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양봉 스승님의 자동 채밀기를 이용하고자 했으나, 200kg의 고중량 기계를 생으로 옮기기에는 너무 벅차서 그냥 다른 분들께서 마련해주신 수동 채밀기로 돌려보았습니다
만
모두가 생 초짜들인 관계로(스승님이 바쁘셔서 연락을 못 드린....) 뚜껑을 닫지 않고 돌려서(뚜껑이 있는 놈인지도 몰랐습니다?) 난생 처음 꿀비를 보았습니다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뚜껑을 닫고 돌렸으나, 이번에는 채밀기가 농막을 부술 것 처럼 미친듯이 떨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곳에서 땅과 같은 막내.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수동 채밀기의 뚜껑을 눌러잡고 달달달 같이 떨 뿐이었죠
도중에 뚜껑이 잘못 들어가서 제 얼굴 옆으로 확 튀었을 때에는 묘한 스릴감마저 느껴졌네요
벽에 묻은 꿀이 아깝다고 채밀기 안팎으로 토치로 지지다가 불이 오르거나 농막 벽면을 그을렸을 때엔 의도치 않은 감탄사가 나올 뻔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확실히 꿀 나오는 속도는 빨라지더군요)
어찌 되었거나 첫 채밀은 성공이었습니다. 비록 꿀을 방치한지 오래 되어서 수분 함량 18% 정도의 꾸덕한 꿀이 되었지만 - 채밀 소식에 달려오신 스승님 피셜. 4명이서 수동 돌리면서 난리 부르스를 치는 것을 뒤늦게나마 실시간으로 감상하시며 매우 즐거워하셨습니다
벚꽃 향이 나는 첫 꿀입니다🌸
벌통 10개에 550g 병 6병, 1.2kg 3.5병이 나왔으니 이정도면 취미형 자급자족으로는 문제 없지 않을까 하네요. 비록 지금은 네 명이지만, 나중에 공주 가서는 4통 정도면 혼자서도 먹고 살겠쥬. 겸사겸사 메밀들 수정도 시키고~
첫 채밀인 만큼 한 병은 스승님께 진상 올렸습니다. 멀쩡한 성인 4명의 눈물의 채밀기 쇼를 감상하신 후라 감동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벼룩의 간을 빼먹지 그걸 어떻게 가져다 먹냐며 한사코 거절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처음으로 낸 결과를 나눠야 하지 않겠냐고 잘 말씀드려 결국 가져가시게 되셨습니다
꿀이 너무 진득해서 거르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일단 되는대로 담아왔는데. 밀랍과 검은 사체 부스러기가 떠다녀서 영 느낌이 찝찝했습니다. 마침 혈육네 놀러가는 날이라 그대로 가져다 바쳤는데, 매우 흡족해하며 일회용 음식물 거름망을 주었습니다.
음식물 거름망은 생각보다도 구멍이 커서 비록 자잘한 벌 부스러기가 검게 조금씩 들어가기는 했으나, 그냥 그런대로 넘어갑니다(스타킹에다가 내린다고도 들었는데, 그것도 오래 걸릴듯 하고 빨기도 귀찮은 관계로..)
그 외에 제가 캐간 쑥으로 혈육이 떡을 다 해주었습니다. 쑥개떡을 갓 쪄서 바로 채밀한 꾸덕한 꿀에 찍어먹으니 아주아주 달고 맛있었네요. 좋은 꿀은 약이라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사먹는 꿀하고는 맛이 완전히 달랐어요. 첫꿀 딴 자리에 와준 기념으로 친구들에게도 작은 병 반개 씩 나누어주었네요
앞으로도 이렇게 꿀을 따서 나눌 일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꿀이란건 정말 최고네요 벌에 쏘여가면서도 할만 한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체질이 받쳐줘야 한다는 리미트가 있지만서도)
다만, 앞으로 채밀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승님의 자동 채밀기를 이용할겁니다. 수동 채밀기는 당근이 될 운명일지도......
ps. 그날 저녁, 꿀 맛을 잊지 못한 한 친구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절편을 사다가 계속 찍어먹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훗날 훌륭한 누렁소가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