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곳에 이런 질문을 하면 실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너무 답답해서 올립니다
저는 현재 직장에서 텃밭동호회 총무를 맡고 있고 추후 퇴직을 하면 귀농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질문할 내용은 사진에서 보듯이 올 봄에 플랜트를 구청에서 지원받아 상토 한포대를 넣고 싱추,방울토마토,깻잎,가지 등을 심었습니다 근데 점차 잎이 누렇게 되면서 잘 자라지 않고 말라 죽었습니다 그 후 봄에 심은 작물을 모두 제거하고 8월 말경에 황토하고 거름을 적당히 섞은 후 배추와 무 모종을 심었는데 이번에는 크지도 않으면서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누렇게 변하더니 죽어 버렸습니다 그후 얼가리 배추 씨앗을 뿌렸더니 사진과 같이 싹이 나오더니 또 더이상 자리지 않고 누렇게 변하더니 말라 죽고 있습니다 30개 정도 플랜트를 제가 관리하고 있어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또한 내년에도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안되기에 이렇게 도움을 청합니다
비료를 너무 많이 주었는지, 아니면 비료를 너무 안 줘서 그런지,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그런지, 땅속 병충해로 그런지, 흙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도무지 답을 찾지 못 하겠습니다 농사를 업으로 하시는 분들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올리니 양해 부탁드리며 많은 도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1년 11월 12일
8
Farmmorning
남원 시골집에 지난 봄에 면사무소에 스레트철거를 신청해서 사랑채와 창고 스레트를 철거했습니다.
옛날에는 스레트에 삼겹살과 돼지고기 주물럭을 구워 먹으면 기름이 쫙 빠져서 맛있게들 먹었는데
스레트가 발암물질이라고해서 폐기물 처리를 해야합니다.
지역 자치단체에서 예산을 세워서 신청받고 현지답사를 마친 다음 선정된 가구에는 스레트를 철거해줍니다.
저소득층이나 기초수급자가구는 지붕까지 함석으로 해줍니다.
스레트는 폐기물이라 비닐로 단단하게 묶어서 전문기관에서 처리를 합니다.
가끔씩 나들이를 하시다보면 재선충에 걸린 소나무를 잘라서 비닐로 씌워고 테이프로 묶어서 산에 보관하는 모습을 보셨죠?
그와 같이 비닐로 씌우고 테이프로 묶어 놓으면 폐기물 처리반이 와서 실고 갑니다.
스레트를 철거 할 때는 방제복을 입고 마스크도 일반 마스크가 아닌 특수한 마스크를 쓰고 작업을 해야 합니다.
주변에 스레트 분진가루가 날릴 염려가 있기 때문에 두꺼운 천으로 둘러치고 작업을 하더군요.
개인이 스레트를 철거할려면 엄청나게 경비가 지출되거든요.
사랑채는 함석으로 지붕을 다시 이양하고,
창고는 헐어서 빈공간을 주차장으로 쓸까 아님 흙을 받아서 텃밭으로 사용할까?생각중입니다.
원래는 보릿대를 쌓고 산에서 생풀을 베다가 보릿대와 생풀을 섞어서 발효시키는 퇴비장으로 사용했던 창고입니다.
옛날에는 여름 내 퇴비를 만들어서 가을에 나락을 베내고 보리를 심을 때 하얀 곰팡이가 핀 퇴비를 보릿골마다 뿌리고 보리씨앗을 뿌렸습니다.
지금 같이 화학비료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퇴비로만 벼농사와 보리농사 이렇게 이모작을 했었습니다.
갑자기 시골에 일손이 부족하고 농사를 편학하게 짓게 되면서 퇴비를 만들지 못하게 되었고 생산성이 부족한 보리농사를 포기하게 되면서 비료로만 벼농사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볏짚도 걷어버리고 보릿대도 없이 오직 비료로만 벼농사를 짓는데 땅이 제대로 역할을 할까?싶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퇴비를 발효시켰던 퇴비장이 필요없게되었고 리어카나 들여 놓고 온갖 잡동사니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게 되었습니다.
한쪽에는 돼지우리를 만들어서 어머니께서 음식물 찌꺼기가 아깝다고 돼지를 키우셨습니다.
그 때는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기 때문에 죽저가 나왔습니다.
죽저와 구정물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로 돼지를 키우셨습니다.
이렇게 키운 돼지고기 맛은 돼지사육장에서기른 돼지고기와는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맛이 고소하고 단백하였습니다.
