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지황 심었다. 처음해보는 생지황농사 손도많이가고 일거리가 많았다
23년 5월 18일
7
2
Farmmorning
[나에게 하는 칭찬]
잡고 있는 것이 많으면
손이 아픕니다.
들고 있는 것이 많으면
팔이 아픕니다. 
 
이고 있는 것이 많으면
목이 아픕니다.
지고 있는 것이 많으면
어깨가 아픕니다. 
 
보고 있는 것이 많으면
눈이 아픕니다.
생각하는 것이 많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품고 있는 것이 많으면
가슴이 아픕니다. 
 
모두 다 내려놓으세요
전부 다 놓아 버리세요
그리고 편안하게 사세요. 
 
우리가 아픈 것이 많은 것은
모두 다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이 들 땐
잠시 내려놓고 쉬세요.
그럴 땐 자신에게 칭찬의 한마디를 해주세요. 
 
"여기까지 참 잘 왔구나!
고생했네 힘들었지"라고 
 
오늘 하루 나 자신에게
칭찬의 한마디를 보내 보세요. 
 
"이만하면 열심히 안 살았나?
그래 참 잘하고 있다." 
 
소소한 한마디가 그 어떤
힘보다 강하게 되어있습니다. 
- 나에게 하는 칭찬 中
5월 13일
9
1
1
아는 사람 집에 갔다가
구지뽕 나무 가지를 잘라서
몇년 전 땅에 꽃았더니 벌써 이렇게 자라
열매가 달렸네요.
수세미는 화장수, 스킨으로
사용을 한다는데 자연적인 것이라
보관방법(유통기간)이 문제지요.
끈적하고 미끈한 액이 피부에 참 좋은데
알콜 섞어 보관하면 냄새때문에,
손바닥 선인장 액을 추출하여
스킨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제조과정이 몇개월 걸리지요
해바라기.
나팔꽃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로서
제일 먼저 생긴 곳은 서울 교동초등학교인데
그곳엔 양반 자제들만 입학 자격이 있었는데
나중에 폐교 되었지요.
일반 서민자녀들까지 입학자격이 부여되어
우리나라 최초로 문을 연 학교는
경남 진주에 있는 진주초등학교 입니다.
그곳 담벼락에서 씨를 가져와 심었더니
나팔꽃이 피었네요
9월 16일
6
3
Farmmorning
배 오래 보관하는 노하우 공유 부탁드립니다...
신문지로 보관하는 건 손이 너무 가네요ㅠ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22년 11월 4일
7
-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9 -
호롱 또는 등잔은 석유기름을 채우고 문종이로 만든 심지에 불을 붙여서 빛을 낼 수 있게 만든 우리 옛날 조상님들의 조명도구로서 호롱에 밝힌 불을 호롱불 또는 등잔불이라 했다.
호롱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60년대 초반에 출생한 사람 정도까지일 것 같다.
저녁을 먹은 후 완전히 어두워진 후에야 성냥을 당겨 등잔대위에 올려있는 석유가 담긴 하얀 호롱 심지에 불을 붙였다.
등하불명(燈下不明)?
"등잔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있다.
등잔 바로 밑이 오히려 어두운 것처럼 가까이에 일어난 일을 오히려 잘 모르거나 가까이 있는 것을 오히려 못 알아본다는 의미다.
호롱심지를 너무 많이 올리면 끄으름이 많기 때문에 손으로 높낮이를 조정해야했다.
이 때 손에 묻은 석유기름은 머리에 쓱 문질렀던 것 같았다.
호롱불 아래서 숙제도 하고 책을 읽었다.
호롱불 옆에는 겨울엔 화로가 있었다.
부엌에서 잔불이 있는 재를 담아 다독거려서 방가운데 놓았던 화로는 방안 공기를 따뜻하게 했다.
불젓가락 위에서 구워지는 가래떡이나 불속에서 익어가는 고구마나 감자,
할머니의 정을 함께 먹었던 그 옛날이 그립네요.
옛날에는 자주 목욕을 하지 않아서 몸에는 이, 머리에는 머릿니가 많았다.
