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무소주이생기심 ·
올해 배추와 무 농사는 완전히 망했다.
옛날 열 마지기 밭에 아버지께서 배추 농사를 지으실 때는 농약 치시는 걸 한 번도 못 보았는데도 엄마가 김장을 할 때 보면 반으로 잘라 둔 것도 한 아름 되고 속은 노란 알갱이가 탱글하게 꽉 차 있었다.
근데 요즘은 배추들이 농약을 먹고 싶어 환장을 하는지 달팽이 제거제 외에 맥주와 막걸리, 칼슘밖에 주지 않았더니 응애(진드기)와 홀쭉한 빈속을 내보이며 반항을 한다.
그래, 너희들이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본분을 못 하도록 응애 낀 것들은 밭둑으로 내팽개쳐지고 쌈 배추 역할밖에 못 하게 하리라 다짐을 했다.
답답한 사람이 샘 판다고 하는 수 없이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의성 산그늘에서 배추 농사를 짓는다는 분과 연락이 닿아 어제 오후에 한 시간 반을 달려가 서른다섯 포기를 싣고 왔다.
새벽부터 소금물에 절였는데 "저녁에 씻어서 물기를 빼면 내일 오전에 담글 수 있다."라는 집사람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데 내일 오후에 아이들과 동생네에 택배를 부치고 나면 올해의 힘든 숙제가 또 하나 끝나겠지.
고추를 빻아 오고 멸치 젓갈을 뜨고 알타리를 다듬느라 부산하게 움직이는 집사람을 보고 있으니 여자라는 직업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옆에서 시키는 대로 잠시 거들어 주는 것도 힘든데 주도적으로 김장 준비를 하는 걸 보니 괜히 맘이 짠하다.
예전엔 백수십 포기를 어떻게 했을까?
작물

배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