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비란 내 인생의 밥상이다
23년 3월 23일
노란보리를
파종할려고하는데
2.000평팔로가지금부터
걱정되는데요
21년 10월 27일
3
다음 주 보리•밀 모임 작업 알림 🔔
1️⃣ 습해를 받은 포장은 추위를 견디는 힘이 약해
겨울 나는 동안 동사하거나 말라 죽을 수 있어요.
반드시 배수에 신경 써 서릿발 피해와 습해를 막으세요.
배수로는 논 끝머리에 내고
서로 연결되게 해서 물이 잘 빠지게 만들어야 해요.
2️⃣ 파종이 늦어진 지역은 퇴비나 볏짚 등
유기물을 피복해 안전하게 월동 준비를 마쳐주세요.
[🌞 날씨]
다음 주는 찬 대륙고기압의 영향으로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져 추운 날이 있겠고,
기온은 평년(5.7~7.9℃)과 비슷하거나 낮을 전망입니다.
강수량은 평년(3.1~9.7mm)과 비슷하거나 적을 것으로 예상되어
관수 관리에 신경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저수율:66.0% (평년 68.5%의 96.4% / 11.07 기준)
🧑🏻‍🌾 11월 11일 오늘은 농업인의 날이에요.
농사 짓느라 늘 고생하는 농민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앞으로도 우리나라 농업을 위해 힘 써주시는 농민들을 위해
팜모닝도 열심히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주간 작업 알림을 놓치지 않고 받아 보고 싶다면?
댓글로 “알림 신청”이라고 달아주세요.
22년 11월 11일
5
1
Farmmorning
3월 달에 보리 씨앗을 뿌려 보았더니
보리가 잘 익어서 7월 달에 수확을 했습니다. 6월 5일 날 찍은 사진 올립니다 블루베리 열매 따기 전이라 파란색 이네요 ㅎㅎ 보리 수확 사진을 못직어서 아쉽네요.
22년 8월 16일
1
Farmmorning
벼,콩 ,보리,고추,하우스감자농사를 10년째 짓고있는 8남매 다둥이 맘입니다*^^*
선배님들의 농사노하우 많이 배울수있게 조언 마니마니 부탁드려용~*^^*
22년 8월 30일
장마철에 비와 친구되어 심는작물은?
오잉? 무슨 장마철에 뭘 심는다고!
그것도 비를 맞아가며...?
의문부호가 생기실 것 같은데요.
제 경험치상 비올때 심는 작물이 있습니다.
한번 끝까지 읽어봐 주실래요. ㅎㅎ..
바로, 울릉도에서 나오는 눈개승마 입니다. 혹은 삼나물, 고기나물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식감이 쫄깃쫄깃하고 소고기 식감이 있어서 매니아층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하네요.
육개장에 고사리나 고비대신 넣으면 환상의 맛 그 자체 입니다.(같이 먹던 사람이 사라져도 모른다능,ㅋ ㅋ..)
각설하고, 눈개승마는 모종 이식후 물관리만 잘해주면 병충해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지가 알아서 잘 커 주니까요)
지금 장마철에 심고, 내년 초(2월말~3월)에 반드시 해토되면서 뿌리가 들뜨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가차없이 보리 밟기 하듯이 꼭꼭 눌러 주셔야 합니다.
물관리와 들뜸현상만 잘해주시고 풀괄리만 해주시면 3년차 부터 팜 모닝 회원님들 식탁에 올라갈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2년차부터 뿌리가 활착된 가을에는 유박비료 듬뿍듬뿍 주시면 땅도 좋아지니까, 당연히 눈개승마도 대 환영할것이고, 이듬해 이른봄 주인님 밥상을 영양가 있게 화답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ㅎㅎ
오늘도 활기차고 행복한 날 만드시길 바라겠습니다.
23년 7월 10일
4
1
Farmmorning
보리 파종시기를 놓쳤는데 2월도 가능한가요?
21년 12월 12일
1
굴비란 내 인생의 밥상이다
23년 3월 23일
파랑한하늘 맑고 드높은하늘
결실의계절 가을의 드높은 하늘을 볼때마다 어린시절이
생각난다 어린시절에는 산으로 바다로 마음꺽 뛰놀며
자동차가 귀한시절이라 수확철에는 지게에 농산물을
저날리며 쉴틈없이 바빠는데 지금은 문명이 발달되어 모든것이 기계로 움직이고하는 시대가 되어 사람이 필요없는 이웃간 품앗이 농사가 없어진 베이비 세대에게는 서글픔 세대인것같다
정이있고 행복이 넘쳐난 그 보리고개 시절이 그립다
그리움 과 향수을 뒤로한체
두릅밭 과 고추밭 고랑에 비닐과 잡초메트를 철거하면서 내년 농사을 기대
해본다 올농사는 고추는 긴장마로 탄저병에 힘들었고 배추에서는 무릅병이 와서 힘들었는데 하늘이 주는대로
거두는것이 순리인듯 내년을
또 기대해본다
농부는 농사을 하늘이 주는것
만큼 수확하는것이 진리요
순리인것 같다
10월 24일
2
-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6 -
우리는 국민학교 다닐 적 점심시간에 강냉이죽과 하얀 우유가루를 배식받아 먹었다.
우유가루가 요즘 말하는 유통기간이 지나서인지 딱딱하게 굳어서 돌멩이 같았다.
그래도 그 딱딱한 우유가루를 쪼개 입에서 녹는 우유맛은 달콤했다.
가루우유는 그 때 맛보고 또 기회가 없었다.
아가들 먹는 분유를 한 숫갈 훔쳐 먹었을 때 국민학교 때 얻어 먹었던 기억이 쑥 떠올랐다.
노란 강냉이 죽을 쑤어서 학생들에게 급식처럼 나누어서 먹었다.
남학생들은 네모난 양은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고,
여학생들은 약간 타원형인 계란모양같은 양은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다.
도시락엔 까만 보리밥에 도시락 한켠에 콩자반과 단무지가 대부분이었고 고추장에 볶은 멸치와 계란후라이는 잘사는 집 아이의 반찬이었다.
도시락 검사도 했다.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국가차원에서 혼분식을 장려했고 집에서 밀주를 담는 것을 세무서에서 나와 단속을했다.
우리집은 나락타작을 할 때 나락가리 속에다 커다란 항아리를 묻고 쌀막거리를 담아서 일꾼들에게 쌀막걸리를 대접했다.
2모작으로 농사를 하기 때문에 보리나 밀을 심었기에 방앗간마다 밀가루를 빻는 기계가 있었고 밀가루를 빻을 때 나온 밀의 껍질인 밀기울로 누룩을 만들어 말렸다가 막걸리를 만들었다.
그 때 누룩을 만든 틀이 누룩틀이다.
동그란 소나무를 잘라서 가운데를 도려내고 누룩틀을 만들었다.
헛간에 매달아 놓았다가 매년마다 꺼내서 누룩을 만들었다.
네모나게 만든 누룩틀도 있었다.
누룩을 만들고 바같 기둥에 매달아 놓았다.
이 누룩틀로 메주도 만들기도 했다.
