
"아이고~ 이 화상아!
니만 개띠고, 니 동창들은 소띠다냐 ?!"
#4.👍♥
성당 주일학교에서 수녀님이 초딩들에게 열심히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아이가 수녀님에게 물었다.
"수녀님요,
하느님 하고 예수님 하고
부자지간이 맞지예?"
"응, 그렇지."
"그란디~우째서
'하느님'은 '하'씨이고
'예수님'은 '예'씨인교?
재혼을 했는교? 아니면
델꾸 들어온 아인교?"
갑작스런 질문에 수녀님은 당황하여
미처 대답을 못한 채 난감해하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바로 그 때에 질문을 한 아이 옆에 있던
여자 아이가 그 남자 아이의 뒤통수를
쥐어박으면서 말했다.
"야 임마!
서양 사람들 성명은 성이 뒤에 붙잖여!
'하느님'과 '예수님' 두 분의 성씨가
모두 다 '님'씨잖여.
으이구, 이 바보야!
질문을 하려믄 질문같은 질문을 해라 쫌.
이 문디 같은 자슥아!"
ㅡ 펌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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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5월 14일
15
9
Farmmorning
♥한국( 韓國 )은 보석 같은
나라였다! ♥
- 한국인은 원래
善한 품성을 가진
백의민족이었다. -
요즘 우리 세대가
自己中心의
윤리적 에고이즘에
빠져있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겠다.
우리 조상들은
작은 벌레의 생명조차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뜨거운 개숫물을
마당에 버릴 때에는
이렇게 외쳤다.
“워이 워이!”
물이 뜨거워 벌레들이
다칠 수 있으니
어서 피하라고
소리친 것이다.
봄에 먼 길을
떠날 때에는
오합혜(五合鞋)와
십합혜(十合鞋),
두 종류의 짚신을
봇짐에 넣고 다녔다.
'십합혜'는
씨줄 열 개로
촘촘하게 짠 짚신이고
'오합혜'는 다섯 개의
씨줄로 엉성하게 짠
짚신을 가리킨다.
행인들은
마을길을 걸을 땐
'십합혜'를 신고 걷다가
산길이 나오면
'오합혜'로 바꾸어 신곤 했다.
벌레가 알을 까고
나오는 봄철에
벌레들이
깔려 죽지 않도록
듬성듬성 엮은
짚신을 신은 것이다.
'오합혜'는
'십합혜'보다
신발의 수명이 짧았으나
그 만큼 벌레의
수명은 늘어났다.

콩을 심을 때엔
세 알씩 심었다.
한 알은 땅 속에 있는
벌레의 몫으로,
또 하나는
새와 짐승의 몫으로,
마지막 하나는
사람의 몫으로 생각했다.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밥’을 남겨 놓고,
들녘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도
"고수레"하면서
풀벌레들에게
음식을 던져주었다.
이러한 미덕은
우리의 식문화에도
그대로 배어났다.
여인들은
3덕(三德)이라고 해서 식구 수에
세 명의 몫을 더해
밥을 짓는 것을
부덕(婦德)으로 여겼다.
걸인이나
가난한 이웃이
먹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미국 여류소설가
'펄 벅'은 장편소설
‘살아 있는 갈대’에서
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같은 나라’로 표현했다.
그녀의 극찬은
한국에서 겪었던
특별한 체험때문 이었다.
1960년 '펄 벅'이
소설을 구상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여사'는 늦가을에
군용 지프를
개조한 차를 타고
'경주'를 향해 달렸다.
노랗게 물든 들판에선 농부들이 추수하느라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차가
'경주 안강' 부근을
지날 무렵,
볏가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보였다.
그 옆에는
지게에 볏짐을 짊어진
'농부'가 '소'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여사'는 차에서 내려
신기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사'가 길을 안내하는
통역에게 물었다.
“아니, 저 농부는
왜 힘들게 볏단을
지고 갑니까?
달구지에 싣고 가면 되잖아요?”
“소가 너무 힘들까 봐 
농부가 짐을 나누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여사'는 그때의 충격을 글로 옮겼다.
“이제 한국의
나머지 다른 것은
더 보지 않아도 알겠다.
볏가리 짐을 지고 가는 저 농부의 마음이 바로
한국인의 마음이자,
오늘 인류가
되찾아야 할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이다.
내 조국, 내 고향,
미국의 농부라면
저렇게 힘들게
짐을 나누어 지지 않고,
온 가족이 달구지
위에 올라타고 채찍질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갔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농부는
짐승과도 짐을 나누어 지고
한 식구처럼 살아가지 않는가.”

구한말 개화기에
한 선교사가 자동차를 몰고 시골길을 가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할머니를 보고
차에 태워드렸다.
저절로 바퀴가 굴러가는
신기한 집에 올라탄 할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짐을 머리에
계속 이고 있었다.
“할머니,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지요?"
선교사의 말에 할머니는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늙은이를 태워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어떻게 염치없이
짐까지 태워달라고
할 수 있겠소?”
