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3 -
우리세대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제가 다녔던 국민학교는 자갈길을 십리를 걸어서 다녔습니다.
비포장된 자갈밭 십리길을 고무신을 신고 등하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체구가 약하거나 여자아이들은 국민학교 입학 년령인 9살에 입학을 하지않고 2-3년 후에 입학을해서 국민학교 동창이 친구의 형과 누나뻘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화단에는 어느 학교나 똑같이 수군장군인 이순신장군 동상과 한글을 창조하신 세종대왕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친 반공소년 이승복어린이 동상이 있었습니다. 
또 책 읽은 소녀상의 석고상과 유관순열사의 동상도 있었다.
학교에서 대변을 성냥갑에 담아오기(회충 검사용), 나락모가지 주워오기, 쥐꼬리 잘라오기, 못자리 나방 잡아서 성냥갑에 넣어오기, 솔방울 가져오기도 했고, 겨울철 난로에 땔깜으로 쓸 장작도 가져오기, 여름방학 마치고 등교할 때 퇴비 가져오기, 자그마한 손으로 봄 식목일엔 나무를 심고, 여름에는 신작로에 동네마다 구역을 정해 코스모스를 심어 가을에는 길가에 자동차가 지나가면 뿌연 먼지속에 한들한들 이쁜 코스모스꽃을 보았으며 학교내에서는 통일동산을 꾸몄습니다. 
우리는 돌멩이 같이 입에서 깨지지않고 녹지않아 단맛을 오랫동안 맛볼 수 있어 이름 붙여진 독사탕, 말랑말랑한 젤리와 유과, 라면땅, 아폴로, 크라운산도 등과 같은 과자와 쫀드기, 달고나, 띠기 같은 불량식품을 먹고 자랐으며 동네마다 울려 퍼졌던 새마을노래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새마을운동이란 것에 익숙해서 어김없이 아침 동틀 무렵 동네 가운데 있는 높은 정기나무에 매달린 주둥이가 커다란 나팔모양의 확성기에서 울려퍼지는 새마을 노래를 듣고 자랐습니다.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바탕으로 생활환경 개선과 소득증대를 목적으로 한한 범국민적인 지역사회개발 운동을 시작하면서 1972년 6월 20일 박정희대통령이 직접 작사한 새마을 노래가 대도레코드회사가 음반을 만들었다.
1절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2절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3절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4절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 조국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이 새마을 노래는 전국적으로 군대에서 기상나팔같이 새벽이면 울려 퍼졌습니다.
나무울타리 담장과 흙담장을 없애고 초가지붕을 기와로 이양하고 울통불통한 골목길을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반듯하게 넓혔다.
파란색 새마을 모자는 필수품이었다.
지금도 베트남 등 동남아 신흥국가에서는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을 모델로 우리나라 지도자들을 초청해서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제 친구가 농촌지도소를 퇴직하고 베트남에서 연수원장을 맡아서 베트남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새마을교육을 시키고 있어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습니다.
새벽 6시에 기상하고 아침체조와 구보를 시작으로 새마을교육을 모델로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교복을 입고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때는 학과목에 교련과목이 있어서 교련복으로 갈아입고 목검으로 제식훈련과 총검술 및 구급법을 익혔고 운동장에서 열병식을 했습니다.
교련복은 군복과 같았습니다.
교련모와 요대랑 각반도 찼습니다.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향도라는 완장을 찼다.
국민학교때도 교복을 입었고,
모자에 학교를 표시하는 교포를 달았으며 웃도리에도 학교를 표시하는 단추를 달았습니다.
바지는 딱 달라붙는 쫄바지에서 일자바지로 다시 나팔바지로 유행을 탔고 중.고등학교 때는 학생주임 선생님께서 등교길에 복장지도를 하면서 나팔바지를 입은 학생들을 혼내키기도 했다.
카라 한쪽에는 교포를 한쪽에는 학년을 표시하는 아라비아숫자의 뺏지를 달았습니다.
