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3 -
우리세대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제가 다녔던 국민학교는 자갈길을 십리를 걸어서 다녔습니다.
비포장된 자갈밭 십리길을 고무신을 신고 등하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체구가 약하거나 여자아이들은 국민학교 입학 년령인 9살에 입학을 하지않고 2-3년 후에 입학을해서 국민학교 동창이 친구의 형과 누나뻘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화단에는 어느 학교나 똑같이 수군장군인 이순신장군 동상과 한글을 창조하신 세종대왕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친 반공소년 이승복어린이 동상이 있었습니다. 
또 책 읽은 소녀상의 석고상과 유관순열사의 동상도 있었다.
학교에서 대변을 성냥갑에 담아오기(회충 검사용), 나락모가지 주워오기, 쥐꼬리 잘라오기, 못자리 나방 잡아서 성냥갑에 넣어오기, 솔방울 가져오기도 했고, 겨울철 난로에 땔깜으로 쓸 장작도 가져오기, 여름방학 마치고 등교할 때 퇴비 가져오기, 자그마한 손으로 봄 식목일엔 나무를 심고, 여름에는 신작로에 동네마다 구역을 정해 코스모스를 심어 가을에는 길가에 자동차가 지나가면 뿌연 먼지속에 한들한들 이쁜 코스모스꽃을 보았으며 학교내에서는 통일동산을 꾸몄습니다. 
우리는 돌멩이 같이 입에서 깨지지않고 녹지않아 단맛을 오랫동안 맛볼 수 있어 이름 붙여진 독사탕, 말랑말랑한 젤리와 유과, 라면땅, 아폴로, 크라운산도 등과 같은 과자와 쫀드기, 달고나, 띠기 같은 불량식품을 먹고 자랐으며 동네마다 울려 퍼졌던 새마을노래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새마을운동이란 것에 익숙해서 어김없이 아침 동틀 무렵 동네 가운데 있는 높은 정기나무에 매달린 주둥이가 커다란 나팔모양의 확성기에서 울려퍼지는 새마을 노래를 듣고 자랐습니다.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바탕으로 생활환경 개선과 소득증대를 목적으로 한한 범국민적인 지역사회개발 운동을 시작하면서 1972년 6월 20일 박정희대통령이 직접 작사한 새마을 노래가 대도레코드회사가 음반을 만들었다.
1절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2절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3절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4절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 조국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이 새마을 노래는 전국적으로 군대에서 기상나팔같이 새벽이면 울려 퍼졌습니다.
나무울타리 담장과 흙담장을 없애고 초가지붕을 기와로 이양하고 울통불통한 골목길을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반듯하게 넓혔다.
파란색 새마을 모자는 필수품이었다.
지금도 베트남 등 동남아 신흥국가에서는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을 모델로 우리나라 지도자들을 초청해서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제 친구가 농촌지도소를 퇴직하고 베트남에서 연수원장을 맡아서 베트남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새마을교육을 시키고 있어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습니다.
새벽 6시에 기상하고 아침체조와 구보를 시작으로 새마을교육을 모델로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교복을 입고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때는 학과목에 교련과목이 있어서 교련복으로 갈아입고 목검으로 제식훈련과 총검술 및 구급법을 익혔고 운동장에서 열병식을 했습니다.
교련복은 군복과 같았습니다.
교련모와 요대랑 각반도 찼습니다.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향도라는 완장을 찼다.
국민학교때도 교복을 입었고,
모자에 학교를 표시하는 교포를 달았으며 웃도리에도 학교를 표시하는 단추를 달았습니다.
바지는 딱 달라붙는 쫄바지에서 일자바지로 다시 나팔바지로 유행을 탔고 중.고등학교 때는 학생주임 선생님께서 등교길에 복장지도를 하면서 나팔바지를 입은 학생들을 혼내키기도 했다.
카라 한쪽에는 교포를 한쪽에는 학년을 표시하는 아라비아숫자의 뺏지를 달았습니다.
시내에는 머리가 긴 장발단속도 있었고,
무릎위로 너무 짧은 미니스커트단속도 있었다.
밤 12시가되면 싸이렌이 울리고 이 때부터 야간통행금지 시간이어서 순찰중인 경찰에 붙잡히면 파출소로 연행되어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4시까지 보내야했다.
아마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통행금지라는 제도가 있었던 것 같다.
야간에 통행이 필요한 사람은 경찰서에서 야간통행증이라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했다.
그러다 1982년에 해제되었다.
또 우리는 운동회 때 "다우다"라는 나이론천으로 만든 백군은 하얀 체육복으로 청군은 파란 체육복을 만들어 입었고 곤봉, 마스게임, 단체무용, 줄달리기, 방울치기, 박터트리기 등 수없이 연습해서 시원한 가을에 접어든 10월 초에 지역잔치인 운동회를 기억합니다. 
체육복은 집에서 어머니께서 재봉틀로 박음질하시고 고무줄을 넣어서 만들어 주셨다.
달리기 계주는 키순대로 7명씩 조를 짜서 키가 작은아이들부터 달리기를했다.
저는 늘 맨 마지막조로 편성되었다.
맨손달리기, 장애물을 통과하는 달리기, 쪽지를 주어서 쪽지에 적힌대로 사람을 찾아서 하는 달리기 등 세가지 달리기가 있었다.
쪽지에 "안경쓴 사람"이라고 적혀 있으면 안경쓴 사람을 찾아 손잡고 달리기를 했다.
"교장 선생님"이라고 적혀있으면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달리기를 하면 된다.
그런데 교장선생님께서는 꼭 넼타이를 매시고 구두를 신고 양복을 입고계셨다.
그래서 빨리 뛰시지를 못했다.
그야말로 복불복이었다.
운동회의 하일라이트는 청백계주였다.
마을단위로 계주도 있었다.
우리는 하교길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왼쪽가슴에 손을 얹고 가던 길을 멈춰서서 태극기가 다 내려질 때까지 엄숙한 자세로 있어야하는 국기 하강식을 했습니다.
어느날 박정희대통령이 지나가는데 군인 한명이 국기하강식을 그냥 지나친 것을 보고 그 부대에 보고하여 영창을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걱정을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을 하지 않는다.
태어나서 부모한테 빚지고
살면서 은행에 빚지고
죽을 때는 자식한테 빚지고
평생 빚만지고 사는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4월 14일
13
7
🧅 양파 양파 양파 🧅
끝까지 보시고 사랑하는
지인님께 다시 보내면 당신은
복 받으시고 150세 무병장수
할낍니더 ㅋ ㅋ
우리 몸에 이렇게 좋다니,
돈도 별로 안들이고
한번 만들어서 복용해도 좋을 듯합니다.
🍒양파즙에 요구르트를 부어서
먹으면 150세까지
건강 자신,
냉장고에 두고 하루 한 잔씩 마시세요🍒🍒

🔹1,
양파의 겉껍질을 벗깁니다.
🔹2,
믹서로 갑니다.
🔹3,
죽상태의 양파(섬유질 덩이)
🔹4,
그냥 먹으면 쓴맛. 매워서 먹기 힘듬
🔹5,
시중에 파는 100원짜리 요구르트를 부어서
잘 저어 냉장고에 하루 재워 준 뒤 복용하십시오.
❣❣양파의 좋은 점 54가지❣❣

🔸1.
양파는 혈액 속의 불필요한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녹여 없앤다.
동맥 경화와 고지혈증을 예방하고 치료한다.

🔸2.
양파는 혈관을 막는 혈전 형성을 방지함과 동시에
혈전을 분해해서 없애 버린다.
그 결과 혈전이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순환기 장애
(협심증, 심근경색, 뇌연화증, 뇌졸중 등)의
질병을 예방, 치료한다.

🔸3.
양파는 혈액을 묽게 하는 작용으로 혈액의 점도를
낮춰 맑고 깨끗한 혈액으로 만든다.

🔸4.
양파는 혈압을 내리는 작용도 현저하다.
그 결과 고혈압의 예방과 치료에 탁월하다.

🔸 5.
양파는 아주 미세한 모세혈관까지 강화한다.

🔸6.
양파는 말초조직에 쌓인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HDL(고밀도지단백) 콜레스테롤을 증가시켜 준다.

🔸7.
양파는 혈당을 저하시키는 작용도 뛰어나 당뇨병을 예방한다.

🔸8.
양파는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시켜 당뇨병을 치료한다.

🔸9.
당뇨병에 의해 생기는 2차적인 합병증인
동맥경화, 고혈압은 물론, 심근경색이나
신장병, 백내장 등을 예방, 치료한다.

🔸10.
양파는 콩팥의 기능을 증진시켜 신장병을 예방, 치료한다.

🔸11.
양파는 정상적인 혈당을 내리는 작용은 없고,
이상이 있는 높은 혈당치에만 작용하며 정상 혈당이 되면
신기하게도 작용을 멈춘다.
그 결과 합성약처럼 저혈당이나 신장 장애를 일으키는 등의
부작용이 전혀 없다.

🔸12.
양파는 간장의 해독 작용을 강화시키는 그루타치온이 많다.

🔸13.
양파는 간장의 해독 기능을 강화하기 때문에 임신 중독,
약물 중독, 알레르기에도 좋다.

🔸14.
양파는 간장을 건강하고 강하게 하며, 신체의 노곤함을 없애주어
변비통이나 피로회복에도 좋다.

🔸15.
양파는 간장의 조혈 기능에도 관여한다.

🔸16.
양파는 알코올 때문에 많이 소모되는 비타민B1의 흡수를 높이고,
주독(酒毒)을 중화하여 간장을 보호해 준다.

🔸17.
양파는 눈의 피로로 두통이 생겨 책을 오래 읽지 못하는
상태를 예방하고 치료한다.

🔸18.
양파는 눈의 각막이나 수정체가 흐려지는 백내장을 예방한다.

🔸19.
양파는 각막이나 수정체의 투명도가 나빠져 발생하는
각종 각막 질환의 장애 회복에 매우 좋다.

🔸20.
양파는 세균 속의 단백질에 침투하여 살균, 살충 효과를 낸다.

🔸21.
양파는 대장균이나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을 비롯한
병원균을 죽인다.
그 때문에 소화 불량에도 좋다.

🔸22.
양파는 살균력이 뛰어나 습진이나 무좀 등에도 아주 좋다.
또 양파의 살균 작용은 익혀도 변함없다.(마늘은 불안정함)

🔸23.
양파는 충치로 이가 아플 때, 갈아서 충치 안으로 넣어 두면
통증이 멎는다.

🔸24.
양파는 생것을 3~8분간 씹으면 입 안이 완전한 멸균 상태가 된다.

🔸25.
양파는 결핵이나 콜레라 등의 전염병을 예방, 치료에도 사용된다.

🔸26.
양파는 살균력과 해독력으로 육류의 부패를 막는다.

🔸27.
양파는 현대의학도 해결하지 못하는 체내의 중금속을
해독, 분해시켜 체외로 배출시킨다.

🔸28.
양파는 칼슘도 많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도
성장호르몬과 같은 작용 때문에 성장기 어린이에게 아주 좋다.