겨울철에는 난로위에 도시락을 뺑둘러서 얹어놓아 김이 모락모락나는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다.
맨 밑에 있는 도시락과 위에 있는 도시락을 뒤집어가면서 도시락밥을 따뜻하게 했다.
설 명절에 인절미를 만들고 남은 콩가루는 찬 식은밥을 버무려 먹으면 무지 고소했다.
콩가루에 식은밥과 콩가루를 지붕위에 달렸던 둥그런 박으로 만든 바가지에 손으로 버물러서 먹었던 하얀 쌀밥을 최고 맛집의 최애 음식맛이었다.
우리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삐라를 보았고 그 삐라를 주어 학교에 갖다주면 공책 한권과 연필 한 자루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교실 마루바닥은 양초를 문지르고 마른 걸레로 닦아 반들거리고 미끄러웠다.
이 때 마루바닥을 문지르면서 구구단을 외웠다.
그 때 구구단 외우기가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우리나라 8도의 각도 도청소재지를 외우는 것도 만만치는 않았다.
특히 충청북도 도청소재지 청주시와 충주시는 늘 헷갈렸다.
위치로 볼 때도 다른도는 다 남북인데 충청도는 동서로 나누어졌다.
고학년에 올라가니 세계 각나라의 수도를 외우는 것은 고역이었다.
지구본을 돌려가면서 수도를 외우기도했다.
나무공이가 빠진 마루바닥에 구멍이 있으면 지우개나 연필 등이 그 구멍으로 빠졌다.
덩치가 작은 친구가 교실 밖에 있는 환기통으로 기어들어가서 머리에 하얀 거미줄을 듬뿍 묻히고 고무지우개와 연필을 한 웅큼들고 나왔다.
연필을 뾰쪽하게 깍아서 침을 묻혀가면서 글씨를 썼기에 가수나 유명배우 사진이 있는 책받침을 학교 앞 점빵에서 구입해서 받치고 썼다.
뽑기를 하는데 왜 그렇게 작은 풍선만 뽑히는지?
우리는 대한민국 교육의 지표를 담아 1968년 12월 5일 대통령령에 의해 반포한 문서 국민교육헌장을 달달외웠다.
우리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받들어"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아무뜻도 모르고 외웠고,
그렇게도 긴 393자의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한 사람에게는 체벌을 받기도 했다.
김영삼정부 출범 그 다음 해인 1994년 정부는 국민교육헌장을 학생들의 뇌리에서 지우기 시작했고,
그리고 2003년 노무현정권이 출범하면서 국민교육헌장선포일 자체를 역사에서 지웠다.
이제 국민교육헌장은 역사에서도 찾기 힘든 한 구석에 처박혔다.
군복무를 마친 남자라면 국민교육헌장은 물론이고 군인의 길, 군인 정신, 군인복무규정 등 10가지 정도를 단 며칠에 외웠다.
그렇지않으면 어떠한 댓가가 있어서였다.
그 때 그 정신으로 공부를 했다면 고시패스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았다.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터지자 밑물같은 대한독립만세~
하는 3.1절 노래를 외우고 불렀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무찌르자 공산당하는 6.25노래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티비에서는 영정사진이 몇 일동안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하얀국화꽃으로 뒤덮힌 운구차가 지나갈 때 길가에서목 놓아 울부짖는 아낰네들도 있었다.
그 때는 무조건 뉴스를 시작하면서 첫머리에 대통령사진과 대통령의 하루 일과를 방영했다.
우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좋아하는 노래를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했고 팝송을 한글로 적어 따라 부르곤 했다. 
"소니"라는 일제 라디오 카세트를 갖고 있는 나는 친구들한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를 끼워서 계속 들었고 녹음도 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엔 폴앵카의 다이애나와 크레이지 러브, 엘튼 존, 폴 매카트니, 존 레논, 런던 보이스, 마이클 잭슨, 아바라는 외국 가수들을 통해서 고고댄스란 걸 알았다. 
친구들과 카세트를 어깨에 메고 모닥불 피워놓고 밤새도록 놀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썬데이 서울이나 플레이보이, 펜트하우스와 같은 외국성인잡지를 친구들과 몰래 돌려보았고 어떤 불량한 녀석이 야한 그림이나 볼만한 페이지를 몰래 찢어가곤 했다. 
그 때 성인잡지 "선데이 서울"은 주간으로 발간되었으며 연예계 루머와 스캔들, 야설, 비키니를 걸친 연예인들 사진 등 최고의 인기있는 성인잡지였다.
고속버스를 타면 안내양이 주간잡지와 신문과 사탕을 나누어 주기도했고,
돌려가면서 지루한 시간을 때웠다.
그 때 고속버스 안내양을 비행기 스튜어디스같았다.
안내양 응모기준이 고졸이상, 키 크고 날씬하고 용모가 단정해야 했기에 제복을 입은 안내양은 이뻤다.
외국 성인잡지인 플레이보이와 팬트하우스는 길거리 노점에서 팔았다.
우리는 1970년부터 1981년 사이에 2차례의 석유파동을 겪었고,
1997년 IMF라는 고비마다 닥쳐왔던 불리한 사회적 여건을 원망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2024년 오늘 이제는 됐구나!싶었는데 사회불감증이 깔려있고 상위 1%라는 정치하는 사람들과 돈 많은 사람들이 지 욕심만 부리고 할일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던 본인들 모습에... 
영화처럼 머릿속으로 옛 추억이 스쳐 지나가는 당신은! 
우리들의 친구입니다...
비가 너무 잦습니다.
적당하게 가끔씩 내려주면 좋으련만.
농촌에는 농사철이 다가왔습니다.
이상기온으로 과수가 피해도 없고,
하우스에서 곱게 자란 고추모종도 냉해피해가 없고,
곧 논에 모내기가 시작되겠지요?
모든 작물이 풍년이어서 애써 농사지은 농민들께 기쁨을 안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5월 7일
20
33
[ 생활의 지혜 ]
●화분에 식물이 잘 자라지 않을 때는 마늘 몇 개를 으깨어 물에 희석해 뿌려주세요. 화초가 무럭무럭 잘 자라요.
●쓰레기 봉투가 양이 다 안 찼는데 냄새가 심하면 고민되시죠. 이럴 땐 신문을 물에 적셔 쓰레기 봉투 위에 얹어두세요.신문이 냄새를 쏙 빨아들입니다.
●달걀을 삶을 때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리면 나중에 껍질이 잘 벗겨집니다.
●열쇠 구멍이 뻑뻑할 때 연필심을 열쇠에 고루 묻힌 뒤 열쇠 구멍에 넣고 돌리세요. 여러 번 반복하면 매끄럽게 잘 열립니다.
●프라이팬에 음식 등이 눌어붙어 잘 안 닦이죠. 그럴 땐 팬을 불에 달구었다가 소금을 뿌리고 신문지로 닦아보세요. 냄새도 없어지고 프라이팬도 깨끗해집니다.
