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제가 교직생활을 1978년에 대전에서 시작했습니다. 대전에서 1년반을 보내다가 1979년 2학기 때 고향인 전주에 있는 실업계 여자고등학교로 근무지를 옮겼습니다. 그 때는 2학기가 시작되어서 다음해 1980년도에 입학한 학생들을 담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때만해도 한학급에 65명씩 배정받아서 교실이 비좁았습니다. 실업계 고등학교라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기 위해서 시골에서 전주로 유학을 온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요즘 주식시장에서 뜨거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근무하는 제자들이 있습니다. 장수가 고향인 한 제자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 취업해서 아버지께 논과 소를 사주어서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무주, 진안, 장수, 남원, 임실, 부안, 고창 전라북도 각 지역에서 전주로 유학을 온 셈입니다. 하숙이나 친척집에 거주하는 학생은 드물고 주로 월세로 친구들 몇명이 자취를 하면서 학교에 다닌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시골집에 갔다가 일요일 오후에 밑반찬 몇가지를 들고 자취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는 냉장고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담가주신 김치를 빨간 김치통에 담아서 다라이에 물을 붓고 담가놓았던 것이 전부였습니다. 주말이 가까워지면 밑반찬이 바닥이나서 단무지나 콩자반으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주로 연탄불에 난방과 밥을 짖고 조금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는 석유곤로를 장만해 주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연탄가스사고로 목숨을 잃은 학생도 있었고, 연탄 보일러호스에 화상을 입기도 했었습니다. 처음으로 맞이한 여학생들을 담임을 맡았습니다. 조금은 억센 남학생들과 지내다 세라복에 양갈래 머리를 묶은 감수성이 아주 예민한 여학생들을 보니까 조금은 많이 조심스럽더군요. 여학교에서 총각선생님은 여학생들의 우상이기도 했었습니다. 첫담임을 맡았던 제자들이 저랑 띠동갑이라 63세 나이랍니다. 저도 첫담임이라 지금도 1번부터 63번까지 학생들이 거의 기억이 납니다. 어제 그동안 카톡으로 안부를 묻고 했던 제자들이 선생님을 만나러 멀리 서울과 광주에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요즘 말하는 번개모임이라고 하지요. 일요일 오후에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내일 시간 되시냐"고요. 갑자기 제자들이 내일 시간이 있어서 전주로 선생님을 뵈러 가기로 했다면서요. 선약이 있더라도 취소하고 졸업한지 40년이 훌쩍지난 제자들이 선생님을 만나러온다는데 당연하게 시간을 만들어야겠지요. 점심때쯤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다들 손주들도 있고 이젠 저랑 같이 늙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식당이랑 카페를 안내하기로 했습니다. 장수에가서 맛있는 어제비를 먹고 평소에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무주에 있는 카페를 갔습니다. 조금더 이쁜곳을 구경시키고자 옛날 전주 진안간 도로인 모래재로 돌았습니다. 부귀면에 메타쉐퀘어길을 갔습니다 오래전에 안방에서 인기드라마였던 아버지와 딸의 찡한 사랑 이야기였던 "내딸 서영이"에서 배우 천호진씨가 쓸쓸하게 걸었던 길이라 "서영이 길"이라고도 불립니다. 환갑이 지난 예순세살 된 제자들이 소녀들마냥 넷이서 폴짝뛰면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이때만큼은 천상 고등학교 학생이었습니다. 이렇게 오가는 차안에서 그야말로 40년이 훌쩍 지난 1980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옛날 이야기로 웃음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40년이 넘었는데도 그 얼굴이 보였습니다. 선생님과 제자사이인데 이제는 같이 늙어가고 있더군요. 옛날 고등학교 1학년 때 제자들보다 오늘은 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