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미 민간요법
1. 만성 비염;;
묽은 콧물이 나오고 냄새를 잘 맡지 못할 때 수세미 줄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10∼15g을 물에 달여 먹는다.
2. 기관지천식;;
수세미는 불교의학에도 나오는 천식藥
으로 달여 먹어도 좋고 생것을 즙을 내어 복용해도 치료효과가 높다.
3. 기관지염;;
수세미와 알로에를 같은 양으로 즙을 내어 먹는다.
4. 장염;;
수세미 열매 10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이거나 생즙을 내어 1일 2~3회 1주일 정도 복용한다.
5. 오십견;;
말린 수세미의 열매를 가루 내어 매일 10g씩 먹는다.
6. 습진;;
수세미 꼭지를 가루로 만들어 참기름에 개어 바른다.
7. 거칠어진 피부;;
어린 수세미를 생즙을 내어 그 물로 1일 2~3회씩 10일 이상 바르거나 가을에 줄기에서 유즙을 받아 수시로 바르면 아주 효험이 있다.
8. 축농증 환자;;
적당한 양의 수세미넝쿨을 보드랍게 가루 내어 찬물에 타서 하루에 3번 먹는다.
9. 헛배가 부를 때;;
수세미씨를 약한 말린 다음 보드랍게 가루 내어 한 번에 3~5g씩 술 한잔에 타서 먹는다.
수세미 오이는 복수도 잘 빠지게 할 뿐 아니라 헛배 부른 것도 잘 낫게 한다.
10. 아이들의 아토피 피부염;;
수세미액을 복용과 동시에 피부에 바름으로 좋은 효과를 얻는다.
11. 신경통;;
가을에 추출해낸 수세미 원액에 설탕을 넣고 함께달여서 하루에 3회 소주잔으
로 1-2잔씩 마시면 통증을 가라앉힌다.
12. 기침;;
수세미즙이나 원액 1홉에 설탕을 적당히 넣고 졸여, 이를 하루분으로 하여 한동안 계속하여 마시면 효과가 있다.
13 목이 부었을 때;;
목 안이 부어 올랐을 때는 수세미즙이나 원액을 마시면 신기하리 만큼 좋아진다.
14. 두통;;
수세미즙 원액 1홉을 하루분으로 하여 2~3회 나누어 마시면 자연히 낫는다.
15. 땀띠, 손발 트는데, 화상;;
수세미즙이나 원액을 평소에 화장수로 쓰면 땀띠나 손발이 트는 일이 없으지며 화상에도 좋다.
16. 모유가 잘 나오지 않을 때;;
말린 수세미 열매를 가루를 내어 1일 10g 정도를 더운 술이나 물에 타서 3~4일 정도 마신다.
17. 요통;;
수세미의 뿌리를 볶아 가루를 만들어 1회에 5~6g씩 먹거나 수세미의 줄기를 하루 30~40g씩 물에 달여 2~3회에 나
눠 먹는다.
18. 복통;;
말린 수세미를 가루로 만들어 10g 쯤을 술로 마시면 심한 복통에도 잘 듣는다.
19. 가래(담);;
수세미 줄기에서 받은 물(수액) 1홉을 하루분으로 하여 2~3회 나누어 마시면 유효하다.
20. 비염.축농증;;
묵은 수세미 넝쿨을 가루를 내 하루에 3번 1숟가락씩 복용, 어린 수세미 열매
를 즙을 내거나 말린 뒤 끓여 먹어도 좋다.
21. 황달;;
수세미의 씨를 볶아서 만든 가루를 1회 2돈씩 하루 3회 개어서 복용하면 유효
하다.
21. 견비통;;
어깨 관절이나 주위의 근육, 힘줄의 노화 현상이 견비통인데 잘 익은 열매를 햇볕에 말려 가루를 내어 매일 10g씩 먹으면 효과가 좋다.
22. 월경불순(생리통);;
말린 수세미 가루를 한번에 1숟가락씩 하루 3회 술이나 물에 타서 마시면 효과
있다.
23. 변비.정장.건위;;
수세미즙이나 원액을 마시면 장을 깨끗이 하며 위를 튼튼하게한다.
24. 기미.주근깨;;
수세미씨를 가루로 만들어 수세미 수액
이나 꿀 등에 개어 얼굴에 바르면 (팩) 효과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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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세미의 효능
1. 오십견 완화;;
오십견으로 신체의 일정 부분에 지나
치게 아픔이 느껴진다면 수세미를 드시
는 것이 좋다.
수세미는 자연스러운 오십견 증상을 완화시키는 수세미의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팔이나 다리가 아플 경우 활용해보세요.
2. 천식 치료;;
천식 치료에도 수세미의 효능이 좋다.
特히 수세미는 잦은 기침이나 목에 끓는 가래를 완화시키는데 좋아 천식치료에
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3. 설사 완화;;
평소 장이 좋지 않아서 설사가 잦았다면 지사제약 대신 수세미 우려낸 물을 음용해보시길 바랍니다.5~10g가량의 수세미를 넣고 물에 우려내 드시면 장이 건강해지면서 장염도 사전에 막을 수 있고 설사도 그치게 하는 수세미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4. 비염 치료;;
비염에서 코 안에 고이는 콧물을 그치게 하는데에는 수세미의 효능이 탁월하다.
수세미 우려낸 물을 자주 음용하실 경우 콧물이 그치면서 코가 시원하게 뚫리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5. 피부병 개선;;
가려움증을 동반한 피부병에는 수세미 줄기를 잘라 우려낸 물[수액]이 도움이 된다.
환부에 우려낸 물을 발라주시면 가려움증이 없어지면서 깨끗하게 피부병이 치료되는 수세미의 효능을 보실 수 있다.
또한 미백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수세미 줄기 우려낸 물에 꿀을 첨가해서 피부를 씻어주시면 피부의 수분기가 오래 남아 촉촉한 피부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6. 소화 향상;;
소화 능력에도 수세미의 효능이 관여하는데, 평소 신체 내부 장기가 약하여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면 수세미 씨를 빻아 분말로3~5g가량 복용하실 경우 소화력이 향상되는 수세미의 효능을 확인하실 수 있다. 수세미 분말은 술과 섞어 드셔도 좋다.
7. 회충 제거;;
수세미의 효능은 때로 천연 구충제의 역할을 하는데, 체내의 회충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수세미 오이씨를 1일 40~50알 가량 복용
해주시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때 수세미의 효능을 보시기 위해 유의하실 점은 수세미 씨 껍질을 제거한 후 드셔야 한다는 점이다.
8. 신장염 치료에 도움;;
이뇨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만성 신장염일 경우 수세미의 효능이 도움이 된다.
수세미 줄기를 물에 우려내어 복용하시거나 수세미 줄기를 잘라 채취해낸 액을 틈틈히 드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렇게 지속적으로만 해주시면 수세미의 효능으로 신장이 회복되고 신장의 이상으로 부어 있던 몸의 붓기가 빠진다고 한다.
🥽🥼🦺👔👕👖🧣🧤🧥🧦👗👘🥻
7월 6일
12
5
1
Farmmorning
살아 오면서 처음 땅을 파고 돌을 골라내고 모종과 씨앗을 심어 보았습니다.
물도주고 비료도 주며 농사라는 생소함에 처음 접해 보았는데 이것이 은근히 중독성이 있네요
처음에는 시간도 없고 하여 일주일에 한 번 밭에 가던 횟수가 지금은 일주에 다섯번정도 가게되더라구요
요즘은 조금일찍 퇴근해서 작물도 살펴보고 물도주고 그러네요
그런데 문제는 어떤시기에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되는 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자라던 작물들이 성장도 늦고 시들해지기 까지 하네요
그렇지만 자라나는 작물들이 하나하나가 너무소중하네요
이것저것 심어서 지인들에게 나눔하는데 너무 행복합니다
좋은것은 지인들에게 나누고 남는것이 제차지가 되더라구요
이곳 선배 농업인들에게 열심히 배워 심는작물들을 좋은결실 얻고십습니다
많 이들 가르쳐주세요
감사 합니다 꾸벅
22년 11월 13일
1
2
무료 나눔 하겠습니다.
밑의.글을 참조해 주세요.
팜다터 유근용입니다 010 4281 1530 팜닥터 유근용 국민은행 274 21 0209 081 유근용 입니다
저가 제공하는 하우스에서 재배한 속성재배용이 아닙니다.
