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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마굿간을 없애다.
작년에 면사무소에 스레트를 철거를 신청해서 사랑채는 스레트를 걷어내고 다시 함석으로 지붕을 이었다.
바깥에 있는 창고는 스레트를 철거하고 창고를 없앴다.
60년대부터 새마을사업으로 지붕개량을 하기시작했는데 억새로 이었던 지붕을 걷어내고 기와내지는 함석 그리고 스레트로 지붕을 개량했다.
몸채와 별채는 함석으로 지붕을 이었고,
사랑채, 마굿간, 창고는 스레트로 지붕을 이었다.
그 때는 스레트가 무슨 발암물질이네?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골타진 스레트에 삼겹살을 구어먹으면 기름이 흘러내리고 맛있게 구워먹었던 스레트가 발암물질이라해서 폐기물처리로 바뀌었다.
시에서 신청해서 폐기물처리 전문업체가와서 걷어내고 두꺼운 비닐로 묶어서 실고가서 처리하고 있다.
처리반원들은 방제복과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작업을했다.
이번에는 안집 마당끝에 있는 마굿간을 신청했다.
다행하게도 신청했던 마굿간이 선정되어 전반기 사업이라 이달안으로 스레트를 철거를해야한다고 연락이왔다.
개인이 스레트를 철거할려면 600만원이상 비용이 발생합니다.
폐기물으로 분류되어서 그렇습니다.
이번주말에 동생들 다 연락했습니다.
전주에 있는 사촌동생도 부탁을 했습니다.
퇴직하고 서각을 하는 막내동생 친구가 있는데 작년에와서 먼지구석에서 수고를 많이했는데 서각하기에 좋은 송반때기를 골라서 실어갔습니다.
이번에도 내려와서 같이 치우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엣날 물건이나 쓸만한 것은 사랑채 광을 치워웠기에 그곳에 보관할려고 합니다.
다음주 화요일에 스레트 걷어내고 수요일에 마굿간을 없앨려고 굴삭기를 예약했습니다.
아버지께 마굿간과 창고를 없애는 것을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아마 절대 하지마라고 하실겁니다.
평생 쓰시던 물건들이라서요.
옛날 머슴들이 있을 때 소를 키웠던 소외양간과 돼지를 키웠던 돼지막과 또 염소도 키웠고 옛날 어르신들께서 부엌에 재를 버리고 측간(화장실)으로 썼던 마굿간 건물이 집앞 입구에 있어서 집이 조금은 답답했다.
이번에 마굿간을 스레트를 걷어내고 철거를 할려고한다.
마침 집앞에 커다란 모과나무도 캐냈고,
작년에 창고도 철거를 해서 이번에 마굿간을 없애고 조그맣게 있는 화단까지 없애면 넓은 마당이 되고 앞이 확트여서 답답했던 안집이 환할 것 같다.
시골에 집이 모두 다섯채가 있는데 마을에 목수가 한분 계셔서 그 분이 시골집 다섯채를 다 지었다.
이번에 철거한 마굿간을 그 목수께서 처음을 지은 마굿간이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남 목수밑에서 집짖는 일을 배우다가 혼자 처음으로 우리집 마굿간을 지으셨단다.
지금같이 전기로 자르는 톱도, 대패도 아무것도 없을 때라 로꼬라는 배가 불록한 톱으로 기둥을 사각으로 면을 내고 대패날을 갈아가면서 기둥을 매끄럽게 만들었다.
소도 키웠고,
돼지도 키웠고,
염소도 키윘고,
측간으로 썼던 건물이라 치울 것이 엄청 많이있다.
작년에 창고를 치울 때도 형제들 다 부르고 제아이들까지 내려와서 창고안에 있는 물건을 치웠다.
이번에도 소마굿간과 마굿간 위와
돼지와 염소를 키웠던 마굿간에도 엄청 많은 물건들이 쌓여있다.
거의 쓰레기 수준이다.
60년대에 미국에서 원조로 우유와 강냉이 가루를 초등학교에 공급했다.
그 때 우유를 담았서 공급했던 통이 두꺼운 박스종이로 만들었다.
지금 440리터들어가는 석유드럼통보다는 조금 적었다.
그 우유통에 안방 구석에 놓고 잡다한 옷가지도 넣곤했다.
아버지께서 초등학교에 근무하시면서 급식이 끝난 우유통을 집으로 가져오셔서 몇개가 지금도 한쪽으로 찌그러져서 헛간에 잡다한 물건들이 들어있다.
워낙 버리는 것을 아까워하시는 분이라 차곡차곡 쌓인 쓰레기가 너무 많게있다.