이와 머릿니의 알을 서캐라고 한다.
참빗은 머리를 빗을 때 머리에 있는 서캐는 머릿니 빗과 서캐빗으로 빗어서 이와 서캐를 잡았다.
서캐빗은 더 촘촘했다.
옷에 있는 이는 잡아서 손톱으로 눌려 죽였다.
옷에도 서캐가 기생하는데 호롱불에 태우기도 했다.
이런 몸에 기생하는 이는 나일론이 등장하면서 사라졌는데 머릿니는 어린아이들한테 최근에도 나타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날개가 없으나 하루 저녁에 몇 사람을 건너갈 수 있다고 했다.
위생이 깨끗하지 못해서 이와 더불어 뛰어 다니는 벼룩도 있었고 갈라진 기둥 사이에 기생하는 빈대라는 기생충도 있었다.
제가 1973년에 군에 입대를 했는데 겨울 내복이 지급되면서 엄지 손가락만하게 주머니를 내복 한벌당 3개씩 만들었다.
상의 양쪽 겨드랑이에 2개를 달고 하의 가랑이 사이에 1개를 달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살충제인 DDT를 주머니에 넣어서 달았던 것 같다.
한 겨울에 모포를 밖에 널었다가 양쪽에서 먼지를 털어내면 추위에 얼어붙은 이가 모포에 굴러다녔다.
첫 휴가를 받아서 전날 깨끗한 내의를 입고 잤는데 아침에 사무실에가서 등이 가려워 웃옷을 벗고 런닝셔츠릍 들춰보니 하얀 런닝셔츠에 까맣게 이가 있었다.
그 때 런닝은 포제였는데 휴가를 간다는 들뜬 마음에 미리 깨끗한 런닝으로 갈아입었거든요.
징그러워서 얼른 벗어서 난로속에 집어 넣어 태워버렸다.
피부병을 전염시킨 매개체인 이와 벼룩, 빈대가 무명옷에서 나일론으로 바뀌고 한옥에서 양옥으로 주거시설이 바뀌고 위생시설이 좋아지면서 사라지고 있다.
제가 군복무 시절만해도 막사 자체가 나무로 만들어졌고 내무반 바닥은 거의 나무로 되었었다.
만원인 버스속에서 여학생 세라복의 하얀 카라에 까만 이가 기어다니는 모습도 있었고, 긴머리를 출렁거린 아가씨 어깨너머로 이가 기어다니는 모습도 있었다.
호롱불은 방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바람에 앵두보다 작은 불꽃이 흔들렸다.
불꽃은 거뭇해서 벽에 까맣게 그을리고 콧속도 까맣게 그으름이 끼기도했다.
석유는 워낙 귀해서 1되짜리 유리병으로 사와서 조금씩 등잔에 따라서 썼다.
제법 심지가 큰 호야등은 집안 대소사를 치룰 때나 넓은 장소에서 넓게 불을 밝혔다.
지금은 호롱이나 호야등은 인테리아 소품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름에는 아예 호롱불을 키지 않았던 것 같다.
할머니께서 대문앞이나 골목에서 맨 풀을 모아 마당에서 모깃불을 피고 멍석이나 와상에 둘러 앉아 부채질을 하면서 옥수수와 찐 감자를 먹었고 대형모기장을 치고 잠들기도했다.
그 때 모깃불이 왜 나만 따라오는지?
모깃불은 이쁜 사람한테 간다는 말에 위안을 삼는다.
모깃불이 재가 된 한밤에 눈을 떠서 바라본 하늘엔 영롱하고 초롱초롱하게 별이 빛나고 있었다.
지금도 고향 하늘에는 도회지에서 볼 수 없는 초롱초롱한 별을 볼 수가 있어서 고향하늘이 좋다.
아침 일찍 텃밭에 나가서 오이넝쿨을 만들었습니다.
노가오이5. 가시오이5, 사과참외8, 도마토5, 참외3개를 줄을 애주고 오이집게로 물려주었습니다.