●색깔 있는 옷을 빨 때 식초나 소금을 약간 넣고 세탁하세요. 원색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옷이 완전히 잠기도록 식촛물에 넣고 30분 후 정도 지나면 다음 세탁기에 돌리세요.
●흰옷을 빨래할 때 가루세제와 함께 주방세제를 조금 넣어 세탁하세요. 흰옷이 더욱 희게 됩니다.세탁소 사장님이 알려주신 비결입니다.
●유리창에 페인트가 묻는 것을 방지하려면 유리창에 비눗물을 미리 묻히세요. 페인트가 묻어도 물걸레로 쉽게 닦입니다.
●냉장고 냄새가 심하다면 소주 한 병을 뚜껑을 연 채로 냉장고에 넣어 두세요. 간단한 방법이지만 그 효과는 놀랄 정도랍니다.
● 감자는 유리나 거울의 기름때, 소주는 냄비의 탄 바닥, 식초는 생선 냄새가 밴 팬을 닦으면 좋아요
●마늘을 빻아 보관할 때 위에 설탕을 살짝 뿌려두면 마늘 색이 변하지 않아요.
●흰 옷을 삶을 때 식초를 몇 방울 넣고 삶으면 더욱 하얗게 됩니다. 살균작용도 있어 일석이조예요.
●방충망에 낀 먼지를 털어내기 힘들죠? 이럴 때는 마른 스펀지로 문질러주면 쉽게 청소할 수 있어요.
●와이셔츠의 소매와 깃의 누런 때를 확실하게 지우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누렇게 변한 곳에 치약을 묻히고 햇빛에1시간 정도 둔 후 세탁기에 돌리면 감쪽같이 하얗게 변한답니다.
●매직펜을 쓰는 화이트 보드는 오래 쓰면 얼룩이 잘 안 지워지죠. 이럴 땐 모기약을 뿌린 후티슈로 닦아내면 몰라보게 깨끗해져요.
●냉장고를 청소할 때 식초를 물에 타서 수건에 묻혀 닦아 보세요. 냄새도 없어지고 소독 효과도 있어요.
●안경에 김이 서려 곤란할 때가 많죠. 이럴 때는 렌즈에 비누칠을 한 다음 닦아주세요. 샴푸를 몇 방울 떨어뜨려 닦아줘도 효과가 있어요.
●볼펜을 오래 사용하지 않다가 쓰려면 잉크가 잘 안 나올 때가 있죠. 이럴 때는 볼펜의 끝 부분을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곧바로 찬물에 담가 쓰면 잘 나옵니다.
●술 마신 다음날 단감을 드세요. 단감의 타닌 성분이 교감신경의 흥분을 억제시켜주고 머리를 맑게 해 준다고 합니다.
●손에 음식 냄새가 배었다면 식촛물에 손을 씻으세요. 혹은 설탕으로 문질러 줘도 냄새가 말끔히 없어집니다.
●요리하면서 기름이 튄다면 소금을 한 줌 넣어보세요. 너무 짜질 수 있으니 간 조절 잘 하시고요.
●불면증 때문에 고민이라면 머리맡에 양파를 놓고 주무세요. 양파 특유의 냄새가 신경을 안정시켜 주어편히 잠들 수 있어요.
●겨울에는 귤을 상자째 사놓고 먹곤 하는데 곰팡이가 피어 오랫동안 보관하기가 힘들죠. 소금물에 귤을한 번 씻어 준 후 보관하면 농약도 제거되고 오랫동안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답니다.
●행주를 매번 삶으려면 번거롭죠. 저는 세제로 빤 후에 전자렌지에 2분 정도 돌려주는데 삶아 빤 것처럼 깨끗하더군요.
●피 묻은 옷은 소금물에 담갔다가 세탁하세요. 얼룩이 감쪽같이 없어집니다.
●프라이팬의 눌은 때가 잘 닦이지 않으면 굵은소금을 뿌려서 닦아보세요.
●구두를 닦을 때 윤이 잘 안 나면 구두약을 바른 후 가스레인지 불에 닿지 않도록 살짝 쬐어 주세요.
●생화를 오래 꽂아 두고 싶다면 꽃병 속에 표백제를 한두 방울 떨어뜨려 보세요. 살균효과가 있어서 꽃에세균이 달라붙지 않아 오랫동안 싱싱하답니다.
●먹다 남아서 김이 빠진 맥주는 버리지 마시고 가스레인지 청소할 때 쓰세요. 찌든 때를 말끔히 없애줍니다.
●전골이나 찌개를 끓일 때 버섯, 감자, 풋고추, 당근 양파에 들깨가루를 갈아서 듬뿍 넣어보세요. 국물 맛도 걸쭉해지고 깊은 맛이 납니다.
●돼지고기 요리를 할 때 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없애려면 생강을 넣어주세요.
●매콤한 요리를 할 때는 탄산음료를 조금 넣어보세요. 감칠맛이 난답니다.
●초고추장을 만들 때 너무 되직하다 싶으면 물 대신 사과를 갈아넣거나 사이다를 조금 넣으세요.
●생선 튀김을 할 때 생선의 비린내를 없애고 싶다면 생선을 미리 녹차 우린 물에 담갔다가 요리하세요. 비린내가 싹 가십니다.
●보리차를 끓인 후에 식힐 때 재빨리 식혀야 고유의 보리 향이 유지됩니다. 또 소금을 아주 조금 넣어주면 향이 더욱 진해져요.
●된장이 오래되어 맛이 없어졌다면 멸치 머리와 고추씨를 바싹 말려 빻아 가루로 만들어 섞어주세요. 맛이 좋아진답니다.
●소금을 많이 넣어 음식 맛이 짜졌다면 식초 몇 방울을 떨어 뜨려보세요. 짠맛이 덜해집니다. 반대로 음식 맛이 너무 시다면 소금을 조금 넣어 맛을 중화시킬 수 있어요.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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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23 -
우리는 어릴적에 또랑물을 막고 물고기를 잡으면서 놀았다.
또랑을 막아서 논주인 몰래 보리가 심어진 논으로 물을대고 물빠진 또랑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그때는 미꾸라지와 붕어는 흔한 물고기라 잡지 않았다.
빠가사리나 양소래미, 메기, 꺽지, 심지어는 장어까지 맛있는 물고기가 워낙 많아서 미꾸라지와 붕어는 잡지도 않았다.
지금은 천연기념물이 되어버린 뗑아리라는 물고기는 4월 가뭄이 심할 때는 냇가에서 많이 잡았었다.
커다란 바위밑에 물이 흐르게 길을내면 뗑아리들이 살살 기어니온다.
창자가 없어서 그냥 냄비에 고추장과 들기름만 둘러도 맛있는 요리가 되었다.
뿔이 있어서 뿔에 찔리기라도하면 쏙쏙애리고 아팠다.
울진 민물고기 박물관에서 어릴적에 많이 보았던 민물고기가 있었다.
미꾸라지와 비슷하지만 색깔이 노란 깨끗한 양소래미는 작년에 다슬기를 잡으면서 몇마리를 보았다.
사라졌던 민물고기가 보여서 마음이 흐믓했다.
둠벙도 바께스나 바가지로 물을 퍼내고 물고기를 잡았다.