제가 삼례장에서 제차에 커다란 고무통에 흙돼지 새끼를 몇차례나 실어다 드렸습니다.
1년 남짓 키우시다가 동네분들한테 부탁을 드려서 돼지를 잡아서 나눔을 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께서 힘드셔서 돼지도 키우시지 않게 되면서 돼지 마굿간과 위에 2층을 만드셔서 그 곳도 창고로 사용하시면서 온갖 물건을 쌓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평생을 쓰시던 창고라 엄청나게 물건들이 있더군요.
창고를 뜯어내면 정남향이고 돌로 담을 쌓아놓아서 돌담 넘어로 가린 것이 없어 먼산이 보이고 집이 환합니다.
큰애네가 방학 때마다 놀러와서 창고만 없애면 집이 더 좋겠다!라고 했거든요.
지난 토요일에 제 형제들과 두 아이 그리고 사촌과 같이 창고속에 있는 물건을 들어내는데도 한나절이 훨씬 더 걸렸습니다.
그 동안 쌓였던 먼지가 2층에서 물건을 들어낼 때마다 연막소독에서 내뿜는 것 같았습니다.
제 막내동생 친구가 공직을 퇴직하고 평생교육원에서 서각(書刻)을 공부하고 있는데 오래된 송판을 구한다고 하면서 같이 창고를 치웠습니다.
참 좋은 꿈을 갖고 있구나!
반가웠습니다.
워낙 꼼꼼하셨던 아버지께서 반듯한 판자는 아까우셔서 못질 한번도 못하시고 새끼로 묶어 놓으셔서 틀어지지도 않는 송판이 제법 많았습니다.
서각하기에는 옛날 송판이어야 한다는데 좋은 송판을 많이 실고 갔습니다.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집에서 관을 만들었습니다.
산에 아름드리 큰 소나무가 있으면 관솔나무라 했습니다.
관을 짤만큼 큰 소나무라 움직이기가 힘드니까 목수가 산에가서 로꼬라는 볼록한 톱으로 양쪽에서 잡아 당기면서 두꺼운 송판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관목이 3벌이나 있었습니다.
벽에 멍석이 10개가 넘게 매달려있고,
멱다리도 10개가 넘더군요.
쥐가 물어 뜯고 상해서 제대로 남은 것은 몇개가 안 되더군요.
어머니께서 겨우내 밤새시고 새벽에 일어나셔서 찰칵찰칵 삼베를 짜셨던 베틀,
한해 겨울이면 삼베를 몇필을 짜서 시장에 가지고 나가서 팔기도 했습니다.
실을 뽑는 물레,
나락을 훑어내는 홀때,
지푸라기로 가마니를 짜는 가마니틀,
논을 갈고 논바닥을 고르는 쟁기와 써래,
김매는기계,
나무로 만든 지게,
등잔대,
소 코뚜레 등 옛날 물건도 많이 있더군요.
흔히 말하면 골동품인 셈이죠.
옛날 오줌을 받았던 커다란 항아리도 있고요.
오줌장군도 뜯어졌지만 조각을 묶어서 있었습니다.
아까워서 애껴 놓으셨는데 이제는 다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서 가마니틀, 쟁기와 써래, 물레, 베틀, 안반, 항아리, 옛날 창살문 등은 마굿간 한켠에 빼놓긴 했습니다.
어제는 스레트를 철거했고,
오늘은 함석으로 지붕을 이양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창고를 헐어야합니다.
동네 포크레인을 갖고 있는 젊은이한테 부탁을 했습니다.
기둥과 중방, 써가래는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사람들한테 실어가라고했고,
퇴비창고라 삥둘러서 높이50cm정도는 돌멩이로 담을 쌓았거든요.
돌멩이는 냇가 빈곳에 실어다 버리면 될 것같고 멍석과 멱다리 잔나뭇가지 등은 창고를 뜯어낸 자리에다 태울려고 합니다.
창고를 다 뜯어내고 흙을 받아서 고구마라도 옆집 아저씨한테 심으시라고 할려고 합니다.
이번 가을에는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이번 주말과 다음 주말에는 벌초를 하기로형제들한테 공지를 했습니다.
어제 예초기날도 다 갈아놓고,
기름도 넣고 시동을 걸어서 확인을 했습니다.
벌초를 하기 위해서 예초기를 3대를 준비했거든요.
