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누이와 올케 - 오늘은 시누이와 올케사이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시누이와 올케 사이는 어떠신가요? 대부분 데면데면 하는 사이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고 자매같이 잘 지내는 사이인 집도 많습니다. 저희집 막내 시누이와 제 아내와 시누이와 올케 사이 이야기입니다. 저희는 아들 셋 딸 셋인데 제가 육남매 중 장남입니다.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하신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실 때마다 군산 막내 여동생이 내려와서 간호를 했습니다. 저희는 보호자 식사와 어머니 간식을 준비해서 날랐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저희 막내가 아버지를 5년반동안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늘 수고가 많은 동생입니다. 어머니께서 입원을 하셔서 막내 여동생이 보호자로 어머니를 돌봐드리고 있었습니다. 제 아내한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때 옆에 같이 입원한 보호자께서 제 아내에게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시더랍니다. 시누이 되는 사람이 "왜 어머니를 올케한테 병간호를 하게 하느냐? 자식들이 해야지" 라고 다른 보호자한테 말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저런 시누이가 어디 있느냐"라고 칭찬을 하더랍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지가 벌써 8년째 되어 갑니다. 어쩌다가 그때 이야기를 제 아내가 말하더군요. 저희 처가에도 처남댁도 있고 처제들도 있습니다. 장모님께서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처가도 똑 같은 처지에 있었습니다. 친정 동생들한테 시누이 이야기를 했답니다. 주변에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가 정말 친딸보다 더 좋은 사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부모님과 며느리는 남일 수 있습니다. 제 아내는 시누이를 많이 고마워합니다. 제 대신에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막내한테 저 또한 감사하죠.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는 밑반찬은 매주 해다 드리고 있었습니다. 생존해 계실 때 아버지께서 평생 드시는 몇가지 음식이 있습니다. 우족을 끓여서 그 국물에 푹익은 갓김치와 삭힌 청양고추와 물김치 국물입니다. 1년이면 우족을 20개 이상을 남원에서 커타란 솥에 장작불로 고아서 냉동고에 나누어서 비닐봉지에 넣어 둡니다. 오가면서 필요할 때마다 몇개씩 가져다 쇠고기를 넣고 끓여서 드립니다. 물론 중간에 아욱국 같은 된장국도 드립니다. 그 우족을 달인 국물에 푹익은 갓김치를 두스푼과 삭힌 청양고추를 한스푼 넣으시고 물김치 국물과 같이 드십니다. 그리고 식사 후에 꼭 누룽지와 숭늉을 드십니다. 어머니 살아계실 적에도 누룽지는 평생 한끼도 빠지지 않고 드셨습니다. 설탕, 밀가루, 미원 같은 것은 입에 대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때누 늘 남원집 냉동고에는 우족탕 국물이 가득 들어있고, 갓김치와 삭힌 청양고추가 냉장고에 있었습니다. 물론 우족도 항상 몇개씩은 미리 준비되어 있습니다. 물김치를 담글 때마다 생수 5병을 부어서 찜통으로 가득 담급니다. 제 막내 여동생이지만 참 아버지를잘 모시고 있었습니다. 저희 육남매 중에 아버지를 제일 잘 토닥거리면서 잘 모셨습니다. 저하고는 아버지는 가끔씩 뜻이 맞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막내 여동생이 아버지 뜻을 잘 들어주면서도 교통정리를 잘 한다고나 할까요? 위로 딸둘은 식사를 무조건 많이 드립니다. 막내는 조금씩 드실만큼 드리면서 더 드시고 싶으시면 더 드시라고 합니다. 아마 평생 더도 덜도 아니고 그 만큼씩만 드십니다. 아무튼 저희 육남매 중에서 아버지를 제일 잘 모셨던 막내 동생 이야기입니다. 그러기에는 저희 매제가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장인을 모신다는 것이 쉽지 많은 않지요? 아버지께서도 제일 편안해 하시는 막내 사위랍니다. 늘 수고가 많은 막내한테 밑반찬이라도 해주는 것이 고마움에 도리라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매달 20여일이 지나면 의자에 앉게하셔서 이발소같이 넓다란 보재기를 씌우고 바리깡으로 이발을 매제가 해 드렸습니다. 막내는 매일 충전 면도기로 면도를 해드렸습니다. 어쩌면 모든 상황이 시설에 모셔야할 형편이었는데, 딸들이 우리 자식들이 케어를 하자고 해서 집에서 모시기로 했는데 막내네가 모시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저희 육남매가 일주일에 한번씩 막내네 휴가를 주기위해서 주말엔 막내네집에 내려와서 아버지를 모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아흔여덟의 연세에 주무시다가 편안하시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올해가 3년되는 해입니다. 막내동생 덕분에 집에서 대접받으시고 계시다가 떠나가신 아버님이 벌초를 앞두고 긴시간 부모님때문에 애쓴 막내동생과 부모님이 생각나서 오래전 이야기를 다시 꺼내봅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비가 일부지역에 많은 피해를 안겨주고 있네요. 전주는 그냥 가끔씩 내리는 소나기수준입니다. 벌초를 하실 때도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늘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화목하고 우애있는 집을 보면 부럽습니다. 저는 6남매 장남으로 서른살때부터 정년퇴직한 최근까지 부모님과 같이 살았는데 여동생들은 오빠가 있으니 우리가 부모님 챙길 일이 없으니 너무 편하고 좋다라고 했지요. 3년전 두분 모두 돌아가시고 부동산도 모두 나눠주고 나니 늙은 칠순의 오빠가 어찌 지내는지 안부전화 한통도 없네요. 이참에 알뜰폰으로 바꿨지요. 혼자 시골에서 농사짓고 강아지랑 고양이 몇마리랑 살다보니 답답해서 창녕읍내 시니어클럽에도 나가보니 더 힘들어서 공간정보 회사에 취업하여 일주일에 몇일씩 출근해보니 이제 살맛이 납니다. 효자라고 다들 얘기하지만 돌아가시고 나니 못해드린것만 생각나서 후회스러워 하곤 합니다. 시누이와 올케사이란 집집마다 다른가 봅니다. 서로 살갑게 안부 전하면서 살면 어디가 덧나는지 왜 아웅다웅 서로 회피하면서 살아가는지 조금씩 양보하고 늘 소통하면서 지내면 좋을텐데 그게 어려운가 봅니다. 전주는 양반도시라는데 특히 강릉 유씨가 그렇다는데요 부럽습니다. 늘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푸근한 소식에 마음이 흐뭇해져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