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는 아니지만 짧은 청치마가 너무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밥을 많이 안 먹어서인지 아랫배는 없었다. 항상 내 얘기에 까르르 웃어주는 여자였다. 머리는 항상 윤기가 흐르고 단아했다. 나의 어떤 허풍에도 항상 내 눈빛을 보면서 시력을 맞추는 여자였다.
가끔 집에 놀러 가면 김치볶음밥을 해줬다. 웃을 때 목젖까지는 안 보여도 항상 웃음이 많은 여자였다. 아내는 항상 내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저렴한 음식만 먹었다. 멋을 내지 않아도 항상 내 눈에는 걸어오는 배경으로 후광이 빛났다. 내 앞에서는 절대 껌도 씹지 않았다.
다리가 너무 예뻐서 짧은 치마가 정말 잘 어울렸다. 내가 울적하고 속이 상할 땐 그저 바라만 봐도 나에게는 큰 힘이 되는 여자였다. 그리고 나를 만난 이후로 다른 남자에게는 절대 눈을 돌리지 않은 여자였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던 여자~~~~"
타이트하게 올라붙었던 힙은 엉덩이 부분이 번들거리는 츄리닝에 가려 모르겠고 지난 가을 사골국물에 보신했는지 부쩍 아랫배가 불러 보이고 요즘은 내가 농을 걸어도 씨알도 안 먹히고 윤기 흐르던 머리는 예전에 팝가수 티나터너를 연상시키는 사자 머리를 하고 있고
지금은 눈빛 교환은 고사하고 손가락과 턱으로 대화하고 김치 볶음밥이 먹고 싶어서 해 달라고 했다가 들통에 가득 찬 사골국물을 턱으로 가리키고 치아를 살포시 들어내고 웃던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목젖은 기본이고 허파꽈리까지 보일 정도로 웃어 젖히고
내가 돈이 없을 때에도 마음 편하게.... 생각했다간 쫓겨 날 거 같고 나에게 다가오면 뒤편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가끔 섬뜩하고 껌은 씹는 유쾌한씨도 아니고 앞니로 씹기, 어금니로 씹기, 송곳니로 가르기, 소리내기...비트박스를 듣는듯하고
요즘도 가끔 짧은 치마를 입는데.... 보는 내가 좀 민망하고 내가 울적하고 속이 상할 때 바라만 봐도...... 더 울컥해지고 그런데 난 며칠 전 10여 년간을 잊고 지낸 나의 이상형 희망사항을 다시 보게 됐다.
바로 출근 준비하는 아내의 모습... 스키니진에 힙 업이 되고 보정속옷에 아랫배는 온데간데없고 20여 분간에 걸친 드라이로 엘라스틴 머리가 되고 약간 스모키한 화장발 그리고 자장면 시켜 먹으라며 내민 용돈...완벽한 나의 희망사항이 돌아왔다.
현관문을 나서는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윗도리 가슴 너무 많이 팬 거 아니냐? 좀 올리고 다녀라" "웬일이야? 이 아줌마가 어디 내놔도 쳐다도 안 본다며?" 아내가 한마디 쏘아붙인다. "회사에서 실실 웃고 다니지 말고 옷 단속 좀 잘하고 쓸잘데기 없이 농담하는 놈 웃으면서 받아 주지 말고..."
아내가 날 빠끔히 쳐다본다. "별일이네! 나 아무도 신경 안 써 걱정하지 마쇼"
사실 출근하는 아내 모습을 오랜만에 봤다. 항상 먼저 나가고 늦게 들어오다 보니
집안에 있는 아내만 봐온 탓에 아줌마가 된 아내만을 떠올렸다. 총총히 걸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에 내 희망사항을 다시 보게 된다.^^ 희망사항 후렴구에 이런 가사가 있다. "여보세요 날 좀 잠깐 보세요 희망사항이 정말 거창하군요 그런 여자한테 너무 잘 어울리는 난 그런 남자가 좋더라"
거울을 봤다. 반 대머리, 삐져나온 코털, 파란색 백수 츄리닝, 불룩한 뱃살,...... 누구 뭐랄 게 아니라! 내가 절망사항이구나 ㅎㅎ
* 글을 읽으면서 어느 구절에 노래를 흥얼거렸으면 구세대... 티나터너를 안다면 더 구세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