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이야기 =27
암행어사 박문수가 거지꼴로
위장해서 팔도를 여기저기 돌아
다니던 때였습니다.
하루는 날이 저물어서 주막에서
하룻맘 보내기로 했습니다.
봉놋방에 들어가 보니
웬 거지가 큰 대자로 퍼지르고
누워 있었는데 사람이 들어와도
본 체 만 체, 밥상이 들어와도
미동도 없기에 박문수가 말을
걸었습니다.
“거, 댁은 저녁밥을 드셨수?”
“아, 돈이 있어야 밥을 사 먹지.”
그래서 박문수는 밥을 한상
더 시켜서 거지를 대접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에도
밥을 한 상 더 시켜다주니까
거지가
먹고 나서 말을 꺼냈습니다.
“보아하니 댁도 거지고 나도
거진데, 이럴 게 아니라 같이
다니면서 빌어먹는 거 어떻소?"
박문수도 영락없는 거지꼴이니
그런 말 할만도 하기에 그날부터 둘이 같이 다니기로 했습니다.
둘은 며칠 동안 구걸을 하며
돌아다녔는데 제법 큰 동네로
들어서니 마침 소나기가 막 쏟아
졌습니다. 그러자 거지는 박문수
를 데리고 그 동네에서
제일 큰기왓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한다는 말이
“지금 이 댁 식구 세 사람
목숨이 위태롭게 됐으니
잔말말고 나 시키는 대로만
하시오.
지금 당장 마당에 멍석깔고
머리 풀고 곡을 하시오.”
집안 사람들은 웬 뿅뿅인가
싶었지만 안 그러면 세 사람이
죽는다고 하니 시키는 대로 했습
니다.
그 때 이 집 남편은 머슴 둘을
데리고 뒷산에 나무를 베러 가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나이 아흔이라서
오늘 내일 하기에 미리 관목이나 장만해 놓으려고 간 것이죠.
나무를 베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오자 비를 피한다고 큰 바위 밑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저 아래서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가 들려
왔죠.
“이크,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나 보다.
얘들아, 어서 내려가자.”
머슴 둘을 데리고 부리나케
내려오는데 뒤에서 바위가
쿵 하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위험을 모면하고
내려온 남편은 전후사정을 듣고
거지한데 절을 열두 번도 더 했습니다.
“우리 세 사람 목숨을 살려 주셨
으니 무엇으로 보답하면 좋겠소? 내 재산을 다 달란대도 내놓으리다.”
“아, 정 그러면 돈 백 냥만 주구려.”
주인이 백냥을 주자
거지는 돈 백 냥을 받더니 대뜸
박문수를 주는게 아니겠습니까.
“이거 잘 간수해 두오.
앞으로 쓸데가 있을 테니.”
박문수가 가만히 보니
이 거지가 예사
사람이 아닌것 같았습니다.
그는 시키는 대로 돈 백 냥을
받아서 속주머니에 잘 넣어 두었
습니다.
다시 며칠 지나서 어떤 마을에
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 큰 기와집에서 온 식구가 울고불고 난리가 나 있었습니다.
거지는 박문수를 데리고
그 집으로 쑥 들어갔다.
“이 댁에 무슨 일이 있기에
이리 슬피 우시오?”
“우리 집에 7대독자
귀한 아들이 있는데, 이 아이가
병이들어 다 죽어가니
어찌 안 울겠소?”
“어디 내가 한 번 봅시다.”
그러더니 병 든 아이가
누워 있는 곳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사랑채로 들어가선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아이 손목에 실을 매어 가지고
그 끄트머리를 가져오시오.”
미덥지 않았으나 주인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이
손목에다
실을 매어 가지고 왔습니다.
거지가 실 끄트머리를 한번
만져 보더니
“뭐 별것도 아니구나.
거 밤을 한말 삶으시오.”
밤을 삶아 갖다주자
거지는 밤 알갱이를 물에 타서는
아이에게 먹이게 했습니다.
주인이 약을 받아 아이한테
먹이니 다 죽어가던 아이가 말짱
해졌습니다. 주인이 감복을 해서 절을 하며 말했습니다.
“7대독자 귀한 아들 목숨을
살려 주셨으니 내 재산을
다 달란대도 드리리다.”
“아, 그런 건 필요 없고
돈 백 냥만 주구려.”
