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에 마굿간을 치웠습니다.
동네 목수아저씨께서 처음으로 지은 마굿간이고 올해 97세되시는 아버지께서 평생 관리하셨던 마굿간이라 버릴 것이 엄청 많았습니다.
소외양간은 겨울철엔 보름정도 지나면 마굿간에 지푸라기를 걷어내고 새지푸라기로 깔아주면 뽀송뽀송해서 소가 좋아했습니다.
육중한 소가 배설물과 섞인 지푸라기를 밟아 차곡차곡 쌓인 지푸라기는 다져저서 쇠스랑으로 한참을 걷어내야 했습니다.
수시로 지푸라기를 넣어주면 거름도 만들고 겨울에 차디찬 마굿간이 보온효과도 있습니다.
겨울에 마굿간을 치울 때는 소를 마굿간에서 몰고 나와야하는데 그 순했던 소가 오랫만에 밖에 나오니까 얼마나 날뛰는지요?
놓치지 않을려고 코투레를 잡고 실강이를 한참하고서야 진정되었습니다.
소가 소똥과 오줌을 뒤섞여 밟힌 지푸라기는 섞고 발효가되면 논밭에 좋은 퇴비가 되어서 봄에 리어카로 실어다 보리고랑에 깔았습니다.
옛날에는 화학비료 대신에 거의 퇴비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 때 소를 키웠던 마굿간은 꽤나 넓고 높았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큰 어미소가 송아지랑 같이 지낸 곳이었거든요.
머슴살이가 없어지면서 소마굿간을 창고로 쓰실려고 돌로 된 커다란 쇠구시를 들어내시고 세멘트로 바닥을 깔고 벽을 벽돌로 쌓았습니다.
소를 키울 때는 소가 뿔로 벽을 비벼서 흙이 많이 부서지고 벽에 구멍이 송송나서 겨울철에는 짚을 엮어서 벽을 둘러주곤 했습니다.
어릴적에 그렇게 넓게 보였던 마굿간이 좁게 보였습니다.
시골에서는 농기구와 잡다한 생활용품을 보관하는 장소가 꼭 있어야 합니다.
농사를 한다면 창고도 필요할텐데 이제는 필요가 없게 되어서 마당을 넓히고 집앞을 앞이 훤하게 만들려고 마굿간을 뜯기로 했습니다.
마당까지 승용차도 들어갈올 수가 있습니다.
집앞 텃밭 길가에 커다란 컨테이너박스가 있어서 곡물은 보관할 곳이 있습니다.
소마굿간에는 어린아이들 키만한 항아리가 몇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두분이 워낙 아까워서 버리시지 못하고 구석구석 뭉쳐서 쌓아 놓으셨습니다.
그 항아리 속에는 비닐봉투, 옛날 콤바인 나락푸대, 비닐멍석, 헌옷가지 등 수없이 나오더군요.
비닐 호스가 몇개, 주름관으로 된 호스 등은 터서 뻣뻣해 다 버려야했습니다.
베틀과 쟁기, 써레, 가마니틀, 홀태, 김매는 기계, 등잔대, 삼매는 기계, 새끼로 만든 꼴망태, 가마니를 찔러서 나락이나 쌀을 감정하는 삿대가 대.중. 소로 몇개, 짚으로 만든 쌀가마니를 들 때 썼던 쇠고랑, 소등에 얹는 굴레, 소코뚜레, 물레, 무쇠솥, 소죽을 끓였던 가마솥 뚜껑, 주걱, 절구대, 안반, 요강, 소나무 뿌리로 만든 깨끗한 채반 등은 사랑채 공로에 따로 보관했습니다.