자연에서 자생한 묘목임으로 크기와굵기의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생존율이 90이상을 유지합니다.
이식이후의 성장 속도도 하우스재배용보다 2배이상 높음니다. 산에서 채취함으로 노농력이 하우스보다 2배이상의 노력이 들어갑니다. 이부분을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번 참두릅 모묙 3년생 5,000원
2번 엄나무 묘목 3년생 5,000원
3번 가시오가피 3년생 5,000원
4번 땅두릅 종근 1촉당 2,000원
5번 고사리 종근1촉 1,000원
6번 취나물 종근5년생 1,000원
7번 머위종근 5년근 1,000원
8번 원추리 5년종근 1,000원
9번 바위취 5년근 1,000원
10번 헛개나무 3년근 10,000원
11번 태황질경이 1촉 30,000원
12번 대왕 고들빼기 1촉 1,000원
13번 참다래나무3년생 1주 10,000원
14번 산나물 1촉 1,000원
15번 백목련 3년생 5,000원
16번 토종 엉겅퀴 3년이상 1,000원
17번 비비추 3년생이상 1,000원
18번 신선초 5종근 1촉 1,000
19번 토종 흰민들레 1촉 1,000
20번 잔대 3년생 종근 1,000원
21번 더덕
22번 도라지 3년근 1,000원
23번 산초나무 3년근 5,000
24번 삼채나물 모종 1촉 1,000
25번 토종 작약50년 1개 60,000원
26번 싸리나무2년생 2.000
27번 청단풍 3년생 5,000
28번 자귀나무 2년생 5,000원
29번 맥문동 종근 1촉 500원
30번 화살나무 3년생 5.000원
31번 산부추 1촉 1,000원
32번 복분자 3년생 5,000원
33번 산둥굴레 15년이상 2000
34번 달마지꽃 종근 2000
35번 천문동 모종 5,000원
36번 자연산 개복숭아 15,000
37번 자연산참옷나무 3년 10,000원
38번 참가죽나무 자연 10,000원
39번 정자나무 3년생 10,000원
40번 생강나무 3년생 5,000원
41번 진달래꽃 3년생 10,000원
42번 모과나무 2년생 3,000원
43번 왕벗꽃 3년생 10,000원
44번 고염나무 3년생 10,000원
팜닥터 유근용 010 4281 1530 국민은행 274 21 0209 081 유근용 입금확인후 바로 작업 들어갑니다. 모둠으로 구입하세요
23년 4월 22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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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논농사 처음인데 지나가는 분이 너무 색깔이 노랗다고 비료를 치라고하시네요.
찾아보니 마그네슘 칼슘을 치라 하는데 지금 어떤거 치면 되는지요? 팔거는 아니고 이웃끼리 나눔할겁니다.
21년 7월 18일
3
Farmmorning
♡ 마음속의 씨앗
사람이 잘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에 싸앗을 심는것과 같다고 합니다.
어떤 씨앗은,
내가 심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뒤에도 쑥쑥 자라나 커다란 나무가 되기도 한다고 하지요.
지인께서도,
아마 누군가의 마음에 멋지고 의미있는 씨앗을 심어 놓으셨겠지요?
우리 마음엔,
많은 씨앗들이 자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가 심어준 씨앗인지..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늘~
긍정의 마음으로 누군가 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어 주는 그런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꽃의 향기는 십리를 가고
말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나눔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
인격의 향기는 영원히 간다고 합니다.
부지런히 나누고 베풀어
福 짓고 德 쌓는 최고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2년 9월 11일
Farmmorning
제가 교직생활을 35여년을 하던 중 가장 가슴아프고 힘들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1989년 4윌1일 만우절이었습니다.
교복과 두발 자율화 바람이 불어 학생들이 교복대신에 편한 복장과 바가지모양의 단발머리에서 퍼머를 제외한 자연스런 머리모양으로 학교생활을 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대부분이 청바지에 남방이나 티셔츠를 입고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1학년 신입생을 담임으로 배정받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학생들은 부푼 꿈을 안고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를 부르짖을 때라 자기소개를 마치고 학급실장을 직접선거의 방법에 따라서 실장선거를 했습니다.
그때는 학번이 키큰 순서대로 정했습니다.
복도에 한줄로 세워놓고 키순대로 학번을 정했습니다.
이런 방법이 키가 작은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하며 인권문제다해서 성씨를 따라서 번호를 정했습니다.
그래서 김氏 성을 가진 학생들이 제일 앞번호가 됩니다.
진안여중을 졸업한 32번 김은경이라는 아이가 저희반 실장에 선출됐습니다.
실장을 하고 싶은 학생을 거수를 했고,
또 친구들의 추천을 통해서 실장후보들이 자기소개와 소견발표도 하였습니다.
쪽지에 뽑고 싶은 실장이름을 쓰게하고 걷어서 칠판에 후보들 이름에 바를정(正)자로 표기하면서 제일 많은 표를 얻는 아이가 실장이되고 차점자가 부실장이 되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반학생 정원이 60명이었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청바지와 단발머리에 무지개색 티셔츠를 즐겨 입었던 학생이었습니다.
진안여중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저희학교에 입학한 학생중에 상위권에 해당하는 연합고사 성적을 받은 학생이었습니다.
신입생이라 상담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께서 언니와 은경이를 키우셨더군요.
아버지께서는 서울로 올라가셔서 새엄마랑 살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은경이가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곱게 한복을 입고 졸업생 대표로 졸업장을 받았더군요.
중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할머니께 앞으로 3년만 도와주시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꼭 은행에 입사해서 할머니를 평생 모시겠다"고 큰절을 올렸다고 은경이 이모님한테 들었습니다.
진안여중 선생님들께서도 은경이는 인문학교를 진학해서 대학에서 공부를 했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텐데 하면서 많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담임선생님의 추천을 받아서 장학금을 받기로하고 제가 근무하던 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가정형편을 잘 아는 은경이는 실업학교를 택했고 저와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할머니께서 혼자 감당하기에 벅차서 은경이 이모님들과 같이 힘을 모아 남노송동에 골목안쪽에 있는 자그만 골방을 월세로 얻어서 친구랑 자취를 했습니다.
방문 앞 뚤방에 연탄 아궁이가 있었습니다.
은경이 언니는 군청에서 일하면서 전주여고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에 토요일에 수업을 받으러 나온다고 합니다.
언니는 지금같으면 업무보조라고 하는데 그때는 학교에 일하시는 소사아저씨같이 잡다한 심부름과 청소를 하면서 용돈을 벌어서 전주에 있는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매주 토요일에 수업을 받으러 진안에서 다니고 있었습니다.
토요일 종례시간에 모두들 조심해서 시골집에 잘 다녀오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그 때만해도 시골에서 전주로 나와서 자취를 하는 학생들이 절반이 넘었으니까요.
"은경이는 진안 할머니한테 안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언니가 이번주는 방송통신고등학교 수업을 받으러 나오면서 김치를 가지고 온다고 모래내 시외버스 정류장에 가서 받으면 된다고 하더군요.
입학한지 한달밖에 안 되었지만 실장이기에 다를 아이들보다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처음 한달은 신입생이라 준비하고 정리 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조용하고 조금은 과묵한 성격이었습니다.
어릴적에 엄마를 잃어서인지 밝고 명랑한 그런 소녀는 아니었습니다.
늘 제일 먼저 등교해서 담임인 제자리를 청소도하고 공부도 열심히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 해 1989년 만우절은 일요일이었습니다.
일요일이라 일찍 아들을 데리고 목욕을 다녀왔습니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집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휴일 이른 아침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조금 의아했기도했고 시골에 부모님께서 계셔서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수화기 넘어로 어느 여자아이가 울먹이면서
"선생님 은경이가 죽었어요" 라고 은경이 중학교 선배가 전화를 한겁니다.
오늘이 만우절이라 장난치지 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이었습니다.
어제 저녁 밤 10시까지 같이 놀다가 헤어졌는데 아침에 주인 아주머니한테 연락을 받았답니다.
달려갔습니다.
방문을 여는 순간 퀘퀘한 냄새가 났습니다.
은경이가 하늘색 체육복을 입은 상태로 엎드려 있는데 이미 몸둥이가 싸늘하게 굳어있었습니다.
옆에 또다른 아이가 한명 더 있었습니다.