🔸29.
양파는 지방의 함량이 적으며 채소로서는 단백질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다이어트에도 좋다.

🔸30.
양파는 칼슘과 철분의 함량이 많아 강장 효과를 돋우는 역할을 한다.

🔸31.
양파는 감기 퇴치 기능이 있는데 생으로든, 익히든
끓이든지 해서 실제로 지난 수세기 동안 감기약으로 사용되었다.

🔸32.
양파는 목의 식도나 폐의 기도에 달라붙은 불필요한 점액들을
몸 밖으로 제거하는 거담 작용을 한다.

🔸33.
양파는 코가 막힐 때, 즙으로 만들어서 조금씩 마시면 트인다.

🔸34.
양파는 기도의 가래를 제거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침에도 좋다.

🔸35.
양파는 소화 촉진, 변비, 생리 불순, 유방 종양,
대머리 등의 예방과 치료에도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

🔸36.
양파는 불면증에도 좋은데 양파를 먹어도 되지만
생양파를 썰어서 머리맡에 놓고 자도 효과가 있다.

🔸37.
양파는 아기들이 경풍을 일으킬 때,
양파를 잘라 입에다 대주면 씻은 듯 가라앉는다.

🔸38.
너무 마음이 긴장될 때 생양파를 먹으면 된다.
날양파의 매운맛과 향기가 연수에 작용하여 정신을 안정시킨다.

🔸39.
양파는 허약 체질이나 신경쇠약에도 아주 좋아
원기 회복이 필요한 환자의 식이로 적당하다.

🔸40.
양파는 혈액을 정화하기 때문에 피부 미용에 좋고
잔주름을 예방한다.

🔸41.
양파는 자궁 수축에 의한 분만 촉진에도 작용하기 때문에
임산부의 산고에도 좋다.

🔸42.
양파의 성분 중, 비타민 A는 정자의 생성에 필수이며,
비타민 B1는 성 활동을 장악하는 부교감 신경의 기능을
왕성하게 한다는 것이 밝혀져 남성들의 정력 강장제로 탁월하다.

🔸43.
양파는 비타민(특히 비타민B1)의 흡수를 촉진시키기 때문에
다른 채소, 과일과 섞어 먹으면 피부 미용은 물론 스테미너에 더욱 좋다.

🔸44.
양파는 마늘과 함께 동식물체를 구성하는 중요 성분인
유지(油脂)의 산화를 억제하는 작용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피부 노화나 인체의 노화가 산화작용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아
결국 양파가 장수에도 기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5.
양파는 단것보다는 매운 스트롱 계열의 것에
약리 효과가 뛰어난 유효 성분이 많다고 밝혀졌다.

🔸46.
양파의 요리법은 매우 많은데 어떠한 찌개와 반찬에도
향미료로 곁들일 수 있다.

🔸47.
양파는 지방의 산패를 막기 때문에 사용한 튀김기름에
양파 몇 쪽을 튀겨 내면 비린내가 사라지며 오래 보관할 수 있다.

🔸48.
양파의 독특한 향과 자극적인 냄새는 육류나
생선요리의 비린내를 없애 주기 때문에
조미료로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야채이다.

🔸49.
육류와 궁합이 잘 맞는다.

🔸50.
양파는 비타민의 흡수를 도와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과일과도 궁합이 아주 잘 맞는다.

🔸51.
양파는 날 것과 굽거나 튀기거나 삶거나 말리거나 한 것과
그 약용 효과에 있어서 하등 변화가 없다.

🔸52.
양파의 뛰어난 점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다.

🔸53.
양파의 유효 성분은 안정되어 있어서
장기간 보존을 해도 변화하지 않는다.