이렇게 해서 또 백 냥을 받아
가지고는 다시 박문수를 주었다.
“잘 간수해 두오.
앞으로 쓸데가 있을 거요.”
옆에서 보고있던
박문수가 궁금해 물었습니다.
"아이의 병명은 뭐고 어떻게
고친 겁니까?"
별거 아니요~
그아이가 독지네에게 물렸길래
밤으로 치료 한거라오..
원래 밤이 독충의 독을 제거하는
데 즉효라오"
거지는 별일 없었다는듯
가던 길을 재촉 했습니다..
며칠을 또 가다가 보니
큰 산 밑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보아하니 웬 행세
깨나 하는 집에서 장사 지내는 것 같았는데 거지는 기웃기웃 구경하고 다니더니 마침 하관을 끝내고 봉분을 짓는 데 가서는
“에이, 거 송장도 없는
무덤에다 무슨 짓을 해?”
하고 마구 소리를 쳤다.
일하던 사람들이 들어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네 이놈, 그게 무슨 방정맞은
소리냐? 그래, 이 무덤 속에
송장이 있으면 어떡할 테냐?”
“아, 그럼 내 목을 베시오.
그렇지만 내 말이 맞으면 돈 백냥을 내놓으시오.”
일꾼들이 달려들어 무덤을
파헤쳐 보니, 참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과연 송장이
든 관이 없었다.
“내가 그걸 찾아 주려고
온 사람이오. 염려 말고 북쪽으로 석자 세치 떨어진곳을 파보시오.”
그 곳을 파 보니,
아닌게아니라
거기에 관이 턱 묻혀 있었다.
“여기가 명당은 천하명당인데
도둑혈이라서 그렇소.
지금 묻혀 있는 곳에 무덤을 쓰면 복 받을 거요.”
이렇게 해서 무사히 장사를
지내고 나니, 상주들이 고맙다고 절을 열두 번도 더 했습니다.
“묘자리를 이렇게 잘 보아
주셨으니 우리 재산을
다 달란대도 내놓겠습니다.”
“아, 그런 건 필요 없으니
약속대로 돈 백 냥만 주구려.”
그래서
또 돈 백냥을 받았고
또 박문수를 주었습니다.
“이것도 잘 간수해 두오.
반드시 쓸데가 있을 거요.”
그리고 나서 또 길을 가는데,
거기는 산중이라서 한참을 가도
사람 사는 마을이 없었습니다.
그런 산중에서
갑자기 거지가 말을 꺼냈다.
“자, 이제 우리는
여기서 그만 헤어져야 되겠소.”
“아, 이 산중에서
헤어지면 나는 어떡하란 말이오?”
“염려 말고
이 길로 쭉 올라가시오.
가다가 보면
사람을 만나게 될 거요.”
그러고는
연기같이 사라졌습니다.
박문수는 놀랐지만 뭔가
사연이 있거니 싶어서 거지가
얘기한데로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한참 동안 올라가니 고갯마루에
장승 하나가 딱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서
웬 처녀가 물을 한 그릇
떠다놓고 빌고 있었다.
“장승님~ 장승님,
영험하신 장승님. 우리 아버지
백일정성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한시 바삐 제 아버지를 살려 줍시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의아해진 박문수가
무슨 일로 이렇게 비느냐고
물어보니
처녀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관청에서
일하는 심부름꾼이온데, 심부름
중에 같이 일하는 동료가 나랏돈
삼백 냥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그 때문에 저의 아비가 잡혔는데 내일까지 삼백냥을 바치지 않으면 목을 벤다고 하는데 가난한 저로서는 돈을 구할길이 없어서 이렇게
백일기도라도 드리는 중이였나이
다."
박문수는 거지가 마련해 준 돈
삼백냥이 떠올랐습니다.
반드시 쓸데가 있으리라 하더니
이를 두고 한 말이로구나 생각
했기에 그는 돈을 처녀에게 주었
습니다.
“자, 아무 염려 말고
이것으로
아버지 목숨을 구하시오.”
이렇게 해서 억울한 목숨을
구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처녀가 빌던 장승이
비록 나무로 만든 것이지마는
가만히 살펴보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습니다.
바로 아까까지 같이 다니던
그 거지 얼굴을 쏙 빼다 박은 거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