기계는 자주 사용해야 하는데 1년에 딱 이맘때 한번만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때는 시동을 거느라 애를 먹기도 합니다.
작년에 벌초를 마치고 기름도 다 빼고 연료통에 남은 기름을 다 태워서 보관을 해도 해묵은 기계라 가끔씩 시동을 거느라 무척 힘들 때가 있기도 합니다.
요즘 늦 더위가 대단합니다.
어떻게 가을인데 여름보다 더 더운 것 같습니다.
올 가을에 많은 태풍이 있었는데 아직까지는 우리나라를 비껴가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풍요로운 가을을 기다려봅니다.
23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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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매예방 들깨잎
들깻잎에 대해 올리기 전에 한 가지 먼저 짚고 넘어간다. 치매증상이 있는 분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종의 수분부족이 뇌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혹 자신이 건망증이 심하거나 기억력이 감소함을 느낀다면 수분섭취를 고민하고 되돌아보는 것도 좋을듯 하다.
자신은 충분히 마시고 있다고 생각되더라도 하루 정도 얼마나 물을 마시고 있는지 체크해볼 필요는 있다.
만약 수분부족이라 생각된다면 수시로 물을 마시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집안에 치매에 걸린 부모님이 계시면 가족 모두 힘들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누구나 치매에 걸리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치매는 누구나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스승이 말했다.
"하루에 들깻잎 10장 이상씩 먹으면 돼. 치매는 뇌로 들어가는 산소결핍에 의해 생기는 것이야. 뇌에 산소공급을 잘해주는 것이 깻잎이거든.."
들깻잎에는 비타민(A, C)과 철분의 함량이 높고 항산화, 항노화, 항암에 좋은 베타카로틴(β-Carotene)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서 치매예방이나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된다.
우리가 고기나 생선회 등을 먹을 때 상추와 더불어 쌈으로 많이 먹는 이유도 본능적인 식이요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누가 꼭 그렇게 먹으라고 가르친 것이 아닌데 일상화, 보편화가 된 것을 보면 말이다.
간혹 상추만 주는 생선회집들이 있다. 들깻잎을 함께 곁들이도록 권고해보자.
들깻잎은 생식해도 좋고 장아찌로도 좋고 양념장에 발라서 먹어도 좋다.
다만 찌거나 볶아서 먹지만 않으면 된다. 최소 하루 10장 이상씩 꾸준히 먹으면 잃었던 정신이 다시 되돌아온다.
주변에 치매에 걸리신 분이 있다면 큰 밑천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꼭 실행해보기를 바란다.
단 꾸준한 먹는 것이 조건임을 명심하자. 때로는 늘 그래서 또는 그렇게 해서 무감각적인 시각에 가려져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찮게 생각했던 행위가 어쩌면 본능적 치료인지도 모를 일이다.
치매 예방에 좋은 들깻잎은 독특한 향으로 칼슘과 철분이 풍부하다.
과일 중에서 비타민A의 대표 당근이나 비타민C로 대표되는 오렌지나 사과보다 많은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다.
그리고 들깻잎에는 허브보다 7배나 많은 치매예방 성분이 들어 있다. 뇌세포 대사기능을 촉진하는 로즈마린산과 가바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2. 피부미용
깻잎에는 비타민 A·C가 풍부해 피부주름생성 예방에 탁월하다. 또한 깻잎속에 들어있는 로즈마린산과 루테이올린 성분이 기미, 주근깨를 만드는 멜라닌 색소의 생성을 억제한다.
특히 로즈마린산 성분은 미백 화장품 원료인 알부틴 보다 멜라닌 생성 억제 효과가 2배 이상 뛰어나다고 한다.
3. 식중독 예방
깻잎의 특유한 향을 내는 정유성분(Perill keton)이 방부제 역할을 하여 생선회와 함께 먹으면 식중독을 예방할 수 있으며 고기의 누린내와 생선의 비린내를 없애준다.

4. 신경통예방
깻잎에는 비타민이 풍부하여 말초혈관을 강화시켜 신경통예방과 통증을 완화시켜준다.
5. 빈혈 예방
깻잎에 함유되어 있는 철분은 100g당 2.9mg로, 시금치 (2.6mg)보다 더 많이 함유하고 있어 깻잎 30g정도만 섭취하면 하루에 필요한 철분의 양이 공급된다.
