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행과 함께 산에 가는 아내의 뒤를 따라나섰다가 홀로 경사가 꾸준히 5~60도 유지되는, 속칭 솔밭길을 택해 등정을 시작했다.
7부 능선쯤 다다랐을 때 딱따구리를 관찰하느라 잠시 멈췄는데 옆으로 휙 하고 지나치는 분이 계셔서 쉼터에서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여쭸더니, 한숨을 돌리시고는 "올해 딱 여든인데 몇 년 전 위암 수술을 받았고 그때부터 산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작년에는 또 전립선암 초기라고 해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제 거의 다 나았고 산이 나를 살린 것 같다"라고 하신다.
저도 한 5년 전까지는 일주일에 두 번씩 올랐었는데 오랜만에 오니 힘드네요라고 하자, 어르신은 "산은 하루만 빠져도 금세 힘들어져요. 그래서 나는 비가 와도 옵니다. 꾸준하게 다녀보세요"라고 하신다.
두 번의 암 투병을 겪으시고 여든이라는 연세에도 나를 앞지를 수 있는 체력을 갖고 계시다는 생각에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정상에서 사진 한 컷을 남기고 그대로 지나쳐 햇볕이 소담하게 내리는 의자에 앉아 단감 한쪽을 씹으며 먼 산을 바라보니 기분이 뿌듯하다.
하산길은 어제와 같은 코스를 택했는데 그새 탄력이 붙어서인지 한결 발걸음이 가볍다. 내친김에 심진 스님의 '바람 부는 날에는 너에게로 가고 싶다'란 노래를 불렀는데 역시 2절에서 가사가 가물거린다.
예전에는 서너 가지 노래쯤 유튜브 도움 없이 흥얼흥얼 부르며 내려왔었는데 이제는 숨마저 차다.
거의 다 내려왔을 즈음 스님의 또 다른 노래인 '인생별곡'의 2절 가사가 가슴의 정곡을 찌른다. <꽃이라도 늙어지면 벌나비도 아니 오고 나무라도 병이 들면 눈먼 새도 멀리하네 좋은 음식 길러 봐도 몸은 끝내 무너지고...>
나중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피해를 안 주려면 부지런히 산행과 운동으로 근력을 키우며 폐활량도 늘리고, 노래도 가끔 부르며 가사를 되새김함으로써 쇠퇴하는 기억을 살려야 하리라.
오늘도 앙증맞은 구절초와 산 풍경을 보며 정상적인 코스로 완주하고 나니 뭔가를 이룬 것 같아 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