나무는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이웃분들께 나누어드리면 되는데 정말 쓰잘떼기없는 물건들이 너무 많다.
한마디로 엄두가 안난다.
작년에 창고를 철거할 때도 그랬다.
농사를 지으니까 논을 갈려면 소가 꼭 있어야해서 소를 키웠고,
또 송아지가 나으면 팔아서 시골에서는 자식들 대학학자금으로 쓴다고 했다.
그리고 머슴들이 두명이나 있어서 거의 집집마다 소를 키웠다.
어머니께서 구정물이 아깝다고 돼지를 키우셨다.
그 때는 동네 방앗간에서 쌀방아를 찧기 때문에 죽제가 나와서 소와 돼지먹이로 사용했다.
왕겨를 걸러내고 싸라기가 섞인겨를 죽제라했다.
그리고 헛간 빈자리에 염소를 키웠다.
염소는 잡식성이라 대나무가지나 소나무가지 등 아무거나 잘 먹어서 키우기 편했고,
염소는 분뇨처리도 간단했다.
소나 돼지같이 마굿간을 치우고 짚을 깔아주고할 일이 없어서 힘들지않게 키운 것 같다.
아마 70대이상인 분들은 옛날 측간을 기억하실 겁니다.
돼지막에 올라가서 일을보면 돼지가 꿀꿀대면서 받아먹곤했죠.
바깥 창고옆에 돼지막에 이런 측간이 있어서 사랑채에서 모여놀던 머슴들은 이곳을 사용했습니다.
일명 똥먹은 돼지죠.
조금은 이상한 이야기지만 똥먹은 돼지고기 맛이 얼마나 맛있게요~
집안 마굿간에 붙어있는 잿간에 측간은 식구들이 사용했습니다.
볼일을 보고 재로 덮어두고 오랜시간이 지나면 아주 훌륭한 퇴비로 사용합니다.
제가 76년에 군복무를 마치고 제주도 서귀포에서 민박을 했는데 돌담을 된 곳에 돼지가 있고 그곳에서 볼일을 보았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살아계실적에 구정물과 죽제가 아까우시다고 저더러 돼지새끼를 사다 키우자고 하셨습니다.
그 때 제차가 걸로퍼 9인승이었습니다.
뒷자리에 의자를 옆으로 세우고 커다란 고무다라이에 꺼먹돼지새끼를 삼례장에서 사서 고무통에 넣어서 사다드리기를 여러번 했습니다.
삼례장에는 꺼먹돼지가 많이 나옵니다.
화물차도 아니고 승용차에 돼지를 실고 남원까지 다녀가면 끙끙대는 돼지새까가 내뱉은 냄새가 차에 찌들어서 꽤 오래갑니다.
돼지축사를 지나 보셨죠?
아마 동물들 중에 가장 심한 악취가 날 겁니다.
약 6개월이상 키우시면 60k(100)근 정도까지 자랍니다.
100근 정도의 돼지고기가 제일 맛있답니다.
돼지를 전문으로 키운 사람들은 사료로 키우니까 금방 자라지만 오직 구정물과 죽제만 먹여서 키우니까 아주 더디게 큽니다.
이렇게 키운 돼지를 동네사람들한테 부탁해서 집에서 잡아서 나누곤 했습니다.
구정물과 죽제로 키운 꺼먹돼지고기맛은 육질이 단단해서 시내 정육점에서 사먹은 돼지고기와는 비교가 되지않습니다.
원래 꺼먹돼지는 비게가 조금 있는 편입니다.
지인께서 껍질을 버렸다가 다시 씻어서 드셨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동네분들이 돼지를 잡는 사람들이 없어서 남원군 보절면에 저희 외가가 있는 동네에 식당을 하는 젊은 친구가 수수료를 50,000원정도 받고 돼지를 잡아주더군요.
트럭으로 실고와서 잡아주면 제가 제차에 담아서 갖고오곤 했습니다.
돼지를 잡는 날은 60k이상 무게가 나가는 돼지라서 제가 내려와서 봉고트럭에 실어주고 따라가 잡아주면 조각내서 실고오곤 했습니다.
제차가 승용차로 바뀔 때는 군제대하고 대학다니는 막내아들 차 코란도를 빌려서 돼지새끼를 실어다 드렸는데.
막내가 앞으로 절대 차를 안빌려 준다고해서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차에서 얼마나 냄새나 얼마나 났으면 그랬겠어요.