시내에는 머리가 긴 장발단속도 있었고,
무릎위로 너무 짧은 미니스커트단속도 있었다.
밤 12시가되면 싸이렌이 울리고 이 때부터 야간통행금지 시간이어서 순찰중인 경찰에 붙잡히면 파출소로 연행되어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4시까지 보내야했다.
아마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통행금지라는 제도가 있었던 것 같다.
야간에 통행이 필요한 사람은 경찰서에서 야간통행증이라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했다.
그러다 1982년에 해제되었다.
또 우리는 운동회 때 "다우다"라는 나이론천으로 만든 백군은 하얀 체육복으로 청군은 파란 체육복을 만들어 입었고 곤봉, 마스게임, 단체무용, 줄달리기, 방울치기, 박터트리기 등 수없이 연습해서 시원한 가을에 접어든 10월 초에 지역잔치인 운동회를 기억합니다. 
체육복은 집에서 어머니께서 재봉틀로 박음질하시고 고무줄을 넣어서 만들어 주셨다.
달리기 계주는 키순대로 7명씩 조를 짜서 키가 작은아이들부터 달리기를했다.
저는 늘 맨 마지막조로 편성되었다.
맨손달리기, 장애물을 통과하는 달리기, 쪽지를 주어서 쪽지에 적힌대로 사람을 찾아서 하는 달리기 등 세가지 달리기가 있었다.
쪽지에 "안경쓴 사람"이라고 적혀 있으면 안경쓴 사람을 찾아 손잡고 달리기를 했다.
"교장 선생님"이라고 적혀있으면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달리기를 하면 된다.
그런데 교장선생님께서는 꼭 넼타이를 매시고 구두를 신고 양복을 입고계셨다.
그래서 빨리 뛰시지를 못했다.
그야말로 복불복이었다.
운동회의 하일라이트는 청백계주였다.
마을단위로 계주도 있었다.
우리는 하교길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왼쪽가슴에 손을 얹고 가던 길을 멈춰서서 태극기가 다 내려질 때까지 엄숙한 자세로 있어야하는 국기 하강식을 했습니다.
어느날 박정희대통령이 지나가는데 군인 한명이 국기하강식을 그냥 지나친 것을 보고 그 부대에 보고하여 영창을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걱정을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을 하지 않는다.
태어나서 부모한테 빚지고
살면서 은행에 빚지고
죽을 때는 자식한테 빚지고
평생 빚만지고 사는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4월 14일
13
7
옥상텃밭입니다 .고추를 심으려합니다.
화분에 심으려합니다.여기에 잘맞는 고추 흙 알려주세요.
22년 2월 10일
3
봄에 뿌린 농작물을 수확하기까지
가을은 한시도 게으럼을 피울수가 없지요~
현재 따고 있는 포도
추석지나고 일주일 더 따서 정리하고...
일주일 후에 비 그치고
땅부드러워지면 땅콩캐고...
그다음에 고구마 500평 수확하고...
10월초에
마늘밭 500평
퇴비뿌리고 경운작업후
일주일 뒤에
비닐 피복 씌워 놓고...
10 중순에 둥시감
따서 곶감 만들어 달고...
들깨 500평 베어 말린뒤
일주일후에 탈곡하고..
메주콩200평 탈곡하고...
벼베기 80마지기 작업일주일 콤바인 작업하고...
포도나무 전정하고...
에휴
누가 좀도와줘요~ㅜㅜ
23년 9월 13일
1
간밤에 내린 폭우가 저지리를 많이 해놓았네요. 땅콩과 적두팥을 휘저어 놓았고요. 그래도 고추밭은 외관상은 멀쩡해서 디행입니다. 폭우에 조심하시고 건강에 유의하세요.^^
22년 8월 9일
2년차 농사 행복합니다.
무지 무지 힘들지만 흙과잡초와의 전쟁이지만
고랑 이랑이랑 잡초님들과 소곱놀이로 날이가지만
주렁주렁 일곱빛깔의 맺힌 열매들을 볼테치면 해피한 함박웃음이 저절로 선물하지요. 왜 농사를 짓냐고 윗집 댁은
고개를 저어대지만
그냥 좋아요. 행복해져요.라고 함박웃음으로
화답한답니다...
늘 괭이로 밭일구고 뒤집고 가꾸는 남편위해
허리 어깨등을 관리기로 교체해 드리고파요.
새건 넘 비싸구요.중고
약120~150만원이래요
좀더 효과적인 깔금한 환경을 위해
부직포 마니 많이 사고파요.^^
22년 8월 16일
Farm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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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소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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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산골에
작은 암자(庵子)를 지키며
수행(修行)을 하는 스님이 있었다.

