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
세상에나 어찌이런다요
일손부족으로 다된콩을 베어야 하는디
오메. 어쩌거나 인부는 이른디 인권비따령이라. 부르는것이 값이라니 이리기웃 거리기웃 단돈5000원에 저쪽으로 가버리네 10000을더주어야 하나 1000을더 주어야하나 한숨에 한탄뿐이로세
23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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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지나고복구하느라정신없네요
출석하기도힘듭니다
모종도심어야하는데일손은부족하고
인건비는비싸고
맘이고단하네요
22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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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농 9년차인데 농사에 관심이 많아서 인지 몰라도 농사 짓는것이 마냥 좋아요 아주 큰 대농은 아니어도 만평되는 산에 두릅 재배하고 있고 밭농사 3000평 정도 고추 콩 사과를 나누어 키우고 있습니나 오늘밤부터 비소식이 계속 있네요 서둘러 고추를 심었습니다 물을 안 주어도 되니 일손을 덜게 되니 만사 제쳐 놓고 고추 1500개를 심었습니다 올 해에도 풍년되어 행복한 농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3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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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6월25일 감자 🥔싹을 자르고나니 밤중에 빗님이 오는구만 그러니 하루 이틀지나고 오늘 감자수확 마무리 농협에서 일손돕기 봉사활동 10명나와 500평 감자 을 일찍 끝났어요 으아리가 꽃이 지고 씨앗 달렸어요 종자가 될지 요줌 감자 수확 철 감자 수확하느야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화이팅 하세요
23년 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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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5 -
우리는 모내기 할 때도 나락타작을 할 때도 학교에 가지 않고 부모님 일손을 도와 드렸습니다.
모내기 할 때는 못줄을 잡고 어른들이 지게 바자기로 모침을 날라서 논에다 뿌려 놓았는데 모심는 사람들이 모를 심기 좋게 모침을 뒤에서 적당하게 분배를 했다.
모판에서 모를 쩌내면 새참을 먹는 시간이었다.
새참은 국수를 삶아 양념장에 비벼서 먹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새참먹는 시간에는 들녘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아가를 키우는 아낰네들은 애기들 형제나 할머니께서 아가들 젖을 물릴려고 등에 업고 나오기 때문에 새참도 넉넉하게 준비를 해야했다.
또 지나가는 사람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서 새참을 나누곤했다.
그래서 점심 또한 저녁도 넉넉하게 준비해야했다.
저녁은 어르신들이 계신 집은 밥을 따로 싸서 드리기도 했다.
옛날 시골 인심이라 생각한다.
우리집 첫모를 심는 날은 찰밥을 해서 조금 멀리 떨어진 산에 있는 논에 식구들이 다 모여서 새참과 점심을 해결했다.
매년 6월 6일 현충일은 우리집 갑골이라는 산비탈에 있는 자그마한 3개의 다랑논이 있는데 한마지기 반이었다.
맨위에 있는 논 윗쪽에서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솟아나 1년 내 물을 가두어서 첫모를 식구들이 다 모여서 심었다.
워낙 굴곡이 있는 논이라 못줄을 잡지않고 흩어지게 모를 심었다.
천수답이지만 가뭄이 있어도 논바닥이 마르지 않아서 대대로 물려받은 소중한 논이었다.
모를 심는 날자는 마을에서도 서로 겹치지않게 잡았다.
한번 심을 때마다 20명 이상씩 모여서 모를 심어야해서 한 마을에서 두세집 이상은 모를 심지 않았다.
저희 동네는 가구수가 많은 제법 큰 마을이었다.
한 마을이지만 아랫 마을,
웃 마을,
잰몰이라고 불리면서 자연스럽게 구역이 나뉘어졌다.
우리집은 주로 아랫마을과 웃마을 아낙네들을 품삯을 주고 모내기를 했다.
모심는 날이면 새참도 날라야했고 모를 다심고나면 논두렁에 못줄 막대기로 구멍을 뚫고 메주콩을 심었다.
보리타작을 할 때도 조퇴내지는 결석을 하면서 부모님의 일 또는 농사일 등을 도와드려야했고 일이 끝나면 해가 넘어가 어두울 때까지 동네어귀에 모여서 형 누나들과 얼음땡, 딱지치기, 구슬치기, 팽이치기, 땅 따먹기, 자치기, 숨박꼭질, 간생을 하며 놀았습니다.
