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새벽부터 수확을 해놓고 대극천에 타이벡을 까느라 무게를 이기지 못해 처진 가지 밑을 무릎 걸음으로 기어 다녔더니 허리도 아프고 힘이 드니 '내가 이 짓을 왜 하지?' 아니지, '이 또한 지나가겠지'라며 순간순간 교차하는 심리적 반응을 다스리느라 심신이 고단했다.
12시 30분경 택배와 출하를 끝내고 전날 먹었던 고추 맛이 생각나 다시 국숫집을 찾았는데, 퇴직 후 될 수 있는 대로 느리게 살 거라고 다짐했노라는 얘기를 기억해 냈는지 집사람이 "내일은 하루 쉬자."라고 한다.
오랜만에 늦잠을 즐기리라 생각했었지만 이미 습관이 되어 네시 반이 되자 저절로 깨어졌다. 할 일 없이 거실에 나와 있자니 집사람의 곤한 잠을 깨울 것 같아 조심조심 욕실에 넣어둔 십여 개의 난을 제자리로 옮기고 있는데 밖으로 나오며 "오늘 뭐 할 건데?"라고 묻는다.
당신 하자고 하는대로 할게 하고는 며칠 청소를 하지 못했더니 빨아둔 작업복과 양말들도 널브러진 상태로 있고 바닥엔 심지어 도꼬마리도 한 개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손자가 봤으면 "할아버지! 집이 엉망진창이네."라고 했지 싶다며 청소기를 들었다.
대충 정리를 하고 빨래를 개어 제자리에 넣고 나니 등허리에 삐질삐질 땀 맺히는 느낌이 온다.
어느 방송의 '사노라면'이라는 프로를 보면 정리 안 된 집안에서도 어르신들이 농사를 지으며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시던데 이래서 그랬구나 싶으며 이해가 된다.
아침을 먹고 나니 집사람은 딸내미 줄 반찬 만드느라 여념이 없고 시계는 열한 시를 향해 달린다.
내심, 오늘도 특별한 일정 없이 이렇게 소일하다가 오후에는 집사람이 사우나 간 시간에 밭에 가서 하룻만에 더 익었는지 대극천 상태나 보고 오는 길에 커피나 한잔하며 농사일기 쓰는 것으로 마무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데 딱 예상했던 대로 되었다. 농부의 일상은 이런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