주물로 된 요강과 반상기세트와 수저, 젓가락, 가마니를 짜는 바디, 떡모양을 누르는 떡사슬, 호롱과 등잔대, 커다란 함박과 바가지, 삼베를 짤 때 썼던 붘, 솔, 삼베를 말끔하게 누르는 붘, 솔나무 뿌리로 만든 도시락, 곡물을 재는 되와 말, 누룩을 만드는 누룩틀, 실타래, 인두, 숫을 넣어서 아버지 모시옷과 삼베를 다렸던 다리미, 할머니께서 피시던 곰방대 등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축제를할 때면 한쪽 코너에 옛날 물건을 전시하고 학생들에게 설명을 해주곤 했습니다.
공로에서 물건을 들어내던 동생이 공로귀퉁이 안쪽에 세워져 있는데 뭔가 싸~한 느낌이 온다고 하더군요.
신문지와 세멘포대로 몇번을 둘러싸맨 모양이 대두병이었습니다.
신문지를 다 벗겨내니 역시 옛날 색깔이 어두운 대두병에 뱀으로 술을 담근 병이었습니다.
마개를 비닐로 싸매고 고무줄로 여러차례 동여맸습니다.
라벨지에 "1991년 10월 능사"라고 메모를 해놓으셨습니다.
카메라로 찍어 확대를 해봐도 술이 맑았습니다.
일단은 뱀이 부패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뱀은 징그럽지만 술이 깨끗해서 광 한쪽구석에 보관을 했습니다.
술을 담근지 30년이 넘은 술이라 어쩌면 귀한 물건이 아닐까?싶네요.
옛날 한옥은 지붕이 뾰쪽하고 높았습니다.
안방에 아래묵에서 오를 수 부엌과 천장사이가 워낙 높아서 벽장이라는 곳을 만들어서 잡다한 물건을 올려놓고 안방과 방마다 지붕과 천장사이에 공로라는 공간을 만들어서 사용하셨습니다.
6.25사변 때 소마굿간 위에 나무로 걸쳐서 공로를 만들어 식량과 놋쇠를 그 곳에 감추셨다고 합니다.
1976년 제가 군복무를 마칠 때부터 머슴살이가 없어졌습니다.
머슴들이 솔잎가리 나무를 해와서 부엌에서 불을 지피실 때 불쏘시개로 쓰셨는데 솔가리나무를 해올 사람이 없어서 신문지나 박스를 찢어서 불쏘시개로 쓰셨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신문지를 모아서 박스에 담아다 드렸고,
박스를 찢어서 박스에 담아드렸습니다.
아까워서 쓰시지도 않은 신문지가 담겨있는 박스에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의 날자가 있는 신문지가 여러박스가 쌓여 있었습니다.
동네 재활용 모으는 곳에 내다가 쌓아 놓았습니다.
기둥마다 녹슬은 철사며 자루가 빠지고 끝이 다달은 괭이와 삽, 호미, 양은 솥, 양은 냄비, 양은 그릇, 양은 주전자, 바닥이 녹슬어서 뻥 뚫린 화루, 쇠파이프로 만든 부지깽이, 녹슬은 다라이, 조개탄과 장작으로 불을 지폈던 녹슬은 난로, 등에 짊어지고 소독했던 약통, 금간 곳을 파란 테이프로 붙여서 쓰셨던 고무다라이, 바께스, 함석쪼가리 등 수없이 버릴 수 밖에 없는 물건이 엄청 많았습니다.
그 동안 모아두셨던 프라스틱 파이프는 어찌나 많이 모아놓으셨는지요?
튜브가 다 터져 바람이 다 빠진 리어카로 몇번을 실어 날랐습니다.
리어카도 할일을 다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리어카도 없앨 때가 되었습니다.
돼지와 염소를 키웠던 마굿간에는 장작을 쌓아놓으셨는데 아까워서 마당 한켠에 옮겨놓고 함석으로 잘 덮어 놓았습니다.
얼마나 많은지요.
가마솥을 걸은 뚤방과 지붕아래로 두줄이 되더군요.
아까워서 쌓아놓긴 했는데 쓸일이 있을런지?모르겠네요.