보리타작은 보리를 한 곳에 모아놓고 조그만 발동기를 짊어지고 다니면서 보리타작을 했다.
농로가 없고 논두렁이라 발동기를 장정이 지게로 옮겨가면서 보리타작을 했다.
보리타작은 금새 마쳤다.
보리타작을 할 때는 어찌나 꺼끄러운지?
보리 수염 때문에 온몸이 쓰라렸다.
보리를 베내고 논에 벼를 바로 심기 때문에 신작로 양옆이나 논두렁에 보릿대를 세워서 말렸다.
보리타작을 하기위해 보리를 한 곳에 모을 때 바짝마른 보리이삭이 떨어진다.
새벽녘에 비료포대를 들고 다니면서 이슬이 잔뜩 뭍은 보리이삭을 주으러 나갔다.
한참을 돌아다니면서 주워모아야 정작 껕보리는 한줌밖에 되지 않았다.
요즘 말하는 가성비가 없는 일이었다.
보리를 베난 논은 쟁기로 논을 갈고 물을 대서 발로 보리밭 사이에 깔아 놓았던 건초나 지푸라기 보릿대 등을 밟아 넣었다.
물신이 나오기전까지는 발이 나무가시에 찔려서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그런 다음 써레를 이용해 논바닥을 고르면서 거친 퇴비를 써레가 걸러냈다.
땅이 가라앉을려면 2-3일 정도 시간이 필요해서 며칠 후에 모내기를 했다.
논에 잡초는 초벌, 두벌, 세벌 지심을 맸다.
동네에서 품앗시로 돌아가면서 논고랑 사이를 기어다니면서 잡초를 뽑았다.
그 때 나락 품종은 키가 큰 품종을 심어야했다.
그 대표 품종이 팔광이라는 벼 품종이다.
그래야 그 키가 큰 지푸라기로 생활용품과 농기구를 만들었다.
나락이 키가 커서 비바람에 많이 쓰러지곤 했다.
태풍이라도 지나가면 논바닥에 벼가 다 쓸어졌다.
나락은 낫으로 베서 8주먹을 지그재그로 놓아 한단으로 묶어 논바닥에 세워서 2주정도 말렸다.
이 때 나락 20단을 한 가리라고 했다.
논 바닥에 세우고 몇가리인가?를 확인하고 작년보다 가리수가 많으면 풍년 적으면 흉년이라고 했다.
모내기 할 때 심었던 콩은 걷어서 집마당으로 날랐습니다.
노란 메주콩이었습니다.
밭이 없어서 이렇게 메주콩을 심었습니다.
다 말린 나락은 지게로 마당으로 날라서 노적봉같이 높게 쌓고 종일 공상을 밟으면서 타작을 했다.
장정 한 사람이 바짝 마른 나락 한가리를 지게에 짊어질 수 있었다.
짚을 요긴하게 써야해서 나락단을 집으로 들여와야했다.
나락타작을 할 때는 공상 양쪽에서 나락을 한주먹씩 떼 주는 사람이 2명,
공상을 발로 밟으며 나락을 요리조리 돌리면서 나락을 훑어내리는 장정이 2명,
다 훑고 난 공상 뒤에서 지푸라기를 묶는 사람이 1명,
공상앞에서 갈퀴질로 검부적과 쌓이는 나락을 긁어내는 사람이 1명
이렇게 많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않고 일손을 도와야했다.
지금이야 벼를 거둘 때 트랙터가 다 해내지만 예전엔 사람이 일일이 낫으로 베어 홀태라는 기구로 훑어서 벼 알갱이를 털었습니다.
홀태는 길고 두툼한 나무 앞뒤 쪽에 다리 네 개를 달아 팔자(八字)모양으로 떠받치게 하고 빗살처럼 날이 촘촘한 쇠로 된 틀을 몸에 낀 형태로 되어 있지요.
이 빗살처럼 촘촘한 쇠틀 사이로 벼를 끼우고 잡아당겨 벼 낱알을 텁니다.
나는 짚단을 바깥 공터에 나르는 일과 나락가리에서 쌓아 놓은 나락단을 공상가까이에 갔다놓는 일을 했다.