하루는 스님이 두 냥의 돈을 가지고
장터에 내려와 공양미(供養米)를 사려고
쌀가게를 찾아가는데,

길가 쓰레기 더미에서 난데없이
큼직한 자루 하나를 발견(發見)했다.
그 자루를 열어보니 뜻밖에도 이백 냥이나 되는 은전(銀錢)이 안에 들어 있었다.

실로 처음 보는 큰 돈이라
스님은 깜짝 놀랐다.

"아, 이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얼마나 속을 태우랴!"

이렇게 생각한 스님은 온 장터를 헤매며
돈자루의 임자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되돌아오고 있을 때였다.
장터를 조금 벗어나 몇 발자국 떼어
놓는데 저쪽에서 소 장수가 허둥대며
달려왔다.

스님은 눈치를 채고 무슨 일이 있기에
그리 서두르는지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소 장수가 말하기를
"황소 두 마리를 사려고 사백냥 돈을
가지고 시장(市場)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이백 냥을 주고 소 한 마리를 산
다음 다시 한 마리를 더 사려는데 마땅한 것이 없어 그대로 돈주머니를 황소 등에 묶어 놓았는데 어디에 떨어뜨렸는지?
아니면 도둑을 맞았는지?
돈주머니가 없지 않겠습니까?"
스님은 돈 임자를 만난 것을
몹시 기뻐하며 이 소장수에게
자기(自己)가 멘 돈자루를 내주었다.

"자, 당신(當身)이 잃어버린
돈 이백 냥입니다."

그러면서 이 돈자루에 같이 넣어뒀던
자신(自身)의 돈 두 냥을 꺼냈다.
​바로 그때 소장수는 욕심(欲心)이 생겼다.

그의 심중(心中)에는 스님의 돈 두 냥마저
빼앗으면 좋겠다는 욕심(欲心)이
굴뚝처럼 치솟아 올랐다.
그래서 그는 돌아서는 스님을 보고
호통을 쳤다.

"여보시오, 스님!
그 돈 두 냥은 왜 꺼내는 거요?"

"당신(當身)이 잃어버린 돈은
이백 냥 아니었소?
이 두 냥은 원래(元來) 내 돈이오."

"아니오! 실은 소 살 돈 이백 냥 에다
용돈으로 쓰려고 두 냥을 함께 넣어
두었단 말이요.
그러니 그 돈도 마저 내놓으시오!"

스님은 실로 억울(抑鬱)했다.
'두 냥은 공양미(供養米)를 사러
가지고 온 돈이고 같이 넣어뒀던 것이라'고 누누(累累)이 설명(說明)을 해도
소장수는 도무지 들어 주지를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둘은 고을 원님에게 가서
서로의 주장(主張)을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원님이 말했다.

"그대는 분명
이백 냥이 든 돈자루를 주웠겠다?"

"예, 세 번이나 세어 보았으나
분명 이백 냥이었나이다."

"음, 그리고 그 두 냥은
그대가 쌀을 사가려 가지고 온
돈이라 했겠다?"

"예. 분명(分明) 그러하옵니다."

"알겠다.
그럼 소장수 그대는 분명(分明)
이백 냥 하고도
두 냥이 더 든 돈자루를 잃었겠다?"

"그럼요, 여부(與否)가 있겠습니까요?"

그러자 원님이 위엄있게
최후 판결(最後判決)을 내렸다.

"듣거라~!
소장수가 잃어버린 자루에는
틀림없이 이백 두 냥이 들었고,

스님이 주운 돈자루에는
이백 냥 밖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
분명(分明)하도다.
그러니 스님이 주운 이 돈자루는
소장수가 잃어버린 돈자루가 아니다.

그래서 이 돈자루는 스님이 가지고 있다가
장차 이백 냥을 잃어버린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에게 주도록 하라!"

그 판결(判決)에
소장수는 그만 억장이 무너졌다.

공연(空然)히 스님의 돈 두 냥을
욕심(欲心)내다가 자신(自身)의 이백 냥,
큰 돈까지 잃게 생겼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동헌(東軒)을 나온 소장수는
너무도 원통(寃痛)해서
땅을 치며 통곡(痛哭)을 하다가
그만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이를 보고 구름처럼 모인
군중(群衆)들이
저마다 소장수를 비웃으며 말했다.