🔸54.
새집에 페인트 냄새 등 잡냄새가 날 때 양파를 한 공간에
3~4개 생양파를 껍질을 벗겨서 칼로 잘라서 방바닥 등에
신문지를 깔아 놓고서 양파를 널어 두면은
페인트나 잡냄새를 없앨 수가 있다.
끝까지 잘 보셨나요.
양파가 우리에게 좋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많이 좋은 줄은 이제서 알았네요.
많이 드시고 건강하게 즐겁게 사셔유~
6월 13일
38
24
7
임실군 지역에 윷놀이를 통해
2023.9.28(목)16:36 현재
총점 8,900점 기여
제일 잘 나왔네요.
걸 + 윷 + 걸 =1,000점
팜모닝을 통해 지역대항 윷놀이를 접하고 보니 그시절이 생각난다.
자녀들이 어릴때만 해도 추석명절이면 신문지 또는 달력을 뜾어 윷판을 그려 놓고, 윷은 탱자나무를 잘라 멋진 그림을 곁들여 만들어서
부모님, 형제자매, 조카들까지 빙 둘러 앉아 팀을 나누어
모야~윶이야~집안이 떠나가도록 목청 것 함성을 질러대던 때가 엊그제 같다.
딴 판돈은 모두 부모님 용돈으로 드리니 그 누구도 불만이 없다.
요즘은 집은 물론 산과 들, 냇가에서 조차 소리질렀다간 고성방가로 삭막한 세상이 되었다.
♥ 지금까지 전북에 8,900점을 더했어요!
9월 28일
이제야 퇴원하는 날입니다.
식후에 실밥뽑고 수술분위에 밴드로
붙시고는 병원 치료는 마무리 했 습니다.
퇴원 수속이 늦어 짊니다.
오늘 퇴원 환자가 많아서 늦을거라고
했는데 11시가 지났는데도 오리무중
이네요. 병실로 구내 전화로 연락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기디리고
있습니다.
오후에 치과에 예약되어 있는데 급한것은 이닌데 평상복 입고 배드에
앉아 있으니까 기다려 짊니다.
거제 동생이 오후2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잠시 잇발 치료 받고 집으로
갈 예정인데, 원무과에서 연락이 없네요.
12시가 되어서 간호사실로 연락왔습니다.
1층 원무과로 내려가 번호표 뽑아 또
기다렸다가 점심시간 직전에 마지막으로 서류 절차 마무리 하고,
밖으로 나와 목발 집고 운동 삼아
걸어서 가까운 ^다이소^ 점에서
몇가지 생필품 사서 돌아오는데
마침 슈퍼마켓에 들러 막걸리랑
소세지를 안주 삼아서 한 잔했는데
도저히 맛이 없어 그냥 쓰러기 통에
버리고 병원까지 왔어 치과 치료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간단하게
치료받고 거제서 동생내외가 병원에
도착해서 기다렸다가 병실에 있는 가방과 간호사실에 서류하고 챙겨서 집으로 오는길에 식육점에서
삼겹살 돼지등뼈 구입해 왔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집사람이 과메기 준비해 식탁에 차려 놓았는데,
동생 내외랑 같이 삼겹살에 과메기랑 속배추에 김까지 겹드려서 밥 한 공기도 비웠다.조금 아쉬운 것은
환자라고 소주는 금주 동생도
발에 기브스 상태라 같이 금주
대신 아낙네는 좋다고 - 중략-
마을에 중모님 큰형수 뒷집 아지매
께서 오셔서 고생 많았다고 하시면서
인사차 잠시 앉아서 커피 한 잔 대접해 드리고 말씀 나누시다가 시간이 조금 늦어서 다들 집으로
가시고, 피곤한 몸으로 긴장한 하루를
뒤로하고 쉬었습니다.
22년 12월 30일
7
4
3월 16일(목) 재미로 보는 운세🍀
쥐띠 🐭
52세 남의 말에 흔들리는 모습 보기에도 안좋으니 중심 바로 하고
64세 금전 문제는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 분명히 전달하도록
76세 건강에 장애 생기니 호흡기 질환 등에 각별히 주의하도록
소띠 🐮
51세 투자이익 생기나 더 이상은 위험하니 일단 빠져나오도록
63세 사소한 이익이라도 챙기는 것이 후회 없는 선택이고
75세 무리하지 않아도 잘 해결되니 믿고 기다리면 좋은 결과가
호랑이띠 🐯
50세 투자 등의 일로 고민하나 이롭지 않으니 자제하고
62세 투자에 손해 생기니 과도한 집착은 버리는 것이 좋을 듯
74세 기획부동산 등은 매수하지 않는 것이 좋으니 사기 등에 주의하도록
토끼띠 🐰
49세 건강장애로 병원 찾을 일 생기니 치료에 소홀하지 말고
61세 집단 전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 잘하도록
73세 중심이 흔들리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니 마음 중심 바로 하고
용띠 🐲
48세 순간의 이익에 사로잡히면 관재구설 생기니 조심
60세 남의 환경을 이용하는 일 지나치면 문제 생기니 조심
72세 안되는 일은 멈추는 것이 이로우니 무슨 일이든 억지 부리지 말기를
뱀띠 🐍
47세 명예 구하는 일 지나치면 독이 되니 지나침 없어야
59세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니 원칙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 좋을 듯
71세 남의 일에 개입하면 화를 부르게 되니 출행 자제하도록
말띠 🐴
46세 주변 사람 협조받는 것이 더 많은 이익 남기는 길
58세 어렵고 힘든 이웃 방치 하지 말고 성심껏 도와주도록
70세 어려운 일 하나둘 풀려나가고 새로운 길이 열리니 힘차게 출발을
양띠 🐑
45세 마음이 바르면 좋은 길이 열리니 확신 갖고 출발을
57세 건강이 회복되고 편안해지니 가족의 도움 있을 터
69세 말 한마디가 타인에게 큰 힘이 되니 적극적으로 이행을
원숭이띠 🐵
44세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
56세 이동문제로 고민하나 당장의 이익에만 매달리지 말고
68세 집안에 경사스런 일 생기니 자손 키운 보람 있을 터
닭띠 🐔
43세 사소한 일로 지인과 쟁투하는 일 관재로 이어지니 참고 넘어가도록
55세 사소한 질병이라도 방치하지 말고 치료 잘 받도록
67세 집안 문제 나 몰라라 하지 말고 바로 해결 짓도록
개띠 🐶
42세 경우에 없는 행동은 하지않는 것이 후한 막는 길이고
54세 남을 속이면 책임질 일 생기니 바르게 하루를 살고
66세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것이 좋으니 말 한마디 신중히 하고
돼지띠 🐷
41세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하게 되니 건강관리 잘하도록
53세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니 마음의 안정을 찾는 일이 중요
65세 마음이 급하면 실수하게 되니 주변 사람 협조받도록
출처 http://m.kyeongin.com/view.php?key=20230316010002886
23년 3월 16일
6
Farmmorning
남쪽나라 영암쪽입니다.
수익성과 무난하게 재배할수있는 과수목을 찾고있습니다.
21년 9월 3일
2
⏜ི꧁꧂⏜ི꧁꧂
╭🌸🍃ྎᭂ͡🌸╮╭🌸🍃ྎᭂ͡
╰🍃ྎᭂ͡╯╰🍃ྎᭂ͡🌸 🍃ྎᭂᭂ͡🌸🍃ྎᭂ͡
🎋말의 지혜🎋
어느 병원의 로비에 걸려 있는 글
 "개에 물려 다친 사람은
반나절만에 치료를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뱀에 물려 다친 사람은
3일만에 치료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말(言)에 다친 사람은
아직도 입원 중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5살 때부터 가르치는 조기교육 ‘토라’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말에 대한 7계명.
1. 항상 연장자에게 발언권을 먼저 준다.
2. 다른 사람 이야기 도중에는
절대 끼어 들지 않는다.
3. 말하기 전에 충분히 생각한다.
4. 대답은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여유있게 한다.
5. 질문과 대답은 간결하게 한다.
6. 처음 할 이야기와
나중에 할 이야기를 구별한다
7. 잘 알지 못하고 말했거나
잘못 말 한 것은 솔직하게 인정한다.
아무 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그대로 말을 한다면
곤란한 상황이 많이 벌어지게 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배려와 존중의 말💞
가정에 충실한 남편이
아내의 생일 날
케이크를 사들고 퇴근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한쪽 발을 쓸 수가 없었다.
아내는 발을 절고 무능한 남편이 싫어졌다.
그녀는 남편을 무시하며
'절뚝이' 라고 불렀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절뚝이 부인' 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창피해서
더 이상 그 마을에서 살 수가 없었다.
부부는 모든 것을 정리한 후,
다른 낯선 마을로 이사를 갔다.
마침내 아내는
자신을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을 무시한 것이
얼마나 잘못이었는지 크게 뉘우쳤다.
그녀는 그곳에서
남편을 '박사님' 이라 불렀다.
그러자 마을 사람 모두가
그녀를 '박사 부인' 이라고 불러 주었다.
'뿌린 대로 거둔다.'
참 마음에 와 닿네요.
상처를 주면 상처로 돌아오고,
희망을 주면 희망으로 돌아온다.
남에게 대접 받고 싶은 만큼
먼저 대접할 줄 알아야 한다.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 보다 깊다'는
모로코 속담이 있다.
🎈'말은 깃털처럼 가벼워
주워 담기 힘들다.' 는
탈무드 의 교훈도 있다.
상대를 낮추며
자신을 올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상대를 무시하면
자신도 무시 당하게 끔 되어 있다.
🌈배려와 존중의 말로
자신의 격을 높여가도록 합시다.
🌟❄🌟❄🌟❄
🔥함께 한다는 것
https://m.cafe.daum.net/dgobclub/SQfj/426?listURI=%2Fdgobclub%2FSQfj
친구가 보내준 좋은글이라 올려봅니다
23년 3월 16일
4
1
🍄정보
⭐ 수세미의 효능
1. 오십견 완화;;
오십견으로 신체의 일정 부분에 지나치게 아픔이 느껴진다면 수세미를 드시는 것이 좋다.
수세미는 자연스러운 오십견 증상을 완화시키는 수세미의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팔이나 다리가아플 경우 활용해보세요.
2. 천식 치료;;
천식 치료에도 수세미의 효능이 좋다.
特히 수세미는 잦은 기침이나 목에 끓는 가래를 완화시키는데 좋아 천식 치료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3. 설사 완화;;
평소 장이 좋지 않아서 설사가 잦았다면 지사제약 대신 수세미 우려낸 물을 음용해보시길 바랍니다.5~10g가량의 수세미를 넣고 물에 우려내 드시면 장이 건강해지면서 장염도 사전에 막을 수 있고 설사도 그치게 하는 수세미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4. 비염 치료;;
비염에서 코 안에 고이는 콧물을 그치게 하는데에는 수세미의 효능이 탁월하다.
수세미 우려낸 물을 자주 음용하실 경우 콧물이 그치면서 코가 시원하게 뚫리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5. 피부병 개선;;
가려움증을 동반한 피부병에는 수세미 줄기
를 잘라 우려낸 물[수액]이 도움이 된다.
환부에 우려낸 물을 발라주시면 가려움증이 없어지면서 깨끗하게 피부병이 치료되는 수세미의 효능을 보실 수 있다.
또한 미백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수세미 줄기 우려낸 물에 꿀을 첨가해서 피부를 씻어주시면 피부의 수분기가 오래
남아 촉촉한 피부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6. 소화 향상;;
소화 능력에도 수세미의 효능이 관여하는
데, 평소 신체 내부 장기가 약하여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면 수세미 씨를 빻아 분말로
3~5g가량 복용하실 경우 소화력이 향상되는 수세미의 효능을 확인하실 수 있다. 수세미 분말은 술과 섞어 드셔도 좋다.
7. 회충 제거;;
수세미의 효능은 때로 천연 구충제 역할을 하는데, 체내의 회충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수세미 오이씨를 1일 40~50알 가량 복용
해주시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때 수세미의 효능을 보시기 위해 유의하실 점은 수세미 씨 껍질을 제거한 후 드셔야 한다는 점이다.
8. 신장염 치료에 도움;;
이뇨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만성 신장염일 경우 수세미의 효능이 도움이 된다.
수세미 줄기를 물에 우려내어 복용하시거나 수세미 줄기를 잘라 채취해낸 액을 틈틈히 드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렇게 지속적으로만 해주시면 수세미의 효능으로 신장이 회복되고 신장의 이상
으로 부어 있던 몸의 붓기가 빠진다고 한다
⭐수세미 민간요법
1. 만성 비염;;
묽은 콧물이 나오고 냄새를 잘 맡지 못할 때 수세미 줄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10∼15g을 물에 달여 먹는다.
2. 기관지천식;;
수세미는 불교의학에도 나오는 천식약
으로 달여 먹어도 좋고 생것을 즙을 내어 복용해도 치료 효과가 높다.
3. 기관지염;;
수세미와 알로에를 같은 양으로 즙을 내어 먹는다.
4. 장염;;
수세미 열매 10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이거나 생즙을 내어 1일 2~3회 1주일 정도 복용한다.
5. 오십견;;
말린 수세미의 열매를 가루 내어 매일 10g씩 먹는다.
6. 습진;;
수세미 꼭지를 가루로 만들어 참기름에 개어 바른다.
7. 거칠어진 피부;;
어린 수세미를 생즙을 내어 그 물로 1일 2~3회씩 10일 이상 바르거나 가을에 줄기에서 유즙을 받아 수시로 바르면 아주 효험이 있다.
8. 축농증 환자;;
적당한 양의 수세미넝쿨을 보드랍게 가루 내어 찬물에 타서 하루에 3번 먹는다.
9. 헛배가 부를 때;;
수세미씨를 약한 말린 다음 보드랍게 가루 내어 한 번에 3~5g씩 술 한잔에 타서 먹는다.
수세미 오이는 복수도 잘 빠지게 할 뿐 아니라 헛배 부른 것도 잘 낫게 한다.
10. 아이들의 아토피 피부염;;
수세미액을 복용과 동시에 피부에 바름으로 좋은 효과를 얻는다.
11. 신경통;;
가을에 추출해낸 수세미 원액에 설탕을 넣고 함께달여서 하루에 3회 소주잔으로 1-2잔씩 마시면 통증을 가라앉힌다.
12. 기침;;
수세미즙이나 원액 1홉에 설탕을 적당히 넣고 졸여, 이를 하루분으로 하여 한동안 계속하여 마시면 효과가 있다.
13 목이 부었을 때;;
목 안이 부어 올랐을 때는 수세미즙이나 원액을 마시면 신기하리 만큼 좋아진다.
14. 두통;;
수세미즙 원액 1홉을 하루분으로 하여 2~3회 나누어 마시면 자연히 낫는다.
15. 땀띠, 손발 트는데, 화상;;
수세미즙이나 원액을 평소에 화장수로 쓰면 땀띠나 손발이 트는 일이 없으지며 화상에도 좋다.
16. 모유가 잘 나오지 않을 때;;
말린 수세미 열매를 가루를 내어 1일 10g 정도를 더운 술이나 물에 타서 3~4일정도 마신다.
17. 요통;;
수세미의 뿌리를 볶아 가루를 만들어 1회에 5~6g씩 먹거나 수세미의 줄기를 하루 30~40g씩 물에 달여 2~3회에 나누어 먹는다.
18. 복통;;
말린 수세미를 가루로 만들어 10g 쯤을 술로 마시면 심한 복통에도 잘 듣는다.
19. 가래(담);;
수세미 줄기에서 받은 물(수액) 1홉을 하루분으로 하여 2~3회 나누어 마시면 유효하다.
20. 비염.축농증;;
묵은 수세미 넝쿨을 가루를 내 하루에 3번 1숟가락씩 복용, 어린 수세미 열매를 즙을 내거나 말린 뒤 끓여 먹어도 좋다.
21. 황달;;
수세미의 씨를 볶아서 만든 가루를 1회 2돈씩 하루 3회 개어서 복용하면 유효하다.
21. 견비통;;
어깨 관절이나 주위의 근육, 힘줄의 노화 현상이 견비통인데 잘 익은 열매를 햇볕에 말려 가루를 내어 매일 10g씩 먹으면 효과가 좋다.
22. 월경불순(생리통);;
말린 수세미 가루를 한번에 1숟가락씩 하루3회 술이나 물에 타서 마시면 효과가 있다.
23. 변비.정장.건위;;
수세미즙이나 원액을 마시면 장을 깨끗이
하며 위를 튼튼하게한다.
24. 기미.주근깨;;
수세미씨를 가루로 만들어 수세미 수액이나 꿀 등에 개어 얼굴에 바르면 (팩) 효과가 좋다.
🌰 정보
01)
https://youtu.be/zGQzbTLK50Y
02)
https://youtu.be/ZQBz2PchiIk
03)
https://youtu.be/a0CG7wTlWdM
04)
https://youtu.be/VPKFRYyULPY
05)
https://youtu.be/zEatnYugpIs
06)
https://youtube.com/shorts/qYRqj9NNZ44?feature=share.
.07)
https://vt.tiktok.com/ZSLgqKAeH/
08)
https://youtu.be/07YxGkbRnCE
09)
https://youtu.be/-KpLxlBXl6Q
10)
https://vt.tiktok.com/ZSLqc2tUg/
🥥언제나 建강×행福하세요^^
🥬🥒🥕🌽🌶🫑🍅🍊🍉🍇🍓🌰🥜
23년 8월 22일
3
2
우리들 이야기= 다섯
조선 영조 때 이사관
서울 정동에 고려 말 충신 이색의 14대손 이사관(1705~1776)이 살고 있었다.
승정원 동부승지 벼슬을 하다 물러나 한가한 생활을 하던 그는 급한 볼일이 생겨 고향인 충청도 한산에 가게 되었다.
갑자기 몰아치는 눈보라에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
예산 근처에 이르렀을 때는 유난히 기온이 떨어져 얼어 죽을 지경이었다.
눈을 헤치며 걸음을 재촉하던 이사관이 어느 산모퉁이를 돌다보니
다 헤진 갓에 입성마저 추레한 한 선비가 쩔쩔매며 서있고 그 옆에는 부인인 듯한 젊은 여인이 무언가를 끌어안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이사관이 다가가 보니 놀랍게도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사관이 “뉘신지 모르겠으나 여기서 왜 이러고 계시오?”
라고 물으니
추레한 선비가 안절부절하며 
“아내가 해산일이 가까워 처가에 데리고 가려고 나섰는데 그만 여기서 몸을 풀었지 뭡니까.
이런 날씨에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고
이 험한 날씨에 산모와 어린 것이 생명을 부지할지 모르겠구려!
아이고 이를 어쩌나?”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타한다.
이사관은
“아이구! 저런! 큰일이구려!” 라고 한 뒤 자신이 입고 있던 값비싼 양털 가죽옷을 벗어 아기와 산모에게 덮어주고 선비를 재촉하며 마을을 찾아 나섰다.
어느 마을에 도착하여 급한대로
방 한칸을 빌리고 집주인에게 두둑히 돈을 주고 산모의 방에 군불을 뜨겁게 지피도록 하고 미역국을 끓여 산모의 허기를 면하도록 해주었다.
가난한 선비는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하며 이사관의 손을 잡고 
“노형께서 도와 주시지 않았다면 아내와 어린 것이 큰일을 당할 뻔 했습니다.
이 큰 은혜를 어떻게 갚아 드려야 할지모르겠습니다.” 라고 한다. 
“남의 곤경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아무쪼록 가시는데 까지 무사히 가시구료.” 
이사관이 길을 떠나려 하자 한사코 이름을 묻는다.
“정동에 사는 이사관이라고 하오.”
이후 이사관은 이 일을 잊어버렸지만 가난한 선비는 가슴속 깊이 이사관 이름을 새겨 넣었다.
가난한 선비는 몰락한 양반가 자손 충청도 면천의 생원 김한구(1723~1769)였다. 
그로부터 십 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
김한구는 여전히 가난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가난에 견디다 못해 먼 친척 아저씨뻘 되는 당시의 세도 재상인 김흥경에게 의지하려 길을 나섰다.
김흥경은 친척 조카뻘 되는 김한구를 딱하게 여겨 이따금 쌀가마니 정도를 도와주곤 해서 겨우 연명하며
서울 생활을 견딜수 있었고
가끔 아저씨 사랑방을 찾아가 놀다 오곤 했다. 
마침 김흥경의 생일날 이 집의 사랑방에는 찾아온 축하객들이 아침부터 북적였다.
대부분 높은 벼슬아치거나 신분이 쟁쟁한 사람들이었는데
그 속에 김한구도 한쪽 구석에 여전히 초라한 모습으로 끼어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는 관상을 잘 보는 것으로 장안에 유명한 문객도 섞여 있었는데 문득 주인대감 김흥경이 심심 파적으로 
“여보게 음식이 들어올 때까지 여기 계신 대감들의 신수나 보아 드리게."
라고 했다.
문객이 이사람 저사람 관상을 보아주었을 때 김흥경이 웃으며 말했다.
“여보게 저기 윗목에 앉아있는 김생원은 내 조카뻘되는 사람인데 언제쯤이나 사는 형편이 나아질지 보아 주게나.”
그 말을 들은 문객은 김한구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더니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큰절을 하고 말했다.