통나무를 장작을 팼는데 나무도 오래되면 좀이 쓸어서 화력이 없거든요.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이웃한테 가져가라고하면 바로 실어가는데 혹시나해서 쌓아 놓았습니다.
마당 앞쪽에도 알밤을 저장했던 그늘만 가리는 창고가 있었습니다.
1960년대 산림사업으로 산에 유실수인 밤나무를 군에서 심었습니다.
70년대부터 산에서 알밤을 송이채 털어서 멱다리에 담아 신작로까지 지게로지고 내려와서 리어카로 실어다 땅을 파놓은 곳에 넣고 물을 계속주면 알밤송이 가시가 썪어서 발로 문지르면 알밤이 나옵니다.
80년대 말까지 알밤을 대나무로 털어서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가을걷이 중에 가장 힘든 일이 알밤을 터는 일이었습니다.
부가가치, 가성비가 전혀 없는 알밤수확이었습니다.
그래서 개량종 4그루 정도만 풀도 깍아주고 알밤을 주어서 제사 때랑 씁니다.
가을이면 손톱만한 빨간알밤이 산에 즐비합니다.
그 알밤창고에도 장작이 얼마나 많은지요.
장작개비만 들어내는데 거의 한나절이 걸렸습니다.
이번에 알밤창고도 밀어낼려고 합니다.
농기구도 너무 많아서 몇개만두고 없앨려고 합니다.
안집 냉장고가 냉동이 안되어서 들어내고 별채에 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있는데 김치냉장고를 갔다 놓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매직으로 2009년 10월이라고 구입날자를 적어 놓으셨습니다.
양문형으로 그때는 제일 큰 것으로 사다드렸는데 겉은 깨끗한데 형제들이 괜히 AS를 받지말고 사람들 있을 때 없애자고 하더군요.
마굿간을 치우느라 애쓴 동생들한테 농사지은 분께 방아를 찧어달라고 부탁해서 방금 방아를 쪄온 쌀을 실어주었습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누이와 여동생네도 수원사는 동생편에 실어 보냈습니다.
공직을 퇴직하고 서각으로 취미생활을 하는 막내동생 친구가 이번에도 와서 애를 많이 썼습니다.
서각에 필요한 송판과 나무토막, 절구통을 실어주고 쌀도 한포대 실어주었습니다.
먼지구덕에서 마굿간을 치우느라 멀리서 내려와서 애쓴 사촌동생과 형제들이 감사했습니다.
큰집일이라면 열일을 제치고 도와주는 사촌동생이 전주에 살고 있어서 집안일 뿐만아니라 큰집일에 너무 많은 덕을 보고 있어서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번주에 스레트를 걷어내고
마굿간을 철거하하고 마당을 치우는 일은 제 몫이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TV프로에서 신체적으로 어렵고 힘든 상황을 딛고 일어나는 어떤 젊은이가
"100% 만족보다는 2% 부족할 때가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응원하고 싶은 젊은이였습니다.
얼마나 좋은 글귀입니까?
"100% 만족보다는 2% 부족할 때가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되새겨 봅니다.
3월 25일
56
73
3
Farmmorning
장마철 우기에 감나무 2차 낙과를 줄이기 위해 대봉감 약 50 그루 밑둥 돌려깎기 했습니다.
벌써부터 올해도 친구, 후배들 그리고 형제들이 감을 수확하며
행복해 모습이 그려집니다.
땅콩이나 고구마 몇두둑도 그들의 몫입니다.
단, 밭에 심어놓았으니 "니네들이 수확해 가거라"
몇년간 수확기에 치뤄지는 손님맞이 행사가 올해도 잘 치뤄지겠지요.
서울에서 이곳까지... 이런 핑계로 서로 얼굴 한번 보게되는 거 아니겠습니까..ㅎ
●본격적인 장마철에 접어들었습니다.