"아이 꼬시다!
욕심(欲心)이 결국(結局)
사람을 죽이지 않았나?"
~~~~~~~~~~~~~~~~~~~~~~
●바람이 말합니다.
​"바람 같은 존재(存在)이니
가볍게 살라"고.
●구름이 말합니다.
​"구름 같은 인생(人生)이니
비우고 살라"고.
●물이 말합니다.
​"물 같은 삶이니 물 흐르듯 살라"고.
●꽃이 말합니다.
​"한번 피었다 지는 삶이니 웃으며 살라"고.
●나무가 말합니다.
​"덧없는 인생(人生)이니
욕심( 欲心)부리지 말라"고.

●땅이 말합니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니
내려놓고 살라"고.

환절기 건강관리(換節期 健康管理)
잘 하시고
오늘도 좋은하루 되시기바랍니다.
<좋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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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7월 11일
17
12
Farmmorning
마사토로 성토한 땅인데요.. 일반흙이 거의 섞이지 않아 고구마가 달릴지 의문입니다.
지난 주말에 이랑 만들고 퇴비를 뿌려두었고 이번주에 멀칭 예정입니다.
고구마전용 비료준 다음 멀칭하고 5월초중순에 심어도 될까요?
22년 4월 4일
2
작년 11월 초보농으로 논에다 민 음나무를 300주 넘게 심었는데 배수때문인지 도랑을 깊게 파줬는데도 나무가 너무 많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복토를 해야한다는 조언을 듣고 복토를 하려하는중 마침 지금 흙이 갑자기 나오는 바람에 복토를 하기로 하고 어제 심어져 있던 나무를 다 뺐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인데 1.복토후 바로 그땅에 나무를 옮겨 심어도 되는지?
2.지금 시기가 겨울이라 한파가 걱정인데 그래도 심어도 되는지?
3.한파방지를 위해 뭔가를 해야하는지?
4.내년 봄까지 그대로 심지 말고 둬야하는지?
5.내년봄에 심어야한다면 뽑아둔 나무는 어떻게 보관해야하는지?
그냥 무작정 좀 손 많이 안가는 작물을 선택한다고 했는데 무지식과 무경험으로 지금껏 몸고생. 맘고생.돈고생만 하고 있네요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21년 12월 21일
8
땅콩 잡초제거
참깨 잡초제거

고추 고추따기 고추는 장마로 인해 많이 말라 죽고있어요.
고구마 순따먹기
상추 망을 씌워 햇빛
차단하고 물을주면 서 잡초제거 해주었어요
23년 8월 8일
작년 오월하순경
약900평 마사흙으로 복토하고 메밀씨앗을 뿌렸는데 하얀메밀꽃까지는 성공했지만 열매가 계속 열리지않아 실패하고
결국 9월에 로타리치고 씨앗도 못 건졌네요~~ㅋㅋ
22년 1월 17일
1
화성시 병점근처 박영준
혼자서한지 7년차 되는군요
회사다니면서 부모님 도와드 리면서 배웠지만 약는 약방에 서 배우면 되는데 비료 주는것 은 혼자 기록하면 배우고 있 너요 어렵고 힘들어요
감자 고추 고구마 들깨 무 벼 마늘 그리고 어머님 파 오이
고추~칼슘 탄저병 없이 잘키워네요 단지 물부족현상
고추대 뽑아주다가 올해는 베어주었는데 차이는 빠르게 붉어지는것을 알겠네요 배운점 고추날짜를 더두고서 베어주면 되는구나 그럼 희나리가 덜나오겠지요
꽃여서 붉어지기40~45일서
고구마~풀제거 않하려고 제초매트 깔았는데 수확할때 원인나오네요 고마가 크고 검은 반점이 보이네요 순작업해서 모종값 빼냈네요
결론 고구마밭은 잡초 제거는 하데 함께 키워야 하는구나 배웠네요 습차면 않됨
참깨~잘키워고 수확도 잘 나왔네요 장마오기전에 줄쳐주기 잘해야한다는것