저희는 주로 주말에 큰 일을 잡아서 일을 했다.
저는 군복무를 하는 동안도 보리베고 모심는 농번기 6월과 벼베고 보리 심는 농번기 10월에 한달씩 휴가를 맞춰서 일손을 도와드렸다.
군생활을 광주에서 끗발이 좀 있는 보직을 받아서 정기휴가와 포상휴가 및 기타 휴가를 모아서 농번기 때 1년에 두달 가까이씩 집안일을 도와드렸습니다.
다른 군인들은 휴가를 다녀오면 피부가 뽀앟고 이뻐지는데 저는 쌔까맣게 타서 부대에 복귀를 했습니다.
3년 복무기간에 훈련병과 쫄병시절 첫 해만 가을걷이 농사일을 도와드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군대생활 할 때는 복무기간이 36개월이었습니다.
옛날 나락은 만생종이었습니다.
2모작을 했기 때문이 아니가?싶네요.
논바닥에 하얀 서리를 있을 때 벼베기를 했고 일손이 모자란 가정에서는 나락가리를 쌓아 놓았다가 눈을 맞고 타작을 하기도 했습니다.
늦 가을이라 해가 짧아서 나락타작을 하고나면 밤이 다가왔습니다.
마당에 횃불을 밝히고 하루종일 공상으로 훑은 나락을 풍구를 돌려 꺼스랭이와 쭉쟁이를 걸러내고 깨끗한 나락을 광에다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광은 문짝이 1번부터 8번까지 8개였으니까 제법 큰 광이었습니다.
맨 아래 1번부터 문짝을 닫기 시작해서 광안쪽부터 나락을 차곡차곡 다 채우면 마지막 8번째 문짝을 닫으면 광에는 나락이 꽉 찹니다.
타작한 나락이 광을 다 채우면 마당에 멍석을 둥그렇게 세우고 몰아서 임시로 나락뒤주를 만들어 그 곳에도 보관했습니다.
이렇게 광에 있는 나락은 그 때마다 방아를 찧어서 쌀뒤주에 쌀을 넣어 보관했다가 꺼내서 밥을 지었다.
쌀뒤주는 두꺼운 송판으로 위에서 뚜껑을 열고 쌀을 꺼낼 수 있게 만들었고 보통 쌀 2가마니 정도는 들어가는 크기였다.
가끔씩 시내 인터리어 소품으로 볼 수가 있는 장식품으로 쓰이고있다.
우리집 쌀뒤주는 느티나무 원목으로 만들어서 무게 또한 대단했다.
나락타작도 3번은 했던 것 같습니다.
바깥에 지푸라기를 묶어서 쌓아 놓았는데 짚널이 웬만한 큰 집채만 했습니다.
지푸라기는 가마니도 짜고, 멱다리도 만들고, 멍석도 만들고, 산태미도 만들고, 꼴 망태도 만들고, 새끼도 꼬았습니다.
소 마굿간이나 돼지 우리에 넣어 소와 돼지를 따뜻하게 보온도 해주고 소 돼지 배설물을 섞어서 밟혀 퇴비도 만들었습니다.
또 소 여물로 사용했습니다.
지붕을 볏짚으로 이으기도 했습니다.
용머리를 틀어서 지붕 맨 꼭대기에 얹고 흙돌담위에도 용머리를 틀어서 올렸습니다.
이렇게 농촌에서는 볏짚이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평야지대에서는 볏짚을 땔감으로 사용했지만 저희는 산에 나무가 많아서 땔깜으로 사용하진 않았습니다.
지푸라기를 땔깜으로 사용하는 평야지방보다 솔가지나무로 사용한 산간지방은 훨씬 깨끗하고 화력 또한 쎄고 굵은 나무토막으로 군불을 때고 숯도 만들어서 장담글 때랑 사용합니다.
또 화로에 숯불을 담아서 방안의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기도 합니다.
싱그러운 5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4월보다 좀 더 나은 5월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5월 1일
21
24
Farmmorning
오늘 지인댁에 일손돕고왔습니다 조금힘드네요
마음만은뿌듯합니다
22년 10월 29일
1
감자 수확기가 되었습니다.
밭데기 판매가 가능할까요?
수확할 일손과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문의 드립니다.