“생원님의 고생은 이제 다 끝났습니다.
오늘부터 좋은 일이 시작되어 불과 10여일 안으로 대단한 벼슬 운이 트일겁니다.”
이 말을 들은 방안의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사람 팔자는 모른다는 말이 있지만 기적이 생기지 않는 한 가난의 때가 쪼르르 흐르는 보잘 것 없는 궁짜 낀 선비가 열흘 안에 높은 벼슬을 받게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이때는 나라에서 과거를 보는 시기도 아니며 설사 과거에 갑자기 급제한다 해도 미관말직에서 벼슬이 시작되는 것이지 높은 지위를 부여받는 길은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조롱하며 웃음을 터트리자 문객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지금은 모두들 웃으시지만 며칠만 두고 보십시오.
여러 대감님들도 생원님께 절을 올려야 하는 처지가 되실 겁니다.”
나중에 문객이 한 이 말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다.
때문에 가벼운 농담 정도로 생각하던 대신들이 웃음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는데
주인대감 김흥경이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리고 마침 잔칫상이 들어오는 바람에 분위기가 겨우 수습되었지만 당사자인 김한구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고 음식도 못 얻어먹고 황급히 자리를 떠야 했다.
자기 때문에 분위기가 망쳐질 뻔했기 때문이다.
“에이 참! 오늘 재수가 없으려니
그 점쟁이가 미쳤나?
왜 그런 당치도 않는 소리를 해서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나?
오랜만에 주린 뱃속에 고기구경좀 시켜주려 했더니 그놈 때문에
다 그르치고 말았네!”
투덜거리며 집에 돌아와 보니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금년 들어 열여섯 살인 딸이 왕비 간택의 대상으로 뽑혀 대궐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아이가 지난날 눈이 쏟아지던 길바닥에서 태어나 이사관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진 그아기였다.
아이가 용모가 뛰어나고 총명했기에 은근히 부잣집에 시집보내 그 덕을 좀 보려는 욕심도 있던 김한구였다. 
당시 영조는 이미 예순 다섯 이었으나 정정했고 늘그막에 중전인 정성황후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나라의 법도상 국모자리를 비워둘 수 없어 영조는 대신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간택령을 내리게
된 것이었고,
가난하지만 뼈대있는 가문이었던 김한구의 딸도 후보자 중 한명이 되었던 것이었다. 
간택일이 되자 백 여명의 후보 규수들이 대궐로 모였고 영조가 친히 접견하여 그 중 1명을 선택 하였다.
김한구의 딸의 미모에 혹한 영조가 그녀의 사주단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고는 
“면천 태생인 김선비의 여식이라
애비는 김한구, 본관은 경주, 조상은 효종 때 바른 말 잘하기로 소문난 유명한 김흥욱이란 말이지?
흠! 이만하면 문벌도 괜찮구나!”
결국 간택을 받게 되었다. 
김한구는 문객의 예언대로 정일품 보국승록대부 오흥부원군의 작위를 받았고 신분이 하늘처럼 높아져 금위대장 병부까지 하게 되었으며 아들과 아우까지 벼슬을 얻었다.
오두막살이에서 1백여 칸의 고래 등 같은 집으로 옮겨 살게 되고 죽으로 끼니를 때우는게 어려운 생활에서 초호화판 생활로 갑자기 바뀌었다.
문객의 말이 제대로 맞은 것이다. 
김한구는 잊지 않고 딸에게 청을 넣어 은인인 이사관은 호조판서가 되었고 이어 영조 48년(1772년)에 우의정에 이어서 좌의정에 오르게 된다.
옛날 베푼 은혜가 큰 복이 되어 돌아온 셈이요,
김한구는 은인에게 제대로 된 보은을 하게 된 셈이었다. 
이래서 세상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있는 듯하다. 
오늘날의 세상은 자기 배만 부르면 남이 어떠하든 관심없고
친척과 이웃과 국가를 위하는
마음이 없는 삭막한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하늘이알고 세상이 아는법.
복을받는 사람은 넉넉한
마음으로 친척과 이웃을 잘 대접하는 사람인 것이 하늘의 이치 아니겠는가?
https://youtu.be/Hl44Q8IAa9U?si=g3U61QN9Ji1uh8Nz
2월 15일
39
17
3
안녕하세요
가입하고 들어와서 보니 조건 다갖춘 전문 귀농민들이셔서 엄두가 나질않아 눈팅만 하다
일도있어 자주와보지 못하다 유령회원탈퇴ᆢ하긴 아쉬워 눈팅만해도 좋아서 다시 들어왔네요 어중찮은 텃밭가꾸기 기계없이 쬐끔해보면서 농부 흉내내보니 엄청 힘들더라구요 손수손으로 다하고 밭아닌 임야(과수원옆이라 나작한산)라 밭만들기 20년 심어놓은편백나무들은 엄청 자랐는데 밭만들기 평수는 쬐끔 감자도 몇골 심어보고 고추몇개 토마토 오이 참외 몇개씩 고무마2줄 심었더니 고라니랑 반 갈라먹자 했더니 고라니가 다 먹더라구요 이제는 과실나무 종류별ᆢ욕심은 엄청내어봤네요 모든게 여건이 잘 맞지않아 이래도 해보고 저리도 해보고 아저씨 퇴직맞춰 별의별일을 다해봤네요 제대로된 땅은 너무 멀리(충북)
거주지는 경남창원 망설이다 앞주에 바람쐬듯 놀이삼아(말이 놀이삼아지요) 허허ᆢ700평중 600평에 고구마전용비료10포 뿌려서 밭갈이 골타기 멀칭 부탁해서 하고 비오는날 맞춰서 아저씨 어머니 저 고구마 80단 옥수수70개 두판 동네할머니들 3분 오셔서 도와주시고 해서 하고 끙끙앓으며 창원 내려왔다 다음날 창원에서 다시 충북올라가서 2일째 3분1남은곳 비 흠뻑맞으며 다 심어놓고 아저씨랑 마무리하고 내려왔습니다 애라 이제 몰것다 잘되어주기만 바래봅니다 최소 10일에 한번씩은 올라가리라 생각합니다 캐는거 파는거는 잘 모르겠습니다 1년사이 너무 많은일을 했어요
창원엔 밭으로 되어있는 임야 300평정도에 황칠나무 120그루 심어놨어요 22년에 임업인등록도 해놓고 올해는 농업인 등록 목푭니다 여유있는돈을 들여하는게 아니라 소박하게 하는거라 많이 배워보려합니다 길게 쭉 썼습니다 이해해주시고 초보자얘기 읽어주셔 감사해요
자주 엿보겠습니다 해놓고 동영상으로 찍었다보니 사진이 마땅찮네요 구경만 해주셔요
23년 5월 10일
5
4
Farmmorning
고령운전자 후미추돌 사고 후기입니다.
부산에 집이 있고 남창 인근에 2필지 200여평 조금 안되는 텃밭을 가꾸며
드문드문 활동하고 있는 도시농부 입니다.
TV에서나 보던 고령운전자 사고를
어처구니 없이 당하게 되었네요.
대형면허 경력자(5톤부터 25톤)이기도 하지만 항상
정체구간에선 비상깜빡이 켜고 후미차량에
알리면서 룸미러로 후미차량 주시하며 다닌
덕에 사고없이 잘 다녔는데
제가 그 TV에나 나오는 사고에 주인공이
될줄은 몰랐네요.
80 언저리 되시는 QM 6 어르신
경사도 좀 있는 커브 구간인데
그냥와서 쎄리 박아버리네요.
교통량이 많은곳도 아니고 앞차량
5톤 카고에 굴삭기를 싣다보니
속도가 줄어 정체 되고 정차한 마지막 차량이였는데
정차하고
몇초만에 후미추돌 당했네요.
정차하고 불과 몇 초만에 사고가 나
영문도 모르고 지진 난줄 알았네요.
정차가 아닌 주행중인 차량으로 인식했다며
고바위 차고 올라가려고 탄력 붙여
브레이크도 안 밟고 그냥 마~
쎄리 박아서
차는 2주 렌트비 포함
450정도에 수리 마쳤는데
충격으로 인한 목 통증과 허리 통증땜에
다리까지 방사통이 와서
한방병원에 1주일 입원하고
(올 해 법 바껴서 어디 부러지거나 의사의
추가 입원 치료 소견 없으면 타 병원 전원도 안됨)
사고 다음날부터 사고 충격으로 인한 통증과
으슬으슬 추운 오한과 해질녘이면
몸살할때처럼 산발적으로 여러부위 뼈마디가 쑤시고 아픈 증상이
나타나더니
3주차인 지금까지도 많이 호전되긴 했지만
힘이 드네요.
상대보험사는 2주치 한방병원비(올해 법이 바껴서 합의 보고와도 바로 의보 적용 안되고
자동차보험 자보 금액으로 3~4주 지나야 의보처리 된다네요)
도 안되는 금액을
제시하네요.
한방병원 물리치료 전기치료 및 부황
약침 외 실비 가입자는 자비로 계산하고
도수치료며 추나 영양제 다 받을수 있지만
상대 자보로 도수나 추나 각종 추가 벌침이니 이런건
상대보험사에서 사고로 인한 치료 입증이 힘드니 환자 자부담으로 하고 상대 보험사랑
알아서 하라는 방식이네요.
사고를 대비 해 드는게 자동차보험이지만
한 번 망가진 몸은 회복이 너무 더디고 힘드네요.
추가로 적자면 한방병원에 대부분이 60이상
실비 있으신 분들이며 정형외과처럼
휠체어 타고 다니는분 한번도 못 봤고
회진도 없으며 혈압이나 체온 체크도
코로나나 특이증상 없으면
없습니다.
젊음분들 호캉스가듯 교통사고로 상대방
보험사 나올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실비가 왜 해마다 오르는지 이유를 알게
된 계기네요.
정상까진 아니라도 오한과 산발적인 뼈마디
쑤시는 증상이 어느정도 사라질 줌
처음 제시한 합의금 근처로 쇼부 보려합니다.
당근님들 안전운전도 중요하지만
방어운전도 진짜 중요합니다.
한 번 다친 몸은 아무리 의료기술이 좋아졌다지만 사고 전 컨디션으로 돌어가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방어운전 필수입니다.
사고내신 그 어르신 보험불러 사고 처리 후
차량 운행 가능해서 직접 운전해서 가셨어요.
10월 25일
6
4
1
Farmmorning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는 지금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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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다니던 시절, 한쪽 다리가
불편한 여성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눈에서 푸른빛이 튀어 나올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했다.
그리고 판사가 됐다.
어느 날 판사실을 찾아 간 내게 그녀가
한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양다리만 성하다면 차라리 파출부나
창녀가 돼도 좋겠다"고.
그들은 걸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다고 했다. 그들에게 걷는다는
것은 놀라운 기적의 영역이었으며
행복의 기본이었다.
뇌성마비로 육십 평생을 누워서 지낸
여성을 변론한 적이 있다.
몸은 마비됐지만 머리가 비상하고
정신도 또렷했다. 그녀는 크로스비 여사 같이 전 기독교인의 사랑을 받는
찬송가를 만든 시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자각하고서부터
자살하고 싶어도 혼자서 죽을 능력이
없어서 살아왔다고 내게 고백했다.
약국으로 걸어갈 수도 없고 강물에 빠져 죽을 수도 없었다고 했다. 혼자 방안에서 일어나 목을 매달 수도 없었다. 그녀는
말도 못했다. 한마디 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한다. 그래도 말은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일어나 앉을 수만 있어도 더 큰 행복은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와서 그녀를 돌보던 여자는 “혼자 화장실을 가고 목욕할 수 있는 게 큰 복인 줄을 전에는 몰랐다” 고 내게 말했다.
내가 잘 아는 영화감독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소리가 사라졌다. 들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의사들은 귀의 기능에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게 됐다. 그를 만났을 때 공허한 웃음을 흘리면서 그는 내 입술을 보았다.
내가 말하는 의미를 알아채기 위해서였다. 옆에 있던 그의 부인은 내게 남편이 다시 들을 수만 있다면 더 큰 행복은 바라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고교 시절 혜성같이 나타난 맹인
가수가 있었다. 가요제에서 여러 번
수상 경력이 있는 타고난 뮤지션이었다. 나중에 그는 맹인이라 대중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고 방송 출연을
거부당했다. 세월이 흐르고 그는 바닷가 피아노가 놓인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늙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볼 수만 있다면 더 큰 행복은 바라지 않았을 것 같다.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죄수와 편지로 소통을 했던 적이 있다. 그는
암흑의 절벽에 매달려서라도 살 수만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했다. 
살아있다는 것은 너무나 귀중한 것이다.
돈 많이 줄테니 내 대신 죽어 달라면
응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산 같은 재산도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도 사람의 생명보다 가치가 없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다고, 일자리가
없다고, 늙었다고, 외롭다고 불행해 하고있다. 보고 듣고 걸으면서 존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날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걷지 못하고, 곧 죽어가는 누군가의 애잔한 소원을 이루고 날마다 그들이 바라는 기적이 일어나는 삶을 매일 살고 있다.
누군가 간절히 기다리는 기적들이 내게는 날마다 일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
그런데도 나는 그걸 모르고 있다.
젊음이 지나간 후에야 그걸
비로소 아는 것 같다.
한쪽 시력을 잃고 나서야 건강한 눈으로 책을 읽던 그 시절이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다. 놀랍게도 나는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들을 젊어서부터 다 이루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날마다
깨닫는다면 우리들의 하루는 기적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각자의 삶, 각자의 인생,
자신을 사랑해야겠다.
=============================
-엄상익 변호사-
엄상익 변호사의 글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매일의 일상이 기적임을 절감한다.
보고 듣고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산다는 것은 황홀한 것이다.
갑자기 잠자다 산 사태로 매몰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지금 호흡하고
있음에 감사하자.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딤전4:4)"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영혼의 호흡으로 시작합시다.
■■■■■■■■■■■■■■■■■
23년 8월 13일
21
13
Farmmorning
털모자
장점)
겨울 시즌 한파불때 패딩과 같이 입고 농장에서 일할때 보온효과 극대화
단점)
일끝나면 머리가 땀범벅
목돌이
장점)겨울에는 뭐니 뭐니 해도 목이 따뜻해야되!
단점)
목이 근질근질 하고 더러워지기 쉬우며 세탁비 많이 들어감
털장갑
장점)겨울에 일할때 작업용 장갑 하고는 다른 강한 보온성
단점)
작업용 장갑보다 쉽게 망가지고 작업용장갑보다 쉽게 더러워짐
23년 8월 19일
Farmmorning
나이 45세에 귀농을 결심할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항상 건강만큼은 자신하던 아버님.어머님
70세때부터 둘중하나죽으면 다정리하고
도시로 올라간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당연히 저도 농사는 힘든 삼포말목
박을때만 도와드렸죠..
아버님이 담도암으로 3개월투병하시고
1달전 세상을떠나셨네요 홀로남으신 어머님에게 당연스럽게
제가 외아들이니 모시겠습니다 했더니
"아버지의 향기가 남아있어 그냥 여기서
지낼란다" 이러시네요
허튼말이 아니신게 벌써부터 소일거리로
고추나 이런걸 준비하실려하고...
그렇게 말씀하시고나서 한없이 고민에 빠졌습니다. 45년 살동안 거의 전부를 부모님이 다해주셨는데 모른척할수가없더군요
정말 뜬눈으로 고민에고민을 와이프와 여러번 이야기하고 내린결론은
우리가 어머니에게 가는것입니다.
네.. 받은만큼 당연히 잘모시고싶어서요
귀농을 생각하려니 무엇을 어떻게해야할지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집에 남은 삼밭도 약을 쳐야할시기가오고
트렉터며.콤바인.이양기.관리기 조작도 못하고 기껏할수있는것이야 말목만 박아는거이였는데..
너무긴글이였네요
귀농을 생각하고있습니다.
귀농작물은.딸기.새싹삼.토마토와
기계가있기때문에 쌀농사등생각하고있습니다. 3개의작물은 스마트팜을 염두에두고있는데 선배농부님들 어떨까요?논농사와 더불어
특정작물 한가지를 더한다면 머가좋을까요??
21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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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닥터 유근용 010 4281 1530 국민은행 274 21 0209 081 유근용 입니다
상품 판매합니다
1번 참두릅 모묙 3년생 3,000원
2번 엄나무 묘목 3년생 5,000원
3번 가시없는오가피 3,000원
4번 땅두릅 종근 1,500원
5번 고사리 종근 1,000원
6번 취나물 종근 1,000원
7번 머위종근 1,000원
8번 원추리 500원
9번 바위취 1,000원
10번 향나무3년 5,000원
11번 할미꽃 종근 2,000
12번 대왕 고들빼기 500원
13번 개암나무 5,000원
14번 산나물 1촉 1,000원
15번 백목련 3년생 5,000원
16번 토종 엉겅퀴 1,000원
17번 비비추 500원
18번 신선초 종근 1,000
19번 토종 흰민들레 1,000
20번 산마 종근 1,000원
21번 우산나물 종근 5,000원
22번 초롱꽃 종근 2,000
23번 산초나무 2-3년근 3,000
24번 삼채나물 모종 1촉 1,000
25번 토종 작약 30,000원
26번 싸리나무3년생 3,000
27번 청단풍 2년생 1,000
28번 자귀나무2- 3년생 5.000원
29번 맥문동 종근 1촉 500원
30번 화살나무 3년생 5.000원
31번 산부추 1촉 1,000원
32번 복분자 3년생 5,000원
33번 산둥굴레 종근 1,000
34번 달마지꽃 종근 1,000
35번 천문동 2년모종 2,000원
36번 자연산 개복숭아 10,000
37번 자연산참옷나무 2년 3,000원
38번 참가죽나무 자연 3,000원
39번 박주가리 종근 1,000원
40번 생강나무 3년생 5,000원
41번 진달래꽃 2년생 5,000원
42번 등나무 2년생 3,000원
43번 왕벗꽃 3년생 10,000원
44번 고염나무 3년생 5,000원
45번 산초나무 3년생 5,000원
46번 돌미나리 500원
47번 자귀나무 10,000원
48번 곰보배추 1,000원
49번 흰 제비꽃 5,000원
50번 접골목 10,000원
51번 금낭화 1촉당 3,000원
52번 까마중 종근 1,000원
53번 우슬 종근 500원
54번 적산홍 5,000원
55번 어성초 1,000원
56번 복분자 3년생 5,000원
입금확인후 작업드러갑니다. 감사합니다 팜닥터 유근용 이었습니다. 모둠으로 최소 50,000원이상만 주문받습니다
23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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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우리들 이야기 =12
계속되던 불황에 검게 멍든 하늘만
원망하던 사업을 접고
3년 만에 응시한 회사에서
연락이 와 아침 일찍 면접을 보기
위해 바쁜 몸짓으로 내달리는 택시를 세우려 비 사이로 손짓을 하는
남자가 있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승차장 푯말 앞으로
급하게 멈춰서는 택시에서 내린
중년의 노신사는 황급히 지하철로
뛰어가고 있었고 남자는 그 택시에
바쁜 몸짓으로 앉으며