같은 중학교 친구인데 다른 곳에서 자취를 하면서 다른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자취방에 언니가 와서 방이 좁아 은경이한테 놀러와서 자다가 변을 당한겁니다.
신고를 해서 경찰이 왔습니다.
경찰이 여러가지 창문이며 주변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타살 흔적은 발결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주인아주머니께서는 거의 실신한 상태로 지금까지 많은 학생들이 우리집에서 살았는데 연탄까스중독은 절대 아니라고 난리더군요.
어제 저녁 10시까지 놀다가 연탄불을 갈고 잤다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몇일 동안 중앙뉴스와 지방뉴스에 연일 메인뉴스로 보도가 되었습니다.
대학병원 영안실로 옮겼습니다.
서울에 있는 은경이 아버지께서도 내려오시고,
할머니께서는 워낙 연로하셔서 장례식장에 오시지 못했습니다.
그 상황은 복잡하고 힘들었던 일이라 뭐라 글로 표현을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한줌 재로 변한 은경이를 한달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교정을 한바뀌 돌고 진안에 있는 엄마 옆에다 잘 보냈습니다.
몸도 불편하시면서 키운 손녀를 먼저 보낸 할머니댁에 위로를 드릴려고 목사님과 친한 친구들 몇명이서 함께 들렀습니다.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잖습니까?
진안까지 1시간 가까이 걸리는 차속에서 "큰 슬픔에 계실 은경이 할머니께 어떻게 무슨 말씀을 드려야할까?" 도저히 정답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마을 언덕위에 둥구나무 있는 쪽에 자그마한 함석으로 지붕을 이은 두칸짜리 홑집이 은경이네 집이었습니다.
방안에 몸이 많이 불편하셔서 힘드시게 앉아계시는 할머니께서 두손으로 저를 감싸주셨습니다.
언뜻 방문앞에 자그마한 상위에 전화기와 그 옆에 성경책과 찬송가가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 은경이는요? 하느님께서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갔을 겁니다" 하시면서 도리어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아!
종교의 힘이 이런거구나!했습니다.
할머니께서 신앙의 믿음으로 버티셨던 것이었습니다.
사고가 난 3일후에 학교에 출근을 했는데 교무실 전화가 계속 울렸습니다.
저는 항상 출근이 제일 빨랐습니다.
아마 거의 1등으로 출근을 했지않나?싶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때만해도 시내 전학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전주시내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지 못한 많은 학생들이 임실, 진안, 김제, 고창, 정읍, 멀리는 남원 인월고등학교까지 왕복 너댓시간을 버스를 몇 차례나 갈아타고 다니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 학부모님들께서는 시내로 얼마나 전학을 시키고 싶었겠어요.
학부모 입장에서는 얼마나 애타셨겠어요!
수 많은 사람들이 멀리 통학을 하는 자식들을 시내로 전학을 시키고자 모든 인맥을 동원시키곤 했습니다.
전화를 받는 순간 "그 학교에 전학을 하고 싶다" 라는 문의 전화였습니다.
제가 답변을 했습니다.
"지금은 자리가 없습니다" 라고 말씀 드렸더니 학부형께서 "뉴스에 그 학교 학생 한명이 죽었다는데 왜 자리가 없느냐고 하느냐" 하면서 성질을 내는 겁니다.
왜 하필 제가 전화를 받았을까요?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아직 은경이 제적처리도 안했거든요.
그후로 수 많은 전화문의가 있었습니다.
학교측에서도 은경이 자리는 담임인 저한테 일임을 했습니다.
은경이를 잃은 슬픈 마음이 정말 컸으니까요.
다른 선생님들께서 지인들한테 부탁을 왜 안 받았겠어요?
그러나 선생님들께서 많이 슬퍼하는 제마음을 알고 계시기에 전학을 받으라고 선뜻 말씀을 못하셨습니다.
은경이만한 아이를 저는 저희반 아이로 채우고 싶었습니다.
제적처리를 하고난 어느 토요일 하교길에 시내 기전여고 뺏지를 목에 건 학생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한테 인사를 하더니 대학을 진학할려고 인문학교로 입학했는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아서 엄마를 도와드리고 싶다면서 저희학교로 전학을 오고싶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제 나름대로 아직 정리를 못해서 대답을 못해주었습니다.
기회를 주시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되겠다고 하면서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학생을 돌려보내고 생각을 했습니다.
참 대단한 아이구나?싶었습니다.
어린 학생이 진로를 바꾸면서 직접 학교로 찾아온 용기와 그 마음이 대단했습니다.
바로 다음주 월요일에 그 아이 출신 중학교에 전화를 했습니다.
김제군에 있는 금산중학교를 졸업했다고 했거든요.
중학교 3학년 때 그 아이 담임선생님한테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아이에 대한 몇가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연합고사도 200점 만점에 170점 정도을 받은 우수한 학생이고 반듯한 학생이라고 칭찬을 하시더군요.
기전여고 그 아이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대학을 진학해서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해 공부해서 언론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는 학생이라고 저한테 전학을 받아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리하여 새로운 아이를 전학받아서 처음은 힘들었지만 나머지 학기를 행복하게 보낸 것 같았습니다.
전학한 첫날 반아이들한테 인사를 시키고 자기소개를 시켰는데,
얼마나 똘망지게 자기소개를 하는지?
다를 아이들이 꼼짝도 못하더군요.
기득권이라 할까요?
그래도 반아이들이 전학온 아이한테 지기싫어하는 오기? 그런 뭐가 있잖아요?
전학온 미정이는 활발하고 명랑한 아이었습니다.
인문학교를 다녔던 아이라 기능과목이 부족했습니다.
기능과목을 운영하는 학원에 수강을 부탁해서 빠른 시간에 실업학교 학과에 잘 적응하면서 반 아이들과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었습니다.
1학년을 종업식날 저희반으로 전학을 온 아이가 까만 비닐봉지로 싸맨 소주병을 한병 들고 교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어머니께서 농사지으신 거라고 선생님 갔다드리라고 주셨다면서 들기름을 한병 보내주셨습니다.
병뚜껑을 열고 고소한 들기름 냄새를 선생님들 코에 대면서 자랑을 했습니다.
참으로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남의 일이라 어느덧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연탄까스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일이 가끔씩 일어나곤 했습니다.
처음 연탄을 갈고나면 매캐한 냄새와 연탄까스냄새가 많이 올라옵니다.
골목에 함석으로 된 연탄 아궁이 굴뚝에서 나온 연탄까스 냄새를 맏아보신 적 있으시죠?
하루 두번씩 갈아야 따뜻하게 난방을했고,
그 아궁이에 양은솥으로 밥을 짖고 국도 끓여먹었죠.
연탄을 갈때는 공기구멍을 전부 열었다가 새파랗게 불이 붙으면 공기구멍을 조금만 열어놓곤 했습니다.
연탄에 불이 붙어 파란 불빛이나고 연소가되면 가스피해는 없답니다.
오늘이 만우절이라 더 생각이 납니다.
신학기라 학생들 얼굴을 익히지 못할때라 아이들이 서로 교실을 바꿔가면서 선생님들을 놀리기도 했습니다.
35년이 지난 일이지만 불현듯 생각나서 그때 슬픔을 되새겨봅니다.
지금 그아이가 살았다면 50대 중년의 나눔의 봉사를 하는 훌륭한 여인이 되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4월 첫날 슬픈 이야기라 많이 망설여집니다.
농부님들은 땅살리기를 하셔야 할 때입니다.
옛날에는 두엄간에 쌓아 놓았던 퇴비를 논밭에 뿌렸습니다.
겨우내 부엌에서 긁어낸 재도 밭에 짊어지고 가서 땅에 뿌리고,
돼지막이나 소막에 깔아준 짚을 마구간을 치면서 나온 퇴비와 썩여서 논밭에 뿌리고 갈아엎어 땅을 살렸습니다.
요즘 화학비료를 주고 기른 작물보다 생산량은 못미치겠지만 모든면에서 우수한 작물이었겠다!싶습니다.
올 봄엔 잦은 비와 낮은 기온으로 과수농가에 착과가 즐어드는 피해가 염려스럽습니다.
또 벛꽃없는 축제가 곳곳에서 열리는 해프닝이 일어나네요.
우리나라 벚꽃축제의 대표인 진해군항제가 축제가 끌날 때쯤 일주일 늦게 벚꽃이 만개했다고 합니다.
