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수를 틀어놓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대극천 도장지 정리를 해나가는데, 그새 주지 부위까지 꽉 들어차서 가위를 쥔 손이 들어가기 힘들 정도다. 주지와 부주지 사이를 훤하게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해야 병충해에 강하므로 아끼지 않고 시원하게 잘라내었다.
세 나무쯤 남았을 때 역시나 집사람의 호출이 시작되었다. "여보, 고추에 칼라병 약 쳤나?"라고 하기에 "안 쳤는데." 했더니, "그것도 안 치고 뭐 했노?"라며 닥달하므로 "농사가 전공도 아닌데 어떻게 다 아노?" 했더니, "작년에 해봤으면 다 알아야 하는 거 아니가?"라며 죄인 다루듯 추궁한다.
그러다 앞밭에서 SS기 엔진 소리가 들리자 "우리도 약 치야 되는 것 아니가?"라며 다시 도끼눈으로 쳐다보기에, '저 사람은 저 사람 방식의 농법이 있는데 어떻게 다 따라 하노?' 하려다 분위기가 험악해질까 두려워 가는 길에 농협에 들러 약 사서 저녁이든 내일 새벽이든 치자고 하고 말았다.
점심을 먹고 사우나 채비를 하면서 "나 간다. 오늘부터 카페 그만 가고 헬스장 등록해서 운동하고 온나."하고는 휑하니 나간다.
적막한 거실에는 '아이고, 내가 내 인생을 사는 건지 저 사람 꼭두각시인지 모르겠다'는 푸념이 허공에 맴돈다. 집안의 평화와 고요를 위해서라도 헬스장에 가야겠지.
이제 카페서 농사 일기나 쓰며 느긋하게 마셔왔던 커피도 멀리 하고 집사람이 내려주는 커피만 마셔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