6. 항암효과
깻잎이 위암 세포의 성장을 97%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나, 위암 예방을 위해서는 꾸준하게 깻잎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암과 각종 성인병 예방에 좋은 깻잎은 암 예방 물질인 파이톨(Phytol), ETA(eicosatrienoic acid) 및 엽록소(chlorophyll) 등이 함유되어 있다.

깻잎 안에 있는 식물화합물 파이톨이 암세포만 찾아가서 제거시키는 자연살해세포의 활성을 높이고, 대식세포 기능을 활성화시켜 병원성 대장균이나 다른 병원성 균을 제거한다.
인체의 면역기능을 강화시키므로 결국 항암·면역력 증강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피톨이라는 성분이 암세포만을 골라 제거해주는 효과가 있다.
병원성균이나 병원성 대장균 등을 제거해주기도 한다.
※ 깻잎 하루 10장.
쉬워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쌈으로 또는 장아찌로 먹는다해도 대부분 10장 이상 먹기가 쉽지만은 않다.
무심코 한두 번 또는 서너 번은 먹어도 10회는 쉽지 않다.
그리고 찌거나 볶아서 많이 먹는데 생식은 많이 먹기가 어렵다. 치료라 생각하고 꼭 10장 이상 먹어보라.
"모든 병은 음식으로 고칠수 없으면 약으로도 못 고친다.
- 히포크라테스 -
23년 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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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를 할 때입니다.
저한테도 가을걷이는 참 바쁘고,
힘들기도 했습니다.
저희집에는 76년까지 일하시는 분들이 두분 있었습니다.
그땐 시골에 농사좀 지으신 가정에서는 머슴이라고 하죠.
그분들을 한명을 두시고 농사를 하시는 농가도 있고요.
조금 많은 농사를 지으신 가정에서는 두명을 두시고 농사를 지으셨거든요.
저희집 사랑방에 한겨울이면 동네 머슴살이 하시는 아저씨들이 12명정도 와서 매일 같이 보내곤 했습니다.
겨울철이면 기나긴밤을 지내면서 새끼도 꼬고,
가마니도 짜고,
멍석도 만들곤 했습니다.
가끔씩 나이롱뽕이나 민화투를 치시기도 했습니다.
두부내기 화투죠.
조금 얻어먹는 재미로 졸린눈을 참으면서 시원한 두부한쪽에 김치걸쳐서 먹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가끔씩은 지붕에 닭가리에 감을 담아서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익은 감홍시만 골라서 꺼내 먹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에 상머슴은 백미 90k15가마니를 작은 머슴은 10가마니를 새경으로 받았습니다.
담배는 매일 1갑씩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동네 담배를 갔다가 파시는 댁에 담배 나오는 날이면 매번가서 담배를 미리 사오기도 했습니다.
새경이란 1년동안 머슴살이 한댓가로 받은 임금이죠.
설과 추석에는 옷부터 신발까지 쪽 빼입혔고요.
어머니께서 광목으로 손수 한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동네 미싱이 없어서 바느질을 해주시면 품앗시로 저희집 일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1년 내내 머슴들 식사 준비하고,
새참 준비하고,
남의 식구 끼니 챙기는 것이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제가 군에서 76년에 전역을 했습니다.
그 다음해부터 머슴들이 없어졌는데 어머니께서 그 많은 일을 도맡아서 하셨습니다.
몸은 피곤해도 마음이 편하다 하시네요.
남의 식구 삼시세끼  따뜻한 국물에 끼니 챙기시기가 많이 힘드셨나봐요.
머슴들 있을 때도 들일이며,
밭일을 많이 하셨는데,
끼니때 식구들만 있으니까 마음이 편하셨나 봅니다.
아버지께서는 교직에 계셔서 식사하시고 출근하시면 그만이시죠.
물론 근무 마치시고 일손을 돕기는 하셨죠.
그렇다고 저희집 논이 그리 많은것도 아니었습니다.
저희마을은 논1마지가 150평입니다.
그때는 경지정리도 안되었죠.
산밑에 다랑다랑 논도 있고요.
장구뱀이라는 장구를 닮았다해서 붙여진 논빼미 이름이죠.
천수답이 있어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모를 심지 못한 논도 있었습니다.
수렁논도 있어서 소로 쟁기질할 때 수렁을 돌아서 다니는것을 보았답니다.
수렁논에는 정강이까지 빠져서 모를 심지 못했습니다.
그 수렁논에서는 가을 추수가 끝나면 배가 누런 미꾸라지를 얻을수 있었습니다.
