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무소주이생기심 ·
오늘은 아내 앞에서 어제 고수에게 배운 전정 방법을 시연하기 위해 밭으로 갔더니, 아내는 보는 눈이 다른지 대뜸 "어제 그 사람 전정 잘했네."라고 했다.
결과지가 너무 없는 것 아니냐고 묻자, 아내는 "아니다. 내가 얘기했잖아, 당신은 너무 많이 남겨둔다고."라고 답했다.
수십 년을 같이 산 부부라도 보는 시각은 다른가 보다.
고수님이 한 것을 곁눈으로 보며 중간 고랑을 해 나가는 와중에 아내가 "이것도 자르고, 저것도 자르고."라며 간섭하기에 그럼 당신이 해보라고 하니, "전동 가위가 겁이 나서 못 한다."라며 자리를 피했다.
하루가 아닌 반나절 배운 실력으로는 아내 눈에 차지 않았나 보다.
망설이지 않고 '도장지, 상향지, 하향지는 무조건 자르고 측지는 남기지만 서로 부대끼는 건 7~8할쯤 자르고 내향지는 부딪치지 않게 자른다.'라는 이론에 따라 과감히 자르니, 못 미더운 눈으로 보고 있던 아내가 그때야 "우리 신랑 이제 고수되었네."라고 했다.
어제는 고수를 따라 오전 내내 다녀도 허리 아픈 줄 모르겠더니, 오늘은 기합이 빠져서인지 서너 나무를 할 때마다 끊어질 듯 아파 쪼그려 앉아 쉬기를 반복했다.
12시 30분까지 한 고랑을 다 하고 나서 설거지가 필요 없는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요즘 라면은 크게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농사 때문에 식성까지 변하는 게 아닌지 슬며시 걱정된다.
어찌 되었든 고수님처럼 오전에 한 고랑을 하고 아내에게 합격 통보도 받았으니 나도 세 시간 만에 15만 원을 번 셈이다.
오후에는 온천에 가서 따뜻한 물로 돈 버느라 고생한 허리에 고맙다며 아픈 근육을 살살 풀어줬더니 한결 좋아졌다.
작물

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