벛꽃 꽃망울도 탐스럽지않고 숫없는 머리모냥처럼 헤성헤성하네요.
밭을 갈고 1년 내 먹거리를 심고 씨앗을 뿌려야하는데 땅이 질퍽거려서 밭갈이도 못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번 4월도 솟아나는 나무들 새순처럼 늘 기쁨이 솟아나는 달 되시기를 바랍니다.
3월 31일
55
75
Farmmorning
★ 세상사는 지혜 ★ 
 
말이 앞서는 자는 실천이 소홀하고
행동이 앞서는 자는 생각이 소홀하고 
 
사랑이 헤픈 자는 믿음이 소홀하고
믿음이 헤픈 자는 마음이 소홀하고 
 
욕심이 과한 자는 인정이 부족하고
가난에 주린 자는 의지가 나약하고 
 
인격이 부족한 자 배려에 소흘하고
저밖에 모르는 자 나눔이 부족하고 
 
눈치에 예민한 자 아첨에 능 하고
주위에 과민한 자 처세에 소심하고 
 
침묵이 지나친 자 속내가 음흉하고
생각이 지나친 자 잔머리에 능하고 
 
배움을 앞세우는 자 건방이 넘치고
진실 됨을 지나친 자 거짓 속임이 강한 자라 
 
이래저래 들추고 살펴보면
사람과 사람 관계에
우리가 헤아리고 삼가할 덕목이 한두가지랴 
 
무릇 사람이란
스스로의 잣대로
오만에 빠져 자만하지 말며 
 
크고 작은 모든 거취를
나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언행으로 행동한다면, 
 
결국에는 나를 돋보이게 하는
느긋하고 평안한
양질의 삶이 되지 않겠는가? 
 
자고로 넘침은 모자람만 못할지며
지나침은 가만 있음만 못 하고
모른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듯이
익을수록 고개 숙이는 벼가 돼고, 
 
나서지 않아도
바람으로 이는 숲의 향기처럼
소박하고 조용한 운신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제 삶에 충실함이
이보다 더한 아름다움일까 
 
사람의 도리로서
세상 사는 이치로 말이다
22년 9월 17일
1
남원 시골집에 지난 봄에 면사무소에 스레트철거를 신청해서 사랑채와 창고 스레트를 철거했습니다.
옛날에는 스레트에 삼겹살과 돼지고기 주물럭을 구워 먹으면 기름이 쫙 빠져서 맛있게들 먹었는데
스레트가 발암물질이라고해서 폐기물 처리를 해야합니다.
지역 자치단체에서 예산을 세워서 신청받고 현지답사를 마친 다음 선정된 가구에는 스레트를 철거해줍니다.
저소득층이나 기초수급자가구는 지붕까지 함석으로 해줍니다.
스레트는 폐기물이라 비닐로 단단하게 묶어서 전문기관에서 처리를 합니다.
가끔씩 나들이를 하시다보면 재선충에 걸린 소나무를 잘라서 비닐로 씌워고 테이프로 묶어서 산에 보관하는 모습을 보셨죠?
그와 같이 비닐로 씌우고 테이프로 묶어 놓으면 폐기물 처리반이 와서 실고 갑니다.
스레트를 철거 할 때는 방제복을 입고 마스크도 일반 마스크가 아닌 특수한 마스크를 쓰고 작업을 해야 합니다.
주변에 스레트 분진가루가 날릴 염려가 있기 때문에 두꺼운 천으로 둘러치고 작업을 하더군요.
개인이 스레트를 철거할려면 엄청나게 경비가 지출되거든요.
사랑채는 함석으로 지붕을 다시 이양하고,
창고는 헐어서 빈공간을 주차장으로 쓸까 아님 흙을 받아서 텃밭으로 사용할까?생각중입니다.
원래는 보릿대를 쌓고 산에서 생풀을 베다가 보릿대와 생풀을 섞어서 발효시키는 퇴비장으로 사용했던 창고입니다.
옛날에는 여름 내 퇴비를 만들어서 가을에 나락을 베내고 보리를 심을 때 하얀 곰팡이가 핀 퇴비를 보릿골마다 뿌리고 보리씨앗을 뿌렸습니다.
지금 같이 화학비료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퇴비로만 벼농사와 보리농사 이렇게 이모작을 했었습니다.
갑자기 시골에 일손이 부족하고 농사를 편학하게 짓게 되면서 퇴비를 만들지 못하게 되었고 생산성이 부족한 보리농사를 포기하게 되면서 비료로만 벼농사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볏짚도 걷어버리고 보릿대도 없이 오직 비료로만 벼농사를 짓는데 땅이 제대로 역할을 할까?싶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퇴비를 발효시켰던 퇴비장이 필요없게되었고 리어카나 들여 놓고 온갖 잡동사니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게 되었습니다.
한쪽에는 돼지우리를 만들어서 어머니께서 음식물 찌꺼기가 아깝다고 돼지를 키우셨습니다.
그 때는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기 때문에 죽저가 나왔습니다.
죽저와 구정물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로 돼지를 키우셨습니다.
이렇게 키운 돼지고기 맛은 돼지사육장에서기른 돼지고기와는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맛이 고소하고 단백하였습니다.
제가 삼례장에서 제차에 커다란 고무통에 흙돼지 새끼를 몇차례나 실어다 드렸습니다.
1년 남짓 키우시다가 동네분들한테 부탁을 드려서 돼지를 잡아서 나눔을 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께서 힘드셔서 돼지도 키우시지 않게 되면서 돼지 마굿간과 위에 2층을 만드셔서 그 곳도 창고로 사용하시면서 온갖 물건을 쌓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평생을 쓰시던 창고라 엄청나게 물건들이 있더군요.
창고를 뜯어내면 정남향이고 돌로 담을 쌓아놓아서 돌담 넘어로 가린 것이 없어 먼산이 보이고 집이 환합니다.
큰애네가 방학 때마다 놀러와서 창고만 없애면 집이 더 좋겠다!라고 했거든요.
지난 토요일에 제 형제들과 두 아이 그리고 사촌과 같이 창고속에 있는 물건을 들어내는데도 한나절이 훨씬 더 걸렸습니다.
그 동안 쌓였던 먼지가 2층에서 물건을 들어낼 때마다 연막소독에서 내뿜는 것 같았습니다.
제 막내동생 친구가 공직을 퇴직하고 평생교육원에서 서각(書刻)을 공부하고 있는데 오래된 송판을 구한다고 하면서 같이 창고를 치웠습니다.
참 좋은 꿈을 갖고 있구나!
반가웠습니다.
워낙 꼼꼼하셨던 아버지께서 반듯한 판자는 아까우셔서 못질 한번도 못하시고 새끼로 묶어 놓으셔서 틀어지지도 않는 송판이 제법 많았습니다.
서각하기에는 옛날 송판이어야 한다는데 좋은 송판을 많이 실고 갔습니다.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집에서 관을 만들었습니다.
산에 아름드리 큰 소나무가 있으면 관솔나무라 했습니다.
관을 짤만큼 큰 소나무라 움직이기가 힘드니까 목수가 산에가서 로꼬라는 볼록한 톱으로 양쪽에서 잡아 당기면서 두꺼운 송판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관목이 3벌이나 있었습니다.
벽에 멍석이 10개가 넘게 매달려있고,
멱다리도 10개가 넘더군요.
쥐가 물어 뜯고 상해서 제대로 남은 것은 몇개가 안 되더군요.
어머니께서 겨우내 밤새시고 새벽에 일어나셔서 찰칵찰칵 삼베를 짜셨던 베틀,
한해 겨울이면 삼베를 몇필을 짜서 시장에 가지고 나가서 팔기도 했습니다.
실을 뽑는 물레,
나락을 훑어내는 홀때,
지푸라기로 가마니를 짜는 가마니틀,
논을 갈고 논바닥을 고르는 쟁기와 써래,
김매는기계,
나무로 만든 지게,
등잔대,
소 코뚜레 등 옛날 물건도 많이 있더군요.
흔히 말하면 골동품인 셈이죠.
옛날 오줌을 받았던 커다란 항아리도 있고요.
오줌장군도 뜯어졌지만 조각을 묶어서 있었습니다.
아까워서 애껴 놓으셨는데 이제는 다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서 가마니틀, 쟁기와 써래, 물레, 베틀, 안반, 항아리, 옛날 창살문 등은 마굿간 한켠에 빼놓긴 했습니다.