장마대비 철저히 하시어 피해없으시길 바랍니다 ^^●
6월 22일
30
40
1
Farmmorning
설 명절 잘 보내셨나요? 농부분들 늘 응원합니다! 힘차게 이번주도 시작해봐요🌱
안녕하세요 청년마루 입니다!
청년마루의 새로운 사업으로 추진될 농기계 임대 및 농작업 대행 관련 사업에 관해 농부분들의 소중한 의견을 들어보고자 설문조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성실하게 답변해 주신 분들께는 추첨을 통해 커피 기프티콘, 청년마루 굿즈(수건, 작업조끼)를 증정할 예정이오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참여율을 높이고자 2일 더 추가로 설문조사를 진행합니다‼️
설문기간: 2024.02.08~02.15일까지
설문대상: 농업 종사자
설문링크:
https://naver.me/GVNQicz7
farmer_maru 청년 마루 인스타에서 농업 관련 정보도 얻어가세요👍
2월 13일
9
2
Farmmorning
저희도 수미감자 수확했어요 큰아들 선 후배들 도움 받아캤어요 다음으로한300평 더 캐야되는데,ㅠㅠ
6월 17일
5
1
Farmmorning
“괴로움은 마음의 동요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의 동요를 버리고
모든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려서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
8월 8일
8
작년에 고구마를 200평정도 심었는데 여름철 줄기가 무성하여 줄기를따서 출하를 하고나서 장마비에 고랑에 물이 고인후 가을에 고구마를깼는데 줄기가 다썩어버리고 고구마도 수확을 전혀 못했읍니다 잔뿌리만 가득하고 고구마가 크질못해서
낭패를 봤는데요 그전해도 그렇고 고구마가 안달리네요
5년전 논을 밭으로개간해서
농사를 짓고있읍니다
이유가 뭘까요?
고견 부탁드립니다
2월 5일
12
14
Farmmorning
어제 남원 시골집을 다녀왔습니다.
그 동안 마굿간을 뜯으면서 대충 정리를 다 마쳤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사랑방 아궁이를 치우지 못했습니다.
1976년 제가 군복무를 마치던 해부터 머슴살이가 없어졌습니다.
동네 머슴들이 10여명 이상 모여서 지냈던 사랑방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랑방을 사용할 사람도 없고,
쇠죽을 끓였던 커다란 가마솥이 걸려있는데 머슴들이 없어지면서 소를 키우지 않아서 쇠죽을 끓일 일이 없어졌습니다.
그 때만해도 안채 부엌에도 큰 솥과 작은 솥이 아궁이에 걸려 있었습니다.
밥을 지을 때나 소죽을 끓일 때나 불쏘시개로 불을 지펴야했습니다.
불쏘시개는 가리나무였습니다.
산에서 갈퀴로 소나무잎을 긁어서 지게로 짊어지고 날랐습니다.
소나무가 많은 뒷산에 가을일을 마치면 머슴들이 한나절에 한짐씩 가리나무를 해서 날랐습니다.
저희 집은 상머슴, 중머슴 이렇게 두명이 머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네짐씩 가리나무를 했기에 작은 집채만하게 가리나무가 쌓였습니다.
가을에 나락가리같이 가리나무를 차곡차곡 쌓아 놓으면 부엌 헛간에 갔다놓고 불을 지필 때마다 불쏘시개로 사용했습니다.
마른 소나무잎을 불을 부치면 연기도 없이 파란불빛이 나면서 불이 잘 붙습니다.
가리나무가 불이 붙으면 마른나무 가지나 장작으로 밥도 짖고 국도 끓였습니다.
이렇게 가리나무로 불을 지피고 매일 아궁이에서 재를 긁어내서 거름으로 사용했습니다.
특히 정구지(솔. 부추)밭에 뿌리면 정구지가 잘 자랐습니다.
어머니께서 가리나무를 아끼시느라 신문지나 박스를 찢어서 불쏘시개로 사용했습니다.
