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_일기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밭에 도착하니 안개가 끼어서 그런지 나뭇잎에 물기가 있었으나, 약통에 물을 받고 준비를 하는 동안 집사람은 딸기와 오이를 따고 이웃에 나눠줄 부추를 베어 왔다.
내 마음 같아선 전처럼 꼬이지 않게 미리 약줄을 펴놓고 안쪽부터 쳐 나오면 수월할 것 같은데, 오늘도 집사람은 "입구부터 시작해서 들어갔다가 나오라."고 부탁 아닌 명령을 한다.
첫째 고랑 중간쯤 갔을 때 기계 작동음은 들리는데 약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빨리 스위치 끄라며 고함을 지른 후 달려가 보니, 다행히 압축 탱크는 무사한데 호스와 밸브 이음 부분이 빠져 하우스 안은 약바다가 되어 있다.
명상하러 다니는 사람이 짜증을 낼 수도 없고, 바가지로 약을 퍼서 약통에 담고 대충 정리한 후 호스 연결 커플링을 교체하고 다시 작업을 해 나가는데 "앉아서 밑으로 쳐야지, 이 가지에 약 빠졌다."라며 소리를 높인다.
장기나 바둑판에서도 뒤에 서 있으면 잘 보인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복숭아 무게에 의해 축 처진 가지 밑을 오가며 알뜰히 치려니 허리가 끊어질 듯한데 만날 마누라한테 잔소리나 듣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다시 들기에 "당신이 쳐라." 하고는 분사기를 넘겼다.
약줄을 당겨주며 지켜보니 별반 차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알뜰살뜰 저렇게 치다가는 약이 모자라겠다 싶어 분사기를 달라고 해도 주지 않는다.
일을 마치고 호스 정리를 하는데 집사람의 숨소리가 회오리치는 듯하여 "좀 쉬었다 할까?" 했더니, 오기가 발동했는지 "계속하자."라고 한다. 속으로 '직접 해봐야 힘든 걸 알지' 하고는 내색하지 않았다.
난생처음 땀 냄새 풀풀 나는 작업복 차림으로 투표장에 가려니 부끄러웠으나, 집에 와서 씻고 다시 가는 것도 번거로워 농부답게 흙 묻은 차림새로 한 표 행사를 했다.
마침 손자가 영상 통화로 "할아버지 누구 투표했어?"라고 묻기에 "너가 컸을 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줄 사람"이라고 했더니, "난 트럼프 찍을 건데."라고 한다. 그러자 며느리가 "그런 건 비밀이라 묻는 게 아니야. 그리고 트럼프는 어떻게 알아?"라고 하니, "나도 다 알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