어제는 스레트를 철거했고,
오늘은 함석으로 지붕을 이양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창고를 헐어야합니다.
동네 포크레인을 갖고 있는 젊은이한테 부탁을 했습니다.
기둥과 중방, 써가래는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사람들한테 실어가라고했고,
퇴비창고라 삥둘러서 높이50cm정도는 돌멩이로 담을 쌓았거든요.
돌멩이는 냇가 빈곳에 실어다 버리면 될 것같고 멍석과 멱다리 잔나뭇가지 등은 창고를 뜯어낸 자리에다 태울려고 합니다.
창고를 다 뜯어내고 흙을 받아서 고구마라도 옆집 아저씨한테 심으시라고 할려고 합니다.
이번 가을에는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이번 주말과 다음 주말에는 벌초를 하기로형제들한테 공지를 했습니다.
어제 예초기날도 다 갈아놓고,
기름도 넣고 시동을 걸어서 확인을 했습니다.
벌초를 하기 위해서 예초기를 3대를 준비했거든요.
기계는 자주 사용해야 하는데 1년에 딱 이맘때 한번만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때는 시동을 거느라 애를 먹기도 합니다.
작년에 벌초를 마치고 기름도 다 빼고 연료통에 남은 기름을 다 태워서 보관을 해도 해묵은 기계라 가끔씩 시동을 거느라 무척 힘들 때가 있기도 합니다.
요즘 늦 더위가 대단합니다.
어떻게 가을인데 여름보다 더 더운 것 같습니다.
올 가을에 많은 태풍이 있었는데 아직까지는 우리나라를 비껴가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풍요로운 가을을 기다려봅니다.
23년 9월 7일
9
10
농사를 업으로 하시는분들과
도시에 살며 주말농장 형태로
농사짓는 분은 분명 차이가
있을겁니다.
업으로 허시는분은 각종 약제.농자재.농기계 하나까지 얼마에사서 얼마의 수익이 나냐를
따지며 계산 해 보시던데
저는 주말농장 형태라 판매보단 건강하고 유기농 식자재를 키워서 마트에서 사먹느니
직접 해보자는 마음으로
농사를 시작했어요.
좀 많다 싶으면 주변 지인이나
이웃에게 조금씩 판매도 하고
나눠도 주고
소비도하고 작물들 처음 새싹 올라올때 어느게 잡초인지 내가 키울 새싹인지 구분도 못해
어리버리한 초짜였는데
주변밭이나 운전 해가며 산책중 하나하나
공부해가며 배우는중입니다.
(주말농장 하시는 도시 농부님들 공짜로 줄때는 좋아라 하시는데 얼마나 힘들게 키우고 정성이 들어가는지 나눔 받는 지인들이나 이웃들 그런거 모릅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당연한 권리인줄 압니다.)
옥수수도 거의 다 수확해가고
이제 남은거라곤 청상추(선그린인가 치마상추)와
잎들깨 끝물인 방울토마토.
한참 잘 자라 열매 맺어주는
조선호박과 맷돌호박.
그리고 토양개량용 수단그라스
갈수록 무더위에 밭에 가기가
싫어지는데
이젠 뭐 아예 쉬는날도 몸이
기억합니다.
늦게자도 새벽 4~5시면 어김없이 기상 해 09시 직전까지 밭일하고
그늘에서 좀 쉬었다가 점심 먹으면 식곤증에 눈이 천근만근이고
운전중에라도 졸음땜에 미쳐버리겠는게 습관이 이리 무섭습니다.
낮잠을 안자고 해지기전 밭일을 마무리하고 저녁먹고 자는
습관으로 바꿔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네요.
낮잠 잠깐 잔다는게 눈 떠보면
이른 새벽이고
잠 설치다 겨우 다시 잠들어
눈 뜨면 일 하고 반복입니다.
아직 시골밭에서 자면 선풍기조차 필요 없는데
부산 집에만 오면 빼곡한 건물들과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때문인지
에어컨과 선풍기를 켜야지만
겨우 잠들정도로 많이 덥네요.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우연히 지역🥕에서 고추따기
알바 구인글을 보고 지원했더니 다음날 오후쯤 연락이 왔네요.
그 다음날부터 일하기로 약속잡고 첫날 새벽 4시에 기상해
후레쉬 불 비춰가며 밭에 깻잎이며 가시오이 등 해야할것들 좀 해놓고
차에 싣고 룰루랄라~~
도착하고 얼마 안 지나니 승용차들이 줄줄이 도착하는데
복장들을 보니 영락없는 도시
사람티가 팍팍 나더라구요 ㅋ
간단한 일 설명을 듣고 바로 작업 시작
두물째 수확이시라는데
방아다리 밑에 순 나온것까지
다 살려나서 얼마나 튼실하게
잘 키워났는지 홍고추를 따는데 손이 안 들어갈 정도라
한손으론 가지를 제껴가며
고추를 하나하나 양손잡이라
하나 따면서 다음 딸것을 쳐다보며하니 두둑 양쪽에 한명씩
붙어 일하는데 동선이 겹쳐
사장님께 말씀 드리고
다음 골로 넘어가 혼자 작업 시작~~
발통 달린 의자와 가위까지 주머니에 넣고서 작업하자니
어떤 고추는 키가 크면서 홍고추가 많고
어떤놈은 키가 작으면서 홍고추도 몇개 없고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하다가
의자 치워버리고 서서 쭉 보니
대부분이 키가 좀 크고 홍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린 두둑이라
비료포대를 중간중간 고추말뚝 위에 걸어두셨던데
비료포대에 담는게 손에 안 익기도하고 불편해 노란바구니
발로 밀어가며 고추가 안 달린
가지는 정리하고 매달린 가지는 살려두고
땅이 메말라 잡초까지 뽑아가며 작업하는데도 다른 알바
오신분들 보단 제가 쬐금 속도가 빠르더라구요.
다른 한분은 시골에서 자라서
인지 손이 상당히 빠르시던데
그분도 혼자 한 골을 다하시는터라 은근히 경쟁심 생겨
더 열심히 고추를 딴거 같네요.
아~손 빠른 그 분 진짜 고추만
따시더군요 .
예정대로라면 06시부터 09시까지 하기로 했는데
쉬는 타임에 사장님이 1시간만 연장해서 일 해달라는 부탁에
가져다놓은 음료며 캔커피에 시원한 생수까지 마시며
뒷주머니에 생수 한병 찔러놓고 내가 맡은 한골은 다 끝내자
마음먹고
10시전에 겨우 한골 전체 다 고추를 따니
역시 사장님은 농사 지으시는 분이라 그런지 안 시킨것까지
다 해줘서 고맙다며 내일도
바쁜일 없다면 꼭 와달라며
식사하고 가시라며 붙잡으시네요.
다른분들은 더위에 지치셨는지
정산하기 바쁘게 시동걸고 에어컨 키며 집에 가기 바쁘시던데
그제서야 배가 고파 사장님 내외분들 차 뒤에 따라가니
중국집이 있던데,
형님이란 분은
아예 포터에 약통이랑 그 밑에
다이짜서 발전기에 드론까지
다 세팅해놓은 차량으로 방제를 마치고 식당앞에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안 보는거 같아도 젊은 사장님
내외분들 같이 고추 따면서도
보고 있었나봅니다.
식사를 하며 어떤 작물들을 키우냐고 묻기에 이것저것 땅 안 놀리려고 많이 심어뒀고
땡초도 50주 심어서 유기농 약재를 직접 만들어 키우는 모든 작물에 농약을 안 쓰고 키운다니 쬐그만한 텃밭인줄 알았나
봅니다 ㅎㅎㅎ
대략 200여평 혼자 농사 짓는다니 혼자 200평 쉽지 않은데
하시며
식당에서 나와 근처에 집이 있으니 따라오라네요.
일한 돈 주시려나 싶어 따라가니
웬 유기농 약재통 3개를 그것도
개봉도 안 한 새제품으로
주시네요.
사용법이랑 이것저것 설명 해주시던데 직접 유기농 균제며
살충제 만들어 쓰는거보단
좋을거라며 칼슘제까지
받아들고
밭 근처 나무그늘에 산 밑이라
바람이 솔솔 부는곳에 주차를
하고 한숨 푹 자고서
밭일까지 마무리하고
이틀째 고추따기 알바를 가니
이젠 아예 저 혼자 한골 다 작업하라고 사장님은 여기요 하시네요 ㅋㅋㅋ
손 빠르던 그분 지치셨는지
고추 한줄로 쭉 심어진곳에
잽싸게 자리 잡고 일하시네요.
