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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콩쿨대회
옛날 정월 대보름날이나 추석 명절에 작은 동네에서 콩쿨(콩쿠르는 프랑스어)대회가 있었다.
노래자랑을 콩쿨대회라고 했다.
정월 대보름에는 날씨가 추워서 주로 추석 명절에 콩쿨대회가 열렸다.
명절을 끼고 열렸던 가장 큰 이유는 명절을 맞이하여 고향을 찾는 사람들에게 같이 어울리는 한마당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객지에서 돈을 벌고 고향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금전적으로 찬조를 받기도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4H라는 농촌 젊은이들의 단체가 있었다.
4H클럽은 농업 구조 개선과 농촌 생활 개선을 목적으로 설립된 세계적인 농촌 청소년 단체다.
4H란 머리(Head), 마음(Heart), 손(Hand), 건강(Health)을 뜻하는데 명석한 머리, 충성스런 마음, 부지런한 손, 건강한 몸을 지향하고, 건전한 민주시민을 양성하여 지역사회와 국가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단체였다.
국기 게양대에 가운데 태극기가 있고 양쪽으로 새마을기와 4H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었다.
마을 입구마다 녹색으로 4H를 상징하는 네잎클로버를 새긴 돌에 마을 4H이름을 새겨서 세웠다.
정부에서 지원도 많았고 4H경진대회는 큰 행사였다.
우리동네 4H가 주최가 되어 추석명절에 콩쿨대회를 하기로 했다.
남원읍내 소리사에서 앰프를 빌려 잿마당 큰 정기나무 높은 곳에 나팔모양의 스피커를 사방으로 달고 무대를 만들었다.
우리마을에서 콩쿨대회를 한다고 붓으로 큼지막하게 써서 인근 이웃 마을에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다.
날자와 시간, 장소, 상품을 적은 포스터라기보다는 알림장이었다.
우리 마을은 장수군과 경계를 하고 있어서 장수군에 속해 있는 가까운 번암면 수작골과 논실이라는 두곳 동네에도 포스터를 붙혔다.
이때는 마을마다 껄렁껄렁한 애들이 몇명씩 꼭 있었다.
괜스리 가오를 잡는다고 얼쩡대면서 시비를 걸기도해서 싸움판이 나기도했다.
그래서 지서(파출소)에 신고를 해서 치안을 부탁했다.
그때는 지서에 부탁을 하면서 식사비를 따로 전달하기도 했다.
지금 같이 마이크가 성능이 좋지 않아서 잡음도 많고 소리도 맑지 않았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잘 들립니까?"는 어린 시절 흔하게 듣는 소리 였다.
우리 세대의 경우 어린시절에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과 이웃 마을에서 열리는 콩쿨을 한 번쯤 구경했고 주위 분이 참가해 보지 않은 분이 거의 없을 것이다.
콩쿨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노래깨나 한답시고 폼을 잡던 이 마을 저 마을 동네가수들이 총 출동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노래방이 없던 시절이다 보니 지금처럼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드물었던 시절이었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은 동네 사람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삼삼오오 노래자랑 무대가 설치 된 잿마당으로 모여든다.
이웃 마을 처녀총각들도 모여 들었다.
임시로 만든 무대 옆에 수북하게 쌓아 놓은 시상품들을 보며 노래를 신청한 사람들은 노래도 부르기 전에 먼저 상품에 눈독들을 들인다.
시상품으로 탁상용 라듸오, 둥그런 벽시계, 큰 양은 솥과 냄비세트, 플라스틱 반찬 세트 통, 주전자, 양동이 등 다양했다.
각 상품에는1등, 2등, 3등, 인기상 등 종이로 만든 드림이 길게 매달려 있어 출연자들이 시상품에 눈독을 들이며 열심히 노래를 부르면서 입상의 의지를 다졌다.
양은 솥과 노란 양은 냄비세트는 인기 만점이었다.
그러나 그중에 가장 인기있었던 것은 대상으로 받는 탁상용 라디오였다.