“중앙동 외환은행 앞에 부탁합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시트를 짚은 손에
차갑게 잡히는 게 있어 보니 두툼한 서류뭉치였다.

급하게 뛰어가는 모습을 보며
이 서류가 중요할 거로 생각했던
남자는 순간 떠나려는 택시기사에게
“잠시만요” 라고 말한 뒤

중년의 남자가 지하철 계단을
막 밟으려 할 때 "저기요“하고 불러
보았지만 그 남자는
지하도로 내려간 뒤였다.
내리는 비를 타고 계단을 밟고
뛰어갔을 때 막 도착한 지하철에
오르려는 노신사를 발견하고

“저기요 .. 이 서류 선생님 거
아닌가요?”
​라는 소리에 멈춰선 남자는
만선이 된 어부의 얼굴로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더니

“고맙습니다.... 오늘 계약할
서류였는데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할지....“

“아닙니다…. 그럼 저는 이만”

남자는 서투른 인사를 하고 회색
거리를 내달려 숨은 바람처럼
달려갔지만

“면접 시간 하나 못 맞추는 자네 같은 사람은 이 회사에선 필요 없네”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서 걸어 나온 남자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 채
하늘빛이 말라가며 토해놓은
어둠을 맞고 있었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라는데
갈수록 허전한 빈 가슴만 채워지는
것만 같은 남자는 아침에
아내가 한 말을 떠올려보고 있다.