23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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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늘을 쪼개 씨마늘을 하는 거 보다
일손 덜어주고 품종 좋게 하는 홍산마늘과 홍산마늘 종구(씨마늘)를 권하고자합니다.
홍산마늘 종구를 씨마늘로 심으면 바이러스에 강하고, 알이 쪽분리가 적어 알이 굵습니다. 그리고 육종마늘처럼 저장성이 좋아 인기가 높은 매력있는 홍산마늘입니다.
홍산마늘의 특징으로는 타품종과 비교 했을 때 클로로핀 성분이 1.6~3.5배 많다고 합니다.
홍산마늘은 끝부분이 초록색을 나타나는데, 이는 엽녹소 성분인
클로로핀성분이 농축 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클로로핀은 간기능 향상과 항암효과가 탁월하다 합니다.
면역력이나 항염 등 효과에 좋을 뿐아니라 알리신이 풍부하여 몸에 좋은 장점이 많은 매력적인 식품입니다.
* 마늘 파종은 저렴한 종구를 적극 추천합니다*
문의 및 연락처
010-3833-5556 김성원입니다.
홍산마늘과 종구 사진입니다
23년 10월 3일
3
3
2
Farmmorning
안녕하세요
단비로일손들이더바빠졌겠지요?
물고터주고잡초제거에현찬은묘
제이식 ㆍ비그치면고구마순
더구입해서떼워야할듯 요ㆍ
23년 5월 6일
2
1
아버님이 아프셔서 3년전부터
직장과 농사일을 병행하고 있읍니다
어릴때부터 부모님 일손을 도와 드리긴 햇지만
제가 주체가 되어 해보니 보통이 아니네요
몸은 고되고 힘들어도 땅만큼 정직한게 없는거
같읍니다
현재 벼농사 고추 콩 등등 전부 다하네요
힘은 들지만 수확할때는 너무 뿌듯한거 같읍니다
아직 공부하면서 아버님 조언두 듣고 동네 어르신들 조언도 듣고
팜모닝에서도 많은 조언을 받고 있읍니다
무더운 여름 건강조심하고
매일 매일 어플을 켜고 눈팅만 하지만 언젠가는
조언을 해드릴수 있는 날이 올꺼라고 믿읍니다
23년 7월 9일
11
3
조용한 점심 시간입니다.
시원한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합니다.
농촌 들논에는 아주
바쁜 일손들이 분주하게 수확하면서
모내기랑 동시다발로
한동안은 이런 분위로 들녁을 채울것 같은데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건강에 유념하시고
더위에 잠시잠시
쉬었다 하세요.
오월도 몇 일 남지 않았는데 이 달의
일손도 잘 마무리
하시길 바람니다.
23년 5월 23일
2
1
우리들 이야기 =28
숙종시대 가난한집 웃음소리
숙종은 땅거미가 내리면 허름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호위무사도 없이
몰래 궁궐을 빠져나가 여기저기 쏘다니며
백성들이 살아가는 걸 두눈으로 직접 보고
두귀로 직접 들었다. 
주막에 들러 대포 한잔 마시고 짠지 한점으로
입을 다시며 임금 욕하는 소리도 귀담아들었다. 
세상 민심이 흉흉했다. 
설상가상 역병이 돌아 민심은 더더욱 어두웠다. 
작년 농사가 가뭄과 홍수로 예년에 없던 흉년이라
백성들의 보릿고개 넘어가는 신음소리가 애간장을 끓게 했다. 
이 골목 저 거리 발길 닿는 곳마다 한숨소리뿐이라
숙종의 마음이 천근만근인데 어디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저 소리 들어본 지 얼마만인가? 저 웃음소리!”
숙종은 깜깜한 부암동 골목길을 비틀거리며 넘어지며
웃음소리 따라서 허겁지겁 올랐다. 
서너칸 초가집들이 띄엄띄엄 있는 골목 끝자락에
웃음이 흘러나오는 집안을 들여다봤더니
아무리 훑어봐도 웃음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관솔불을 밝혀놓은 헛간에서 이집 주인인 듯한 남자는 짚신을 삼고,
아이들은 짚을 다듬고, 아이들 할아버지는 가위로 짚신을 다듬었다.