1960년대만 해도 TV가 없던 시절이라 라디오의 인기야 두 말 하면 잔소리였다.
너도 나도 라디오에 눈독을 들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접수를 받아서 사회자가 순서대로 소개를하고 부르면 무대에 올라와서 노래를 불렀다.
완전 라이브로 하기 때문에 박자와 가사도 많이 틀리게 부르기도했다.
면단위로 하거나 조금 규묘가 큰 콩쿨대회는 기타로 반주를 하는 사람을 초대해서 더 흥겹게 하기도했다.
당시 심사는 4H회장과 이웃마을 4H회장 몇명을 초대해서 심사를 부탁했다.
이와 같이 연례행사처럼 꾸준히 콩쿨대회와 유명 연예인들이 극장에서 하던 쑈가 1970년에 들어서면서 집집마다 텔레비젼이 들어오고부터 우리 곁에서 소리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볼거리 없던 내 어린 시절에는 콩콜대회와 천막을 치고 봤던 영화와 극장 쇼 만큼 좋은 구경거리였다.
추억이란 세월과 함께 멀어져 가는 강물이 아니고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다시 내게 새록새록 흘러 나온 것 같습니다.
멀어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추억이 요즘 몇 방송사에서 토롯트 가수를 뽑는 프로가 새삼 새롭게 느낄때가 많다.
어쩜 그리 노래를 잘할까?
어쩜 그리 잘 생겼을까?
음악 반주에 맞춰 리듬감과 운을 살려 이야기하듯 노래하는 음악 형식인 요즘 랩(rap)보다 트롯이 우리세대에는 좋은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뽕작이나 트롯은 나이 든 가수들의 전용물이었는데 젊은이들이 퍼포먼스와 같이 노래를 부를 때 훨씬 좋아 보였습니다.
화려한 조명과 음향에 잘 생긴 것들이 노래까지 잘하니 더 이뻐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입춘이 지났는데
추위가 만만치 않습니다.
삼한사온의 날씨가 아니고
이번주부터 다음주초까지 길게 최강한파와 일부지역에 대설주의보까지 내렸습니다.
추위만 있어도 견딜만 했는데 많은 눈까지 겹치면 심란하거든요.
연세드신 분들께서는 바깥출입을 삼가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특히 노인들께서 감기로 인한 폐렴이 전파되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그룹 클론 출신인 구준엽의 아내 대만 배우인 서희원이 젊은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만병의 근원인 감기를 따뜻하게 하셔서 예방해야겠습니다.
FarmmorningFarm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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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정읍김영호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시국이 그렇고 그렇다보니 너무 참혹하고 우울함에
참여가 뜸. 했습니다
지금도 망설여지는게
솔직한 심정
인생이 추하고 다럽고
짐승만도 못한. 인면수심을 접하며
누구를 원망 보다는
가까이 접하기 꺼려집니다
무법천지 헌법위에
변호사?
앞으론 맨투맨
대인 보다는
개인적 만남이나
진솔하고 진지한 대화
댓글만 접하며 팜.모닝
탈퇴도 고려중입니다
그래 출석 체크도 2~3
개월 안했습니다
경남창녕김숙녀
이렇게 긴 글을 ᆢᆢ통해 당시의 생활상이 파노라마로 그려집니다.
거칠고 소박한 당시 읍, 면 잔치
(?)에 인근 몇개 마을은 알딸딸 농주까지 더해져 시끌벅적 준
비부터 노인도 젊은이도 아낙
들도 온동네가 함께 들썩이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자기 마을에 대한 소속감
과 자부심도 대단하여 술김에 다투는 모습도 쉽게 보였지만 별다른 화해없이 바로 '형님', '아우야' 하며 어울렸지요.
오늘의 세련되고 화려한 행사
들이 주는 즐거움보다 설렘과 기쁨을 더 많이 준 자리였습니
다.