우리집에는 손으로 손잡이를 돌려서 전기를 발전시켜 물고기를 잡는 밧데리가 있었다.
물고기가 있는 곳에 양쪽에 대나무로 만든 삿대를 대고 앞에 짊어지고 발전기 손잡이를 돌리면 물고기가 잠시 기절을 했다.
한사람은 밧데리를 돌리고 한사람은 삿대를 들고 다니면서 물고기가 있는 곳에 삿대를 넣고 물고기를 잡는다.
삿대는 1.5m정도의 크기의 대나무를 가운데 뚫어서 전선을 넣고 한쪽은 전기 스위치가 달려있어서 스위치를 누르면 전기가 흐르고 스위치에서 손을 떼면 전기가 흐르지않는다.
끝에는 굵은 철사로 끝을 살짝 휘어서 돌멩이를 긁어내거나 고기를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였고, 한쪽은 끝에 그물망을 만들어서 고기를 주어담는 역할을 했다.
물고기가 많거나 물이 깊은 곳은 손잡이를 빠르게 돌려야 했다.
그래야 전기가 쎄게 발전되어서 물고기가 도망을 가지 못하고 기절한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밧데리가 무거워서 땅에 놓고 밧데리를 돌렸다.
농사철에 논에 물을 담그기위해서 만든 또랑이 있었는데 돌멩이로 담을 쌓은 곳은 늘 메기가 있었다.
고기굴이 있어서 몇군데만 밧데리로 전기를 넣으면 커다란 메기 몇마리는 꼭 잡았다.
보또랑 바위틈에 구멍이 있는데 헛탕이 거의 없었다.
돌담 사이나 방천사이를 손으로 더듬어서 고기를 잡기도 했으니까 물고기가 많았었다.
특히 천둥번개가 있는 날은 깊은 쏘에 살던 큰 물고기들이 천둥소리에 놀라서 수로로 들어오기 때문에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었다.
커다란 바위나 찬물이 솟는 곳에는 메기나 장어같은 물고기가 살기 때문에 처음엔 살살돌려서 물고기들이 전기를 통해서 움직이게하고 물고기가 움직이면서 흙탕물이 나온다.
그러면 전기를 좀더 쎄게 돌려서 물고기가 밖으로 나오면 잡았다.
그때말로 장어가 지게작대기만 하다고했다.
그렇게 커다란 장어도 잡았었다.
밤엔 횃불을 만들어 냇가나 넓은 또랑에 나가서 불을 밝히면서 물고기를 잡았다.
횃불을 보고 모이는 피리 등 잡고기가 있고 불빛을 보면 도망가는 메기나 뱀장어도 있었다.
도망가는 물고기는 빨리 쫒아가서 양쪽에 삿대를 대고 발전기를 쎄게 돌리면 전기에 기절해서 물고기가 뒤집힌다
지금 생각하면 큰고기가 전기에 더 약한 것 같았다.
큰 고기일수록 동작이 느려서 쉽게 잡혔다.
겨울철에는 양지바른쪽에 있는 커다란 바위밑에는 물고기들이 많이 모여있다.
한두곳만 잘 골라서 발전기로 전기를 살살돌려 바위밑에 삿대를 넣고 전기를 넣으면 숨어있는 물고기를 쫒아내서 잡으면 많이 잡을 수 있었다.
넓은 냇가는 새끼줄에 솔가지를 꽂아서 양쪽에서 끌고 올라가면 한쪽으로 물고기들이 몰아서 밧데리로 잡았다.
이 방법은 물오리들이 떼를 지어서 물고기들을 얕은 곳으로 모아놓고 잡아먹는 것에서 만들어진 방법이었다.
이때 밧데리로 돌려서 삿대를 집어 넣으면 밥알을 풀어 놓은 것 같이 하얗게 물고기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절대 해서는 안되는 방법이다.
겨울철 민물고기는 어느 때보다 맛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디스토마같은 충이 없어서 다라이에 무를 썰어넣고 고추장을 풀고 식초로 버무려서 날것으로 먹었다.
다먹고 난 뒤에 쌀밥을 비벼먹으면 밥알이 꼬들꼬들해서 정말 맛있었다.
요즘 초밥도 그 맛이 나질않는다.
식초도 요즘 쓰지않은 식초원료인 빙초산을 사용했다.
빙초산은 순도가 99%라 반드시 물에 희석해야했다.
빙초산은 영하 16도 이하에서는 얼음과 같은 덩어리로 변하기 때문에 따뜻한 곳에 두면 액체상태로 변한다.
이런 이유로 빙초산은 보관 중 터질 위험이 있어서 병에 가득 채우지않고 병마개가 느슨하게 막아 있어서 옆으로 기우리면 빙초산이 줄줄샜다.
요즘은 빙초산을 판매하는 곳도 많지가 않다.
동네 깨복쟁이 친구들 만나면 지금도 달려가서 가장 해보고 싶은 놀이 중에 물고기 잡으면서 놀고 싶다고합니다.
물고기를 잡아서 생토란대와 호박잎 그리고 쪽파와 부추를 넣고 고추장만 풀어 쌀을 넣고 끓인 어죽은 보기는 어설프지만 맛이 최고였습니다.
장마가 제주도에 상륙했다고 합니다.
곧 내륙으로 올라온다는 반갑지않는 소식이네요.
장마에 피해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7월 13일
12
6
1
음력 2월 초하루는 영동할매가 내려왔다가 세상을 두루 돌아보고 2월 20경에 올라간다는 음력 2월입니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바람이 많은 달이기도 합니다.
영동이란?
靈(영묘할 영)
動(움직일 동)
영(靈)적인 힘이 동쪽에서 일어나서 온다.
그래서 영동할매는 바람과 비를 몰고 오는 신이라 했습니다.
이 때 영동할매가 딸을 데리고 오면 너그러운 날이라 바람만 불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성질을 자주내 비와 바람이 같이 온다고 해서 예전부터 딸을 며느리보다 더 좋아했나 봅니다.
그래도 비와 바람이 같이오면 그해는 풍년을 기약할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이맘 때 보리고랑에 파란 새싹을 시샘이나 하듯이 진눈개비가 내려 꽃샘추위가 있기도 합니다.
또 이날은 머슴날이라고도 했습니다.
옛날엔 1년동안 새경을 받고 고용되어 농사일을 도와주는 사람을 머슴이라 불렀습니다.
상머슴은 90k들이 백미 15가마니를 작은머슴은 10가마니를 새경으로 받고 한해동안 사랑방에서 지내면서 집안일과 농사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가을일이 끝나면 겨우내 군불을 지필 수 있는 나무를 하고,
사랑방에서 멍석과 가마니, 산태미 등 농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저희집 사랑방에는 동네 머슴들 여러명이 모여서 화투로 두부내기도 하면서 기나긴 겨울밤을 같이 지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때 쌀가마니는 볏짚으로 짠 가마니 기억나시나요?
마대포대가 나오기전까지는 지푸라기로 가마니틀에서 짜낸 가마니를 사용했습니다.
