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년의 품위
이 문장이 가진 무게는
젊을 때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20대, 30대에는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오르고,
40대, 50대에는 여전히 등산을 다니며
“아직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70대를 넘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화장실 가는 것,
현관문 여는 것,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이 모든 게 협상의 대상이 된다.
젊을 때 우리는 성취, 돈, 평판을 위해 달렸다.
승진, 연봉, 사회적 지위가 삶의 척도였다.
밤을 새워 일했고, 건강은 담보로 맡겼다.
“나중에 쉬면 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나중이 왔을 때
쉬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노년에는
정작 아주 작은 것들이 삶의 질을 가른다.
스스로 양말을 신을 수 있는가?
혼자 목욕을 할 수 있는가?
손자를 보러 버스를 탈
수 있는가?
이런 질문 앞에서
과거의 직함이나 통장 잔고는 무력해진다.
걷기, 일어서기, 계단 오르기.
이런 단순한 동작이 무너지는 순간,
삶 전체가 흔들린다.
처음에는 “오늘따라 좀 힘드네”로 시작한다.
그러다 지팡이를 짚게 되고,
이내 휠체어에 의지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날이 온다.
그때 비로소 깨닫는다.
기본 체력은 노후의 독립성과 자존심을 지키는
최소 조건이었다는 것을~!
돈이 많아도 이 능력을 잃으면
생활의 자유 대부분을 잃게 된다.
24시간 간병인을 고용할 수 있어도, 스스로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욕구는 돈으로 살 수 없다.
타인에게 의지해야 하는 순간마다
자존감은 조금씩 깎여 나간다.
70이후의 행복은
큰 재산이나 화려한 조건이 아니라
기본 체력에서 나온다.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 커피를 내릴 수 있는 것.
근처 공원까지 걸어가 벤치에 앉을 수 있는 것.
친구를 만나러 동네 찻집에 갈 수 있는 것.
이런 평범한 일상이 가능할 때 노년을 여전히 훌륭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아직 계단을 오를 수 있고,
버스에 뛰어 오를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축복이다.
그 축복을 지키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오늘도 걷고
움직이고
몸을 쓰는 것~!
근육은 배신하지 않는다.
50대에 쌓아둔 근력은 70대의 존엄이 되고,
60대에 유지한 유연성은 80대의 자유가 된다.
인생의 후반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지금 이 순간 어떻게 몸을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맑은 공기 마셔가며
매일 1시간 이상 걷는 습관 등으로 허벅지 근육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인생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쓰이는지도 모른다.
“나는 끝까지 내 발로 걸었다.”
그것이야 말로,
가장 품위 있는 결말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