차를 얻어 타고서
차마 머리에 인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善한 마음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6월 13일
43
20
바깥 날씨는 포근한 느낌인데 기온은
실내에서 민감치가 않네요.
매일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생활하다보니 외부 생활에는 병원밖에 이동하는 자동차 길거리에
간간이 다니는 시민들의 모습만 몇 번
창밖으로 바라보다가 내 영혼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것 같습니다.
한 곳에 머물 수 없는 세월이기에 구름처럼 떠돌다가 앉아있는 내 영혼으로 돌아오면 또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 갑니다.
낼 모래 퇴원 하는데 짧은 병원 생활이
지만 몸의 균형을 잡아 보려고 한걸음씩 나아가면 깨진 리듬이 곧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수술전에 걸음 걸이는 통증을 느끼는
환부가 무척 짊이 되섰는데, 후에는 가볍고 걷는것이 힘들지가 않아서
이제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것이 앞으로의 삶이 더욱 윤택해 지리라 생각듭니다.
밤10시가 지난 이 시간에도 정신이
맑아 언제 밤잠에 들어갈련지...
조용하게 새해에 무슨 일을 해야하나
언뜻 계획이 없는데 지금부터 깊은
고민을 하면서 꿈을 꾸려고 잠을 청해
봅니다.
22년 12월 28일
8
-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3 -
우리세대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제가 다녔던 국민학교는 자갈길을 십리를 걸어서 다녔습니다.
비포장된 자갈밭 십리길을 고무신을 신고 등하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체구가 약하거나 여자아이들은 국민학교 입학 년령인 9살에 입학을 하지않고 2-3년 후에 입학을해서 국민학교 동창이 친구의 형과 누나뻘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화단에는 어느 학교나 똑같이 수군장군인 이순신장군 동상과 한글을 창조하신 세종대왕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친 반공소년 이승복어린이 동상이 있었습니다. 
또 책 읽은 소녀상의 석고상과 유관순열사의 동상도 있었다.
학교에서 대변을 성냥갑에 담아오기(회충 검사용), 나락모가지 주워오기, 쥐꼬리 잘라오기, 못자리 나방 잡아서 성냥갑에 넣어오기, 솔방울 가져오기도 했고, 겨울철 난로에 땔깜으로 쓸 장작도 가져오기, 여름방학 마치고 등교할 때 퇴비 가져오기, 자그마한 손으로 봄 식목일엔 나무를 심고, 여름에는 신작로에 동네마다 구역을 정해 코스모스를 심어 가을에는 길가에 자동차가 지나가면 뿌연 먼지속에 한들한들 이쁜 코스모스꽃을 보았으며 학교내에서는 통일동산을 꾸몄습니다. 
우리는 돌멩이 같이 입에서 깨지지않고 녹지않아 단맛을 오랫동안 맛볼 수 있어 이름 붙여진 독사탕, 말랑말랑한 젤리와 유과, 라면땅, 아폴로, 크라운산도 등과 같은 과자와 쫀드기, 달고나, 띠기 같은 불량식품을 먹고 자랐으며 동네마다 울려 퍼졌던 새마을노래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새마을운동이란 것에 익숙해서 어김없이 아침 동틀 무렵 동네 가운데 있는 높은 정기나무에 매달린 주둥이가 커다란 나팔모양의 확성기에서 울려퍼지는 새마을 노래를 듣고 자랐습니다.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바탕으로 생활환경 개선과 소득증대를 목적으로 한한 범국민적인 지역사회개발 운동을 시작하면서 1972년 6월 20일 박정희대통령이 직접 작사한 새마을 노래가 대도레코드회사가 음반을 만들었다.
1절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2절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3절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4절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 조국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이 새마을 노래는 전국적으로 군대에서 기상나팔같이 새벽이면 울려 퍼졌습니다.
나무울타리 담장과 흙담장을 없애고 초가지붕을 기와로 이양하고 울통불통한 골목길을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반듯하게 넓혔다.
파란색 새마을 모자는 필수품이었다.
지금도 베트남 등 동남아 신흥국가에서는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을 모델로 우리나라 지도자들을 초청해서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제 친구가 농촌지도소를 퇴직하고 베트남에서 연수원장을 맡아서 베트남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새마을교육을 시키고 있어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습니다.
새벽 6시에 기상하고 아침체조와 구보를 시작으로 새마을교육을 모델로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교복을 입고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때는 학과목에 교련과목이 있어서 교련복으로 갈아입고 목검으로 제식훈련과 총검술 및 구급법을 익혔고 운동장에서 열병식을 했습니다.
교련복은 군복과 같았습니다.
교련모와 요대랑 각반도 찼습니다.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향도라는 완장을 찼다.
국민학교때도 교복을 입었고,
모자에 학교를 표시하는 교포를 달았으며 웃도리에도 학교를 표시하는 단추를 달았습니다.
바지는 딱 달라붙는 쫄바지에서 일자바지로 다시 나팔바지로 유행을 탔고 중.고등학교 때는 학생주임 선생님께서 등교길에 복장지도를 하면서 나팔바지를 입은 학생들을 혼내키기도 했다.