ㅎ 그때로 돌아간다면 저도 무
대에 서보고 싶은 만용이 생깁
니다. 제목은 조용필의 '강원도
아리랑' ㅎ

오랜 시간
농업이 주업이었던 우리나라.
'농자천하지대본'인 우리나라.
농업인 여러분,
우리가 대한민국의 근간임에 자부심, 자긍심가지고 팜모닝 통한 소통으로 소중한 농사 정
보와 소소한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며 잘 살아가입시더.
해서 우리 후손에게 건강한 이
땅 물려주입시더.
충남부여이명희
귀농준비중 왔다 갔다·
추엌 여행 늘 먼가 그립게 합니다 일기님! 건강 하십시요 팜 모닝 에서는 일기님이 한강 작가 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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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입춘한파는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강추위였습니다. 추위도 삼한사온이 아니라 꼬빡 일주일이 길게 강추위와 강풍이 있었고, 올들어 가장 많이 내린 눈이 꽁꽁 얼어 붙고 그늘진 곳은 다저져서 빙판길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늘진 골목길은 자동차와 사람들 발자욱에 다저져서 얼음이 있는 곳이 많습니다. 정월대보름 날인 수요일에나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서 그때나 눈과 얼음이 다 녹을 듯 합니다. 오늘 아침 기온은 아직도 차갑습니다. 보름달하면 정월대보름과 추석 한가위 때의 보름달이 떠오릅니다. 정월대보름날 보름달은 차가운 날씨라 하늘이 맑고 선명해서 총총한 별들과 더불어 한가위 때 보름달보다 더 선명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 정월대보름달은 낮에 전국적으로 눈과 비소식이 있어서 볼 수가 있을런지요? 내일 정월대보름 추억 이야기를 소환해봅니다. 음력 정월 14일은 작은보름이고 15일은 큰보름이라 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의 농경사회 때는 설과 추석명절 그리고 정월대보름을 3대 명절로 여겼다고 한다. 정월대보름날은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 등 특별한 음식이 있었다. 달이 먼산에서 올라오면 달을 맞이하고 보기 좋은 곳에 달집을 짓고 달이 뜨는 방향으로 달집문을 만들었다. 우리 고향에서는 마을에서 좀 높은 당산제를 지냈던 잿마당에다 달집을 지었었다. 옛날에 정지에서 물을 받아 그릇을 씻었던 오래 된 구시를 거두어서 달집을 만들어서 태웠다. 대나무를 끊어다 높게 세워 달집을 만들고 산에서 생솔가지를 베다가 달집을 삥 둘렀다. 달집은 생솔가지라 다 태울 때 까지 불이 꺼지면 액운이 있다는 속설에 지푸라기로 달집 가운데를 메꾸고 군데군데 지푸라기로 불쏘시개를 넣어서 달집이 잘 타게 만들었다. 기다란 대나무로 달집을 세우는 것은 달집을 높게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대나무가 불에 타면서 톡톡 대나무가 튀는 소리에 귀신을 쫒아낸다고 했다. 달집에 불을 부치고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저마다 소원을 빌었다. 아낙네들은 저고리의 동정을 떼서 달집에 던저 태우면서 소원을 빌었다. 며느리가 애기가 없는 가정에서는 애기를 점지해 주시라고 천지신명(天地神明)님께 두손모아 빌었고, 가족들 건강과 무엇보다도 올해 농사가 풍년을 기약하는 소원을 빌었다. 달집 태우는 불에 콩을 볶아 먹으면 부스럼이 없다고해서 볶아서 먹었다. 정월대보름에는 쥐불놀이를 했다. 논두렁에 불을 질러서 해충과 들쥐를 없애는 불놀이다. 밤에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뚫고 철사로 손잡이를 만들어서 나무토막을 넣고 불을 붙여 "망우리야"하면서 빙빙 돌리면 요즘 폭죽놀이 같았다. "망우리야"는 아마도 망월(望月)의 사투리였지 않나 싶다. 그때는 깡통도 쉽게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쥐불놀이가 끝나면 내년에 또 쓸려고 사랑채 실겅 한쪽에 걸어 놓았다. 