예정대로라면 일요일까지 일해야하는데
저랑 시골출신 사장님 2명
덕인지 아니면 이틀째라 다른 알바오신분들 손이 빨라지신건지 생각보다 빨리
저는 09시에 한골 전체 양쪽으로 고추 다 따고 정리를 하고
쉬고 있자니
사장님이 오셔서 사장님~~~
다른분들 작업하는데 가셔서
빼먹고 지나간곳이 있는지 보면서 마무리하고 마치자시네요.
이상 이틀간 고추따기 알바 후기 및 일상 이였습니다.
무더위에 땡볕 아래 일하시는
농부님들 더위 안 먹게 조심하시고
아마도 금요일 첫날 너무 무리한건지 아니면 일 마치고오후에 밭일을 더 해서 그런지
일 마치고 기억이 부분 부분 지워졌어요 ㅠ.ㅠ
아마도 제가 더위를 먹었나봅니다.
오늘은 집에서 에어컨 키고 짰더니 괜찮긴한데
진짜진짜 햇볕 뜨거울땐 조심들 하시기 바라며
긴 글 마무리 할께요.
천여평 고추 농사에 드론방제
에 논 농사도 엄청 크게 지으시던데 그분들께 이것저것 많이
배우고 힘들고 땀도 많이 흘렸지만 보람찬 이틀이였어요.
외딴곳이라 품앗이도 없고
형제랑 부모님과 농사 지으신다는데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구요.
어떨땐 혼자 외롭게 이게 뭔
청승인가 싶기도 했는데
사장님 내외덕에 힘내고
더 열심히 분발하려구요.
23년 8월 5일
13
14
Farmmorning
가을걷이를 할 때입니다.
저한테도 가을걷이는 참 바쁘고,
힘들기도 했습니다.
저희집에는 76년까지 일하시는 분들이 두분 있었습니다.
그땐 시골에 농사좀 지으신 가정에서는 머슴이라고 하죠.
그분들을 한명을 두시고 농사를 하시는 농가도 있고요.
조금 많은 농사를 지으신 가정에서는 두명을 두시고 농사를 지으셨거든요.
저희집 사랑방에 한겨울이면 동네 머슴살이 하시는 아저씨들이 12명정도 와서 매일 같이 보내곤 했습니다.
겨울철이면 기나긴밤을 지내면서 새끼도 꼬고,
가마니도 짜고,
멍석도 만들곤 했습니다.
가끔씩 나이롱뽕이나 민화투를 치시기도 했습니다.
두부내기 화투죠.
조금 얻어먹는 재미로 졸린눈을 참으면서 시원한 두부한쪽에 김치걸쳐서 먹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가끔씩은 지붕에 닭가리에 감을 담아서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익은 감홍시만 골라서 꺼내 먹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에 상머슴은 백미 90k15가마니를 작은 머슴은 10가마니를 새경으로 받았습니다.
담배는 매일 1갑씩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동네 담배를 갔다가 파시는 댁에 담배 나오는 날이면 매번가서 담배를 미리 사오기도 했습니다.
새경이란 1년동안 머슴살이 한댓가로 받은 임금이죠.
설과 추석에는 옷부터 신발까지 쪽 빼입혔고요.
어머니께서 광목으로 손수 한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동네 미싱이 없어서 바느질을 해주시면 품앗시로 저희집 일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1년 내내 머슴들 식사 준비하고,
새참 준비하고,
남의 식구 끼니 챙기는 것이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제가 군에서 76년에 전역을 했습니다.
그 다음해부터 머슴들이 없어졌는데 어머니께서 그 많은 일을 도맡아서 하셨습니다.
몸은 피곤해도 마음이 편하다 하시네요.
남의 식구 삼시세끼  따뜻한 국물에 끼니 챙기시기가 많이 힘드셨나봐요.
머슴들 있을 때도 들일이며,
밭일을 많이 하셨는데,
끼니때 식구들만 있으니까 마음이 편하셨나 봅니다.
아버지께서는 교직에 계셔서 식사하시고 출근하시면 그만이시죠.
물론 근무 마치시고 일손을 돕기는 하셨죠.
그렇다고 저희집 논이 그리 많은것도 아니었습니다.
저희마을은 논1마지가 150평입니다.
그때는 경지정리도 안되었죠.
산밑에 다랑다랑 논도 있고요.
장구뱀이라는 장구를 닮았다해서 붙여진 논빼미 이름이죠.
천수답이 있어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모를 심지 못한 논도 있었습니다.
수렁논도 있어서 소로 쟁기질할 때 수렁을 돌아서 다니는것을 보았답니다.
수렁논에는 정강이까지 빠져서 모를 심지 못했습니다.
그 수렁논에서는 가을 추수가 끝나면 배가 누런 미꾸라지를 얻을수 있었습니다.
제일 큰 논이 두마지기 크기였으니까  300평쯤 되는 큰논이었죠.
모두 28마지기 정도로 기억됩니다.
작은 논빼미가 띄엄띄엄 논이 있었습니다.
논 갯수로는 20개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저한테는 할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제가 대전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습니다.
79년 2학기때 전주로 옮겼습니다.
그때부터 주말마다 남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군생활 할 때도 휴가를 농번기에 얻어서 모내기랑 가을걷이를 해드렸습니다.
좀 특수한 보직을 맡아서 모내기 할때랑 가을걷이 할때랑 1년에 두차례  20일씩 휴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2모작을 할때입니다.
보리 베내고,
논 갈아서 벼를 심었죠.
그 얼마나 된다고 보리 이삭을 주었는지요?
가을에 벼가 누렇게 익으면 낫으로 베서 8주먹씩 묶어 가래로 논에 세워서 1주일정도 말리면 지게나 리어카로 집으로 실어 날라서 공상으로 벼타작을 했습니다.
금주말에 벼를 베어서 세우고,
다음주에 벼타작을 했답니다.
발로 밟아서 공상을 돌리다가 모터를 달아서 나락타작을 했습니다.
종일 사람손으로 타작을해서 밤에 풍구로 돌려서 지푸라기를 없애고,
깨끗한 벼를 광에 가득 쌓고,
밖에 종일 훌터낸 짚을 쌓아놓았습니다.
농사일 할 때 가장 소중한 소먹이와
마굿간에 넣어서 소똥과 오줌으로 범벅이되고 소가 밟으면 아주 좋은 퇴비가 되죠.
80년대 이전까지는 10월에 쉬는날이 많았었습니다.
1일 국군의 날.
3일 개천절.
9일 한글날.
24일 UN데이.
농번기 방학.
그때는 모내기 할때랑 가을추수할때 농번기방학을 실시했습니다.
또 제가 근무했던 곳이 여학교라서 김장방학 이렇게 쉬는날이 많았죠.
벼베고,
논에서 말린 벼를 비포장도로인데 리어카로 가득실고 집으로 실어 날라서 타작을 했습니다.
논두렁에 심은 메주콩을 걷어드리고,
산에 밤도 털어야 했고,
밭에 들깨도 베고,
고구마도 캐야 했습니다.
어느땐가는 13번을 남원을 다녀왔더니 가을걷이가 마치더군요.
10월부터 11월까지는 쉬는날이면 다녀왔습니다.
그때는 남원가는 직행 첮차가 6시15분차였습니다.
남원에서 내려서 고향 마을가는 버스가 7시반차가 있었습니다.
그차를 놓치면 1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종일 일하다가 고향에서 남원나가는 7시15분차가 막차였습니다.
남원에서 전주가는 차는 저녁9시 직행이 막차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싸주신 보따리와 두자식들 데리고 전주에 도착하면 거의9시쯤 됩니다.
이렇게 열차례 이상을 다녀야 가을걷이가 끝났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께서 참기름을 한병 주셨는데,
시내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짐보따리가 떼굴떼굴 굴렀답니다.
어머니께서 쪽파사이에 넣어서 주셨는데도,
워낙 세게 부딪쳐서 참기름병이 깨져서 버스안에 고소한 냄새로 진동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가고싶을 때 아무때나 나서면 다녀올수 있지만,
예전에는 참 복잡했습니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했기 때문에 챙길것이 많았죠.