저도 주말마다 집에 다니러 갈 때마다 박스를 실고 갔습니다.
박스는 불이 잘 붙지 않지만 찢어서 불을 붙이면 불이 잘 붙습니다.
마굿간을 치우면서 박스에 찢어진 박스종이가 담긴 박스가 여러 박스가 있었습니다.
아끼시느라 소마굿간에 차곡차곡 쌓아 놓으셨습니다.
구판장에 재활용품을 모으는 곳에다 갔다 놓았습니다.
구판장 아저씨께서 왜 이렇게 박스를 찢었냐고 하시더군요.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제 기억으로 1990년도인가 입식부엌으로 바뀌면서 가스렌지를 사용했고,
난방도 기름보일러로 바꿨습니다.
할머니방만 구들방이어서 찬바람이 불면 늘 군불을 때서 온돌방을 뜨끈뜨끈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비닐 장판이 아닌 하드보드라고 딱딱하고 두꺼운 종이 장판입니다.
비닐 장판은 구들장이 뜨거우면 늘어나고 까맣게 타기도 하는데 하드보드는 아무리 구들장이 뜨거워도 50년이 지났는데도 지금도 멀쩡합니다.
겨울이 오기전에 기다란 대나무 끝에 지푸라기를 묶어서 구들을 뜷었습니다.
불기가 잘 통하라고 구들밑을 청소를 한 셈이지요.
오직 자그마한 할머니방만 불을 지피는 방이었습니다.
사랑방 아궁이에 왕겨포대와 콤바인 포대, 크고 작은 포대로 여러개 가리나무를 담아서 보관하셨습니다.
머슴들이 사라지면서 가리나무를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랑방 아궁이에 쌓아 놓은 가리나무는 아마 30년이 훨씬 넘은 듯 합니다.
진즉부터 치워야지?했는데 오래된 가리나무이고 워난 많아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불쏘시개는 쓸 일이 없고 가져가서 텃밭에 생강 심은 곳이랑 덮어줄려고 했습니다.
오늘 제 텃밭 창고에서 왕겨포대 6개를 가지고 갔습니다.
나무가지도 몇 다발이 있었습니다.
나무가지는 좀이 슬어서 대부분 썩었더군요.
아궁이 앞을 치우고 아궁이에 있는 가리나무를 담았던 마대포대, 콤바인포대, 왕겨포대, 두꺼운 비료포대 등은 다 삭았더군요.
그래도 가리나무는 차곡차곡 쌓아놓아서 제가 가지고 간 왕겨포대 6개를 다 담았습니다.
사랑방 부엌에 오래 보관해서 먼지가 수북했습니다.
마스크 코 부분이 까맣더군요.
아직도 6포대는 더 될 것 같습니다.
어제 3포대만 실고와서 생강밭에 덮고 참깨고랑에 뿌렸습니다.
고랑에 뿌리면 풀도 덜 나고 썩으면 거름도 될 것 같습니다.
나머지도 실어다 고랑에 뿌릴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 아끼시느라 쌓아 놓았던 가리나무를 자식인 저는 밭에 거름으로 쓰고 있네요.
오늘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더 부모님께서 아끼면서 절약이 몸에 밴 마음을 헤아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올해 97세이신 아버지께서도 모자나 파리채 등을 걸려고 벼름박에 못을 박으실 때도 그 흔한 새 못을 박으신 일이 없었습니다.
새 못을 아끼시느라 꼬부라진 못을 반듯하게 펴서 녹슨 부분을 대나무를 잘라 끼워서 기둥에 박았습니다.
이번에 마굿간을 치우는데 끝이 다 달은 괭이며 호미, 곡괭이, 쇠스랑 등 농기구가 수십개나 나오더군요.
옛날 사과는 나무상자에 담았습니다.
오늘 사과상자에 福 자가 그려진 옛날 그릇 아시죠?
하얀 색깔에 파란줄이 있고 가운데 福자가 쓰여진 중발과 대접, 초록색 접시가 한상자 있더군요.