이때 관솔은 쥐불놀이를 하는데 최고였다. 관솔은 송진때문에 불이 잘 붙고 불이 오래동안 붙어 있었다. 신작로에서 횃불을 돌리면서 웃마을 아이들과 거리를 두고 싸움아닌 싸움을 하기도했다. 어느날 신작로에 가운데가 썩어 텅빈 가로수로 포푸라나무 고목이 있었는데 그 속에다 불씨를 넣어 그 큰 포푸라나무가 다 타버리기도했다. 정월대보름에 더위팔기라는 풍속이 있었다. 남에게 더위를 파는 풍속으로 정월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친구나 이웃을 찾아가 이름을 부른다. 이름을 불린 사람이 무심코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 또는 "내 더위 네 더위 맞더위"라고 외치는 더위팔기가 있었다. 정월대보름에는 꼭 먹어야 할 음식이 있었다. 지난해 여름 말려 둔 아홉가지 묵은 나물로 만든 묵은 나물 반찬이다. 고사리, 호박고지, 가지고지, 시래기, 취나물, 도라지, 고구마순, 토란잎, 아주까리잎 등 9가지 이상의 묵은 나물을 먹었는데 지역마다 나물의 종류는 다양했다. 우리 할머니께서는 토란잎과 아주까리잎을 늘 말리셨다가 정월보름에 들기름에 볶아서 먹었다. 묵은 나물로 부족한 영양분을 섭취하면 그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쌀, 조, 수수, 팥, 콩 등 다섯 가지 곡식을 섞어 만든 오곡밥도 있었다. 찹쌀에 대추, 밤, 잣, 참기름, 간장 등을 넣고 버무려 찐 약밥을 먹기도 했다. 또 부럼깨기가 있다. 정월대보름 아침에 깨물어 먹는 땅콩, 밤, 잣, 호두 등의 단단한 열매를 부럼이라 하는데 부럼을 깨물면 이가 튼튼해지고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꼭 챙겨 먹었다. 정월대보름날 아침에 마시는 데우지않고 차가운 술을 귀밝이 술이라 했다. 귀밝이술을 마시면 1년 내내 귀가 밝아지고,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다고 해서 차디찬 술 한모금씩 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보름날은 성이 서로 다른 세 집 이상에서 밥을 먹어야 그 해 운이 좋다고 해서 양푼을 들고 다니면서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오곡밥을 서로 나눠서 먹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농경사회로 정월대보름에 피해야 할 금기사항도 있었다. 비린내나는 생선을 먹으면 몸에 부스럼이 생기고 여름에 파리가 들 끓는다고해서 생선은 먹지 않았다. 정월보름날 아침에 마당을 쓸면 복이 나간다고해서 오전에 빗질을 하지 않았으며 오후에 빗질을 할 때도 복이 들어오게 마당 안쪽으로 쓸었다. 또 정월보름날 칼질을 하면 부정을 탄다고하여 음식은 전날 다 준비했다. 대보름이 안지나서 일하는 것은 상놈이니까 그렇지~~라고 했다. "나무 아홉 짐 하고 밥 아홉 그릇 먹는다"는 속담처럼 부지런히 일하고 자주 밥을 먹는 것을 말한다.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농사준비에 농촌에서는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머슴들은 썩은 사내끼(새끼줄)로 뒷동산에 올라 목을 맨다고 했다. 쉴 수 있는 시간은 다 지나고 일을해야해서 나온 말이다고 생각한다. 농사일이 시작되었으니 부지런히 일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세시풍속이 사라져가는 것이 아쉽다. ​내일 오후부터 눈비가 그치기 시작한다니까 정월대보름 보름달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둥그런 보름달을 보면서 마음속에 품고 있는 소원을 빌어 보시고, 어서 빨리 우리나라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정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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