“여보 오늘 잘하고 오세요”

“응 당신 생일선물로 꼭 합격할게”
아내에게 취직한 걸 선물하고 싶었던 남자는 아내에게 뭐라고 말할지....
초라한 모습으로 허공을 기대어
선 채
딸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오늘이 엄마 생일이잖니.
엄마 속옷이라도 사주고 싶어
그러는데 네가 가게에 같이 갈 수
있겠니?“
폭설이 내려 움직일수가 없다는
딸의 말에 빛을 밀어낸 밤이 된
허탈한 속내만 내보인것 같은
마음을 매달고 걸어가던 남자는
어딘가를 애달픈 눈으로 한참을
바라보더니 버스정류장 옆 담벼락에 기대어선 붕어빵을 사서는 버스에
올라 아이를 업고 있는
아주머니 옆에 앉는다.
붕어빵 냄새가 나서인지 남자의
손에 든 종이봉투를 내려다 본 아이는

“엄마 붕어빵 사줘 배고파..”

“아빠가 사 오실 거야“

“아빠는 거짓말쟁이야
매일 사 온다고 거짓말만 하고..“
난처해진 남자를 쳐다보고 있는
아이손에 붕어빵 하나를
쥐여주었지만 아이는 먹질 않고
가지고만 있었다.
“얘야 먹어?"

“아빠랑 같이 먹으려고요”

아빠를 생각하는 아이의 모습에
새벽이 밤을 깨물어 아침을 불러놓듯
남자는 희망은 죽을 때까지
간직하는 거란 걸 알아가고 있었다.
“당신 정말 제 생일선물을 해주셨군요
고마워요…. 여보“

“고맙긴 당연한 걸 가지고..”
“아까 당신 일하는 식당에 갔다가
바쁘게 일하는 것 같아 그냥 왔어“
“애 안 태우게 들어와서 알려주지
그랬어요?”
모처럼 밝아진 가족들의 환한 웃음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마음은 타다만 촛불처럼 안으로 안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바람은 언덕에 머물고
향기는 하늘에 오르는 아침
아내랑 같이 아침을 걸어 나오며
“여보 오늘 첫출근인데 수고하세요”

“어 당신도 고생해”
남자는 아내와 헤어진 뒤 일용직
센터에 일자리를 더듬어 보다
주어지는 일이면 뭐든 가리지 않고
하루를 보내다 집으로 오고 있었고
식당일을 끝난 아내의 손을 잡고는
다리를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선물이
있다며
“다음 주에 장모님 칠순에 갈려면
당신 발이 편해야 할 것 같아 내가
미리 봐둔 게 있어
여보 이 신발 어때?“
윈도에 놓여있는
빨간색 운동화를 가리키는 남편에게

“좋긴 한데…. 여긴 비싼 곳이잖아요”

“아냐.. 낮에 와봤는데 저 신발이 할인판매를 해서 3만 원이면 된데“
“진짜요?”
“들어가 보면 알잖아”
잠시 후 아내의 손에 들려져 나오는 쇼핑백 안에는 빨간 운동화가 들어가 있었고 마음에 들어 하는 아내에게

“여보….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데“

“아무리 예뻐도 비싸면
안 샀을 거예요. 우리 형편에...“
남자는 아내가 쇼핑 백 안에 든
운동화를 바라보며 들떠 있을 때
남편은 미리와서 돈을 쥐여 주며
부탁을 한 주인아주머니를 바라보며
지그시 한쪽 눈을 감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을 걸어나갈
남편의 눈앞에 놓인 건 남편의
신발이었다.
“아니, 여보 웬 새 신발이..”
남편의 마음을 알아버린 아내의
손에는 낡은 운동화에 하얀 페인트를 발라놓은 남편의 헌 운동화가 들려져 있었고,
“당신 힘든 일 하는데….
발이 편해야잖아”
“여보 미안해..”
아내는 알고 있다.
힘들면서도 강해지고자
눈물을 삼키어온 남편이
날이 새면 신발 끈을 묶어야
한다는 걸.
삶의 희망이 있는 그곳으로...
남편도 알고 있다.
길가에 쓰러져 있는 마른 잎들을
바라보며 나도 저 마른 잎들처럼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하루하루를 일으켜 세워주는
아내가 있다는걸...

부부는 오늘도 힘을 내어봅니다.

쓰다듬고 보낸 어제를 뒤로하고
장모님 앞에 아내가 차려놓은
음식들이 상위에 늘어져 갈 때,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시는 장모님이
한참이나 지났을 때야 들어오신다.
그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그 누구도 숟가락을 먼저들 수
없었다.
위암으로 음식을 드실 수 없는
어머니 앞에선 ...
눈물이 까닭 없이 흐르는 시간들로
채워놓고 돌아선 그날 저녁
집으로 온 아내는 밥에게 밥이 된
이유를 묻지 않고 불이 꺼진
이불속에서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아파하고 있는 모습에
꼭 껴안아 주는 남편.
“장모님 땜에 속상해서 그런 거지?”

대답 없는 아내가 잠든 베개 밑에
마음을 담은 손 편지 하나를 놓고
나오는 남편.

하루에 22번 만나는 시계의
큰 바늘과 작은 바늘의 운명처럼
함께 묶여져 있는 남편이 놓아두고 간 손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아내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맺혀져
있었다.

“ 내 아내가 사랑스러운 이유" 라고
시작된 편지 맨 마지막에

살아가면서 가장 깊었던 마음
그건 나에게 전부로 와 닿은 아내
당신이었다고....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이기를
기대하 며 잠든 남편의 휴대전화기로 들어온 문자 하나가 아침을 열고
들어온 걸 보며 두 눈은 커져 있었다.
“앞전 지원한 회사에 재면접을 보러 오라는 문자”를 함께 본 아내는
“여보 그때처럼 늦게 가지 말고
지금 출발하세요”
일하다 다리를 겹질린 남편을 보며
택시를 타라며 마을 어귀까지 함께
나와서는 기사님께
“ 아저씨 ! 꼭 소호동 국제빌딩 앞에 세워주세요”

택시가 아내의 시야에서 벗어날 무렵 남편은
“ 기사님! 여기쯤 세워주세요”

“ 국제빌딩 가신다고...?”
“아, 그건 아내가 보고 있어서
여기서 내려 지하철 타면 됩니다”

“그 다리로 지하도를 걸어가시긴….
두 분의 부부애가 너무 깊어 보여
제가 차비를 안 받겠습니다”
햇살 좋은 날 파랗게 웃고 있는
하늘처럼 택시에서 내린 남자는
애틋한 목마름으로 달려간 회사가
그때 택시에 서류를 두고 내렸던
그 분이 운영하는 회사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날 자네 덕분에 중요한 계약을
따낼 수 있었지만 나 때문에 자넨
입사 기회를 놓쳤다지 뭔가 ..“

“아닙니다..“

“길을 가다 차이는 돌맹이 하나도
다음 사람을 위해 걷어낸 적 없는
내게 남을 돕기 위해 내 이득을
포기할 줄 아는 자네의 그 마음을
내가 사겠네“
“감사합니다…. ”
회사를 걸어 나온 남자는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나도 이제 내 삶의 무대에 조명을
켠다고
"시작이라는...."
좋은글 중에서 모셔온 글입니다
https://youtu.be/sZp8Xu0lAc8?si=A6F1Jgo8Uy-Eu6rA 매디슨 카운터 다리 영화
https://youtu.be/C74yBWdIYFk?si=i0t4jNn2KDIBqkk9
사랑아 더원
어느 학생이 이혼한 아빠가
사랑아 이노래만 집에서 3개월째 든고 있대요 학생 글귀에 ㅡ
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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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
☆♡•눈물없이 볼수없는 감동글•♡☆
🤩 남편의 마지막 선물 🤣
부모로써 자식으로서
꼭 봐야 할 현실과 같은
실화 입니다. 😢
♡ ♡ ♡ ♡ ♡ ♡ ♡
남편은 육군 대령으로 재직하다 예편한
충직한 군인 이었습니다.
정년퇴직하고 시골에서 그렇게 해보고 싶어했던 농장을 하며, 그동안 힘들게 산 대가로 노년의 행복을 보상 받으리라 늘 설계하며 살아 왔습니다.
저녁노을이 풀어놓은 황금빛 호수같은 텃밭에 상추를 따서 저녁을 차리려는데, 아들내외가 퇴임을 축하 드린다며 찾아 왔습니다.
모처럼 행복한 저녁을 먹고난 후 아들내외는 드릴 말씀이 있다며 응접실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아들 내외의 뜻밖의 소리,
지금하는 식당이 비전이 없다며 지인의 소개로 떼돈되는 사업이 있는데,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 내외를 돌려보내고
깊은 시름에 빠진 내외는
서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밤잠을 못 이룹니다.
몇 날 며칠 그렇게 밤을 보낸뒤 아내의 간곡한 청도 있고 해서 아침 일찍
아들에게 송금을 하고 들어오는 남편 ~
아내를 보구선
"자식은 저승에서 온 빚쟁이라 더만 ..."
한마디 하고선 냉큼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처음에는 번질나게 사들고
부모님 집을 드나들던 아들내외의 발걸음이
뜸해지든 해 ~~
밤늦게 빚쟁이들에게 쫓긴다며
도피자금을 달라는 아들놈,
아버지는
어이가 없어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엄마를 붙들고 온갖 애원을 하는 아들놈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엄마 ~~
"그래 밥은 먹었어"
"엄만 지금 밥이 문제야"
"날 밝으면 아버지 설득해 볼테니깐
어이 들어가 쉬어"

다음날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아들과 아내는
처분만 기다리는 죄수처럼 고개만 숙인 채
멀숙한 눈빛으로 서로를 훑어볼 뿐입니다.
"이 집은 절대 안 된다"
"네 할아버지때부터 4대가 내려온 집이야"
"절대 팔 수 없다"
단호한 아버지 말에 ~~~
"아버지도
할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거잖아요"
"저도 손자인데 권리가 있잖아요"라는 말에
빰을 후려치는 아버지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는 안절부절 못합니다.
“아버지 이제는 죽어도 절대 안 올거예요“
라며 대문을 박차고 나가버립니다.
아들이 그렇게 돌아간 뒤
남편은 말없이 창문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워댑니다.
아내는 부엌 한편에서 애꿎은 그릇
나부랭이들만 닦아대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의 아픔이 스며든 어느날 ~
며느리가 대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옵니다.
"어머니, 어머니"
"애 아빠가 죽는다고 전화가 왔어요"
어딘지 말을 안하고 잘 살아라며
아이들 부탁한다며 전화를 끊더랍니다.
"어머니" "어머니도 이집에 몫이 있잖아요"
"아버님한테 달라고 하셔요"
한참을 울먹거리다 머뭇거리든 아내가
남편에게 악다구니를 피워댑니다.
"당신이 정 그렇게 나온다면 이혼합시다"
"여보 어떻게 그런 말을 ..."
"이혼하고 내 몫 주셔요,
그 돈으로 아들 살릴랍니다."

