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서울역에서 강남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데, 기사님이 연세가 지긋한 분이었다. 말을 건네며 어디서 왔느냐, 무슨 일을 하느냐 묻기에 마산에 있는 경남대 교수라고 했더니, 자신은 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뒤 소일 삼아 개인택시를 몬다고 했다.
아침 열시에 나와 오후 네시면 들어 간다며, 개인택시를 시작한지는 한달 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손님이 부르면 재빨리 차를 대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어 손님을 자주 놓친다고도 했다. 그때는 내비게이션이 없어 집에서 지도를 펴놓고 길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이야기는 성수대교를 지나며 자연스레 이어졌다. 그는 교장 재직 시절의 일을 들려 주었다. 어느 날 아침, 급히 교무회의를 소집하고 택시를 탔는데 출근길 정체로 다리 위에서 차가 꼼짝을 하지 않자 마음이 몹시 다급해졌다고 한다. 결국 기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부탁했단다. “기사 양반, 내가 교통위반 책임질테니 택시비도 두 배로 드리겠소. 잠깐 중앙선을 넘어서라도 빨리 갑시다.” 잠시 망설이던 기사는 핸들을 꺾어 몇 십 미터를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지진이 난 듯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뒤를 돌아보는 찰나, 벼락이 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렸고, 다리 위에 서 있던 차들이 차례로 강물속으로 곤두박질 쳤다. 불과 몇십 미터. 조금만 늦었더라면 두 사람 역시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그날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기사와 교장은 함께 황천길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생명을 함께 건진 두 사람은 그 일을 계기로 의형제를 맺었다. 교장은 이후 택시 기사가 되었고, 두 사람은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가며 친교를 나누고 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運이란 과연 존재 하는가? 아니면 인간의 조급함과 망설임, 그리고 찰나의 선택이 만들어 낸 결과를 우리는 ‘운' 이라 부르는 것일까? 다만 분명한 것은, 그 날 몇십 미터의 차이가 두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별 것이 아니라고 보면 시시하고 쓸모없고 참 바보같은 인생이지만, 귀하다고 여기면 너무 귀하고 고귀하여 세상의 어느 것보다 찬란한 것이 인생이다.
살아볼 가치가 있는 우리의 삶, 물은 쓰지 않으면 썩어 버리고, 쇳덩이도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슨다. 이제 그대의 인생을 갈고 닦아 찬란하게 만들자.
한정된 인생 한 순간도 그냥 스치게 하지 마라. 빈 그릇을 들 때는 가득 찬 물을 들듯 하고 빈 방을 들어갈 때에는 어른이 있는 듯이 들어가라.
인생은 값지고 값진 것, 알면 알수록 시간이 아까워지는 인생의 시간, 참기름 진액을 진하게 진하게 남김없이 짜내듯 우리의 삶을 참기름보다 진한 향기로 만들어내자. 세상의 피조물은 결국 소멸이 되지만 우리 인생의 진액은 짜낼수록 진하여지고, 인생을 깊이 깊이 곱씹어 볼수록 더 더욱 감칠맛 나는 인생의 그 맛, 참으로 말로 다 할 수 없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