가마니에 대나무를 찔러 넣어서 쌀을 한웅큼 빼먹기도 했습니다.
대나무 끝을 사선으로 뾰쪽하게 만들어서 가마니를 찔러 쌀을 빼고 가마니를 위아래로 당기면 구멍이 메꾸어지는데 이것을 삿대라고 했습니다.
저희 고향에서 서울까지 쌀 한가마니를 철도 수화물로 부치면 지푸라기로 만든 가마니라서 새끼로 꿰맨 사이로 쌀이 흘러나오기도 하고 쥐가 먹기도해서 가마니가 홀쭉 했다고도 했습니다.
90k들이 쌀가마니를 재는 저울은 커다란 막대저울로 달았습니다.
가마니를 저울 갈쿠리에 끼우고,
큰 막대를 양쪽에서 들어 올리면 저울추를 근대에 맞춥니다.
저울추가 올라가면 덜어내고,
저울추가 내려가면 바가지로 더 퍼넣어서 추를 수평되게 맞추는 저울입니다.
동네마다 1개씩 있어서 사용하고나면 바로 마을회관에 같다 놓았습니다.
물론 방앗간에서 앉은뱅이 저울로 달아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농사를 많이 지은 부자집에선 두명의 머슴을 고용했습니다.
지난 가을걷이를 마치고 여유롭게 겨울을 보내다가 서서히 농사일을 시작할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머슴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하루를 쉬게 하는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날이 지나면 농사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머슴들은 "썩은 새끼줄에 목을 맨다"는 속설이 있었습니다.
영동할매가 오는 날은 쑥떡을 해 먹었습니다.
마당에서 떡메로 떡을 치고,
콩고물은 볶은 콩을 절구통에 넣고 빻아서 가는 채로 걸러서 만들었습니다.
냉장시설이 없던때라 둥그렇게 만들어서 살짝 말렸다가 조금씩 뜯어서 콩고물에 버물러서 먹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쑥을 뜯어서 새끼줄로 묶어서 말렸습니다.
그래서 쑥인절미가 쓴맛도 있고 쑥색깔도 까맣고 질겼습니다.
지금은 소다를 넣고 삶아서 냉동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사용하니까 쓴맛도 질기지도 않고 쑥인절미 색깔도 얼마나 이쁩니까?
또 콩을 볶아서 콩주머니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날은 산에가서 빨간 황토흙을 퍼와서 대문밖에 양쪽으로 한웅큼씩 10여군데에 놓기도 했습니다.
사립문 양쪽에는 대나무 가지를 꺽어다 꽂아 놓았습니다.
아마도 잡귀를 쫒아낸다는 속설이었겠죠?
또 지난 겨우내 날렸던 연을 정지에 있는 살강에 한쪽에 오색실과 함께 매달아 놓았습니다.
정한수를 떠놓고 어머니께서는 두손을 합장하고 가화만사성을 소원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부엌 부뚜막에 정한수도 떠놓지 못했고 사립문 앞에 황토흙도 뿌리지 못했지만 날마다 이렇게 하시면서 자식들 출세와 부자되기를 바라셨던 어무이를 생각하면서 영동할매가 오는날 텅빈 집을 한번 둘러보러 다녀올려고 합니다.
어느 회사에서 전직원들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연사가
"태어나서는 엄마의 말씀을~
결혼하면 아내의 말을~
운전할 때는 네비게이션의 여자 말을~
이렇게 세 여자의 말을 듣고 살면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어찌보면 세상살이가 맞지 않나!싶습니다.
박목월 시인은
"2월의 봄은 베개밑으로 온다"라고 했습니다.
올해 봄은 조금 빠르고 따뜻할거라는 기상청예보입니다.
벚꽃의 개화시기는 600도의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2월1일부터 낮 최고기온을 합계해서 600도에 도달해야 벚꽃이 핀다는 법칙이 있어서 벚꽃 개화시기를 600도 법칙이라 한답니다.
뜰안에 매화꽃은 이미 꽃망울을 터트렸고,
산수유, 개나리, 싸리꽃, 벚꽃, 진달래와 철쭉이 아름다움을 뽐내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봄은 꽃의 계절이고 희망의 계절입니다.
봄은 가장 많은 시인들이 시를 쓰고 모든 사람들이 가장 즐거운 노래를 부르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봄에 농부들은 땅을 새로 일구어 씨앗을 뿌릴 준비를할 때입니다.
3월 6일
23
15
-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15 -
우리는 막걸리 심부름을 자주했다.
마을 구판장이나 자그마한 점방 한쪽에는 주로 간장 담글 때 사용하는 대형 옹기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막걸리를 담아 놓은 술독이다.
주로 한개가 보통이지만 농사철이나 가구수가 많고 술꾼이 많은 마을은 술독이 두개가 놓여 있는 곳도 있었다.
뚜껑은 널판지로 만들었고 손잡이가 있어서 쉽게 뚜껑을 여닫았다.
막걸리는 면 소재지 마을에 있는 막걸리 도가(개)집에서 만들어 아침 일찍 배달해 준다.
그때는 면단위마다 술도가가 있었다.
식량이 부족할 때는 밀가루와 옥수수가루로 막걸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세무서에서 밀주단속을 했다.
도가에서 술이 평소보다 덜 팔리면 세무서에 밀주단속을 의뢰했다고한다.
밀주를 담가서 집안이 아니고 담장넘어 대나무밭에 묻어도 여시같이 찾아서 벌금을 매겼다.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는 커다란 항아리에 막걸리릍 빚어서 손님들께 대접을 했다.
할머니 회갑연을 할 때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2개의 큰 항아리에 막걸리를 빚었다.
멋모르고 벌컥벌컥 들어마시다가 크게 배앓이를 한 적도 있었다.
그뒤로 볍씨가 종자가 개량되고 수확량이 늘어나면서 식량이 자급자족이 되고나서부터 쌀로 막걸리를 빚었다.
배고플 때 술도가를 지날 때면 고두밥을 쪄서 멍석에 널어 누룩과 버무릴 때 누룩이 묻지않은 고두밥 한주먹은 꿀맛이었다.
당시에는 시골에 자가용은 물론이고 소형 화물차도 전혀 없던 때라 막걸리를 짐발 자전거를 이용하여 직원으로 고용된 배달부가 배달해 주었다.
그때 막걸리통은 나무판자로 엮어서 만들어서 무게 또한 대단했다.
시골에서 오줌장군이랑 막거리통은 판자를 가운데가 볼록하게 엮고 대나무로 테두리를 묶어서 만들었다.
막걸리통은 마개도 아가들 주먹만하게 통나무로 만들어서 주둥이를 막았다.
요즘 와인으로 유명한 외국에서 볼 수 있는 와인통과 같았다.
그 무거운 막걸리통을 여러개 짐발 자전거에 매달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면서 배달하는 배달부 아저씨 종아리 근육은 요즘 보디빌딩하는 사람처럼 힘줄이 뭉쳐있었다.
술이 가득 채워진 막거리통은 마을 서너곳에 짐발 자전거에 가득 싣고 비포장 자갈길 신작로를 달려서  배달했다.