카라 한쪽에는 교포를 한쪽에는 학년을 표시하는 아라비아숫자의 뺏지를 달았습니다.
시내에는 머리가 긴 장발단속도 있었고,
무릎위로 너무 짧은 미니스커트단속도 있었다.
밤 12시가되면 싸이렌이 울리고 이 때부터 야간통행금지 시간이어서 순찰중인 경찰에 붙잡히면 파출소로 연행되어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4시까지 보내야했다.
아마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통행금지라는 제도가 있었던 것 같다.
야간에 통행이 필요한 사람은 경찰서에서 야간통행증이라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했다.
그러다 1982년에 해제되었다.
또 우리는 운동회 때 "다우다"라는 나이론천으로 만든 백군은 하얀 체육복으로 청군은 파란 체육복을 만들어 입었고 곤봉, 마스게임, 단체무용, 줄달리기, 방울치기, 박터트리기 등 수없이 연습해서 시원한 가을에 접어든 10월 초에 지역잔치인 운동회를 기억합니다. 
체육복은 집에서 어머니께서 재봉틀로 박음질하시고 고무줄을 넣어서 만들어 주셨다.
달리기 계주는 키순대로 7명씩 조를 짜서 키가 작은아이들부터 달리기를했다.
저는 늘 맨 마지막조로 편성되었다.
맨손달리기, 장애물을 통과하는 달리기, 쪽지를 주어서 쪽지에 적힌대로 사람을 찾아서 하는 달리기 등 세가지 달리기가 있었다.
쪽지에 "안경쓴 사람"이라고 적혀 있으면 안경쓴 사람을 찾아 손잡고 달리기를 했다.
"교장 선생님"이라고 적혀있으면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달리기를 하면 된다.
그런데 교장선생님께서는 꼭 넼타이를 매시고 구두를 신고 양복을 입고계셨다.
그래서 빨리 뛰시지를 못했다.
그야말로 복불복이었다.
운동회의 하일라이트는 청백계주였다.
마을단위로 계주도 있었다.
우리는 하교길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왼쪽가슴에 손을 얹고 가던 길을 멈춰서서 태극기가 다 내려질 때까지 엄숙한 자세로 있어야하는 국기 하강식을 했습니다.
어느날 박정희대통령이 지나가는데 군인 한명이 국기하강식을 그냥 지나친 것을 보고 그 부대에 보고하여 영창을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걱정을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을 하지 않는다.
태어나서 부모한테 빚지고
살면서 은행에 빚지고
죽을 때는 자식한테 빚지고
평생 빚만지고 사는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4월 14일
13
7
집 출입구 옆에 심은 들깨가 장마에 웃자란 탓인지 태풍으로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았는데도 넘어져 자동차가 출입히기에 지장이 많아 기둥을 세우고 잡이 매었다.
22년 9월 19일
Farmmorning
웃는 자가 건강하다
1. 모기의 불만
모기가 스님에게 물었다.
“파리가 가까이 가면 손을 휘저어 쫓으시면서
우리가 가까이 가면 무조건 때려 죽이시는 이유가 뭡니까!?”
스님이 대답했다.
“얌마, 파리는 죽어라 비는 시늉이라도 하잖아.”
모기가 다시 스님에게 물었다.
“그래도 어찌 불자가 살생을 한단 말입니까!?”
스님이 태연하게 말했다
“짜샤, 남의 피 빨아먹는 놈 죽이는 건 살생이 아니라 천도야!”
2. 어제의 설교
정없는 김집사 부부가 있었다오.
어느날, 남편이 저녁 예배를 갔다 오더니,
그날 밤 늦도록 아내를 열열히 사랑해 주었답니다.
뿅~ 갔다. 오랜만에 기분이 흡족해진 부인은 대견한 눈초리로 남편을 보면서 물었다.
아내 : 당신 오늘 웬 일이유?
남편 : 예배 시간에 많이 느꼈어.
다음날, 어젯밤 일이 필시 목사의 설교에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한 아내는 과일 바구니를 들고 목사를 찾아갔다.
"목사님 고마워요. 어제 저녁 설교 참 좋았죠? 아내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설교였죠?" 라고 묻자,
목사님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답니다.
"아뇨. '원수를 사랑하라!'는 설교였는데..."
3. 마스터 키
한 여자 제자가 공자님께 물었다.
“왜!! 여자는 여럿 남자와 사귀면 ‘걸레’라 말하고, 남자가 여럿 여자를 사귀면 ‘능력좋은 남자’라 합니까!?“
그러자,
공자님 답 하시길를...
“자물쇠 하나가 여러 개의 열쇠로 열린다면, 그 자물쇠는 쓰레기 취급을 당할 것이며, 열쇠 한 개로 많은 자물쇠를 열 수 있다면 그건 ‘마스터키’로 인정받는 이치와 같으니라.”
(유머~는 보약같아서 재탕.삼탕도 좋습니다.)
