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엔 산에 가려던 계획을 접고 한파가 온다는 예보에 겁을 먹어 바쁘게 대봉감을 수확했다. 그리고 대추밭에 지천으로 널린 민들레 이파리를 집사람이 뜯는 동안 대추나무 전정을 일부 하고 나니 금세 열두 시가 되었다. 얼마 전부터 미뤄두었던 세차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리라 다짐했기에 촌집에서 미리 사다 둔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처마 밑에 보관 중인 복숭아 박스도 쥐가 갉아 먹을까 싶어 거실로 들였다. 아래채는 창고로 변한 지 오래고 이제 얼마 전까지 가끔 자기도 했던 윗채 거실까지 농자재에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이러다가 폐가 수순을 밟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감을 따면서는 "자식들 먹으라고 과실나무를 골고루 심어 둔 아버님의 배려 덕분에 우리가 호사를 누린다."며 눈물 글썽이던 집사람이 부모님의 거처였던 촌집을 쉽게 농자재들에게 쉴 장소로 내어주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오후엔 자전거를 타든 헬스장에 가든 운동하라는 지시 사항을 받들어 박스 옮기느라 허리가 아프지만 예전 손자랑 놀았던 곳으로 힘겹게 페달을 밟았다. 젊은 학부모들이 돗자리를 펴고 아이들이랑 놀고 있는 풍경을 보노라니 손자의 뛰어노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문 채 눈을 감고 몇 년 전 추억을 떠올리니 가슴 아래께가 시큼하다. 언제쯤 이곳에서 또 다른 추억을 다시 만들 수 있을는지 내년이면 학교에 들어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