4월 30일에 심은 고추가 심자마자 날씨가 쌀쌀해서 크질않다가 이제 크기 시작합니다.
1차 추비를 요소와 칼슘을 섞어서주고 물도 스프링쿨러로 돌렸습니다.
지인이 날씨 뜨거울 때 햇빛 가리라고 파라솔을 하나 던져주고 가네요.
쉴 때랑 고추 씻을 때 감사하게 쓰겠습니다.
5월 21일
18
12
Farmmorning
들깨 베기
500평 저 두다랑이
이틀걸렸어요
손에 물집잡히고 몸이 뻐근 하지만 나름 뿌듯하네요~~^^
10월 8일
3
8
Farmmorning
66에 귀촌하면서 밭농사중에서 제일 쉬운게 들깨농사라고 하여 첫 해에 300평 들깨를 심고 순
치고 약치고 까지는 순조로운듯 했으나, 수확하는데 낫으로 들깨대를 베고 도리깨로 털고 어깨,팔 몸살나면서 들깨농사가 쉽다고 한것은 새빨간 거짓말~
2년차에는 반은 엄나무 심고 반은 들깨농사를 했는데 물량은 적었지만 일 하는 절차는 똑같아서 팔,어깨 몸살 재발,
결국 손 들고 내년에는 일 손이 덜 들어가는 엄나무 심으려고 장비 불러서 밭 엎고 두둑 만들었답니다.
연로하신 분들은 젊었을때부터 일을 하셔서 그런지 힘 들이지 않고 잘들 하시는데 저는 늦게 시작하다보니 힘 드네요~
농사하시는 분들 정말 대단하다 고 새삼 느껴봅니다.
늦은시간 넋두리 해 봤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시기 바랍니다.
11월 22일
11
12
Farmmorning
"왜 제사는 4대까지 지낼까?"
추석 대명절을 보내고 한번쯤 읽어보심 좋을 듯 해서 긴 글이지만 옮겨와 게시해 봅니다.

''기(氣)와 영(靈)의 세계''
우리는 전통적인 관례로 4대조 이하 조상님들께 제사를 올린다.
왜 하필 5대조나 6대조가 아닌 4대조 이하일까?
오대조부터그이상은 묘재를 택일해서 제사를 모신다.
보통은 음력 3월과 10월에 모신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그 기(氣)의 파장이 약 100(120)년 동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氣)의 파장이 변하지 않으므로 자기와 파장이 같은 후손과 함께 할 수가 있다.
1대를 25(30)년으로 하면 4대조 100(120)년이 된다.
돌아가신 분은 100(120)년 동안의 바로 자기의 가족이나 후손과 함께 할 수가 있는 것이다.
4대조 이하의 조상영들은 후손과 파장이 맞으므로 후손과 함께 할 수 있고 후손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영향력도 음과 양으로 좋은 쪽과 나쁜 쪽 양갈래이다.
그것은 모두 그들 조상영의 생전의 사람됨과 인격 그리고 업보에 따라 나타난다.
살아 생전에 착하고 어질게 살아 높은 영계에 가 계신 조상영은 후손을 위해 여러가지 도움을 주고 보살펴 주려고 애쓰지만,
생전에 인간됨이 천박하거나 악독했던 사람, 혹은 어려서 세상물정 모르고 죽은 소위 철부지 귀신들은 후손을 못살게 굴고 온갖 나쁜 짓을 서슴치 않는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조상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후손의 몸을 빌지 않으면 안 된다.
조상은 영(靈)으로 존재하고,
영은 곧 기(氣)이므로 물질인 육체가 없이 기만으로는 아무것도 행할수가 없다.
즉 천지조화가 불가능한 것이다.
파장이 맞는 고로 4대조 이하 조상영은 그 후손의 몸에 임할 수 있다.
조상의 영혼이 후손의 몸속에 들어오는 것은 우리가 텔레비젼의 채널을 맞추어서 어떤 특정 방송국의 방송을 수신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생유어사(生由於死)하고 사유어생(死由於生)이니라.