할머니는 관솔불 아래서 바느질을 하고 안주인은 쟁반에 쑥떡을 담아왔다. 
허허허 호호호 킬킬킬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숙종은 그 집 마당으로 들어가 ‘똑똑똑’ 헛간 문고리를 두드렸다.
“이 야심한 밤에 누가 찾아왔나?” 
헛간 문이 열렸다.
“지나가던 과객이요, 목이 말라 염치 불구하고 들어왔습니다” 
영감님이 숙종을 보더니 
“누추하지만 이리 앉으시오” 하며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내어줬다.
숙종의 무릎이 흙투성인 걸 보고 말했다.
“올라오는 골목길에 올봄 얼었던 흙이 녹아 계단이 허물어졌는데, 
일손이 모자라 손쓸 틈이 없어 저 모양입니다. 
넘어진 모양인데 다치신 데는 없으신지요?” 
숙종이 웃으며 “괜찮습니다” 하자
며느리가 물 한사발과 쑥떡 세개를 쟁반에 얹어왔다. 
부암동 골목을 돌면서 배가 꺼진 숙종은 쑥떡을 정신없이 먹었다. 
보릿가루 쑥떡이었다. 마지막 쑥떡을 먹다가 반쪽을 조끼 호주머니에 넣었다.
“온 나라가 한숨 소리뿐인데 귀댁은 무슨 경사가 있어
집안에 웃음소리가 끊어지지 않소이까?” 
짚신을 삼던 이집 가장이 소피를 보고 오다가 입을 열었다.
“큰 경사는 없지만 큰 걱정거리도 없소이다” 
숙종이 물었다.
“짚신 팔아 호구지책으로 삼으니 궁핍이 쌓인 게
소인 눈에도 보이는데 걱정이 없다니요?”
“지난 세번 장날마다 비가 와서 짚신을 못 팔아 저렇게 쌓여 있습니다만
비가 그치면 또 팔러 나갈 겁니다” 
그는 물 한사발을 마시고 또 다시 짚신을 삼으며 말했다. 
“짚신 못 파는 게 문제겠어요. 어디, 비가 와야지요. 
농사꾼들이 학수고대하는 단비잖아요”
“마음 씀씀이가 부자이십니다. 허허” 
숙종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나는 진짜 부자예요. 
빚 갚으며 저축하며 살아가니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짚을 다듬던 아이들이 까닥까닥 조는 걸 보고 숙종이 일어섰다.
밤이슬을 맞으며 궁궐로 돌아온 숙종이 주방 상궁을 불렀다. 
잠자던 주방 상궁이 놀라서 어전에 꿇어앉자
조끼 주머니에서 꼬들꼬들 말라붙은 보릿가루 쑥떡을 꺼내 말했다.
“당장 이 떡을 만들어 올리렷다.” 
주방 상궁이 
“전하 이 보릿가루 쑥떡은 드시지 못합니다” 하자
임금이 노해 말했다. 
“먹고 안 먹고는 짐이 정할 일이로다.” 
주방 상궁은 부랴부랴 보리쌀을 구해와 절구에 빻고
주방 궁녀들은 자다가 일어나 초롱불을 들고 궁궐을 돌며 쑥을 뜯어
보릿가루와 섞어 찐 후 절구질을 했다. 
그 사이 숙종은 안주를 곁들여 약주를 했다. 
주방 상궁이 보리쑥떡을 해왔을 때는 닭이 울었다. 
보리쑥떡을 한입 먹어보고는 상을 물렸다. 
숙종은 잠이 오지 않았다. “빚 갚으며 저축하며…” 
그 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이튿날 아침, 한 떼거리 일꾼들이 소달구지에 돌을 싣고 와
부암동 짚신장수 집으로 오르는 골목길에 돌계단을 놓았다.
밤이 되자 어젯밤에 왔던 그 허름한 나그네가 다시 나타났다. 
짚신장수가 일손을 놓고 벌떡 일어나 숙종의 두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젯밤 귀인께서 다녀가신 후 오늘 아침 골목길이 저렇게 변했습니다요.” 
숙종이 허허 웃으며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요.” 
시침을 뚝 뗐다. 
“어젯밤에 궁금해서 잠을 못 잤습니다요” 
짚신장수가 
“뭐가 그리 궁금했습니까요?” 묻자
숙종이 답했다. 
