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이야기 =36
♡ 공주의 남자 이야기 ♡
조선왕조 세조에게는 정희왕후가 낳은 공주가 있었는데 어려서 부터 어질고 성품도 덕스러웠다.
공주는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절제 김종서가 사육신 및 충의를 지키려는 신하들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도모 하려다가 순절하고,
그 가족들이 다 죽임을 당하기에 이르는 것을 보고,
일찍이 눈물을 흘리며 밥도 먹지 아니 하였다.
그리고 단종의 어머니 묘가 파헤져지는 참변을 당할 때는 울면서 간하기를 그치지 아니 하니,
세조는 크게 노하여 장차 화(禍)가 어디까지 미칠지 헤아릴 수가 없게 되었다.
세조의 비, 정희왕후는 비밀히 유모를 불러 가벼운 보물을 충족히 주면서 공주와 함께 그것을 가지고 멀리 피신하고,
왕(세조)에게는 공주가 요절한 것으로 알렸다.
마침내 유모는 공주와 함께 몰래 도망하여 충북 보은군에 당도하였고 깊은 골짜기에 다다랐을 때는 배고품이 너무 심하여 길가에 앉아 잠시 쉴 수 밖에 없었다.
이때 한 총각이 쌀을 짊어지고 이곳을 지나다 발길을 멈추고 묻기를
"두 분은 시골 사람들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어찌하여 유독 이런 곳에 와 있습니까?" 하였다.
유모가 총각을 보니 의복은 비록 때가 끼고 남루하나 용모는 보통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대답하기를,
"나와 이 낭자는 한양에서 난을 피해 도망하여 이곳에 이르렀으니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지금 막 주저하고 있을 따름이요." 한즉
총각은 남 몰래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기를,
"나 역시 화를 피하여 이곳에 와서 산 지가 벌써 1년이 지났소이다." 하였다.
유모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나와 이 낭자는 그대와 함께 살았으면 하오" 라고 하자, 총각은 흔쾌히 이를 허락하였다.
그들은 함께 걸어서 깊은 골짜기를 지나 몇 리쯤 가니 토굴이 있어 거적문을 열고 들어갔다.
총각은 손수 밥을 지어 그들을 대접하였다.
며칠이 지난 뒤 유모가 행탁(여행용 자루)에서 가벼운 보물을 꺼내어 총각에게 주면서 이것을 장에 가서 팔아 오라고 하자,
총각이 깜짝 놀라며 말하기를,
"이 보물들은 궁중의 물건인데 아주머니는 어디서 이것들을 얻었 습니까?" 하자 유모는 말하기를,
"굳이 그 출처를 묻지말고 가져가서 팔아 주오" 하였다.
그러나 그 총각은 끝내 그 뜻을 따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의로운 일을 거행할 때 관가에서 화를 피한 자취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1년 남짓 사는 동안에 총각은 공주와 정을 통하고 혼례를 올렸다.
그제서야 총각이 비로소 공주에게 피난한 까닭을 물으니,
공주는 울면서 대답하지 아니하고, 유모가 대신 그 전말을 알려주었다.
이 말을 듣자 총각은 슬피 울며 말하기를,
"나는 절재 김종서의 손자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아버지와 함께 화를 입던 날 온 집안이 다 죽임을 당했으나 나만 홀로 난을 피하여 여기에 이른 것이나,
어찌 공주가 그 어린 나이로서 능히 이렇게 의로운 마음을 분별할 줄 뜻하였으리오!" 하였다.
이로부터 두 사람은 서로 공경하며 온정을 나누는 것이 더욱 깊어졌다.
세월이 오래 흘러 그때 화의 법망이 좀 풀리게 되자,
총각은 보물들을 전부 팔아서 많은 돈을 얻어,
산 밑으로 내려와 넓은 전지를 마련하고 몸소 밭을 갈고 책을 읽으며 아들 딸을 낳아 기르면서 살았다.
세조는 말년에 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부처님께 지난 날을 참회하는 기도를 하였는데, 속리산(충북 보은군 북쪽에 있는 산 ) 으로 향하다가 마침 공주가 사는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이때 한 어린 아이가 길가에 있었는데,
세조가 그 아이의 용모를 살펴보니 꼭 자기와 닮았다.
세조는 이를 기이하게 여겨 수레를 멈추게 하고 애를 앞으로 불렀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의 우는 소리가 울타리 사이에서 들려왔다.
세조는 마음이 흔들려 좌우의 신하들에게 묻기를 "이 어인 울음소리 인가? " 하자, 어린 아이가 말하기를,
"이것은 우리 어머니의 울음소리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세조가 곧 좌우 신하들을 물리치고 어린 아이와 함께 걸어서 그 사립문에 이르니,
한 부인이 땅에 엎드려 통곡하고 있었다.
세조는 놀라서 묻기를,
"너는 누구인고?" 하자,
공주는 눈물을 거두며 대답하기를,
"못난 소녀는 지난 날 아버님의 엄한 책망을 받았는데 어머님의 분부로 유모와 더불어 대궐을 떠나 멀리 피하여 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러 죽지 못하고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나이다." 라고 하였다.
세조는 그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너를 일찍이 이미 요절한 것으로 여겼구나.
어찌 지금까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줄 알았겠느냐!
너의 남편은 어디에 있느냐?" 하였다.
공주가 답하기를,
"그는 죽은 영상 김종서의 손자입니다.
그도 역시 난을 피하여 이곳에 왔는데 우연히 길가에서 상봉하여 곧이어 짝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님의 행차가 이곳을 지난다는 소식을 듣고 몸을 피해서 지금 집에 있지 아니합니다." 라고 하니 세조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김종서에게 무슨 죄가 있겠느냐? 내일은 마땅이 나오너라.
가마와 말을 보낼 것이니 나와 함께 대궐로 돌아가자.
아울러 네 남편에게도 봉작(작위)를 가하리라." 하고,
세조는 드디어 수레를 돌렸다.
다음 날 세조는 승지를 파견하여 그들을 맞아 오게 하였으나,
공주는 밤을 틈타 그 남편과 함께 가족을 거느리고 몰래 어디론지 숨어버리니 그 거처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전하는 소문에 의하면 당시 세조가 지나가는데
정이품송(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 가는 길에 서 있는 수령 600년의 소나무 ) 아래서 두 아이가 놀고 있어 그들의 부모이름을 묻자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마골로 도망을 가길래 그냥 지나쳤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다음날 찾아 보았으나 그들의 부모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세조는 본인의 외손자임을 직감하고 정2품 품계를 적은 문서를 당시의 정이품송 아래에 놓고 왔는데 그들은 끝내 찾아가지 않았으며,
그 후에 문서를 발견한 어느 사람에 의하여 '왕이 손수 소나무에게 정이품의 품계를 내리셨다'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 옮겨 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