방바닥에 고개를 묻고있는 며느리의 얼굴엔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집니다.
냉골이 다 돼버린 집안에
사흘이란 시간은 일 년보다 길어 보입니다

오늘도 며느리한테 온 전화를 들고선
밖으로 나가는 어머니는
무슨 말인가에 강한 결심을 한 듯
남편 앞에서 짙은 어조로 첫말을 띄웁니다,
"주셔요 내 몫" "오늘 이혼하러 갑시다"
"당신 정말 이렇게까지 ..."
말없이 눈물을 훔쳐낸 남편이
방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가지고 나옵니다.
「인감도장과 신분증」"갑시다 법원으로"
법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운전석 뒤에 앉은 남편과
뒤문 옆에 앉은 아내 사이엔
적막이 흘러갑니다.
운전석 후방 거울 너머로 보이는
아내의 표정은 슬픔으로 군불을 지핀 듯
어둡고 냉담함이 교차하는 듯 합니다.
가슴에 응어리를 안으로 녹이면서
법원을 나서는 두 사람 ~ ~
"임자 거처할 곳은 있소" 남편의 말에
“걱정 말아요
애들이 좋은집 마련해 준다 했으니”
되돌아가고 싶은 목소리는
마음으로만 되뇌어 집니다
당신 있는 곳이
너무 먼 곳이 아니었으면 좋으련만 ~~
앞으로 아픔이 낳은 이 시간이 지나는 자리마다 익숙한 것과 헤어져야 할
아내가 먼저 마음 쓰이는 남편 입니다.
나에게 아내란 ~ 새에게 하늘과 같은 것,
원하지 않는 이별을
자식 땜에 하게 되는 순간이
살면서 오리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
의미없이 뜨고지는 저 해와 달이 원망스러워집니다.
허망함을 속내로 감추고
지난날 회한의 정을 눈가에 이슬로 매단 채
다른 길로 걸어가는 두 사람,
35년 결혼생활이 이렇게 허무하게
깨어지는 게 믿기지 않는 남편은 ~
내 맘과 다른 무정한 당신이
빈 하늘로 남겨준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허접한 선술집에 앉아 굳어가는 혀끝을
술로 적셔내며 뜻하지 않은 이별 앞에
눈물과 절망을 술잔에 담습니다.
「텃밭에 오이나, 밤하늘에 초승달이나,
내 맘이나, 굽은 것 똑같은 밤입니다」
아내를 기다렸든 아들 내외는
엄마가 건네는 돈을 건네 받으며
"엄마 걱정 마"
"이것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는 장사는 대박이야"
"어머니 저희가 생활비 섭섭지 않게
매달 보낼게요"
천국 문을 통과한 영혼처럼
밝게 달려 나가는 아들 내외를 보면서
후회가 밀려옵니다.
“이게 아닌데 ... 이게 아닌데 ...”
씻지 못한 얼룩이 되어버린 시간은
돌이켜 지질 않는데
때늦은 안타까움이 밀려듭니다.
처음 몇 달간은 말 없어도 들어오든
생활비가 한 달을 건너 띄더니
이제는 들어오질 않습니다.
공공 근로와 허드래 청소일로 연명하며
딸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간신히 살아내기도 빠듯합니다.
오늘은 손주놈도 보고 싶고
아들 소식도 궁금해 아들내외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찾아가는 엄마,
행색이 남루한 시어머니를
가게 밖으로 등을 떠밀듯 나와서는
"왜 말도 없이 찾아오고 그래요"
"장사 잘되면 보낼테니 오지 마셔요"
"아니다, 아가 손주놈도 보고 싶고
아비도 보고 싶고 해서 온거여
돈 때문에 온 건 아냐"
"됐고요, 애도 학원 다닌다고 바빠
저도 얼굴 못 본지 오래 됐어요"
며느리는 매몰차게 내뱉고는
쫓기듯 돌아서 들어가 버립니다.
훌쩍 떠나버린 바람을 바라보듯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습니다.
"남편" 입니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겹겹이 아픔을 덧칠한 몸으로
마디마디 늙어가는 초침을 닮아가는 아내,
슬픔이 말라붙은 남편의 가슴에도
아련함이 찾아오고야 맙니다.
"여보" 눈물로 섞여 나오는 남편의 말은
귓전에 맴도는 메아리가 되어
흘러갈 뿐입니다.
며칠이 흐른 어느 날 ~~
딸이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엄마의 병원비 때문입니다.
말없이 따라 나선 아버지는
병원비를 계산하구선
아내가 있는 병실로 들어옵니다.
남편은 아내의 얼굴을 보자
타다만 상처가 떠오르지만
안도의 숨결을 먼저 내어놓습니다.
고개는 남편을 의식한 듯
외면하듯 돌아서 있는 아내 ~
병원앞 파란 눈뜬 공원에 마주 앉은
세 사람 ~~
「이렇게 마주 앉아보는것이 얼마만인지.」
"여보" 내가 그때 이혼에 응해 준 것은
이렇게라도 해야 절반이라도 지킬 수 있었기에 ...
앉기 위해 새가 날 듯 ~~
그런 속내를 이제야 알아버린 게
미안한 딸과 아내는 눈물만 흘립니다.
남편은 슬픔에도 시들지 않는 꽃처럼
아내를 감싸 안습니다.
그 돈으로 작은 아파트를 구입해서 지내고 있으니, 우리 두 사람 작지만 살 수 있어
“ 같이 합칩시다 ”
아내와 헤어진 뒤 남편의 하루는
바람을 배고 잠든 날들이었기에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허기지고 찌든 집을
며칠 전부터 도배랑 집안 청소에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남편이 아내의 짐을 가지러
오기로 한 날입니다.