● 머리가 좀 모자라면 어때
"머리가 좀 모자라면 어때 얼굴이 예쁘기만 하면 되지..."라고 생각한 남자가 어느 날....
아이큐 70밖에 안되지만 몸매가 섹시하고 늘씬한 아가씨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남자는 당연히 오케이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자가 한참을 고민하더니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럴수 없어요!"
자존심이 상한 남자가 이유가 뭐냐고 따지자,
여자의 대답은...
"왜냐하면 우리집 전통은 집안 사람들끼리만 결혼을 하거든요!"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아빠는 엄마와, 외삼촌은 외숙모랑, 그리고 고모부는 고모랑..."
● 남자를 먼저 만든 이유
어느 목사가 성경을 읽다가 하느님이 남자를 먼저 만든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하느님께 물었다.
"왜 남자를 먼저 만드셨나요?"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
"만약에 여자를 먼저 만들었다고 생각해 봐라~ 남자를 만들 때 간섭이 얼마나 심했겠느냐?
여기를 크게 해달라...
저기를 길게 해달라...
거기를 굵게 해달라... 등등
이러쿵 저러쿵 그 많은 주문을 어찌다 감당할 수가 있겠는가?"
● 있을 때 잘해
옛날에는 마누라가 죽으면, 남자들이 화장실 가서 "씩"하고 웃었다며?
그런데 요즘은 남편이 저세상 가면 마누라들이 거울 보며 이런다네....
"아직 내 몸매 아직 쓸만한디~"
"전세를 놓을까?"
"월세를 놓을까?"
"아니야~일수를 찍어야지."
● 모자란 늠과 미친 늠
자동차를 타고 가던 남자가 정신병원 앞을 지날 때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그 바람에 바퀴를 지탱해주던 볼트가 풀어져 하수구 속으로 빠졌다.
남자는 속수무책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굴렀다.
그때, 정신병원 담장 너머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환자 한 명이 말했다.
"여보세요! 그렇게 서있지만 말고, 남은 세바퀴에서 볼트를 하나씩 빼서 펑크난 바퀴에 끼우고 카센터로 가세요."
남자는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하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근데, 당신같은 분이 왜 정신병원에 있죠?"
그러자, 그 환자가 하는말이..
.
'나는 미쳤기 때문에 여기 온 거지 너처럼 모자라서 여기 온게 아냐..임마 !
● 룸살롱 출신 앵무새
새를 좋아하는 아들이 하도 졸라대서 엄마가 예쁜 앵무새를 사다줬다. 그런데 이 앵무새는 룸살롱에서 키우던 새였다.
첫날 집에 온 앵무새는 새로운 환경에 놀라 말했다.
''어! 룸이 바뀌었네?''
앵무새 소리를 듣고 누나가 나왔더니 앵무새가 말하기를, ''어! 아가씨도 바뀌었네?"했다.
뒤이어 나온 남동생 보고는, "웨이터도 바뀌었네?" 했다.
이 말에 엄마도 나왔다.
역시 앵무새는 엄마를 보고는 "어! 마담도 바뀌었네?" 했다.
저녁이 되어 퇴근한 아버지를 보더니, 앵무새가 반가워하며 하는 말...


"단골은 그대로네~"
ㅋㅋㅋ
행복하고
즐거운날 되시고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1일 전
10
8
오늘아침 뉴스를 보다보니 국내 일부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을 국내용과 외국 수출용으로 다르게 생산해서 판매한다고 하네요.
X라면에서 생산하는 컵라면은 국내생산에는 건더기 스프(버섯 등) 양을 적게 담고, 일본 수출품에는 크기도 크고 많이 담는다고 합니다. 같은 가격에...
회사 변명으로는 일본 사람들은 큰 건더기스프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판매 한다는데 국내 소비자들도 크고 많이 담긴걸 좋아하지 않나요.
또 초콜렛회사는 같은크기 제품을 국내는 12알을, 외국 수출품은 22알을 담아서 같은 가격대(약간의 환율차이는 있지만)에 판매하고, 국내 대기업 자동차도 국내 생산품은 철판의 두께나 아연도금 두께, 강도가 다르다고 합니다.
국내는 그런걸 규제하는 규정이 없고, 외국은 그런 규정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럼 가격면에서 국내 판매차량이 더 싸야 하는데 가격은 더 비싸게 판매한다니 국내 소비자를 봉으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가 주로 많이 사용하는 대기업 핸드폰에 국내용은 열이 많이 발생해서 확인해 보니 시피유 인가를 용량이 적은것을 사용해서 그런답니다. 그 용량이 크면 핸드폰이 일 처리를 빨리 하기때문에 열이 덜나지만 용량이 적으면 도로에 차가 많아 밀리는 것처럼 정체현상이 생겨 열이 많이 발생해 결국 고장이 잘 난다고 하네요. 그런데도 국내 판매가격은 외국과 같거나 비싸다고 하니 아주 국내 소비자를 봉으로 여기고 외국에서만 기업을 홍보하려는 처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국내에서 저가격으로 완전 자리를 굳힌 ㄷㅇ소에 납품하는 일부 기업들도 일반 매장에는 가격을 비싸게 납품하거나 팔고, 다ㅇㅅ 에는 싼값에 납품하여 일본 기업의 배를 불려주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기업들의 제품은 국내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해서 문을 닫도록 해야 합니다.