너무 눈에 익어서 밥 먹을 때 쓸려고 몇개를 가지고 왔습니다.
요즘 주부들이 선호하는 영국산 덴비나 미국산 코렐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더 단단하고 멎저 보였습니다.
어제 어버이날에 밭고랑에 가리나무를 깔면서 6년전에 먼 세상으로 가신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은 하루였습니다.
5월 8일
50
57
Farmmorning
팜모닝을 사랑하는 순박하고 청순하고 거짓없이 살아오고 진실만이 우리의 전부인양 잔디뿌리를 씹어삼키고 살아온 조상님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 농부님들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기술의 발달로 농사짓기는 쉬어졌지만 고생은 마찬 가지입니다. 배웠다는 위정자들은 농부들의 부지럼함을 배우고 적극적으로 도와 주십시요? 썩어빠진 정치에 목숨걸지 말고 몇년동안 같이 농사도 지어보고 아픈마음 알고 정치하였으면 합니다. 팜모닝에서 노력하신 선생님덕분에 농사일에 큰 도움이 됩니다. 계속 좋은소식 주시고 우리모두가 협력하여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4차산업에 기여 합시다.
6월 4일
9
1
이제 사과수확해야 되는데 인건비가 비싸서 고민됩니다 소확양은 평년에비해 절반정도 밖에 안되니 그나마 가격이 비싸게 형성되서 조금은 마음이 놓이네요 평년 같으면4500상자정도 수확하는데 올해는 2500상자정도 수확할것 같아요 에~그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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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Farmmorning
저는 오늘 농부님들께 건의할말이 있어서 잠시시간내서 글을올림니다
저는 부추농사 10년지으면서
틈틈이 아욱이랑 쑥갓이랑 김장갓을 심으면서 농사만 짓다가 겨울에 놀기심심해서
마트에 취직했다가 농사랑직장생활을 겸하고있는데요벌써 7년을 그렇게살고있는데요
제가 마트에서 야채소분담당을하는데 속배기가 넘심하더라구요
사실 농사지을때는 나도 좀했을겁니다 아까우니깐요~~
근데 정도가 심할때가 아주많이있어요
우리가 소분할때는 못쓰게 생긴야채는 버려가면서 작업을하는데 소비자가 큰단이나 박스로사갈때는 엄청 미안하더라구요~~
오늘은 쪽파를 한번 올려봤는데요
품목들이 다양해요
❤️❤️농부님들 열심히 농사지어서 예쁜것은 골라서 팔고 못난것은 타로 팔면 안될까요^^모든 농부님들이
싸재기로 욕을먹네요❤️❤️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하구요
주제넘었다면 용서하시길~~~
1월 15일
40
29
5
Farmmorning
고추 몇포기가 크지도 않고 잎이 누렇고 꽃은 보이는데 고추가 안달임 무슨 원인 인가요 조치 방법은 없나요 조언부탁 드립니다
7월 6일
5
2
Farmmorning
[🧄] 고품질 마늘을 다수확하고 싶다면?
정답은 마늘이 잘 클 수 있는 땅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땅심(지력) 자체를 높이는 퇴비법과
병해충이 생기지 않게 하는 땅 소독법을 지금 알려드릴게요🙂
22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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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우리들 이야기 = 33
"20년의 봉급과 맞바꾼
     세 가지 삶의 지혜"
어느산속에 
가난한 농부와 아내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살고 있던 가난한 농부가
집을 떠나 다른 마을에 가서
돈을 벌어오기로 했습니다.
예전 우리네 머슴살이와
같은 것입니다. 
아내 곁을 떠나기 전
농부와 아내는 서로를 향한 
믿음을 지키자고 굳게
약속 했습니다.
집을 떠난 농부는 이십일을 걸려
어느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부잣집에서 20년을 일하기로 했습니다.
