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반(案盤)을 기억하시나요? 옛날 흰떡이나 인절미 등을 치는데 쓰이는 받침으로 단단한 느티나무로 만든 두꺼운 널빤지 같은 것이었습니다. 민속촌이나 지역축제에서 안반에 떡메로 떡을 쳐서 관광객들한테 시식 시키기도하고, 체험도 하고, 판매도 하는 모습을 가끔씩 볼 수 있습니다. 떡을 칠 때는 안반위에다 찐 떡덩이나 쌀덩이를 올려놓고 한사람은 옆에서 떡메에다 물을 적당하게 적셔주면서 떡치는 사람이 떡메로 힘차게 쳐서 매끄러운 떡이 만들어졌습니다. 떡메로 쌀을 으깬셈이죠. 아무리 떡메질을 잘해도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할 때보다는 쌀알이 2-30%정도는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쑥 인절미를 만들 때는 쑥과 쌀이 잘 섞여지도록 떡메질을 많이 해야했습니다. 이렇게 만든 흰떡을 참기름에 소금을 살짝 뿌려서 찍어 먹었습니다. 꿀에다 찍어 먹기도 했습니다. 대가집에는 안반과 떡메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동네에서 설명절 때만 발동기로 가래떡을 뽑았습니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방앗간이 생기고 설명절에 가래떡을 기계에 뽑는데 집에서 떡메로 만든 가래떡보다 훨씬 보드랍고 맛있었습니다. 기계에서 막 나오는 말랑하고 뜨근뜨근한 가래떡을 한가닥 얻어 먹으면 얼마나 맛이 있던지요? 지금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은 쫀득하니 맛있었습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저희는 어머니께서 집에서 절구통에 불린 쌀을 빻아서 흰떡을 안반에 떡메로 쳐서 가래떡을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떡빼는 값이 아까워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쑥인절미는 흰떡보다 덜 굳기 때문에 덩어리로 만들어놓았다가 조금씩 떼어내서 콩고물에 버물러 정월 대보름때까지 먹었던 것 같습니다. 손으로 비벼서 가래떡을 만들었기에 어느곳은 굵고, 어느곳은 얇았습니다. 쌀알이 다 깨지지 않아서 떡국이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그 떡국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또 지금은 방앗간에서 떡대를 기계로 썰기까지 합니다. 설 명절에는 세배를 오는 사람들한테 떡국을 대접해야 했기에 제법 많은 양의 가래떡을 만들었습니다. 이젠 세배를 하는 미풍양속도 점차 사라져가는 세상이 조금은 야속스럽습니다. 지금은 쌀값보다 떡빼는 삯이 더 비싼 것 같기도하고, 번거로워서 조금씩 사다 끓여먹는 가정이 많죠. 먹거리가 풍족해진 세상이라 번거로운 떡국도 멀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나눌곳이 많아서 너댓말 정도는 매년 가래떡을 했습니다. 올해는 참깨농사가 잘 되었구나?했는데 가끔씩 시든 참깨가 생기네요. 참깨는 낫으로 벨 때까지는 모른다고는 했지만요. 사실 참깨가 병이 많거든요. 참깨 밑둥이 까맣게 멍드면서 죽는 잘룩병, 참깨잎이 하얗게 번지는 흰가루병, 역병 등 많습니다. 참깨를 솎아서 하우스안에 널었습니다. 비들기가 들어와서 신나게 먹어서 그물망을 쳤습니다. 덜 익은 참깨가 넘어지면서 깨가 쏟아지네요. 지금도 참깨 밑둥이 까맣게 썩기도 하고요. 날씨가 덥습니다. 더위에 건강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지리산 정령치를 가늘 길목에 선유폭포가 시원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