농부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 생산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본인들은 못나고 안 좋은것을 먹을려고 하는데 완전 대조적입니다.
아침부터 그런 뉴스를 보니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중국은 소비자 층에 맞는 제품을 생산해 소비자가 자기 수준에 맞는 제품을 고르도록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비옷이 1, 2, 3 천원 짜리를 판매하는데 1천원 짜리는 하루 입고 벗으면 찢어지고, 2천원 짜리는 1주일 정도 입을수 있고, 3천원 짜리는 1달정도 입을수가 있도록 만들어 소비자가 경제수준이나 취향에 맞춰 고를수 있도록 한다고 합니다.
이런게 더 났지 않나요.
아침부터 괜한 주저리였습니다.
3월 14일
10
6
저는 운전할 때 항상 라디오를 틀고 다닙니다.
텃밭에서 일할 때도 늘 조끼 호주머니에 작은 라디오를 넣고 잡초도 뽑고 둘러보다보면 금새 한 두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천변을 산책할 때도 라디오는 늘 같이합니다.
제가 주로 청취하는 프로는 KBSFM 92.9를 주파수로 고정하고 있습니다.
이 주파수는 전주지역 주파수입니다.
요즘 자동차 라디오는 지역을 벗어날 때마다 자동으로 주파수를 설정해 준답니다.
그래서 멀리 운전을 하다보면 지역을 벗어날 때마다 주파수가 틀려서 찌지직하면서 라디오가 멈추기도 했는데 자동으로 설정을 해주니까 주파수를 마출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장르는 다르지만 종일 구성진 노래와 흘러간 노래, 팝송도 들을 수 있는 방송입니다.
텃밭에서는 좋은 글귀나 생활의 지혜 또는 잊혀져가는 옛날 추억의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핸드폰 메모장에 제목만 메모를 합니다.
메모를 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 버릴 수 있으니까요?
나이들어 새벽시간에 눈을 뜨면 메모장에 메모했던 옛날 추억을 소환해 끄적거려 카톡에 메세지를 올리기도 합니다.
어느 시간에는 시사평론가가 나와서 정치, 경제, 사회, 체육, 문화 등 분야별로 알기쉽게 풀어서 전해주기도 합니다.
어느 시간은 영화평론가들이 나와서 요즘 극장가에 개봉한 영화를 소개하면서 별점 5개를 주는 영화는 아내와 같이 롯데시네마에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합니다.
경로우대와 카드포인트를 적용해서 절반에 가까운 가격에 시원한 냉방장치가 있고 푹신한 의자가 있는 영화관에서 두어시간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옛날 극장은 이 장마철에 곰팡이 냄새와 끈적거리고 찝찝한 분위기였는데 요즘은 시원하고 깨끗해서 재미있게 문화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아직도 팝콘과 콜라는 손이 가질 않네요.
젊은이들은 꼭 팝콘봉지와 음료를 들고 입장을 하거든요.
윤대통령 부부도 영화관람을 하면서 팝콘을 먹었다던데요~
쬐끔 멎적고 이상스럽긴 하더군요.
영화 장르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좋아합니다.
가끔씩 독립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2008년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인 "워낭 소리"를 기억하시죠?
워낭은 소 목덜미에 양쪽에 놋쇠로 만든 방울인데 저희 고향에서는 풍경(핑경)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소가 지나가면서 고개를 흔들면 딸랑딸랑 경쾌한 풍경소리가 납니다.
그러면 이 풍경소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길을 비껴줍니다.
사찰에가면 네 귀퉁이에 풍경을 매달아서 바람결에 풍경소리가 들립니다.
고요하고 은은하죠.
경북 봉화 산골마을에 평생 농사를 지어왔던 노인부부와 수십 년간 피붙이처럼 지낸 일소와의 마지막 일상을 그린 영화였습니다.
그 당시 소는 논밭을 갈고 나무나 곡식도 실어나르는 농기구이면서 구루마에 노인을 태우고 다니는 유능한 자가용이기도 했다.
귀가 어두운 노인께서는 워낭소리는 쉽게 듣고 말못하는 소와 소통을 했다.
소풀을 먹일려고 농약을 하시지 않으셨다.
주위에서 소를 팔라고 헀을 때 "안 팔아"라는 말이 소를 가족같이 아끼셨던 할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고인과 같이했던 소는 고인이 돌아가시기 3일전에 죽어서 묻어주었고 고인께서 생전 유언에 "소 옆에 묻어달라"고 하셨답니다.
따라서 소와 워낭공원 묘지에 두분이 나란히 묻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영화를 보고 연세드신 이모님께 보시라고 말씀드리기도 했습니다.
외할아버지 생각이 나서요.