마굿간도 치워야하고 지금은 마음속에서만 뵐 수 있는 어머님 생각이나서 새벽에 눈이떠져서 끄적거려 보았습니다.
인천연수가인 5362
답변 고수
주말농부 10년차·
오래된 시골집은 보수해도 여기저기 또 보수할곳이 계속나오고 공사한곳이 시대별로 다 차이나서 미관에도 계속 거슬려 보이네요 옛날 우리집 얘기였습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그렇죠.
그래도 스레트는 철거를 해야해서요.
어르신들 아시면 창고랑 마굿간을 없애지 마라고 하실턴데
앞으로 누가들어가서 살던 넓게 만들려고 합니다.
수도는 겨울철에는 계량기에서 잠글려고 합니다.
근데 또 냉장고에 냉동이 안되네요.
거참~
인천연수가인 5362
답변 고수
주말농부 10년차·
옛날엔 소가 꼭 있어야 논밭 갈아야만 농사를 지을수 있었기에 소나 외양간을 중요시했던 때이고 지금은 시절따라 당연히 농기계가 자리를 차지해야 맞다고 생각 합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맞습니다.
외양간이 창고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농사는 안해서 농기구는 없지만 끝이 다달은 삽과 괭이 호미가 걸려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그렇죠.
소로 아마 한나절 내 장기질을 해야 한마지기정도 논을 간 것 같습니다.
또 새끼를 낳으면 자식들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한겨울에 소를 마당으로 몰고나오면 얼마나 날뛰는지요?
방학하면 꼴망태에고 겨울에 지푸라기와 섞어서 쇠죽을 끓일 건초를 장만했습니다.
경북포항김동주
잠시 향수에 젖어봅니다.
정말 어려웠던 시절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했으며
버리는 것이 없었죠,
이 글을 쓰시면서 몇번이나 어릴 적을 떠올리고 부모님 얼굴을 떠올렸을지 선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넉넉한 것이 없었던 70년대 조금 형편이 났다고 해도 별반 차이가 없이 고만고만한 살림살이
그래도 그 때가 행복했습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먹거리가 없어서 조금 있으면 찔레순을 끊어서 먹었어도 정이 듬뿍했던 그 때가 마음만은 편했지않나?싶습니다.
제사를 모시면 아침 일찍 집집마다 음식을 나누곤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선 음력으로 이웃 제사날이랑 어르신들 생일을 다 기억하셨답니다.
지금 연필로 가로로 써내려간 어머니 치부책이 몇권 있습니다.
포항 김동주님.
감사합니다.
내일부터 꽃샘추위가 물러난다고합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인천연수가인 5362
답변 고수
주말농부 10년차·
고가는 여기터지고 저기 고장나고 해도해도 끝없이 수리해야 하는 인력과 인내와 비용이 들어가는게 흠입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그렇죠?
마당에 세멘트로 포장을 했는데도 조그만 틈새로 풀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꽃샘추위에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경기양주자연으로
자연으로 돌아가자...·
네.
맞습니다.
모내기때는 꼭
홍어회무침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잔칫날 처럼요.
비가오니 쌀쌀합니다.
따뜻한 밤 되셔요.^^
경기양주자연으로
자연으로 돌아가자...·
선생님 쓰신글 보면서 아련한 추억속에 젖어봅니다.
저는 국민학교 다니기전까지 검정 똥돼지 머리위에
응가를 한 기억이 있답니다.^^
그때만 해도 쌀밥 먹기가 1년에 몇번
안되었고 동네에서 제사가 있는날 아침엔
동네 어르신들 모시고
식사를 나누던 정 많은 시절이었지요.
동네에 소도 몇마리 안되어서 소 주인분은
농번기철에는 이집저집 바쁘게
논갈이 밭갈이 하던
생각이 납니다.
특히 모내기날에는 최고의 날이었지요.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얻어 먹을수 있었지요.ㅎ
선생님 덕분으로 그 시절을 그리워 해 봅니다.
비가 옵니다.
편한밤 되십시요.
감사합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소를 빌려주고
품앗시로 대신 일을 해주고 했습니다.
모내기철에는 새참 먹을 때 젖먹이를 데리고 온 식구들이 같이 나와서 새참으로 국수를 먹고
점심 때는 집으로 다 와서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모를 심는 날도 돌아가면서 날자를 잡기도 했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꼭 밥한공기를 쥐어서 보냈습니다.
제사날엔 음식을 나누는 품습은 아래쪽 풍습같습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오늘은 별채에 수도가 터졌는데
욕실바닥을 깨고 파이프를 갈아야해서 걱정입니다.
일이 커지지나 않을까?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