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명절에는 오지 마라. 나도 힘들고 너희도 힘들잖니.” 시어머니가 먼저 꺼낸 말이었다. 며느리는 잠시 침묵하다 “네, 어머니. 그럴게요”라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었을 때만 해도 속이 후련했다. 음식 준비도, 며느리 눈치를 볼 일도 없는 명절이 처음에는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명절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이상해졌다. 예년 같으면 언제 내려오느냐는 아들의 전화가 왔을 텐데 아무 연락도 없었다.
그래도 먼저 전화하지 않았다. 자신이 오지 말라고 해놓고 다시 오라고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진짜 안 내려온대?” 남편의 한마디에 괜히 목소리가 커졌다 명절 전날까지 아들 가족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남편이 조심스럽게 “애들 진짜 안 내려오는 거냐”고 묻자 시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내가 오지 말라고 했다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냉장고에는 손주가 좋아하는 갈비와 과일이 들어 있었다. 안 온다면서 왜 샀느냐는 남편의 말에는 “우리 먹으려고 산 거야”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밤이 깊어도 휴대전화는 조용했다. 시어머니는 몇 번이나 아들과 며느리의 대화창을 열었다 닫았다. 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보내지 않았다. “처가에는 갔다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명절 아침, 평소 같으면 북적였을 식탁에는 부부 둘뿐이었다. 그때 친척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들 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에는 며느리 친정에 갔다면서?” 시어머니의 표정이 굳었다. 우리 집에는 오지 않으면서 처가에는 갔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자신이 오지 말라고 했다는 사실은 그 순간 머릿속에서 밀려났다.
전화를 끊은 뒤 남편에게 “오지 말랬다고 진짜 처가에서 명절을 보내냐”며 화를 냈다. 남편은 한참 듣고 있다가 짧게 말했다. “당신이 오지 말라고 했잖아.” “할머니 집은 이제 안 가는 거야?” 손주의 한마디가 더 아팠다
며칠 뒤 아들이 전화를 걸었다. 시어머니는 아무렇지 않은 척 손주를 바꿔달라고 했다. 손주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동안 참았던 서운함이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그런데 손주가 천진하게 물었다. “할머니, 우리 이제 명절에 할머니 집 안 가는 거야?” 시어머니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뒤에서 며느리가 “할머니가 편하게 쉬시고 싶다고 하셨잖아”라고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분명 자신이 먼저 한 말이었다. 그런데 며느리 입을 통해 다시 들으니 마치 자신이 가족을 밀어낸 사람처럼 느껴졌다. 시어머니는 손주에게 “그래, 엄마 말 잘 들어라”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뒤늦게 후회한 건 ‘며느리가 안 온 것’보다 자신의 자리가 정말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시어머니가 원했던 것은 어쩌면 며느리가 정말 오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명절인데 가야죠”라는 말 한마디였는지도 모른다. 힘들다며 밀어내도 한 번쯤 붙잡아주기를 마음 한구석에서는 기다렸던 것이다.
하지만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한 번 비워진 명절 자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새로운 일상이 됐다. 아들 가족은 처가에서 명절을 보내는 것이 편해졌고, 시어머니 역시 이제 와서 먼저 내려오라고 말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다음 명절이 다가왔지만 이번에는 시어머니도 “오지 마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번에는 내려오너라”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아들 역시 명절 계획을 먼저 묻지 않았다. 냉장고에는 또 손주가 좋아하는 음식이 들어갔다. 남편이 누구 먹으라고 샀느냐고 물었지만 시어머니는 이번에도 같은 말을 했다.
“그냥 우리가 먹으려고.” 그리고 그해 명절에도 현관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오늘도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읽다가 공감되어서 올려봅니다. 저희도 그랬습니다. 설 추석명절때는 형제들 조카들 다 모여서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다녀왔습니다. 자식들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손자와 손부 그리고 증손자까지 시골 자그마한집에 모였습니다. 부모님 두분만 계시다가 식구들이 다 모이면 잠자리가 여간 불편하지 않잖아요? 집에서 가까이에 있는 지리산 일성콘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성콘도 회원권을 등록했습니다. 어린아이가 딸린 가족은 일성콘도에서 자고 일찍 차례에 참석하라고 했습니다. 집에는 비어있는 사랑방과 부엌방 등 빈방에 군불을 지핍니다. 특히 설명절에는 빈방에 군불을 지펴봐야 바닥만 뜨겁고, 방안 공기는 입김이 보이기도 합니다. 웃풍이 어찌나 심한지? 어린아이들은 감기에 잡혀서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도심 아파트에서 따뜻하게 편하게 살다가 시골에 내려와서 재래식 화장실도 사용해야하고, 군불을 땐 가마솥에서 데워진 물로 세수를 해야하고, 수돗물을 사용하다가 지하수를 쓰다보면 피부가 연약한 어린아이들은 물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꼭 그렇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사와 차례음식을 집에서 준비해서 남원 시골집에서 제사와 차례를 모시는 것이 보통 번거롭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제사와 차례를 전주에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형제들한테 명절은 내려오지말고 집에서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 혼잡한 고속도로에서 얼마나 고생들합니까? 동생들도 며느리도 있고 사위도 있어서 명절을 집에서 보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차례를 지낼때도 형제들 여럿이서 모시는 것보다 저와 아들 손주 이렇게 3대(代)가 모시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도 아쉬운점이 있긴 합니다. 식구들 만남을 갖는 시간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읽고 요즘 젊은 세대들의 사고(思考)와 기성세대들의 사고가 달라도 너무 다르구나?다시한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추석 명절이 다가오고 있는 시기에 이 글이 올라와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