감자~감자눈으로 절단하면 순쳐줄것이 없네요 또한 비오기전에 고량에 시비해주 니 알이 더크고 실하네요 가격 넘 좋아서 놀랬어요 3만원대
벼~10/21 수확예정 유난히 힘든한해 장마도 길고 비도 자주온해 벼꽃 생기는것 보고 이삭거름 주었는데 작년까지 1포주던것을 2포 주면서 물수위는 낮게 잡아주고 장마비 2~3일 낯은수위가 이리 않좋을줄 이삭피면서 검은것이 보이더니 쭉쟁이가 많이 생겨네요 안준곳도 생겨 지만 그리고 찾아온 도열병 약하게 왔네요 처음으로 구경한 피해인듯 합니다
마늘~11/20경 심어서 싹 올 라온후에 덮어주어던것이 좋았는지 잘 자라주었네요
수확할때는 왜이리 깊이 들어갔는 캐때 고생해 그늘에 건조했는데 쭉쟁이가 많이 생겼네요 원인추정 수확전에 물을 많이주고 자주준것이 문제인듯 더낮게 심어주고 흙으로 더 덮어 주지않아도 될듯 수확전 관수 빨리 끓어줌
들깨 콩 ~6월초 정식이 맞은듯 그리고 장마에 들어서면 잘 자람 풀과의 전쟁 싫어서 비닐덮고 심어주는데 로터리 작업하기전 비료 1포에 살충제1개 주는데 비료 는 더 주고 비닐작업해도 될듯 내년 1포반 주고 정식 예정 키도 적당하고 잘자람
10/12 베어주기작업
무~얼기설기 씨앗 뿌려 주는것을 고량 작업해서 한알씩 뿌려주고 하우스 안에 는 2알씩 넣어서 속아서 김치 해먹음 노지는 속을것도 없고 간격도 잘 맞은듯 8/23씨앗 넣고 25일후 비온다고해서 1차추비줌 현재까지 잘 자라고 있어 2차추비는 생략 하려고함 작년에 엽면시비로 하나도 출하못함 너무과하게 주어서 구멍발생됨 급성장 해서 발생 엽면시비는 안하기 로함 무름병들이 생기고 있다 는데 5개 정도생겨지만 잘크고 배추꽈리들고 있슴
그날 한것은 달력에 기록했 다가 새달력에 기록해주고 별도 특히핫것은 노트에 적어 놓고 않된것은 다른분들에게 도 이야기해주고 있네요
고추 3년 년작중인데 탄저병 없이 잘 키우는데 8~9월 수확 이 적고 9월말 뽑아서 따는게 많은데 비료 추비 주는것을 더 배워야 할듯 합니다
10월 8일
9
8
2
Farmmorning
밭에 백토흙으로복토를했는데
어떤종류의거름을쓰면좋을까요
22년 6월 9일
1
안녕하세요
양파심을건데요
원래는감자숨던곳인데요
감자가안났어땅콩숨었는데요
그밭에다가양파숨을건데요
밭준비하는과장줌일러주세요
석회고토하고양파썩음병하고퇴비하고살충제하고또뭐해야하나요?
밭준비과정줌알려주세요?
경기도안성지역입니다
21년 9월 27일
1
잡초제거를 하였고,고추나무고정 줄매기를 하였습니다.
서리태콩밭 순치기와 흙돋아주기.
23년 6월 26일
저는 5학년8반 김정현입니다.
가평에 살고 있구요..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 유턴한지 8년차..지금은 김장배추,무우,당근등을 새로 심었지만 부추와 파는 사계절 엄청 열심히 가꾸고 있습니다.이곳에 보니 대농으로 전문 농업인들이 많으신데 정성들인만큼 좋은 열매 맺으시면 하는 바램입니다.저는 소농이라 부지런히 짓고 나눠먹기도 하는데 해마다 겪는일이지만 쉽지는 않습니다.그래도 흙을 만지면 기분이 좋아지고 자라나는 모든것(잡초는빼구요)이 예쁘고 기대가 되어 못보는 날에는 밤에도 불을켜고 돌아본답니다. 밭주변에 매리골드 설악초 아마란스 등 꽃을 심어 즐기고도 있답니다.
23년 9월 3일
Farmmorning
논이었던 땅에 성토를 했는데 배수 불량으로 어떤 작물도 불가능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배수로를 1m 파고 목재를 0.5m 채워 넣고 나머지를 흙으로 덮어서 아래로 물이 땅에 스며들거 하였어요
이제 장마가 와도 밭에 물이 채이는 일이 없습니다.
23년 6월 20일
1
주말농장 을 만들려고합니다
13미터길이고랑 을 40개 만들었어요