막걸리 배달부가 도착할 때쯤이면 구판장 앞에는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나 파르스름한 빛깔이 도는 한 되짜리 유리 됫병을 든 아이들과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기다린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이나 아버지 술 심부름을 나왔거나 그날 농사일 하러 온 놉(일꾼)들 새참과 점심 반주용 막걸리를 받아 사가기 위해서다.
아침에 바로 배달된 막걸리 맛은 좋았지만 냉장고가 없던 시대라 하루 전 팔다 남은 막걸리나 배달된 지 몇 시간 지난 특히 여름철에 막걸리는 신맛이 나기 때문에 모두들 그날 쓸 막걸리는 대부분 아침 일찍 사간다.    
밀가루에 막걸리를 붓고 발효시겨서 쩌낸 술빵이 그때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막걸리 배달부 아저씨가 주문한 막걸리 통을 내려놓으면 알싸한 막걸리 냄새를 가게 안에 피어 올리면서 콸콸 소리를 내며 쏟아 부었다. 
술을 다 붓고 나면 주인은 항아리 속에 있는 바가지로 휘휘 저은 뒤 조금 떠서 맛을 본 다음 순서대로 주문한 양만큼 퍼서 들고 온 주전자에 담아 주거나 유리병에 양철 깔대기를 꽂아서 부어준다.
막걸리 값은 곧바로 현금으로 돈을 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외상이 많았다.
외상인 경우에는 나무기둥에 끈을 꿰어 매달아 놓은 공책과 연필로 치부책 외상장부에 택호별로 적어 놓았다가 보리타작이 끝나거나 쌀방아를 찧고 나면 현물이나 돈으로 받았다.
시대가 변하면서 막걸리통도 나무통에서 프라스틱 말통으로 다시 한되짜리 비닐병으로 바뀌었고 뒤를 이어 맥주와 소주에게 바통을 넘겨 줬지만 오랜 시간 애주가들은 구판장 나무의자에 걸터 앉아서 안주로 풋고추에 된장을 찍어 먹었던 술잔과 긴 호흡을 했다.
요즘 전주에 막걸리촌이 등장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전국에서 생산 된 막걸리가 판매되고 있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막걸리보다 곁들여 나온 가지수가 많은 안주에 놀랍기도 하단다.
전라도 음식은 특히 전주음식은 맛있기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음식문화가 특히 발달한 곳이 전주라는 표현으로 전주에는 사불여(四不如)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관리는 아전만 못하고, 아전은 기생만 못하고, 기생은 소리만 못하고, 소리는 음식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알콜농도도 높지 않고 쌀로 만든 막걸리는 요기를 때우는데도 좋을 듯 하다.
어제 흡족하진 않지만 비가 내렸다.
당근에서 불루베리를 주당 판매한다고해서 주문했는데 진안군 마령면에 있어서 캐가야한다고한다.
오후 늦게 바람도 쐴겸 아내랑 아무 준비없이 농장으로 찾아갔다.
부직포에 심어졌는데 오래전에 불루베리 농사를 하다가 수년간 관리를 하지 않아서 풀밭이었다.
가랑비까지 내려서 심란했는데 여기까지와서 그냥 돌아가기도 뭐해서 5그루를 어거지로 뽑아서 실고왔다.
나무는 7년정도 키웠는데 그 동안 관리를 안해서 키만 컸고 불루베리가 작은 재래종이었다.
밤이라 텃밭에 내려놓고
감자와 옥수수를 수확한 자리에 심을려고 오늘 아침에 임시로 심었다.
전지를 해주면 어린 나무보다 나을 것도 같았다.
오이를 4개를 첫 수확했다.
이틀전에 그리 크지않았는데 어제 하루만에 많이컸다.
완두콩에 매주었던 줄을 걷어서 고추를 세번째 줄을 매주었다.
며칠사이에 완두콩이 완전 시들었다.
완두콩 뽑은 곳에 참깨를 심어볼까 한다.
밭 언덕에 하얀접시꽃이 많이 있었는데 하얀접시꽃이 약이 된다고해서인지 지난 겨울에 많이 뽑아갔다.
6월 9일
24
6
1
Farmmorning
보리심기
밭에 조금만 심어보고 싶은데 심는법을 알고 싶어요^^
21년 11월 14일
2
최순님 님의 글을 접하면서 일반적으로 평범한 분은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특히 어머니에 관한 사연에서는 그런 결정을 아무나 다 아무렇지 않게 할수있는 일이 아니거던요 잔듸꽃을 기르는 고운 마음씨나 남편에 대한 조금쯤 부정적인?(사실은 그렇지 않겠지만)사상?들 저는 엄마가 사변후, 세살때 돌아가셔서 엄마에게 불손한 놈을 보면 속이 끓어오르곤 했어요 Any way.님에게 재미있는 옛날 예기 한토막 들려 드릴께요 때는 구한말 쯤이라고 할까요 재법큰 어느시골 마을에 소위 잘사는 부농이 한집 있었습니다 농사도 잘되고 아무 부러울게 없는 집인데 문제는 자손이 귀해서 3대째 독자인데다 또 아들 하나뿐이라 금지옥엽 길러서 장가 들때가 되었는데 이 아들이 인물도 훤하고 몸도 튼실한데다 성품 또한 어질고 생각이 깊어서 소위 신랑감으론 최고라 어느 뼈대있는 조금쯤 몰락한 양반집 참한 규수를 택해 혼인을 시켰는데 아 얼마나 정답고 사랑스럽게 사는지 주변에서 다들 천생 연분 이라며 칭찬들을 했읍니다 수년이 흘러 어르신들이 작고하고 두 부부만 넓은집에 행랑어멈과 마당쇠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어느날 술이취해 돌아온 남편이 다짜 고짜 부인에게 달레들던 손에 잡히는 데로 아무거나 집어들고 아내를 구타하기 시작하더니한참을 그렇게 폭행을 하더니 제풀에 지쳐 잠이 들었는데 너무 황당한 아네는 도저히 영문도 모르겠고 믿기지 않았지만 그렇게 존경하고 사랑하던 그남편의 행동이라 께면 따져보리라 생각하고 잠자리를 봐 주었읍니다 이튼날 잠에서 껜 남편이 꿀물을 들고 들어온 행랑 어멈에게 자초 지종을 듣고는 자신도 믿기지 않았지만 안방에 누워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서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잘못 했노라고 무엇에 홀린거라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아내도 그 남편의 진실한 말과 태도에 꿈이겠거니 하며 화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장에갔던 남편이 집에 도착하자 마자 또다시 아내를 구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술이께면 그렇게 또 울며불며 사과를 했습니다 이런 세월이 여러해 흘렀습니다 이제 아내는 죽음에 대해 생각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노승이 탁발을 욌습니다 아내는 쌀을 한두어홉 정성스레 시주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님 가지않고 집을 두리번 거리더니 아내에게 남편을 고칠수 있는 비방이라며 강가에 나가 마른 갈대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손아귀에 잡힐정도씩 묶어 그걸 안방 대청마루에 제어두라 이르고는 구름처럼 떠나갔습니다아내는 어려운 일도아니라 마당쇠를 데리고 강가에 나가 소님이 일러준데로 많은 양의 갈대 단을 재워두고 주변에 다른 물건이 없도록 깨끗이 치워 두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이 일러준데로 안방에 앉아 장에간 남편을 기다렸읍니다 아니나 다를까 눈에 불을켠 남편이 달려 들어 오더니 손에 집히는데로 갈대 묶음을 들더니 마구 구타하기 시작 했읍니다 부러지면 또 새것으로 바꾸어가며 얼마를 그렇게 날뛰던 남편은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그날이후 신기하게도 남편은 기분좋게 술이취해 들어오면 아내가 주는 꿀물 한대접 들이켜고는 순하게 잠이들곤 했읍니다 너무나 신기하고 이상해서 이 아내는 수소문 하여 산속 노스님의 암자를 찾아가 저간의 일들을 예기 했읍니다 다 듣고난 스님의 말씀 전생에 아내는 대가집 도령이었고 남편은 도령담당 종이었는데 이도령이 얼마나 인성이 나빴던지 집에 있을땐 말놀이 하자며 올라타고 수시로 쥐어밖기를 밥먹듯하니 이 어린 종의한이 하늘에 닫았더니 후생에 부부로 만나 그종은 맞은만큼 때려야 이업보가 끝나는 거였습니다 스님이 갈대 묶음으로 그매의 대수를 획기적으로 줄여주고 마른 갈대로 맞으니 육체적인 고통도 덜어준 겄입니다 그후 아내는 선한마음을 가지고 가난한 이웃도 돕고 남편을 사랑으로 모셔 슬하에 8남매나 두고 다복하게 잘살았다는 권선 징악 사상이 깔린 예기였습니다 최순님 오늘 하루도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 합시다 화이팅 입니다 ~^~(걸리버 여행기의 외눈 밖이 거인(Me)
3월 23일
13
10
Farmmorning
아침 일찍 서둘러서 완두콩과 홍감자를 심었습니다.
