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여름이 자리를 비우기 싫은가?봅니다. 아침 저녘으로 찬바람이 있지만 일부지역은 폭염주의보도 있습니다. 또한 영남지역은 비피해로 복구작업에 애를 쓰고 있습니다. 또 남부지역은 가뭄때문에 물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벼는 천수답을 제외하곤 아직은 견딜만합니다. 그러나 밭작물은 너무 목말라합니다. 어제 무주쪽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세상에 한뼘도 못자란 들깨밭을 보았습니다. 그 밭을 들깨수확을 못할 것 같습니다. 들깨는 9월 15일쯤 꽃이 피기 시작하거든요. 남부지방과 서해안지방에 많은 비가 필요합니다. 그저 일기예보나 들여다보고 하늘만 쳐다보곤 합니다. 흔히 우리나라 성(姓)씨 중에 고집이 쎈 성씨 이야기를 올려봅니다. 제가 현직에 있을 때 취업을 담당했었는데 어느 중소기업사장님께서 경리사원을 채용을 부탁드리면서 절대 최씨성을 가진 학생은 안된다고 하더군요. 아마 그 사장님께서는 최씨성을 가진 사람한테 무슨 트라우마가 있었지 않았을까?싶습니다. 요즘 세상 이야기는 아니지만 고집이 쎈 성씨 이야기를 읽어보시고 늦더위에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고집이 센 성(姓)씨 이야기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집 센 성(姓)씨로 대부분 안(安), 강(姜), 최(崔)를 언급하곤 합니다. 거기에 황소고집 황(黃)씨도 있습니다.. 어떤 성(姓)씨가 정말 고집이 쎌까요? 혹은 그 성(姓) 중에 누가 더 고집이 셀까요? 들려오는 얘기로는 살아있는 김(金)씨 3명이 죽은 최(崔)씨 1명을 못 이기고, 최(崔)씨 셋이 모여도 강(姜)씨 1명을 못 당하며, 강(姜)씨 셋이 모여도 안(安)씨 앉은 자리를 못 넘본다는 얘기도 있다고 하는데 성(姓)의 고집 유래를 알아봅니다. [1] 첫째 안(安)씨가 고집이 세다는 이야기는 조선 세조 때 단종을 끝까지 추종하다 학살되고 최고의 명문가에서 천민으로 전락 되었던 순흥 안(安)씨 집안의 멸문지화에서 유래 되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조선시대에는 정치적으로 낙인이 찍혀버려 크게 활약한 인물이 별로 없지만 안(安)중근의사를 포함해 독립운동을 하신 분 중에 안(安)씨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고 합니다. 잘못된 것을 잡으려는 안(安)씨의 고집이 독립운동에서도 발현된 것일 겁니다.
[2] 둘째 강(姜)씨가 고집이 세다는 유래는 고려 말 충신 강(姜)회중에게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고려의 유신으로 조선을 개국한 태조가 여러 차례 벼슬을 권하였으나 끝내 물리치고 고려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에서 그의 마음과 기개가 사람들에게 강(姜)씨 고집 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3] 셋째 최(崔)씨 고집은 고려 말의 충신 최(崔)영 장군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최(崔)영 장군은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 죽어가면서, "내가 역적이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무성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내가 옳다면 나의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의 무덤에는 풀이 자라지 않아 후일 지독한 사람을 빗대 놓고 하는 말로 '최(崔)씨가 앉은 자리에는 풀도 나지 않는다'는 말이 회자되었다고 합니다. 이들 '안(安)', '강(姜)', '최(崔)'와 고집에서 밀리지 않는 성씨가 또 있습니다. 바로 황소 고집이라고 알려진 황(黃)씨 고집입니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리 불리는지 황(黃)씨 고집의 내력을 살펴보겠습니다.
[4] 넷째 조선 영조 때 집암 황순승(執庵 黃順承 1652~1718)선생으로 인해 황고집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 어느 날 마을 앞 개울에 다리를 세웠는데 다리 위를 덮은 흙에 하얀 석회가루가 섞어져 있어 인부를 불러 어디 흙이냐고 물었더니 인부가 말하기를 "오래된 무덤 부근에서 흙을 가져왔다."고 하자 '남의 무덤의 흙을 밟고 다니는 것은 예(禮)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평생 다리 위로 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두번째 이야기 어느 날 그가 한양에 다니러 갔다가 평양으로 되돌아 가려던 순간에 우연히 친구를 만나 다른 친구의 부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른 목적으로 이곳에 왔는데 지금 의관(衣冠) 그대로 바로 조문을 가는 것은 '죽은 벗에 대한 예가 아니다'라며 1주일이나 걸리는 평양으로 가서 의복만 다시 정제한 후 조문을 갔다고 합니다. 세번째 이야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좋은 논을 조상 제사에 쓸 쌀을 생산하는 용도로만 정해 놓고 그 논에는 절대 퇴비를 쓰지 않고 쌀뜨물로만 거름을 주며 정결하게 농사를 지었는데, 어느 날 보니 하인이 그 논에서 방귀를 뀌는 것을 보고 그 논에 물을 빼고 새 물을 대기를 3년을 하고서야 새로 농사를 지어 제사를 모셨다고 합니다. 네번째 이야기 어느 날은 당숙과 함께 성묘를 갔는데, 그가 묘가 있는 산까지 얼추 20리(8km)쯤 떨어진 곳에 이르자 말에서 내려 걸어가길래 당숙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조상의 묘가 있는 산이 보이는데 어찌 말을 타고 가겠습니까?" 하였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황(黃)씨 고집이 황소 고집이라고 불릴만하지요? 고집이란 쓸데없이 억지를 부리는 '무식한 태도'가 아닙니다. 남들이 다 가더라도 바르지 않은 길은 절대 가지 않았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우직하게 살았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진정한 고집의 대가인 성(姓)씨들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