20개 고랑에는 어제 꿀고구마를 심었어요
나머지 20 개 고랑에는 어떤 작물을 심으면 좋을까요?
30대이며 아직은 농사로 생계를 할수 없기에 회사일도 하며 주말농장으로 농사를배워가며 귀촌을 계획하는 중입니다.
주말 농장은 한고랑에 5만원씩 사전 판매할 예정이며 판로는 확보 되어있습니다
땅콩, 콩.고추?
수확은 구매자가 직접하도록하는 시스템으로
식재와 재배는 제가 합니다
다음 작물 추천 바랍니다.
22년 5월 1일
4
화단에서 자라는 오래된 화초(철쭉ㆍ서향ㆍ골담초ㆍ상사화ㆍ향나무ㆍ황치나무ㆍ포도나무ㆍ다래등)가 잘크고있던중 5월중순경부터 잎이 마르고 고사하여 깊이 20센치 정도깊이의 뿌리부분에 흰색곰팡이가 보이고 표면이 물러져서 힘없이 벗겨지는것을 확인하고 웹검색하니 백분우병이라고 하는데 화단조성을 어떻게하여야 하는지 난감합니다
(토양소독살균제사용했으나 실패함ㆍ몇년식 키운 나무며 화초가 몰락함ㆍ 화단흙을 교체해야하는지요ᆢ)
21년 6월 17일
2
황토흙을 작년에 논에서 밭으로 했습니다 25톤 차로 800여대 넣었 평탄화 완료했습니다
올해 여러가지채소 (고추ㆍ들께ㆍ상추ㆍ오이ㆍ토마토 기타등)
심어볼까 하는데 밑거름 평당얼마나 해야하는지 궁금합니다
농협에서 20KG짜리 200포 신청하여 가져다 놓았습니다
아직 직장인이라 주말에만 농장가서 일합니다
고견 부탁드립니다
22년 2월 18일
4
시골집에 마굿간을 치웠습니다.
동네 목수아저씨께서 처음으로 지은 마굿간이고 올해 97세되시는 아버지께서 평생 관리하셨던 마굿간이라 버릴 것이 엄청 많았습니다.
소외양간은 겨울철엔 보름정도 지나면 마굿간에 지푸라기를 걷어내고 새지푸라기로 깔아주면 뽀송뽀송해서 소가 좋아했습니다.
육중한 소가 배설물과 섞인 지푸라기를 밟아 차곡차곡 쌓인 지푸라기는 다져저서 쇠스랑으로 한참을 걷어내야 했습니다.
수시로 지푸라기를 넣어주면 거름도 만들고 겨울에 차디찬 마굿간이 보온효과도 있습니다.
겨울에 마굿간을 치울 때는 소를 마굿간에서 몰고 나와야하는데 그 순했던 소가 오랫만에 밖에 나오니까 얼마나 날뛰는지요?
놓치지 않을려고 코투레를 잡고 실강이를 한참하고서야 진정되었습니다.
소가 소똥과 오줌을 뒤섞여 밟힌 지푸라기는 섞고 발효가되면 논밭에 좋은 퇴비가 되어서 봄에 리어카로 실어다 보리고랑에 깔았습니다.
옛날에는 화학비료 대신에 거의 퇴비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 때 소를 키웠던 마굿간은 꽤나 넓고 높았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큰 어미소가 송아지랑 같이 지낸 곳이었거든요.
머슴살이가 없어지면서 소마굿간을 창고로 쓰실려고 돌로 된 커다란 쇠구시를 들어내시고 세멘트로 바닥을 깔고 벽을 벽돌로 쌓았습니다.
소를 키울 때는 소가 뿔로 벽을 비벼서 흙이 많이 부서지고 벽에 구멍이 송송나서 겨울철에는 짚을 엮어서 벽을 둘러주곤 했습니다.
어릴적에 그렇게 넓게 보였던 마굿간이 좁게 보였습니다.
시골에서는 농기구와 잡다한 생활용품을 보관하는 장소가 꼭 있어야 합니다.
농사를 한다면 창고도 필요할텐데 이제는 필요가 없게 되어서 마당을 넓히고 집앞을 앞이 훤하게 만들려고 마굿간을 뜯기로 했습니다.
마당까지 승용차도 들어갈올 수가 있습니다.
집앞 텃밭 길가에 커다란 컨테이너박스가 있어서 곡물은 보관할 곳이 있습니다.
소마굿간에는 어린아이들 키만한 항아리가 몇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두분이 워낙 아까워서 버리시지 못하고 구석구석 뭉쳐서 쌓아 놓으셨습니다.
그 항아리 속에는 비닐봉투, 옛날 콤바인 나락푸대, 비닐멍석, 헌옷가지 등 수없이 나오더군요.
비닐 호스가 몇개, 주름관으로 된 호스 등은 터서 뻣뻣해 다 버려야했습니다.