삶은 죽음으로부터 말미암고 죽음은 삶으로부터 말미암느니라.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지상에서의 죽음은 천상에서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제삿날은 천상에서의 생일날과 같은 것이다.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백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
이 말씀과 같이 사람의 몸은 육체와 유체로 구성되어 있다.
육체(肉體)는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물질적으로 된 몸이고,
유체(幽體)는 ‘그윽하다, 숨어있다’는 뜻의 유(幽)자를 쓰는데 이는 보이지 않는 몸이라는 뜻이다.

육체 속에는 넋이 깃들어 있고,
유체 속에는 혼이 깃들어 있다.
혼은 유체보다 더 영적이며,
유체는 혼이 깃들어 있는 그릇이라 할 수 있다.
육체와 유체는 혼줄로 연결되어 있는데 혼줄이 끊어지면 죽음에 이른다.
육체를 버리면서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천상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제사는 내 생명의 뿌리에 대한 보은이다.
죽은 사람에게는 왜 절을 두 번 하는 것일까?
설날 같은 명절 때 할아버지나 부모님께 드리는 세배는 한번 절을 합니다.
그에 비해 돌아가신 조상님의 제사를 지낼 때는 절을 두 번 합니다.
이처럼 산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절하는 횟수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음양사상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1은 양을 뜻하고 2는 음을 뜻합니다.
즉 살아있는 사람은 양이고 죽은 사람은 음이랍니다.
그래서 절의 횟수도 음양으로 구분하여 산사람에게는 한번 절을 하고, 죽은 사람에게는 두 번 절을 한답니다.
상을 당한 초상집에 가서도 이런 경우를 쉽게 접하게 됩니다.
돌아가신 분의 영정 앞에서는 두 번 절을 하고 상주 분들에게는 한번 절을 하는 거죠.
참고로 절에는 2배, 3배 뒤에 반절이라고 해서 붙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절 뒤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간단하게 숙이는 것을 말합니다.
산사람한테는 한번 절하는 일배 뒤에는 반절이 안 붙지만 죽은 사람에게 하는 재배나 혹은 불교에서의 삼배 같은 절에는 반절이 붙는다는 것을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따라서 엄격히 말하면 죽은 사람에게는 두배 반을 절한다고 여기시면 됩니다.
그리고 절은 무엇보다 공손하게 올리는 것이 예의입니다.
절을 할 경우 그 손가짐도 헛갈리는 분이 많은데, 산사람에게 절을 할 때는 남자는 왼손을 오른손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절을 하고, 여자는 그와 반대로 오른손을 왼손 위에 올려놓고 절을 한답니다.
반면에 죽은 사람에게 절을 할 때는 위 경우와 남여 각각 반대로 하면 된답니다
추석명절과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다녀와서 제사를 돌이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 효학박사 교육학박사
孝泉박종윤님의 글을 옮겨왔습니다.
모처럼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졌습니다.
어제 완전 찜통같은 더위를 이번 비로 물러날 것도 같습니다.
13호와 14호 풀라산이 중국 상하이로 상륙한다고 예보입니다.
그러나 14호 풀라산은 중국 저장성에 상륙했다가 열대저기압으로 바뀌어서 장마전선과 함께 우리나라 남해안으로 진로를 변경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올들어 태풍이 하나도 없어서 물이 부족하고 바닷물이 너무 뜨거워서 양식장에 고기들이 죽어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조용한 태풍이 우리나라를 지나면서 바닷물을 한번 뒤집었으면 합니다.
어느 분이 "움켜쥔 행복은 빨리 전염시켜야 대한민국이 행복한 나라가 되니 마구마구 전염시켜 주세요"라고 하더군요.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일 전
24
30
11
우리들 이야기 =20
강남 제일병원장 최낙원박사의 실화
60년대 겨울, 서울 인왕산 자락엔 세칸 초가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그날그날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빈촌 어귀에 길갓집 툇마루 앞에 찜솥을 걸어 놓고 만두 쪄서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었습니다. 
쪄낸 만두는 솥뚜껑 위에 얹어 둡니다. 