차시간을 맞추는것이 제일 복잡했던것 같습니다.
아이들 어릴때는 더욱더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이맘때면 마음이 바쁩니다.
아까워서 산에 알밤도 주어서 나누어야 하고요.
좋지 않는 대추지만 털어서 말려드려야 하고요.
하시지 마시라고 했는데도 들깨를 이곳저곳에 심으셔서 베서 널어 드려야 합니다.
또 겨우내 주무시는 방에 군불때시라고,
간간이 패놓은 장작과 쏘시개 나무도 가까이 옮겨드려야 합니다.
이래저래 가을 한철이 바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산에 떨어진 알밤을 주워왔습니다.
벌레가 많이 먹었지만,
작은집, 외가댁, 이모님네 나눔을 했습니다.
옛날 가을걷이가 불현듯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다 아련한 추억거리인 것 같습니다.
모든것이 수작업으로 할 때라 힘들었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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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이웃나라일을그냥지나처서는안됨니다 추위에굶지림에떠는튀르키에의아픔에동참합시다 종교를떠나서도움을줄수있는분들께한번돌려주셔요 하나은행12191001833104 한국불교협회
규네르의 호소가 올라온 직후 이 트윗은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한국 네티즌들은 발 빠르게 기부금과 구호물품을 보냈고 순식간에 서로를 독려하며 기부 인증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네티즌들은 “소액이지만 작은 희망과 회복의 씨앗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빨리빨리 알지? 얘들아 빨리빨리 지갑 열자” “형제의 나라를 구하자 힘을 모아보자”라며 기부 인증샷과 함께 위로와 응원의 글을 남겼습니다. 
약 5시간 후 규네르는 “역시 한국 사람들 대단합니다. 리트윗하고 기부해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제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셔서 눈물이 납니다. 제가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를 다시 알게 됐습니다”라며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이어 그녀는 “처음에는 감사의 댓글을 다 달았는데 한 시간도 안되어 기부가 너무 많아져서 일일이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게 어려워져서 이 글을 대신해 알리고 싶어요.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형제의 나라 도움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해 감동을 주었습니다.
규네르는 튀르키예의 한 방송국에서 디지털 프로듀서로 일하며 출장과 관광을 위해 한국을 자주 찾았다고 합니다.
한국과 한국 문화를 사랑하게 되면서 당연히 한국어 공부를 하게 됐는데, 지난 2018년부터는 아예 트위터에 한국어로 글을 올리며 소통해 왔습니다. 
한국에 올 때마다 한국의 정을 자주 느꼈고, 고국에 이러한 비상사태가 발생하자 가장 먼저 한국이 떠올라서 도움을 요청해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이 정도는 기대하지 못했다. 한국어로 그저 몇 줄 도움 요청 글을 올렸을 뿐인데, 자신의 일인 것처럼 힘을 합쳐 도움을 주는 한국인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고 말하며 끝내 감동의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국불교관음협회에서는의류담요텐트커피한두잔안마시고정성으로성금까지너무감동을받아대한민국에감사의눈물을보내왔다
사상 최악의 강진 피해를 본 튀르키예에 세계 각국 구호물자가 쇄도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네티즌들은 물론 국내 기업, 연예인들까지 한 마음으로 튀르키예의 구호에 힘을 쏟고 있는데요.
첫 번째 규모 7.8 지진 이후 지금까지 9천여 차례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세계 각국의 도움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즉시 튀르키예에 1차적으로 500만 달러, 우리 돈 63억 원 가량의 인도적 지원과 외교부, 소방청, KOICA, 육군 특수전사령부 소속 군인 인원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긴급 구호대를 파견했습니다.
우리가하루커피2잔만안마셔도그들의이틀식사가제공됨니다 그들의추위에떨고있맘에따뜻한한끼를부탁드림니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해외 재난 지역에 보낸 긴급 구호대 중 단일 파견으로는 최대 규모입니다. 대한민국 구호대는 지난 8일 새벽 의약품과 긴급 구호물품을 싣고 현지로 출발했습니다. 현지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 구호대가 속속 입국하고 있지만 현지 상황은 쉽지 않습니다. 월스트릿저널, BBC 방송 등에 따르면 현재 튀르키예 상황은 땅길, 바닷길, 모두 바닷길을이용해식수음식이배달 진입 자체가 쉽지 않다고 보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께감사의말씀을전하는투르키예여성분이전세계로코리안에고마움을알리고있습니다
지진 피해가 넓은 지역에 걸쳐 발생한 데다 추가로 여진이 발생해 튀르키예 주요 도로와 교량이 무너졌고 날씨가 추워지고 눈까지 내려 주요 도로가 폐쇄되거나 전기가 끊긴 지역이 많아 구조 작업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피해지로 통하는 튀르키예 남부 이스켄데룬 항구는 지진 때 주변 도로가 파괴되고 컨테이너가 넘어져 폭발까지 발생하면서 운영이 중단됐습니다. 
날씨가 계속 영하권으로 추운 데다가 구조가 가능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안타까운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건물 잔해 속에서 생존한 사람들 목소리가 들린다 하더라도 장비와 전문 인력이 부족해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한국불교관음협회는 종교를초월해어럽고힘든분들을구제해돕고나눔을실천하는종무법인입니다 우린대한민국 국가가못한일들을위해자비로활동을하며여러분이보내준후원은 백프로그대로그분들을위해쓰여지고전달됨니다 다른기부단체는기부금을가지고자기들활동비까지쓴다고알고있다그래서우린심부름꾼으로자비부담을윈칙으로운영하고있다
현지에는 발전기나 드릴은 커녕 군인들은 장갑과 헬멧 같은 기본 장비도 없이 구조를 위해 무너진 건물에 들어가는 상황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 긴급구호대는 이번 구호 작업 역시 전문성을 갖춘 대규모 구조 활동으로 또 한 번의 미라클 작전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는데요.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도착 즉시 강진이 덮친 남부 하타이 지역을 시작으로 수색과 구조 활동에 착수했는데, 투입 후 바로 생존자 구조에 성공했습니다. 한국 긴급 구조대는 이날 안타키아의 셀림 아나돌루 고등학교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고, 오전 5시부터 구조 대상지인 안타키아 고등학교 등지에서 구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국불교관음협회에서직접현장에가서도움의손길을드리기위해따뜻한음식과도움주신의류이불텐트를현장에서도움을주고계시고후원금은 식수음식등을나누어주고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따뜻한온정에그곳에살아남으신분들은감사합니다코리안을외치며뜨거운눈물을흘리십니다
그리고 구호 시작 1 시간 반 만에 70대 중반의 남성 한 명을 구조했는데요, 주변을 수색중이던 우리 구호대원이 생존자의 소리를 들었고, 구호대는 바로 구출 통로를 만들어 구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생존자는 구조 당시 의식이 있었던 상태로 건강에도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생존자를 구출한 곳에서는 이미 사망자 4명이 발견됐기 때문에 한국 구조대의 발빠른 구조 덕택에 한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그곳은엄청후운데지진으로다무너져길거리턴트에서추위와사투을하고있답니다
영하의 추운 날씨와 긴 비행에도 긴급구호대는 멈추지 않았고, 2세 여아와 부모 등 3명을 추가로 구조했습니다.
구조된 가족은 탈수 증세는 있지만 의식은 뚜렷한 상태였습니다. 튀르키예는우리가도와주어야하는이웃 입니다 더관심을가져주십시요
안타키아 지방정부 관계자는 “한국의 긴급구호대가 오자마자 성과를 거둬 아주 기쁘고 감사하다”며 “구호활동을 통해 생존자가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구조 여력이 피해 상황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희생자 수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사회가 한 마음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도로가 끊기고 폭설까지 내려 인력과 장비 도착이 지연되는 바람에 골든타임만 속절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한국은 현지 상황이 매우 참혹하고 어렵지만 최선을 다해 구조 활동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튀르키예 언론은 “튀르키예가 꼭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형제애를 느낀다. 절대 잊지 않겠다”고 보도했습니다. 인터넷매처어서감사의물결이넘처나고있는실정 입니다
형제의 나라인 튀르키예 국민들이 슬픔과 좌절에서 용기와 희망으로 하루 빨리 다시 꿋꿋하게 일어나도록 기도드리겠
23년 3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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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규산 비료에 관한 정보 나눔 ]
토양 속에 뿌리를 내리고 생장을 하는 식물은 토양에 가장 많은 성분을 좋아합니다.