아직은 살어름이 얼고 어제 로타리친 밭에 성에가 하얗네요.
바람이 쌀쌀합니다.
오늘 동서가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해서 옥정호 호수주변에 있는 마을공동체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매운탕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랫만에 형제들 만나 봄나들이를 하는 자리라 음식도 더 맛있었습니다.
봄날이라 멀리 보이는 저수지 둘레에 버드나무잎이 푸릇한 잎새가 보이고 노란 산수유꽃과 하얀 매실꽃도 보였습니다.
이 때쯤 물오른 나뭇가지를 비뜰어서 나무막대를 뽑아내고 그 껍질로 풀피리를 만들어서 불었던 추억도 소환해 보았습니다.
매끈한 나뭇가지가 길수록 피리소리가 더 이쁘게 났습니다.
그 피리에 구멍을 뚫어 학교종이 땡땡땡과 아리랑을 불곤했었습니다.
조금 지나서 보리대로 피리를 만들었습니다.
언덕아래 양지쪽에 쑥이 뜯고 싶은 마음을 도려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차한잔 마시자해서 옥정호를 돌아 드라이브도 할겸 정읍 쌍화탕거리에 있는 모두랑 쌍화탕집에 다녀왔습니다.
쌍화탕거리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여러곳 쌍화탕집 중에서도 모두랑이라는 쌍화탕집에는 손님들이 많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즐겨찾는 모두랑 쌍화탕은 40년 역사를 지닌 쌍화탕 원조라할 수 있는 전통 쌍화탕집입니다.
실내 분위기도 옛날 물건으로 장식되어서 고풍스럽습니다.
택배로 전국으로 주문량이 엄청 많이 나가는 유명하답니다.
겨울철에는 진하게 달여서 약간은 쓴맛이 있는 쌍화탕을 진하게 달인 쌍화탕을 한뚝배기 먹고나면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낍니다.
온몸에 스물스물 열이 오르는 기분이 듭니다.
위치가 정읍 경찰서 앞에 있어 경찰서에 면회를 하면서 쌍화탕을 들고가게 되면서부터 쌍화탕집이 많이 등장해서 이제는 쌍화탕거리로 붙여졌고,
쌍화탕 축제도 열리는 작은 골목입니다.
쌍화탕을 주문하면 말랑말랑한 가래떡을 조청과 함께 나오기도 했습니다.
철따라 귤이나 삶은 고구마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근데 모두랑은 오직 쌍화탕 하나만으로 승부를 하고 있습니다.
화문석으로 만들어진 항아리를 손잡이가 있는 뚜껑을 열면 보글보글 끓은 쌍화탕속에 고명으로 대추와 알밤, 은행이 듬뿍들었습니다.
쌉쌉한 쌍화탕에 고명으로 들어간 대추와 알밤, 은행이 보약을 마시는 느낌입니다.
감초를 넣고 달여서 약간은 달작지근한 맛도 가미되어 있습니다.
오래전에 아이들과 모두랑에 가서 쌍화탕을 먹고 난 후에 며늘아이가 아버님 생신이라 식사하고 들렀다고 했더니,
주인장이 여자분이셨는데 생일 축하한다고 포장된 쌍화탕 2인분을 주시는겁니다.
쌍화탕은 팩에 담겨져있고, 고명은 따로 진공상태로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 쌍화탕 한잔이 7,000원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몇 차례 들렀는데 아는체를 하지않았습니다.
오늘은 나오면서 주방에서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고 계시는 주인장분께 맛있게 잘먹고 간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오래전에 사장님께서 제 생일날 축하한다고 쌍화탕을 선물로 주셨다"하면서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손님한테 생일을 축하해주면서 쌍화탕을 선물로 주실수 있는 사장님이 많지는 않겠죠?
온화하시고 포근하신 모두랑 쌍화탕 사장님께 늘 건강하시기를 빌어봅니다.
요즘 많이 힘들어하는 삶속에서 마음 한구석이 넉넉함을 느꼈습니다.
마음 따뜻하신 모두랑 사장님께도 이 메세지를 보내봅니다.
친절함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어느 책에서 읽은적이 있습니다.
각박한 세상이라지만 어느 한구석에는 따뜻한 곳이 있습니다.
따뜻한 곳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3월 10일
8
4
🤩🤩🤩
고대 아라비아 시대에 광야를 건너는 세 상인에 관한 얘기다.
그들은 낮에는 뜨거운 광야의 햇빛을 막기 위해 천막을 치고 쉬었다가 별들이 빛나는 서늘한 밤에는 낙타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른 강 바닥을 걷고 있던 그들에게 "멈춰라!" 하는 큰 음성이 들려 왔다.
셋은 너무나 놀라 낙타에서 뛰어 내리며 “누구세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어둠 속에서 또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내가 말하는 대로 하면 나는 너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발 앞에 조약돌이 보이느냐?”
그들이 고개를 숙여 발 아래를 바라보자 희미한 별빛 아래 수 많은 조약돌이 반짝이고 있었다.
잠시 후 또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너희들은 각자 조약돌 하나씩을 주어 호주머니 속에 넣어라.