농부는 주인에게 20년 동안
자신의 월급을 저축해 두기를 부탁했습니다. 
드디어 20년이 차서
농부는 주인에게 자신의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둘 중에 한 가지를 선택 하라는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20년간 번 돈을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세 가지 삶의 지혜를
들을 것인가 -?
선택 하라는 것입니다.
이틀 동안 고민한 농부는 20년간
번 돈 대신 세 가지 삶의 지혜를
듣기로 했습니다.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조목조목
세 가지 삶의 지혜를 말해
주었습니다.
“첫째로, 인생에서 지름길을
택하지 말게-,
그러면 대가를 크게 치르고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네.“
“둘째로, 과하게 호기심을
가지지 말게-,
과한 호기심은 다칠 수도 있다네.”
“셋째로, 화가 났을 때 절대로 무언가를 결정하지  말게-,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후회를
하게 된다네.“
주인은 그에게
빵 세 덩어리를 주며 말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빵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먹고, 
세 번째 빵은 집에서 먹게나 !”
농부는
주인에게 감사해 하며
길을 떠났습니다.
첫째 날에 그는 그가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는 여행자를 만났습니다.
농부는 대답했습니다.
“20년의 노동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20일이나 걸린답니다.
“여행자가 말했습니다.
“제가 5일밖에 걸리지 않는
더 빠른 지름길로 안내해 주겠습니다.”
농부는 지름길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주인이 해줬던
첫 번째 조언이 떠올랐습니다.
농부는 지름길 대신
긴 여정을 선택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노상강도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밤이 되어 농부는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습니다.
그가 잠을 자고 있을 때
큰 울음소리가 그를 깨웠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져서
그는 일어나서 문을 조금
열었습니다.
하지만 주인이 해줬던
두 번 째 조언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집주인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호랑이가 밤에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모두 문을 단단히
잠그고 있었지요.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농부는 20일이 걸려 집에 도착했습니다.
집에는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부푼 마음으로 그는
창문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집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기쁨이 충격과 분노로
변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다른 남자를
껴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증오가 그의 마음을 지배했고
그는 달려가서 둘을 죽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인이 말해준
세 번 째 조언을 기억했고
자신을 억제 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헛간에서 잠을 잤습니다.
해가 떠오르자 그는 마음을
진정하고 생각 했습니다.
"주인에게 돌아가서
일을 다시 구하고 아내와
그의 애인을 죽이지 말자".
하지만 돌아가기 전에 아내에게
자신은  항상 믿음을 잃지 않았다고
말하기로 했습니다.
그가 문을 두드렸을 때
아내는 문을 열고 그의 품에
안겨 왔습니다.
그는 아내를 거칠게 밀어내며
슬프게 말했습니다.
“나는 항상 믿음을 가졌는데
당신은 나를 배신했어-!”
“아니에요-!”
아내가 강하게 머리를
저었습니다.
“나는 어젯밤에
당신과 한 남자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단 말이요-!” 
농부가 말했습니다.
아내가 대답 했습니다.
“그 남자는 우리 아들이에요-!”
“당신이 떠날 때
저는 임신 중이었고 우리 아들은  
스무 살이 되었어요-!”
그 말을 들은 농부는 아내를
꼬-옥 껴안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부부와 아들은
마지막 남은 빵을 먹기 위해
마주 앉았습니다.
농부가 빵을  자르니
그 속에는 그가 20년 동안
번 돈과 이자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감동을 주는 지혜의 글이다. 
우리는 이런 지혜의 이야기를
읽으며 여기까지 왔다.
상황에 따라 감정을 조율하는
농부의 대응이 가슴을 조리 게 했다.
누구나 감정을
다스리는 게 쉽지 않다. 
얼마나 각박한 세상인가,
우리들 앞에는 화(禍)낼 일만
늘어나고 있다.
여기 이 삶의 지혜가
모든 이의 양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건강 하시고
   행복 하세요.
귀한글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예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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