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은 가슴을 메이게하는 영화였습니다.
2011년 KBS 인간극장에서 2014년 독립영화에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영화로 유명했죠.
14살에 시집와서 60년 넘게 한결같은 부부의 사랑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장난기있는 할아버지와의 삶을 영화화한 것으로 보는 사람마다 눈물을 많이 흘리면서 감상한 영화였습니다.
혹시나해서 인터넷에 찾아봤더니 두분 다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립다큐 영화가 마음에 가깝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오래전에는 액션영화나 무협영화를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범죄도시"를 시리즈로 봤는데 잔인함이 있어서 아내가 싫어하더군요.
오늘 어느 가요프로에서 구창모라는 가수가 1985년에 발표한 "희나리"라는 가요를 들려주더군요.
나이 지긋한 사람들한테는 귀에 익은 노래죠.
그 당시에 엄청난 소녀팬을 몰고 다녔던 구창모의 애틋한 노래 희나리를 오랫만에 들었습니다.
"사랑함에 세심했던 나의 마음이
그렇게도 그대에겐 구속이었소~~"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입니다.
"희나리"라는 말이 "덜 마른 장작"이라고 합니다.
희나리를 운전중이라 메모를 할 수 없어서 행여 잊어버릴까봐 몇번이나 되새겨 보았습니다.
고추농사를 하는 사람들은 희나리라는 말이 익숙한 말입니다.
고추가 병이 들어 빨갛게 여물지 않고 고추를 말렸을 때 희끗희끗하게 익은 고추를 희나리라고 하거든요.
그런 희나리였는데 아직 "채마르지 않은 장작"이라는 것을 오늘 알았습니다.
나무토막을 잘라서 쌓아 놓으면 물기가 마르면서 가벼워지고 장작색깔도 희멀건하게 변합니다.
어찌보면 잘 익지 않은 고추색깔이나 덜 마른 장작색깔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홍고추를 따다보면 한쪽은 빨갛게 익었는데 반대쪽은 푸른색이 있기도 합니다.
멍든 고추라고도 합니다.
이런 고추는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진 곳에 이틀정도 숙성이라는 과정을 거치면 빨간색으로 익어진답니다.
그렇지않고 바로 말리면 녹색으로 된 고추는 색깔이 희멀건하게 희나리고추가 생깁니다.
고추를 딸 때 손으로 구부려보면 부러지지않는 고추를 따야 완전하게 익은 고추를 수확하기 때문에 고춧가루색깔도 아주 곱거든요.
멍든 고추와 덜익은 고추는 색깔도 맛도 2%가 부족한 고춧가루가 만들어집니다.
애써 키운 고추를 희나리가 생기지 않게 이틀을 숙성시키고 씻어서 햇볕에 물기를 말ㅈ려서 오늘 조금은 낮은 온도로 건조기에 넣었습니다.
하루를 더 말려도 낮은 온도로 말리면 고추 색깔이 더 나은 것 같더군요.
오늘도 날씨가 많이 무덥습니다.
새벽에 텃밭에 나갔는데 조금은 달라진 것 같기도 했습니다.
계속되는 폭염경보와 잠못 이루는 열대야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피곤해하더군요.
여기에 코로나가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더위에 건강관리를 잘하셔야겠습니다.
8월 15일
33
13
Farmmorning
고령운전자 후미추돌 사고 후기입니다.
부산에 집이 있고 남창 인근에 2필지 200여평 조금 안되는 텃밭을 가꾸며
드문드문 활동하고 있는 도시농부 입니다.
TV에서나 보던 고령운전자 사고를
어처구니 없이 당하게 되었네요.
대형면허 경력자(5톤부터 25톤)이기도 하지만 항상
정체구간에선 비상깜빡이 켜고 후미차량에
알리면서 룸미러로 후미차량 주시하며 다닌
덕에 사고없이 잘 다녔는데
제가 그 TV에나 나오는 사고에 주인공이
될줄은 몰랐네요.
80 언저리 되시는 QM 6 어르신
경사도 좀 있는 커브 구간인데
그냥와서 쎄리 박아버리네요.
교통량이 많은곳도 아니고 앞차량
5톤 카고에 굴삭기를 싣다보니
속도가 줄어 정체 되고 정차한 마지막 차량이였는데
정차하고
몇초만에 후미추돌 당했네요.
정차하고 불과 몇 초만에 사고가 나
영문도 모르고 지진 난줄 알았네요.
정차가 아닌 주행중인 차량으로 인식했다며
고바위 차고 올라가려고 탄력 붙여
브레이크도 안 밟고 그냥 마~
쎄리 박아서
차는 2주 렌트비 포함
450정도에 수리 마쳤는데
충격으로 인한 목 통증과 허리 통증땜에
다리까지 방사통이 와서
한방병원에 1주일 입원하고
(올 해 법 바껴서 어디 부러지거나 의사의
추가 입원 치료 소견 없으면 타 병원 전원도 안됨)
사고 다음날부터 사고 충격으로 인한 통증과
으슬으슬 추운 오한과 해질녘이면
몸살할때처럼 산발적으로 여러부위 뼈마디가 쑤시고 아픈 증상이
나타나더니
3주차인 지금까지도 많이 호전되긴 했지만
힘이 드네요.
