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에게 할아버지 없어도 재미있게 지내라며 볼에 뽀뽀하는 것으로 이별하고 저녁에 내려와 오늘은 작년보다 4일 늦었지만 약을 치기 위해 가는 길에 보니 복숭아꽃이 활짝 핀 밭이 제법 있기에 분사되는 약에 의해 꽃과 수술이 다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우리 밭엔 아직 봉우리가 맺힌 채 꽃을 피운 건 나무당 3~4송이 밖에 없어 안도했다.
오전 열 시에 비 예보가 있어 약통에 물을 받고 약줄을 펴는 동안 집사람은 산마늘과 방풍 초 잎을 뜯으며 하늘을 쳐다보아도 잔뜩 찌푸려 있어도 비 내릴 기미가 안 보여 약을 쳤다.
가끔 불어대는 바람을 등지고 쳤지만, 이리저리 심술을 부릴 때면 어김없이 날리는 약이 마스크 낀 얼굴과 눈을 파고든다.
틀림없이 몸에는 안 좋으리라는 생각도 들고 허리도 너무 아파 가끔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작업을 계속하는데 ‘어쩔 수가 없다.’란 어느 영화의 제목과 내용이 불현듯 떠오르며 분사기를 내 던지며 못 해 먹겠다고 소리치며 반항하고 싶었지만, 이것도 운명이겠거니 하며 공손히 받아들였다.
약을 다치고 나니 마침, 며칠 전 에어컨을 밭까지 실어주었던 친구가 실외기 바닥에 깔 것이라며 블록 여덟 장을 사서 왔기에 도움을 받아 하우스 뒤쪽 적당한 자리로 실외기를 옮기는데 너무 무겁고 아픈 허리에 부담이 되는 것 같다 생각에 발맞춰 꾹 눌렀던 화가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며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옆에 있던 집사람이 “일하기 싫으면 밭 팔아라.”라고 한다.
평소 일할 때마다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허리야 그냥 지나가는 말로 했더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지 단순히 농사가 싫어 짜증을 내는 것으로 아는 모양이다.
애초 “땅을 놀리기는 뭐하고 놀기 삼아 하자.”라며 시작한 농사가 이제 주가 되고 나는 천한 종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듯 농사를 시작하고 보니 손자를 보는 와중에도 약 칠 때가 되었는데 부터 시작하여 어떡하노? 결국 시기를 놓치고 나면 농사 엉망 되는 것 아니냐? 하는 걱정으로 바뀌다가 다음엔 시기를 놓친 원인을 찾다가 나아가 원망으로 귀결되고 마는 즉 즐기기 위해 시작한 농사가 원망의 마음을 싹 틔우는 부조화, 이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