“빚 갚으며 저축하고 산다니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밤새도록 생각했지요.” 
컬컬컬∼ 짚신장수가 목을 젖히며 웃더니 말했다.
“제 부모님이 저를 낳으시고 키워주셨으니 제가 빚을 졌잖아요. 
정성껏 봉양하니 빚을 갚는 것이고, 
제가 또 자식을 낳아 잘 키우고 있으니 저축을 하는 거잖아요.” 
숙종이 크게 웃었다. 
“여봐라∼ 상을 올려라” 
숙종이 소리치자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주방 상궁이
지게에 바리바리 지고 온 평복 차림 군졸들의 지게에서 고리짝을 내려놓았다. 
갈비찜에, 약밥에, 수정과 한독, 그리고 돈 천냥. 
짚신장수 일가족은 끝까지 임금인 줄 몰랐다.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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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더위는 지나고 수확의계절이네요. 태풍이 걱정이지만... 혹시 외국인 일군 필요하신분 연결 도와 드릴려구요. 저희집도 자주이용 하는집인데. 일 너무잘하네요... 김천.상주.구미.군위문경.경산. 정도 다니고 잇는걸로 알어요.일손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010-5047-0461
23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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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스 작은동에 관리기로 이랑골
마무리 하고 당거래로 이랑 짓고,
15시경에 일손놓고 집안 정리정돈하고, 밤나무 밭에서 땔나무
오토바이에 싣고 내려와 본체 구들방에 군불지폈다.
감자싹이 돋아 나오기 시작합니다.
참고로 점심때 합천댐 수몰지역에
계시는 60세 이상 되시는 분들께는
점심을 무료 급식하고 있는데 오늘
구정설날을 맞이하여 선물 준다기에
식당에 가서 계란40개 떡살을 받아
왔습니다. 점심은 떡국이였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점심은 생략하고
선물만 받아와 하우스에서 간단하게
라면 끓어서 막걸리 한 잔하고 커피까지 마시고 오후 일하다가 일찍
마치고 왔습니다.
집에서 비닐하우스까지 거리는 약2km정도 되니까 오토바이 타고 가면 중무장 해도 찬바람이 맵습읍니다.
---화물차는 기름값 절약---
23년 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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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일손부족에 농사일이바빳네요..다시활동!
1월 8일
아내가 다쳐서 급하게 일손이 필요한데... 내일이 또 주말이라...
다들 인력 어떻게 구하시나요..?
한번도 외부 인력을 써본적이 없어서 걱정반, 기대반이라 어떤 루트가 가장 확실한지 알고 싶습니다...
한 2주동안 꾸준히 나오실 수 있는 분이 좋을 거 같은 데 그런식으로도 구해질까요??
22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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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휴식
우리 부부는 어제 잠시 일손을 멈추고 아버님 모시고, 여동생들과 함께 동해안으로 피서를 왔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상큼한 숲속에서 힐링을 했다.
점심엔 황태정식,저녁에는 생선구이로...
그리고 양양에 있는 여동생 소유의 헐쭘한 별장에서 하룻밤을 편히 쉬었다
23년 7월 21일
1
3
Farmmorning
고추따야하는데 일손 구하기 참 힘드네요.
22년 8월 31일
품종 : 소뿔
파종일 : 2월 6일
정식일 : 4월 12일(부직포터널)
터널철거 : 5월 18일
품종특성상 절간이 짧고, 분지형성이 많은편이라 수확할때
빽빽한 가지에 일손이 느려집니다.
그래서 올해는 정식후 1주일 간격으로 2,000배액 추비를
관주로 넣었습니다.
현재 1,2,4,8,16순으로 분지하나
빠짐없이 5분지까지 꽃이 달렸고, 방아다리고추는 이미 20cm를 넘겼습니다.
관주는 보급미생물. 아쿠도,루핸스,씨맥프로, 자작액비,수용성슈퍼추비, 부리오,붕산등을 경험적계산하에
교차로 넣었습니다.
부직포를 벗길당시에 온실가루이가 세개체에서 발견되어 빅카드로 방제했고,
오늘은 총채방제용으로 총채나방방과 탄저예방제로 비온엠을 살포하였습니다.
23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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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armmor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