상대보험사는 2주치 한방병원비(올해 법이 바껴서 합의 보고와도 바로 의보 적용 안되고
자동차보험 자보 금액으로 3~4주 지나야 의보처리 된다네요)
도 안되는 금액을
제시하네요.
한방병원 물리치료 전기치료 및 부황
약침 외 실비 가입자는 자비로 계산하고
도수치료며 추나 영양제 다 받을수 있지만
상대 자보로 도수나 추나 각종 추가 벌침이니 이런건
상대보험사에서 사고로 인한 치료 입증이 힘드니 환자 자부담으로 하고 상대 보험사랑
알아서 하라는 방식이네요.
사고를 대비 해 드는게 자동차보험이지만
한 번 망가진 몸은 회복이 너무 더디고 힘드네요.
추가로 적자면 한방병원에 대부분이 60이상
실비 있으신 분들이며 정형외과처럼
휠체어 타고 다니는분 한번도 못 봤고
회진도 없으며 혈압이나 체온 체크도
코로나나 특이증상 없으면
없습니다.
젊음분들 호캉스가듯 교통사고로 상대방
보험사 나올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실비가 왜 해마다 오르는지 이유를 알게
된 계기네요.
정상까진 아니라도 오한과 산발적인 뼈마디
쑤시는 증상이 어느정도 사라질 줌
처음 제시한 합의금 근처로 쇼부 보려합니다.
당근님들 안전운전도 중요하지만
방어운전도 진짜 중요합니다.
한 번 다친 몸은 아무리 의료기술이 좋아졌다지만 사고 전 컨디션으로 돌어가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방어운전 필수입니다.
사고내신 그 어르신 보험불러 사고 처리 후
차량 운행 가능해서 직접 운전해서 가셨어요.
23년 10월 25일
6
4
1
Farmmorning
겨울 날씨가 조금 추운데 진주에
치과예약이 되어 갔다가 치로밭고
원무과에서 진로서류 발급 밭아서 보험회사에 팩스로 보내고....
병원에서 오다가 자동차 매매소에 들려서 혀물차 가격보고 마을에
도착해서 부산에서 새집공사해
부산에 아직 왔다갔다하는 형이
있는데 병원에 있으니까 전화연락이
와 저녁 같이 먹자고 해서 오는길에
들려서 음식준비하고 있는데 과메기
부재료 준비해놓았는데 광세기 껍질
손질하고 다들 올때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17시경에 다들 모여서 과메기랑 속배추 생미역 김 쪽파 미나리 풋고추에 초고추장 와사비 된장에
쌈해서 먹고 명태국에 저녁밥을 겹드려서 소주는 환자라고 집나람이
금주령 내려서 못 마시고, 즐겁게
먹고 커피에 사과 디저트까지 풀코스로 배불리 먹고 왔 습니다.
집에 돌아 오니 19시가 되섰네요.
오늘도 하루가 지나 달빛이 훤히 보이는 구나.
23년 1월 3일
4
-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10 -
우리는 야간통행금지와 장발단속 그리고 미니스커트 단속을 당했다.
통행금지령(通行禁止令) 또는 통금(通禁)은 일정 시간에 일반인의 통행을 금지하는 제도로 주로 야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원칙적으로 분쟁이나 재난이 있을 때에 치안 유지를 위해 오직 제한적으로만 시행되었다.
어린이나 청소년의 보호를 위해 시행되기도 했다.
야간통행금지는 밤에 허락받지 않는 사람은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지금도 밤에 치안이 좋지 않는 곳이 있고 과거에는 더 심했을 것이다.
이에 따라 범죄율을 낮추고자 과거에 많이 사용했던 규범이다.
그 당시에는 어차피 횃불이나 호롱불외에는 별다른 조명이 없고 해가지면 일반인들이 할만한 야외활동이 없어 그다지 불만이 없었다.
1945년 시행되었다가 전방 휴전선부근과 해안 일부 군사시설이 있는 지역을 제외하고 1982년1월5일 전면 해제되었다.
밤 10시에서 다음날 4시까지는 일반인들이 시내를 다니지 못했다.
그 후 밤 12시부터 다음날 4시까지로 변경되었다.
12시가되면 싸이렌이 울리고 야간통행증이 없으면 즉결심판을 받고 경찰서 보호실에서 밤을 보내야했다.
신정연휴기간, 광복절, 크리스마스, 재야의 밤 등 특별한 날은 해제되었다.
1970년대 초중반의 장발 단속 정책은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6.8혁명의 영향을 받은 문화가 한국에 수입되자 당시 정권에서 청년들의 문화를 막음으로써 통제 분위기를 활용하여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막으려 한 의도가 있었다.
6.8혁명이란 1968년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거대한 변혁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미니스커트와 장발은 주류 문화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문화 새로운 시대를 바라는 젊은이들의 열망이 함축돼 있었다.