만두소 만들고 만두피 빚고 손님에게 만두 파는 모든 일을 혼자서 다 하는 만두가게 주인 이름은 순덕 아지매였습니다
입동 지나자 날씨가 제법 싸늘해 졌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어린 남매가 보따리를 들고 만두가게 앞을 지나다가 
추위에 곱은 손을 솥뚜껑 위에서 녹이고 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 순덕 아지매가 부엌에서 만두소와 피를 장만해 나갔더니 어린 남매는 이미 떠나서 골목길 끝자락을 돌고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꾸벅
얼핏 기억에 솥뚜껑 위에 만두 하나가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남매가 가는 골목길을 이내 따라 올라갔습니다. 
저 애들이 만두를 훔처 먹은 것 같아 혼을 내려고 했었습니다. 
그때 꼬부랑 골목길을 막 쫓아 오르는데, 아이들 울음소리가 났습니다.
바로 그 남매였습니다, 흐느끼며 울던 누나가 목 멘 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도둑놈 동생을 둔 적 없어. 
이제부터 누나라고 부르지도 말아라." 예닐곱 살쯤 되는 남동생이 울며 말했습니다. 
"누나야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담 옆에 몸을 숨긴 순덕 아지매가 남매를 달랠까 하다가 더 무안해 할 것 같아 가게로 돌아 왔습니다. 
이튿날도 보따리 든 남매가 골목을 내려와 만두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누나가 동전 한 닢을 툇마루에 놓으며 중얼 거렸습니다. 
"어제 아주머니가 안 계셔서 외상으로 만두 한 개 가지고 갔구먼요." 
어느 날 저녁 나절 보따리 들고 올라가던 남매가 손을 안 녹이고 지나 치길래 순덕 아지매가 남매를 불렀습니다. 
"얘들아 속 터진 만두는 팔 수가 없으니 우리 셋이서 먹자꾸나."  
누나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맙습니다만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을래요."  하고는 남동생 손을 끌고 올라 가면서
"얻어 먹는 버릇 들면 진짜 거지가 되는 거야. 알았니 ?" 하는거였습니다. 
어린 동생 달래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찬바람에 실려
순덕 아지매 귀에 닿았습니다.
어느 날 보따리를 또 들고 내려가는 남매에게 물었습니다.
"그 보따리는 무엇이며 어디 가는 거냐 ?" 
누나 되는 여자 아이는 땅만 보고 걸으며 "할머니 심부름 가는 거예요." 
메마른 한마디 뿐이었습니다.
더욱 궁금해진 순덕 아지매는 이리저리 물어봐서
그 남매 집사정을 알아냈습니다.
얼마 전 이곳 서촌으로 거의 봉사에 가까운 할머니와 어린 남매 이리 세 식구가 이곳으로 이사와 궁핍 속에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 바느질 솜씨가 워낙 좋아 종로통 포목 점에서 바느질 꺼리를 맡기면 어린 남매가 타박타박 걸어서 자하문을 지나 종로 통까지 바느질 보따리를 들고 오간다는 것입니다. 
남매의 아버지가 죽고 나서 바로 이듬해 어머니도 유복자인 동생 낳다가 그만 모두 이승을 갑자기 하직했다는 것입니다. 
응달 진 인왕산 자락 빈촌에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남동생이 만두 하나 훔친 이후로도 남매는 여전히 만두가게 앞을 오가며 다니지만. 
솥뚜껑에 손을 녹이기는 고사하고 아예 고개를 돌리며 외면하고 지나 다니고 있었습니다.
"너희 엄마 이름 봉임이지 신봉임 맞지 ?" 
어느 날 순덕 아지매가 가게앞을 지나가는 남매를 잡고 물었습니다. 
깜짝 놀란 남매가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 봅니다. 
"아이고 봉임이 아들딸을 이렇게 만나다니 
천지 신명님 고맙습니다."
남매를 꼭 껴안은 아지매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합니다.  "너희 엄마와 나는 어릴 때 둘도 없는 친구였단다.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너희 집은 잘 살아 인정 많은 너희 엄마는 우리집에 쌀도 퍼담아 주고 콩도 한 자루씩 갖다 주었단다."