아내는 이사 갈 준비에 도우러 온 딸과 함께
집을 꾸린다고 분주한 모습입니다.
약속된 시간을 지나도 남편은 오질 않습니다.
딸이 여러 번 전화를 해도
아버지는 받질 않습니다.
두 사람은 황급히 남편의 집으로 달려가보니
아내를 찾다 끝내 누르지 못한 채
펼쳐진 전화기를 손에 쥔 채
남편이 죽어 있었습니다.
"심장마비"
아내와 이집에서 같이 살 그날만을 기다리다 ~ 그날이 되는 날,
남편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
9월 7일
10
9
1
-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마무리 -
지금까지는 60대부터나 시골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23번의 이야기를 올려드렸습니다.
제 어릴적에 추억을 끄집어내서 알아듣지 못할 사투리에다 시작도 끝도 없이 두서없는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고를 쓰고 수정하는 작가들이 쓰는 글이 아니라 그냥 일기쓰듯이 컴퓨터도 아니고 핸드폰에다 써내려갔습니다.
띄어쓰기나 받침 정도는 될 수 있으면 바르게 쓸려고 TV자막에 나오는 문장들을 유심히 보기도 했습니다.
모든 이야기들이 저한테는 일상이었습니다.
다행하게도 요즘 말하는 저는 흙수저는 아니고 그렇다고 금수저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 교사였고 40마지기의 논이 있어서 머슴이 두명이나 있었다.
저희 고향은 논 한마지기가 150평이었다.
지금은 1,200평을 한필지로 경지정리가 되어있고 볍씨도 개량되어서 쌀 생산량이 많은편이다.
그 때는 모조건 2모작을했고 한마지기에 90k들이 쌀 두가마니가 안되었던 것 같았다.
그러다 마대포대가 생기면서 40k씩담았다.
고등학교를 전주 외갓댁에서 다니면서 하숙비로 40k들이 쌀포대를 메고 다니곤했다.
어느 날 튀밥을 튀는 기계가 마을에 들어왔습니다.
그 때는 가끔씩 튀밥기계를 지게에 짊어지고 마을을 돌아다녔거든요.
남들이 먹는 하얀 쌀튀밥을 먹고싶어서 어머니를 졸라서 쌀 한 됫박을 가지고 튀밥을 튀러갔습니다.
하얗게 나와야 할 튀밥이 튀밥은 튀지않았고 색깔만 누렇게 나오더군요.
쌀이 습기가 많아서 그렇다고 튀밥이 실패를 했습니다.
설 명절쯤에 동네에 발동기를 돌려서 가래떡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집은 집에서 쌀을 절구통에 넣고 절굿대로 빻아서 삶아 안반에서 둥글게 만들어서 가래떡을 만들었습니다.
기계로 뺀 가래떡은 말랑말랑하고 낭창낭창하니 맛있는데 집에서 만든 가래떡은 거칠고 딱딱했습니다.
떡빼는 돈을 아끼실려고 집에서 만드신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여느 부모님보다 더 아끼시면서 살림을 하셨던 집이라 그렇게 풍족한 삶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땐 초등학 때부터 교복시대였다고 3번째 이야기에 있었죠?
설빔으로 교복을 사주실 때는 앞으로 2-3년은 더 입히실려고 소매단과 바지단을 무조건 접어서 넣었습니다.
한해가 지나고 다음해에 키가 커서 접었던 곳을 풀어야 했는데 접혔던 곳이 하얗게 달아서 표시가 났습니다.
집에 머슴들이 2명이나 있었는데도 새마을사업하는데 부역으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냇물을 막아서 봇또랑으로 물을 대는데 책임자 되시는 분께서 동네 정기나무 아래에서 징을 몇번 치시고 "보매기 나오세요"하시면서 큰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냇물을 막는 보막이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농사철이 다가오면 냇물에 보를 만드는데 추석보와 번암보가 있었습니다.
저희 고향이 장수군과 남원군 경계가 되거든요.
추석보는 남원군에 속한 논에 물을 대는 보이고, 번암보는 장수군에 있는 논에 물을 대는 보입니다.
번암보는 맨 끝에 우리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군데 보막이를 다녀야 했습니다.
번암보는 마을에서 좀 멀리가야 했습니다.
산중이라 그렇게 넓은 뜰은 아니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동네 방송시설이 안 되었을 때라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저는 쉬는 날이면 제가 나갔습니다.
연세드신 분들은 삽이나 괭이를 들고 나오시고, 젊은 사람들은 지게에 바작을 얹어서 지고 나왔습니다.
냇물을 막기 위해서 커다란 돌멩이를 주어다 쌓아아했고 옆에 있는 산에서 흙과 떼(잔듸)를 지게로 짊어지고 날라야 했습니다.
그래야 냇물을 막아서 보또랑으로 물을 보냈거든요.
큰비라도 내리면 쌓았던 보가 다 떠내려갑니다.
그러면 다시 "보매기 나오세요"하고 외치면 동네사람들이 나와서 보를 막습니다.
지금같이 비닐이 있는 것도 돌멩이 사이를 솔가지를 베다가 넣고 그 사이를 흙과 떼를 지게로 짊어지고 날라서 막았습니다.
보를 다 막고나면 한말들이 막걸리통으로 새참을 먹었습니다.
안주는 된장에 풋고추인데 보를 막고나면 물이 말라서 뗑아리라는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는데 그 뗑아리를 된장에 찍어서 먹기도했습니다.
저도 뗑아리를 된장에 찍어서 먹었습니다.
새마을사업에 부역이나 보막이를 할 때 동네 어르신들께서 저를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잘 아시죠?
새마을사업을하는 부역은 농땡이 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마을사업 때나 보매기할 때 저는 지게로 짊어지고 나르고 일을 잘 했었던 것 같습니다.
머슴들이 나가면 맨날 농땡이만 친다고 저더러 나오라고 했던 것 같았습니다.
학교를 다녀오면 어김없이 깔(꼴-소먹일 풀)을 한망태씩 베서 소여물을 준비해야했습니다.
여름에는 나무도시락에 밥을 싸서 꽤나 먼 산에가서 풀을 베서 말린다음 지게로 날랐습니다.
건초라고 했습니다.
그때 퇴비증산은 국가에서 장려를 했습니다.
생풀은 무거우니까 말려서 지게로 나르는데 길도 좁기도 했지만 꾸불꾸불한 산길로 십리가 짱짱했습니다.
여름방학 때 머슴들을 나무도시락을 싸서 따라다니면서 건초를 하러 다녔습니다.
집으로 가져온 건초는 새벽에 작두로 썰어서 차곡차곡 쌓아놓으면 김이 모락모락나면서 발효가 됩니다.
작두질은 늘 제 몫이었습니다.
아버지서 한웅큼씩 풀을 작두에 넣으시면 저는 힘차게 작두를 밟아서 풀을 썰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3.6짜리 콘테이너박스 두개크기정도로 퇴비더미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소마굿간에서 나온 두엄과 섞어가면서 몇차례 쇠스랑과 거름삽으로 뒤집으면 하얀곰팡이가 끼면서 퇴비가 만들어집니다.
이퇴비는 가을에 논에 뿌리고 보리를 심었습니다.
겨울철엔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기도했습니다.
큰 재를 넘어 먼곳에 고목나무들이 있는데 그 고목나무가 있는 곳에 관솔이 있습니다.
관솔을 캘려고 재넘어까지 지게를 지고 다녔습니다.
관솔은 소나무가 썩으면서 송진이 뭉쳐서 불을 부치면 지글지글하면서 불이 잘 붙었습니다.
그때는 건초를 하기위해서 일부러 산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래야 내년에도 연한 풀을 할 수가 있거든요.
해마다 국유림인 큰재 넘어 깊고 높은 산에 일부러 불을 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야 봄철에 고사리와 취나물, 수리취를 뜯기도 했으니까요.
어떤이는 힘들고 복잡한 지나간 과거를 뭐그리 생각하면서 사느냐?하는 질책도 있었습니다.
힘들고 지칠때도 있었던 어린시절이지만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추억이 그리 싫지는 않았습니다.
나이들면서 새벽잠이 없어지더군요.
그럴때마다 가끔씩 옛날 생각이 떠오르면 잠시 생각나는대로 끄적거려보는 것이 시간 때우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도 새벽시간입니다.
날새면 친구님들께 제 페붘에 밴드에 카스에 제자들께 단톡방에 지금까지 메세지를 주고받은 많은 사람들한테 올려드릴려고 합니다.
이제 지나간 과거 이야기는 며칠전 보내드린 60년70년 동영상과 이번의 이야기로 마칠 것 같습니다.
그냥 감사할 뿐입니다.
나이들어 가면서 쪼끄만 일에도 감사함을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쩔땐 힘들고 짜증난 날이었는데 손주들의 영상통화에 집안에 생기가 돋는 것 같아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글을 제 자식들도 봅니다.
영상통화를 자주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내리 사랑이라 모든 어르신들은 손주들 재롱이 큰 보약인 것 같습니다.
다들 그렇지 않으십니까?
어제 하루도 별일 없음이 감사하고,
오늘도 감사한 하루일꺼라 생각합니다.
오늘 남부지방에 많은 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이 비를 동반한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으로 올라가면서 이미 비피해를 입은 지역에 또 많은 비예보가 있어서 무척 걱정스럽습니다.
정부에서 재난지역으로 선포를 했지만 갈수록 노동력이 늙어만가는 농촌에 수해복구를 할 엄두도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농사일이 크게 부가가치가 없어서 점차 줄어드는 농촌인구문제를 정부차원에서 심도있게 고민해야하지 않나?싶습니다.
전주는 비소식이 아침부터 비예보가 있었는데 점차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더 큰 비피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7월 16일
14
7
1
★ 여조삭비(如鳥數飛)★ 
배운 뒤에야 부족함을 알게 된다고 하니
"아는 만큼만 세상이 보인다."는 말이 맞는것 같다.
우리는 알기위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논어 학이편에
'여조삭비(如鳥數飛)' 라는 말이 있다.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수없이
자주 날갯짓을 반복해야 하는 것처럼,
배우기도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노력하고 익혀야 한다.
맹자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어머니의 교육열에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런데 공부를 시작한지 오래지 않아
어머니가 보고 싶어 집으로 돌아온다.
어떻게든 아들을 공부시켜 큰 사람을 만들고
싶었던 어머니의 꿈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어머니가 묻는다.
"공부는 마쳤느냐?"
맹자가 대답한다.
"아닙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왔습니다."
어머니는 즉시 칼을 들어
짜고 있던 베틀의 베의 날실을 자른다.
맹자가 놀라 묻는다.
"어머니 왜 그러십니까?"
어머니가 대답한다.
"네가 공부를 중단하는 것은
내가 오랫동안 고생하며 짜던 베를
자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맹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 학문에 전념하여
큰 학자가 되어 공자 다음으로 추앙받는 사람이 된다.
맹자는 항상 생존을 걱정해야 했던 시대를
살았지만,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꺾이지 않았다.
어려움이란 새로움의 시작일 뿐이다.
어려움을 이겨낸 자만이 새로운 단계,
새로운 세상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에 얼마나 능동적이냐,
소극적이냐의 문제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은 이렇게 말한다.
"살아남는 것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똑똑한 종도 아니고,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
빌 게이츠도 같은 말을 한다.
"나는 힘이 쎈 강자도 아니고, 두뇌가 뛰어난
천재도 아니다. 날마다 새롭게 변했을 뿐이다.
이것이 나의 비결이다"
change(변화)의 g를 c로 바꾸면
chance(기회)가 되는 것처럼
'변화 속에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변화에 대해 애써 눈을 감고
모르는 체 하는 사람과 순간순간 변화에
깨어 있으면서 당당히 맞서는 사람과의 차이는
각도계의 눈금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살아온 날이 중요한가,
살아갈 날이 중요한가?'
변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그저 머무르게 될 뿐이다.
<버나드 쇼>의 저 유명한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힘차게 흐르던 물이 구덩이를 만나면 멈추게 된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소용이 없다.
상처만 남을 뿐이다. 물이 가득 채워져
넘쳐 흐를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사람의 그릇은 이처럼 구덩이에 빠진 고난과
시련과 역경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이는 구덩이에 갇혀 있는 자신을 할퀴고
절망에 빠져 자포 자기하는데
어떤 이는 물이 구덩이를 채워 넘쳐흐를 때까지
마음을 다잡고 재기를 노려 오히려
구덩이에 빠지기 전보다 잘나가는 사람이 있다.
'세한도'를 그린 조선시대 붓글씨의
추사 김정희를 봐라. 35세에 과거 급제하여
병조참판까지 잘나가다 모함에 빠져 제주도로 귀양살이를 떠나게 된다.
그는 삶의 구덩이에 빠진 걸 한탄하지 않고
그가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된다.
그림을 그리고 붓글씨를 쓰는 일이었다.
먹을 가는 벼루만 해도 10개가 밑창이 나고
붓은 천 자루가 달아서 뭉개졌다.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 정약용은 18년이라는
길고 긴 귀양살이를 전남 강진에서 보내게 된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유배지 구덩이에서
역경과 시련과 절망과 분노와 좌절을
극복하면서 책을 쓰기 시작한다.
목민심서 경세유표등 대작과 수많은 저서를
남겨 후대에 삶의 지표를 남긴다.
그는 귀양살이 유배지에서
역경과 시련과 절망과 분노와 좌절을 극복하고
삶의 희망과 꿈을 실현하였다.
우리는 스스로 change(변화)의
g를 c로 바꾸면 우리 삶의 새로운
chance(기회)가 되는 것처럼,
스스로 변화해야 새로운 기회가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몸과 마음에도 힘이 있어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몸은 좋은 음식과 0.9% 소금물로 건강을 얻고,
마음은 올바른 생각으로 건강을 얻습니다.
오늘도 내가 건강함에 감사하고!
오늘 내가 일 할수 있음에 감사하고!
오늘 내가 누군가를 만남에 감사하고!
감사가 넘치다 보면
우리의 삶도 저절로 행복해 집니다.
세상을 살아갈수록 만족감도 커지고,
따뜻한 사랑과 깊은 관심과 신뢰와 믿음속에
건강하고 안정된 가정생활로 행복한 공감이 갈때
엔돌핀과 다이돌핀 생성으로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겨내게 하고,
생존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이란 지나고 보면,
젊음도 열정도 흘러가는 세월속으로 떠나 보내고
지금은 건강한 삶의 Know How 와
무엇을 먼저 해야 할것인지를 알고,
서로의 경험과 경륜을 활용하여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것입니다.
간절하게 바라고 원하는 목표와 꿈은
상황이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나이 탓으로 돌리지 마시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찿아서 시작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멋진 삶을 최선을
다하여 사는 것이고 경쟁력있는 미래와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하루가 모여 1년이 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작은 일이라도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완수한다면 그것은 성공의 씨앗입니다.
신뢰는 신뢰를 낳습니다.
신뢰는 목숨과 같습니다.
목숨처럼 인생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신뢰가 없으면 처음부터 시작을 할 수 없고,
중도에 신뢰를 잃으면 나머지를 함께할 수
없고, 끝에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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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 경험에 의하면 우리는 대자연과 상대 할수 없습니다 바람이 시작되면 받짝없드려 절대 밖에 나가지 마시고 목숨 부지합시다 모두 건투을 빕니다
22년 9월 5일
Farmmor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