베틀과 쟁기, 써레, 가마니틀, 홀태, 김매는 기계, 등잔대, 삼매는 기계, 새끼로 만든 꼴망태, 가마니를 찔러서 나락이나 쌀을 감정하는 삿대가 대.중. 소로 몇개, 짚으로 만든 쌀가마니를 들 때 썼던 쇠고랑, 소등에 얹는 굴레, 소코뚜레, 물레, 무쇠솥, 소죽을 끓였던 가마솥 뚜껑, 주걱, 절구대, 안반, 요강, 소나무 뿌리로 만든 깨끗한 채반 등은 사랑채 공로에 따로 보관했습니다.
주물로 된 요강과 반상기세트와 수저, 젓가락, 가마니를 짜는 바디, 떡모양을 누르는 떡사슬, 호롱과 등잔대, 커다란 함박과 바가지, 삼베를 짤 때 썼던 붘, 솔, 삼베를 말끔하게 누르는 붘, 솔나무 뿌리로 만든 도시락, 곡물을 재는 되와 말, 누룩을 만드는 누룩틀, 실타래, 인두, 숫을 넣어서 아버지 모시옷과 삼베를 다렸던 다리미, 할머니께서 피시던 곰방대 등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축제를할 때면 한쪽 코너에 옛날 물건을 전시하고 학생들에게 설명을 해주곤 했습니다.
공로에서 물건을 들어내던 동생이 공로귀퉁이 안쪽에 세워져 있는데 뭔가 싸~한 느낌이 온다고 하더군요.
신문지와 세멘포대로 몇번을 둘러싸맨 모양이 대두병이었습니다.
신문지를 다 벗겨내니 역시 옛날 색깔이 어두운 대두병에 뱀으로 술을 담근 병이었습니다.
마개를 비닐로 싸매고 고무줄로 여러차례 동여맸습니다.
라벨지에 "1991년 10월 능사"라고 메모를 해놓으셨습니다.
카메라로 찍어 확대를 해봐도 술이 맑았습니다.
일단은 뱀이 부패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뱀은 징그럽지만 술이 깨끗해서 광 한쪽구석에 보관을 했습니다.
술을 담근지 30년이 넘은 술이라 어쩌면 귀한 물건이 아닐까?싶네요.
옛날 한옥은 지붕이 뾰쪽하고 높았습니다.
안방에 아래묵에서 오를 수 부엌과 천장사이가 워낙 높아서 벽장이라는 곳을 만들어서 잡다한 물건을 올려놓고 안방과 방마다 지붕과 천장사이에 공로라는 공간을 만들어서 사용하셨습니다.
6.25사변 때 소마굿간 위에 나무로 걸쳐서 공로를 만들어 식량과 놋쇠를 그 곳에 감추셨다고 합니다.
1976년 제가 군복무를 마칠 때부터 머슴살이가 없어졌습니다.
머슴들이 솔잎가리 나무를 해와서 부엌에서 불을 지피실 때 불쏘시개로 쓰셨는데 솔가리나무를 해올 사람이 없어서 신문지나 박스를 찢어서 불쏘시개로 쓰셨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신문지를 모아서 박스에 담아다 드렸고,
박스를 찢어서 박스에 담아드렸습니다.
아까워서 쓰시지도 않은 신문지가 담겨있는 박스에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의 날자가 있는 신문지가 여러박스가 쌓여 있었습니다.
동네 재활용 모으는 곳에 내다가 쌓아 놓았습니다.
기둥마다 녹슬은 철사며 자루가 빠지고 끝이 다달은 괭이와 삽, 호미, 양은 솥, 양은 냄비, 양은 그릇, 양은 주전자, 바닥이 녹슬어서 뻥 뚫린 화루, 쇠파이프로 만든 부지깽이, 녹슬은 다라이, 조개탄과 장작으로 불을 지폈던 녹슬은 난로, 등에 짊어지고 소독했던 약통, 금간 곳을 파란 테이프로 붙여서 쓰셨던 고무다라이, 바께스, 함석쪼가리 등 수없이 버릴 수 밖에 없는 물건이 엄청 많았습니다.
그 동안 모아두셨던 프라스틱 파이프는 어찌나 많이 모아놓으셨는지요?
튜브가 다 터져 바람이 다 빠진 리어카로 몇번을 실어 날랐습니다.
리어카도 할일을 다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리어카도 없앨 때가 되었습니다.
돼지와 염소를 키웠던 마굿간에는 장작을 쌓아놓으셨는데 아까워서 마당 한켠에 옮겨놓고 함석으로 잘 덮어 놓았습니다.