그날 이후 남매는 저녁 나절 올라갈 때는
꼭 만두가게에 들려서 속 터진 만두를 먹고, 
순덕 아지매가 싸주는 만두를 들고 할머니께 가져다 드렸습니다. 
순덕 아지매는 동사무소에 가서 호적부를 뒤져
남매의 죽은 어머니 이름이 신봉임 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 이후로 만두를 빚을 때는 꼭 몇개는 아예 만두피를 일부러 찢어 놓았습니다. 
인왕산 달동네 만두솥에 속 터진 만두가 익어갈 때
만두 솥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30여 년 후 어느날 만두가게 앞에 고급승용차 한 대가서고 중년신사가 내렸습니다.  
신사는 가게안에 꾸부리고 만두빗는 노파의 손을 덥석 잡습니다. 
신사는 눈물을 흘리며 할머니를 쳐다봅니다,    
"누구 이신가요 ?"  
신사는 할머니 친구 봉임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만두집 노파는 그때서야 옛날 그남매를 기억했습니다. 
두 사람은 말없이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명문 미국대학 유학까지 다녀와 병원 원장이 된 봉임의 아들  최낙원 강남제일병원 원장입니다.
이 글을 읽고 오늘 아침도 감동의 눈물로 하루를 출발합니다.
누나의 어른보다 더 어른 스러운 품격 있는 가치관,
그리고 만두가게 주인의 고상한 품격에 고개 숙여집니다.
화려한 학력과 경력이 과연 이들의 삶에 비교 우위에 있었을까요 ?
우리 주변에서 오늘날도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훗날쓰여질 수 있는일들이
혹시나 나 자신이나주위에 있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이 세상 아이들도 모두 이런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을런지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또한 내 이웃은 누구인가?
내 친구는 누구인가 ?
사람이 60세를 넘기면 살아온 나이를 세지 말고
내 주위에 술 한 잔이나 싸구려 음식 하나라도
가끔 함께 먹을 친구나 이웃이 몇 명이나 되는지 세어 보아야 한답니다. 
많을수록 인생성공 아니지만
그래도 인생을 이기적으로 헛되이 살지 않은인생이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너무 감동적인 글이라 제가 해마다 년말이면 올리는 글입니다 ※
가족과함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3월 4일
56
35
5
대학찰 옥수수를 오늘에야 심었어요.
세줄은 2주후에 심어야겠어요.
한꺼번에 익으면 딸 일손이 없거든요.
23년 5월 14일
7
4
Farmmorning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고
어느분이 작년에 약초라고 하면서 심어 보라고 해서 한포기를 심었는데 엄청 무성하게 자라서 줄기를 자르고 이번 3월에 캐는데
아래 사진과 같은 뿌리가 있는데 알수가
없습니다
큰것은 굴기가 직경 엄지손바락만 해요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3년 3월 5일
5
17
Farmmorning
더덕속에 잡초와 전쟁.
잡초 손으로 뽑다가
더위먹어서 아웃.ㅠ
다른작물도 풀..ㅠ
23년 5월 26일
6
6
Farmmorning
아주 섹시한 여자가 빠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있다가 잠시 나갔다 돌아 와서는 바텐더를 매혹적인 몸짓으로 불렀습니다.
여자는 더욱 유혹하는 몸짓으로 얼굴을 가까이 하라고 싸인을 보냈습니다.
바텐더는 영문을 모른채 얼굴을 가까이 했습니다.
여자는 바텐더의 수염과 얼굴을 두손으로 부드럽게 만지며~
"아저씨가 사장님인교?"
"아, 아, 아닌데예"
하니,여자는 더욱 강하게 바텐더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사장님 좀 불러 주시겠어요?"
바텐더는 여자의 향기에 숨을 헐떡이며~
"지,,, 지금은 외출하셔서 안계시는데예. 꼭 전하실 말씀이라도 있능교? 제가 대신 전해 드릴까예?"