세 상인은 순순히 강바닥에서 조약돌을 하나씩 집었다.
그러자 또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이곳을 떠나라. 그리고 날이 밝을 때까지 쉬지 말고 계속가라”
한 상인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그 음성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그 음성은 한 가지만 애기하마.
아침이 되면 너희는 행복한 동시에 슬플 것이다 라고 말했다.
세사람의 상인은 걸음을 재촉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서로 얘길 했다.
“행복한 동시에 슬플 거라고?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뜻일까?”
"그러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네."
얼마 후 드디어 저 멀리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 하였다.
세 상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각자 자기 호주머니에 있던 조약돌을 꺼내 들었다.
조약돌은 햇살에 반짝거렸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것은 보석이었다.
하나는 루비, 다른 하나는 에메랄드, 나머지 하나는 사파이어였다.
“보석이다!”
한 상인이 기쁨에 들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때 옆 사람이 말했다.
“이런 젠장! 그럼 강바닥에 수 많은 보석들이 깔려 있었는데 우리는 겨우 하나씩만 가지고 왔네 허ㅡ”
“저것 좀 봐!”
세번째 상인이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이 뒤를 바라보자 광야에 심한 바람이 불더니 그들이 왔던 발자국을 모두 지워 버렸다.
“이젠 우린 그 길을 찾아 갈 수가 없어!”
어둠 속의 광야에서 들린 음성이 옳았다.
상인들은 행복 했지만 동시에 매우 슬펐다.
광야에서 富를 발견 했지만 더 많이 취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라비아의 세 상인들 처럼 인생이라는 광야를 통과한다.
그리고 인생의 광야를 지나는 동안 수 많이 깔려 있는 조약돌들을 밟고 지나간다.
또한 우리는 그것들을 하찮게 여기고 우연찮게 한 개의 조약돌만을 주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하찮게 여겼던 조약돌들이 보화임을 알았을 때는 발견한 그 보화로 인해 행복하지만 동시에 더 많이 챙기지 못해 슬퍼한다.
幸福은 어디에서 올까요?
철학자 '칸트'는 행복의 세 가지 조건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첫째 할 일이 있고,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셋째 희망이 있다면,
그사람은 지금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하기 보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걸 탐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내가 갖고 있는 것들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작은 것에 만족하며 기뻐해야겠습니다.♧♧
ㅡ옮겨온 글ㅡ
😅😂🤣(크크) ❣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좋은글 입니다...❣
♡ 인생 80
- 만족함을 알아야
한다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동부승지(同副承旨) 직(職)에 있다가 삭탈관직(削奪官職)당하고 파주 영봉산 자락으로 낙향한 김정국(1485-1542)은 만족함을 모르는 것이
최고의 병(病)이고 최대의 불행이라 했다.
1.좋은 음식 먹고도
더 욕심(慾心)내고,
2.좋은 옷 입고도 불평하고,
3.좋은 술 마시고도 욕(辱)하고,
4.서화(書畫)를 즐기면서도 화(火)내고,
5.미녀(美女)를 곁에 두고도 또 탐(貪)내고,
6.곡식(穀食) 쌓아 두고도 불만(不滿)이고,
7.좋은 향(香)맡으면서도 좋은 줄 모르고,
위 일곱 가지를 불평불만(不平不滿), 한탄(恨歎)하니
이를
8부족(八不足)이라 했다.
반면(反面) 만족(滿足)함을 알아야 즐거움도 있고
행복도 있다 했는데,
①토란국에 보리밥 먹고,
②등 따뜻하게 잠자고,
③맑은 샘물 마시고,
④방(房) 가득한 책(冊)을 읽고,
⑤봄볕, 가을달빛 즐기고,
⑥새와 솔바람 소리 듣고,
⑦눈 속 매화(梅花)와
서리 속 국향을 즐기고,
위 일곱 가지를 넉넉히 즐기니
이를 여덟 가지 여유
(餘裕)로운 즐거움이라 했다.
인생80,
오랜 세월(歲月) 살아오면서 무엇이 행복이라 느끼시나요 ?
그 탐욕, 그 불만 모두 부질없는 욕심들 아니던가.
비록 넉넉지 못하고 잘 나지 못했다 해도 만족함을 알아야 한다.
겸손(謙遜)하고 소박하게 감사하는 인생이어야 한다.
“지족상락
(知足常樂) - 만족함을 알면 인생이 즐겁다.
지족제일부
(知足第一富) - 만족을 아는 사람이 제일 큰 부자
(富者)다.”
탐욕을 버리고 만족을 아는 마음이 즐거운 인생의 첫걸음이다.
겸손하게 감사하는 마음에 행복의 길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
인생 80
- 아직 하고 싶고, 되고 싶고, 갖고 싶은 것 있으신가?
이 세상(世上)에 태어 나 온갖 아픔 슬픔 다 겪었지만,
인생 80을 살면서 보람도 있었고 기쁨과 명성(名聲)도 있었는데 무슨 후회(後悔) 있을 건가?
무엇인가 하고 싶고, 되고 싶고, 가지고 싶어 모두 얻으려 땀 흘려 노력(努力)하며 살아온 인생.
아직도 하고 싶고, 되고 싶고, 갖고 싶은 것, 남았는가?
공부(工夫), 사랑, 봉사(奉仕), 여행(旅行), 등산(登山)..
왜 이리 못다한
것들이 많은가?
더 이상 후회(後悔)하지 말고 가슴 아파 말도록
내일(來日)말고 오늘 바로 무엇인가 시작(始作)해야 하지 않는가?

세월 다 가기 전에 꿈은 이루어진다는 생각으로
길을 나서고 몸부림치며 부딛쳐 보아야 하는데 말이다.
지금 이 순간(瞬間) 되고 싶은 것 아직 있는가?
재물(財物),
명성(名聲),
권력(權力),
건강(健康)
또 뭐가 있더라?
다 부질없는 것,
아집(我執),
욕망(慾望),
탐욕(貪慾)
다 버린 지 오래거늘
건강(健康) 이외 다른 것 모두 버리고 다 접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저 건강이 행복이다 하면서 마음 편(便)히 사는 것이 제일 아니던가?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아직 가지고 싶고, 지니고 싶은 것, 있는가?
명품(名品) 옷가지, 현금(現金) 한 다발, 혼자만의
애인(愛人). 있다면 좋지만 헛된 망상(妄想)은 실망(失望)을 줄 뿐이다.
가진 것 다버리고 가야하는 데 더 모우고 지녀서 무얼 할 것인가?
점심 값 2만 원이면 친구(親舊) 만나 좋고 뭉치 돈 없어도 그만, 그 만남이 좋지 않던가?
우리들 인생
겸손(謙遜), 자중자애(自重自愛), 건강(健康)..
거기다 웃고 즐기는 여유(餘裕)가 있다면 그 아니 좋은가?
더 이상
욕심(慾心)내지말고
가벼운 몸차림으로
발걸음 씩씩하게
허허 웃으며 즐겁게 살면 그것이 행복이외다 ~~ (축하)(음표)(커피)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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