얼마나 많은지요.
가마솥을 걸은 뚤방과 지붕아래로 두줄이 되더군요.
아까워서 쌓아놓긴 했는데 쓸일이 있을런지?모르겠네요.
통나무를 장작을 팼는데 나무도 오래되면 좀이 쓸어서 화력이 없거든요.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이웃한테 가져가라고하면 바로 실어가는데 혹시나해서 쌓아 놓았습니다.
마당 앞쪽에도 알밤을 저장했던 그늘만 가리는 창고가 있었습니다.
1960년대 산림사업으로 산에 유실수인 밤나무를 군에서 심었습니다.
70년대부터 산에서 알밤을 송이채 털어서 멱다리에 담아 신작로까지 지게로지고 내려와서 리어카로 실어다 땅을 파놓은 곳에 넣고 물을 계속주면 알밤송이 가시가 썪어서 발로 문지르면 알밤이 나옵니다.
80년대 말까지 알밤을 대나무로 털어서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가을걷이 중에 가장 힘든 일이 알밤을 터는 일이었습니다.
부가가치, 가성비가 전혀 없는 알밤수확이었습니다.
그래서 개량종 4그루 정도만 풀도 깍아주고 알밤을 주어서 제사 때랑 씁니다.
가을이면 손톱만한 빨간알밤이 산에 즐비합니다.
그 알밤창고에도 장작이 얼마나 많은지요.
장작개비만 들어내는데 거의 한나절이 걸렸습니다.
이번에 알밤창고도 밀어낼려고 합니다.
농기구도 너무 많아서 몇개만두고 없앨려고 합니다.
안집 냉장고가 냉동이 안되어서 들어내고 별채에 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있는데 김치냉장고를 갔다 놓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매직으로 2009년 10월이라고 구입날자를 적어 놓으셨습니다.
양문형으로 그때는 제일 큰 것으로 사다드렸는데 겉은 깨끗한데 형제들이 괜히 AS를 받지말고 사람들 있을 때 없애자고 하더군요.
마굿간을 치우느라 애쓴 동생들한테 농사지은 분께 방아를 찧어달라고 부탁해서 방금 방아를 쪄온 쌀을 실어주었습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누이와 여동생네도 수원사는 동생편에 실어 보냈습니다.
공직을 퇴직하고 서각으로 취미생활을 하는 막내동생 친구가 이번에도 와서 애를 많이 썼습니다.
서각에 필요한 송판과 나무토막, 절구통을 실어주고 쌀도 한포대 실어주었습니다.
먼지구덕에서 마굿간을 치우느라 멀리서 내려와서 애쓴 사촌동생과 형제들이 감사했습니다.
큰집일이라면 열일을 제치고 도와주는 사촌동생이 전주에 살고 있어서 집안일 뿐만아니라 큰집일에 너무 많은 덕을 보고 있어서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번주에 스레트를 걷어내고
마굿간을 철거하하고 마당을 치우는 일은 제 몫이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TV프로에서 신체적으로 어렵고 힘든 상황을 딛고 일어나는 어떤 젊은이가
"100% 만족보다는 2% 부족할 때가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응원하고 싶은 젊은이였습니다.
얼마나 좋은 글귀입니까?
"100% 만족보다는 2% 부족할 때가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되새겨 봅니다.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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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