그러자,
여자가 눈을 내리깔고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 더 없이 고맙지예"
여자가 머리와 수염을 만지다가 손가락을 바텐더의 입술로 가져가자 바텐더가 손가락을 빨아주기 시작했습니다.
''쪼~오~~쪽~~~''
혀놀림이 아주 끝내주게 도마뱀 같은 혀를 날름거리며 여자는 별로 싫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사장님이 오시면...
.
.
여자 화장실에...
.
.
.
휴지가 없어서 손으로 해결했다고 전해주이소"
23년 5월 14일
8
1
구름낀 날씨인데 그래도
덥습니다.
특별히 추석명절 준비할 것도 없어서 고추 배추 밭에만 간단하게 둘러보고,명태포 미역국에 감치랑 아침먹고 하우스 데크에 앉아서 가을풍경 바라보면서 시간 보내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삼겹살에 소주 한 잔하고 싶지만,
아직 오전이라 꾹 참고
있는 중입니다.
엔진살포기 수리해야 되는데 할까말까 망설이고 있습니다. 살포기통에는 약물이 가득채워져 있는데 ...
어제 카브레타 분해해서 에어건으로 청소했는데도
시운전이 안되어 오늘은
플러그 분해해서 확인하면 될 것 같은데 일이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30대 초반에는 일기장에 싯글도 많이 적어 두었는데 지금은 마음이
무디고 메말라서 적응적인 글귀는 쓰지만
멜르디 같은 싯기절은
먼나라 애가같이 느껴짐니다.
내일이 추석명절인데 복잡한 마음 잠시접고 좋은 일만 생각해야 겠죠...
모쪼록 즐거운 명절 잘 보내시고 가족과 유쾌하고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9월 16일
21
11
Farmmorning
🌶이번에 다룬 주제는 바로 접목
고추 모종에 대한 것입니다.
작년 한 해 고추농가분 텃밭에서 고추를 기르며 겪은 어려움을 돌아보며 저는 고추 재배에 있어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민했습니다. 고추가 잘 자라지 않거나 병해충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곤 했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접목을 통한 재배 방식에 눈을 돌렸습니다
일반적인 고추묘와 접목 고추묘의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접목 고추묘는 병해충에 강하고, 성장 속도가 일반 묘목보다 빠르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관련 연구들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는데, 접목한 식물이 뿌리의 흡수력이 더 강해져 영양분의 이용률이 더 높아진다고 합니다.
접목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손이많이가는 작업이라 단가 부담일수있다는점
접목된 부위 하나하나가 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특유의 병해충 저항성을 과시합니다
병충해때문에 고추농사 고민이신 농가분 추천드립니다
2월 18일
40
46
5
Farmmorning
요즘풀약 다들조으신거 아시죠
식초로해보고 김매기도10년이상해보고 그런데 유기농 무기농해서 판매해보세요
가격이. 노력대비 꽝 이라는거 다들아시죠
이제는 이런제초제을 사용합니다
그라목손이 있으면조으련만 없어가꼬 이렇제품들 쓰고있어요 가격저렴하고 잘죽어요
농작물에 지장없이사용한다면 와. 대박입니다
23년 7월 7일
6
14
Farmmorning
절인배추20k에3만원씩주문받아서.절여보니^^계산잘못한거갓아요.ㅋㅋ인건비는고사하고.소금갑도안나올것갓내요.소금도5.6.년간수뺀소금.ㅋㅋ다시계산해서팔아야지
골병들고.손해보고..나바보갓아요~^^♡
11월 4일
8
11
Farmmorning
고추 10/1뿌리뽑고 마지막 정리하였네요 탄저병 없이 키운것도 제가 보기에도 대단 하네요 건조 잘해서 막물은 저희가 먹어요 600개 심어서 건고추 3키로 20개 판매 고추가로 6키로 3말 판매 하고 저희가 먹을것 5말 정도 나오겠네요 여름에 붉은고추 손단것 같은 늦낌이 드는데 물증이 없네요 그래도 잘 마무리 했습니다
10월 20일
19
7
3
Farmmor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