제일 큰 논이 두마지기 크기였으니까  300평쯤 되는 큰논이었죠.
모두 28마지기 정도로 기억됩니다.
작은 논빼미가 띄엄띄엄 논이 있었습니다.
논 갯수로는 20개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저한테는 할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제가 대전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습니다.
79년 2학기때 전주로 옮겼습니다.
그때부터 주말마다 남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군생활 할 때도 휴가를 농번기에 얻어서 모내기랑 가을걷이를 해드렸습니다.
좀 특수한 보직을 맡아서 모내기 할때랑 가을걷이 할때랑 1년에 두차례  20일씩 휴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2모작을 할때입니다.
보리 베내고,
논 갈아서 벼를 심었죠.
그 얼마나 된다고 보리 이삭을 주었는지요?
가을에 벼가 누렇게 익으면 낫으로 베서 8주먹씩 묶어 가래로 논에 세워서 1주일정도 말리면 지게나 리어카로 집으로 실어 날라서 공상으로 벼타작을 했습니다.
금주말에 벼를 베어서 세우고,
다음주에 벼타작을 했답니다.
발로 밟아서 공상을 돌리다가 모터를 달아서 나락타작을 했습니다.
종일 사람손으로 타작을해서 밤에 풍구로 돌려서 지푸라기를 없애고,
깨끗한 벼를 광에 가득 쌓고,
밖에 종일 훌터낸 짚을 쌓아놓았습니다.
농사일 할 때 가장 소중한 소먹이와
마굿간에 넣어서 소똥과 오줌으로 범벅이되고 소가 밟으면 아주 좋은 퇴비가 되죠.
80년대 이전까지는 10월에 쉬는날이 많았었습니다.
1일 국군의 날.
3일 개천절.
9일 한글날.
24일 UN데이.
농번기 방학.
그때는 모내기 할때랑 가을추수할때 농번기방학을 실시했습니다.
또 제가 근무했던 곳이 여학교라서 김장방학 이렇게 쉬는날이 많았죠.
벼베고,
논에서 말린 벼를 비포장도로인데 리어카로 가득실고 집으로 실어 날라서 타작을 했습니다.
논두렁에 심은 메주콩을 걷어드리고,
산에 밤도 털어야 했고,
밭에 들깨도 베고,
고구마도 캐야 했습니다.
어느땐가는 13번을 남원을 다녀왔더니 가을걷이가 마치더군요.
10월부터 11월까지는 쉬는날이면 다녀왔습니다.
그때는 남원가는 직행 첮차가 6시15분차였습니다.
남원에서 내려서 고향 마을가는 버스가 7시반차가 있었습니다.
그차를 놓치면 1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종일 일하다가 고향에서 남원나가는 7시15분차가 막차였습니다.
남원에서 전주가는 차는 저녁9시 직행이 막차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싸주신 보따리와 두자식들 데리고 전주에 도착하면 거의9시쯤 됩니다.
이렇게 열차례 이상을 다녀야 가을걷이가 끝났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께서 참기름을 한병 주셨는데,
시내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짐보따리가 떼굴떼굴 굴렀답니다.
어머니께서 쪽파사이에 넣어서 주셨는데도,
워낙 세게 부딪쳐서 참기름병이 깨져서 버스안에 고소한 냄새로 진동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가고싶을 때 아무때나 나서면 다녀올수 있지만,
예전에는 참 복잡했습니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했기 때문에 챙길것이 많았죠.
차시간을 맞추는것이 제일 복잡했던것 같습니다.
아이들 어릴때는 더욱더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이맘때면 마음이 바쁩니다.
아까워서 산에 알밤도 주어서 나누어야 하고요.
좋지 않는 대추지만 털어서 말려드려야 하고요.
하시지 마시라고 했는데도 들깨를 이곳저곳에 심으셔서 베서 널어 드려야 합니다.
또 겨우내 주무시는 방에 군불때시라고,
간간이 패놓은 장작과 쏘시개 나무도 가까이 옮겨드려야 합니다.
이래저래 가을 한철이 바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산에 떨어진 알밤을 주워왔습니다.
벌레가 많이 먹었지만,
작은집, 외가댁, 이모님네 나눔을 했습니다.
옛날 가을걷이가 불현듯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다 아련한 추억거리인 것 같습니다.
모든것이 수작업으로 할 때라 힘들었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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