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밭에 들러 무 솎는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로컬푸드에서 추석 장을 보겠다는 계획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밭에서 배추와 무를 살피고 하우스로 돌아오는데, 배추 이랑으로 들어서던 아내가 소리쳤습니다. "당신 지난번에 약 제대로 쳤어? 아이고, 못 살겠다. 벌레가 다 먹었잖아!" 짜증 섞인 목소리였죠. 그러더니 "약 치기 싫으면 태워놔. 내가 짊어지고 칠 테니!"라며 화를 돋웠습니다.
저도 지지 않고 맞받아 "이 사람아, 약 치고 시간 지나면 다시 벌레가 덤비는 게 자연스러운 일 아니야? 우리가 김장 담글 건데 벌레가 좀 먹으면 어때? 오히려 지각 있는 사람은 일부러 벌레 먹은 걸 찾는다고. 우리야 차치하고, 애들은 물론이고 손자가 먹을 배추인데, 벌레 안 먹게 약을 진하게, 자주 칠까? 아니면 'DDT 살충제'라도 쳐야 되나?" 그러자 아내는 잠잠해졌습니다.
밭에만 오면 잡초농법을 고집하는 저에게 아내는 늘 "남들도 다 제초제 친다"며 편하게 농사짓기를 원합니다. 그리고는 "잡초 투성이인 밭꼴을 보고 남들이 뭐라고 하겠냐"는 식으로 의견 대립이 생겨 언성을 높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사실 밭에 오는 것도 안 내키고 농사 자체가 싫어질 지경입니다.
시키는 대로 약을 쳐놓고 오는 길에 다시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 밭처럼 잡초가 많이 있어야 비가 내리면 풀뿌리에서 화학 반응을 일으켜 영양분이 생성되고, 그게 복숭아나무에 올라가 축적되어 내년에 꽃이 피고 건강하고 달콤한 복숭아로 크는 거야.
충남대 화학과 이계호 교수님의 건강한 먹거리 관련 강의 한번 들어봐. 남들이 풀 한 포기 없는 밭 보고 지나는 말로 "주인이 참 부지런하고 깨끗하다"는 말에 혹하지 말고. 그러자 아내는 "예초기 작업이 힘드니까 그렇지"라고 대꾸합니다.
한집에 사는 부부끼리도 이렇게 생각이 다른데, 하물며 모임에서 만난 사람끼리야 어찌 속을 터놓고 '내 마음 같으리라' 여기며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며 거침없이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