식물(작물)은 기후, 토양, 인간의 노력 등 모든 삼라만상의 조화속에 균형을 이루면서 성장하고 결실을 맺게 됩니다.
식물의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넘치는 영양분이 아니라, 가장 부족한 영양분에 의해 결정된다는 리비히 법칙이 있지요
우리 토양에는 규소와 산소는 합쳐서 약70%이상이 토양에 공유결합 원소로서 존재합니다.
사실 규소는 그 자체로 식물이 흡수하지 못합니다.
규소는 산소와 이온 결합하여 이산화규소가 되었을 때 식물의 영양분이
되어 뿌리의 반투막을 통해 흡수가 됩니다.
동양철학에서는 모든 사물을 양(+)과 음(-)으로 구분 짓습니다.
해는 양이고 달은 음이라고 합니다. 즉,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라고 합니다.
그럼 땅이 음이니 토양도 음일까요?
맞습니다. 토양은 여성이고 음의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토양은 부드러울수록 좋고 뼈다귀 같이 딱딱하고 거친 토양은 식물이 싫어합니다.
토양의 성분을 분석해 보면 산소가 약46%, 규소가 약28%이며 그 외 알루미늄과 철의 순으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규소와 산소의 비중은 약70%이상을 차지합니다.
규소는 음전하(마이너스)를 띠고 있으며 산소와 공유 결합하는 손이 4개 있습니다.
일명 염류라고 하는 양(+)의 비료와 쉽게 결합하지요
음의 규소가 양의 산소와 결합하여 규산으로 식물에 흡수될 수 있는 확률은 1/4정도입니다.
나머지 3개의 손은 질소와 칼륨, 마그네슘 등과 같은 양의 비료와 결합하여 토양의 염류를 발생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농부님은 땅속에는 규산이 너무 많이(약70%) 존재하기에 별도로 규산을 시비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이는 너무 쉽게 토양을 이해하는 것 같은 판단도 듭니다.
논 토양의 규산질 함량은 대체적으로 130~180ppm이 적당한데. 우리나라 논의 유효규산 함량은 평균 75ppm정도로 절대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는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도 마찬가지인데 1936년 미국 의회 작성 상원문서 264호 발표에 의하면 미국의 농토와 토양에는 이미 미네랄이 고갈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 농토와 토양에서 나오는 곡식이나, 과일, 채소 나무열매 등에는 미네랄이 부족하고 이것만을 주식으로 먹는 사람들은 미네랄 결핍증에 걸린다는 사실을 보고한바 있습니다.
미네랄이란 주로 광석(특히 규산함량이 약50%정도인 흑운모)에 포함된 무기질 즉, 광물질들입니다.
미네랄(규산)들은 지하수가 땅 속에 흐르면서 돌이나 암반에서 조금씩 녹아 물에 포함되고 이것이 땅에 흡수가 됩니다.
하지만 조금씩 땅에 스며드는 양보다, 대단위 농업 등에 의해서 식물에 흡수되어 없어지는 양이 더 많기에 지금 지구상의 농토와 토양에는 규산을 포함한 미네랄 성분이 거의 고갈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토양에 들어있는 규산은 매년 식물이 자라면서 먹고 나머지 규소는 양이온인 화학비료(화성비료)와 결합하여 염류성으로 고정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식물에 흡수가 빠른 제품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으나 이것도 역시 음이온의 규소성분이기에 식물에 쉽게 흡수되는 장점도 있으나 양이온인 화학비료 성분들과 결합할 확률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비료기술의 발달로 단지 음의 성질의 규소이온 상태가 아닌 음이온의 규소과 양이온의 산소가 처음부터 결합된 입자 상태의 규산으로 만들어 공급되어지기에 기존의 토양 염류성화를 예방하고 규산의 흡수율을 높혀 보다 효과적으로 대체한 제품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식물 생장에 있어 꼭 필요한 원소는 약 16~17종인데 규산은 이 중에 포함되지 않으나 작물에는 없어서는 안되는 매우 필요한 성분으로 최근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있습니다.
특히 규산은 벼뿐만 아니고 모든 작물에 매우 중요한 성분입니다.
흙에 많은 양이 들어있다고 해도 매년 작물이 생장하면서 규산을 흡수하기 때문에 매년 규산성분은 공급을 해주어야 합니다.
규소는 석회, 고토, 망간, 알루미늄 및 산화철 등과 결합한 규소복합화합물로서 이를 비료화하면 규산질 비료(Silicate fertilizr)라고 합니다.
토양 중에는 규산 또는 규산염 등의 형태로 체내 흡수는 이온상 또는 분자상으로 전이됩니다.
피자식물에서 규산 또는 규산염 성분의 평균함량은 100ppm으로 함령이 높은 식물에서는 지상부에 약3배정도 많으며 엽신, 엽초의 유관조직, 표피조직의 세포벽 외측에 분포하여 줄기와 잎을 튼튼하게 해주며 병해 예방적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특히 엽신의 표피조직세포에서는 세포벽과 각피층 사이에 Si가 분비되어 각피, 규산 2중층을 형성하게 되는데 규소는 당, 셀루로스, 단백질 등 여러 유기화합물과 결합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규산의 생성은 토양 생성 과정에서 암석을 구성하는 1차광물이 풍화작용이나 변성작용으로 계속 쪼개져서 미세한 2차 광물로 진행되는데 이중에는 규산염 광물이 대부분입니다.
규산염광물은 규소와 산소가 결합되어 있고 각종 금속 양이온과도 결합되어 색깔을 달리합니다.
지구 지각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광물은 규산염광물로서 그중에서 산소 다음으로 규소가 많지만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형태의 부자상 규산의 생성과 해리는 극히 미량에 불과합니다.
규산광물의 해리적특성은 1차광물중에서 규산의 해리와 양이온이 짝을 이룬 규산의 용해 및 알루미늄의 영향에 따른 규산의 용해와의 관계로 알수 있습니다.
규산의 분자식은 산소와 원자단을 구성한 4가의 음이온으로서 해리되면 토양의 pH에 따라 음이온의 양이 달아지게 된다. 즉 규산의 음이온의 형태는 토양의 pH값에 따라서 활성도가 달아지게 됩니다.
규산은 토양개량의 활력제로 활용이 되기 시작하고 있는데 과거 45년간 4~5년간 논토양에 사용되어온 분상 규산질 비료는 무겁고 뿌리기 등의 어려움 때문에 농가로부터 외면을 당해 방치되는 사례가 많았고, 사용효과에 대한 인식도 낮아서 단순한 토양개량제만으로 취급되어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이 보완되고 실제 토양에 시비한 결과 월등한 효과가 인정되기 시작하면서 정부에서는 신청자에 한해 최근 입상 규산질비료로 대체해 4년주기에 3년 주기로 사용횟수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이러한 단점 개선은 물론 강력한 이온결합으로 토양의 물리성과 화학성 개선과 아울러 식물의 뿌리가 활동하는 토양권내에서 일어나는 각종 불량환경에 대한 내성을 갖게 하고 장해요소들을 경감시킬 수 있도록 개발된 규산비료 또는 촉매제들이 개발되어 공급되어지고 있지요
특히 식물의 뿌리와 토양으로부터 자연 발생되는 병원균 등 미생물의 감염과 유기산 또는 가스 등에 의한 뿌리호흡 대사 저해 그리고 작물재배과정에서 토양에 유입되는 비료나 농약 등 화학제의 오남용에 따른 각종 장해에 때한 탁월한 경감효과를 갖고 있어
토양에서 모자라거나 과잉성분을 적절하게 알맞게 조절하는 완충재의 역할로서 소위 종합적인 복합토양개량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하튼 규산의 역할은 토양개량의 활성제, 식물의 생리활성 증진, 불량환경에 대한 내성 증진 기능, 광합성 증대, 잎의 수광 상태 향상, 잎과 줄기 강화, 농약 사용절감, 뿌리섞음 병 예방, 작물의 품질 향상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하네요
최근에는 주식회사 한자엔지니어링에서 개발·생산하고 있는 이오나이트라는 촉매물질에도 규산함량이 약70%이상 들어있는데 실제 사용농가에서는 위와 같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는 것이 유튜브나 언론기사에 노출이 되고 있습니다.
23년 6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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