1971년 9월 24일 정부는 퇴폐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를 10월 1일부터 단속한다는 방침을 발표했고,
미니스커트와 장발도 포함돼 있었다.
단속 첫 날인 10월 1일 전국적으로 2,600명이 적발되었다고 한다.
장발단속에 걸렸는데 머리깍기를 거부하면 경범죄로 즉결심판에 넘겨졌고 장발인 상태로 예비군훈련에 참가하면 불참처리됐다.
장발단속은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에게도 적용되었는데 1970년 홍콩 배우 성룡이 당시 우리나라에 입국하면서 단속에 걸린 적이 있었다.
한 때는 바가지를 엎어 놓은 바가지 모양의 머리가 유행하기도 했다.
장발단속은 80년대 들어서면서 없어졌지만 이를 단속하는 근거 법안의 장발에 관한 내용이 없어진 것은 1989년입니다.
한국에서는 가수 윤복희가 입은 것이 최초로 알려져 있지만 미니스커트는 당시 적령기 미혼 여성의 정장이 되어버렸다.
유신정권이 들어서면서 장발과 함께 미니스커트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당시 경찰들은 풍기단속 등의 이유로 대나무로 만든 30cm자를 가지고 다니며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여성들의 치마 길이를 단속하기도 했다.
당시 단속 기준은 무릎 위 20cm에 걸리면 경범죄처벌법에 의해 처벌을 받았다
"호황기에 미니스커트를 입는다"는 치마의 길이로 경제 상황을 알 수 있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길거리에서는 보행법규를 위반한 사람을 단속하여 한쪽에 노끈으로 선을 만들고 그 선안에 세워두기도 했다.
횡단보도에서 한쪽발만 내려가면 괜찮았고 두발이 다 내려가면 교통단속반이 멀리서 지켜보다가 쫒아와서 적발되었다.
사회 분위기와 물가상승도 차갑게 느껴집니다.
웃픈 이야기도 있습니다.
90년대까지만해도 자동차를 운전하시다보면 이런 일을 몇번은 격었을겁니다.
도로변에 화이바를 쓰고 멎진 오토바이를 타고 교통단속을 하는 교통순경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전주시내를 벗어나면 완주경찰서 소속의 교통경찰이 있었고,
완주군을 벗어나면 임실경찰서 소속의 교통순경이 있습니다.
임실군 경계를 지나면 남원경찰서 소속의 교통경찰이 나와있습니다.
남원 시내를 벗어나면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삼거리에 요천 검문소가 있습니다.
70k의 거리에 꼭 3-4차례는 교통단속을 거쳐야했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기준속도를 웃도는 속도로 운행하기도 하지요.
어김없이 한쪽에 살짝 숨어있다가 수신호로 차를 세웁니다.
그 시절에는 면허증 밑에다 5,000원권 지폐를 끼워놓고 다녔습니다.
접어진 5,000원권 지폐랑 같이 면허증을 제시하면 5,000원권 지폐만 꺼내고 면허증을 돌려주면서 "안전운전 하십시요"하면서 거수경례를 하였습니다.
다 그런것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동료들이랑 차한잔하게 해주십시요"하면서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했습니다.
어느 날은 요천 검문소에서 안전띠를 안맸던가?해서 검문을 당했는데 호주머니에 현금이 없어서 면허증을 맏겨놓고 시내에서 현금을 인출해서 5,000원을주고 면허증을 찾기도 했습니다.
성실하게 교통업무를 보았던 교통경찰분들한테는 죄송합니다.
그 때는 국도지만 2차선이라 중앙분리대가 없어서 건너편에 교통경찰이 있으면 상대방 차에다 비상등을 깜박이면서 교통경찰이 단속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미덕아닌 미덕도 있었습니다.
날씨가 더워지고 있습니다.
건강관리를 잘 하셔야겠습니다.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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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한하늘 맑고 드높은하늘
결실의계절 가을의 드높은 하늘을 볼때마다 어린시절이
생각난다 어린시절에는 산으로 바다로 마음꺽 뛰놀며
자동차가 귀한시절이라 수확철에는 지게에 농산물을
저날리며 쉴틈없이 바빠는데 지금은 문명이 발달되어 모든것이 기계로 움직이고하는 시대가 되어 사람이 필요없는 이웃간 품앗이 농사가 없어진 베이비 세대에게는 서글픔 세대인것같다
정이있고 행복이 넘쳐난 그 보리고개 시절이 그립다
그리움 과 향수을 뒤로한체
두릅밭 과 고추밭 고랑에 비닐과 잡초메트를 철거하면서 내년 농사을 기대
해본다 올농사는 고추는 긴장마로 탄저병에 힘들었고 배추에서는 무릅병이 와서 힘들었는데 하늘이 주는대로
거두는것이 순리인듯 내년을
또 기대해본다
농부는 농사을 하늘이 주는것
만큼 수확하는것이 진리요
순리인것 같다
23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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