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무소주이생기심 ·
오늘은 개구쟁이 손자의 잔영이 남아 있는 집을 떠나 밭에 가보니 "이러다간 배추 구실 못 하겠다."라는 집사람의 말처럼 이파리마다 구멍이 숭숭 나 있고 제법 큰 달팽이들이 여럿 붙어 있다.
하는 수 없이 집사람의 "연휴라 문을 연 집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농약사에 가 보라."라는 엄명을 받들어 면소재지에 갔더니 한군데가 열려 있다.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팽돌이'라는 약을 권하며 "습한 날에는 달팽이가 많다."라고 한다.
쪼그려 앉아 조금씩 나아가며 붙어 있는 달팽이는 잡아서 지장보살, 지장보살을 염송하며 발로 밟아 죽이고는 다음 생에는 미물로 태어나지 말라고 서원하며 농약사에서 시키는 대로 뿌려 나가는데 허리가 시큰거린다.
하우스로 들어와 달팽이와 배추를 함께 살릴 방법이 없는지 검색해 봐도 특별히 마음에 드는 유튜버가 없다.
달팽이 퇴치에 관심을 가지는 동안에는 그리운 손자의 환영을 잠시 잊을 수 있었지만, 일을 끝내고 나니 금세 며칠 전 함께 했던 추억이 다시 떠오른다.
오후에는 손자와 놀았던 카페에 가서 나눴던 얘기들을 곱씹어 봐야겠다.
작물

배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