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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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안동진일환
꿈이 농사꾼이라 사직서을쓰고
홀로께신 어머니와 함게 있자니
어머니 눈치가보인다 다시직장을
잡을까 농사를 지을까 고민이다
여려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좋은조언부탁드립니다
경기안산이진성
귀농 교육받구있음·
적당히농사짖는것은 그냥 먹고사는것밖에 없어요 내년3월에 귀농교육이 있읍니다 한달동안밭는교육을받고나면 조금이라두희망이 보입니다 어떤결정을하시던지 교육을받고 결정 하시는것이 좋다구 말씀드리구싶어요
경북안동진일환
감사합니다
경북청송강숙희
안녕하세요?청송에서 3년전 귀농한 아들과함께 사과농사 짖고 있습니다. 같이 있어보니 의견이 맞지 않을때가 많지만 서로 양보하면서 잘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어머님과 의논하고 귀농하셨다면 눈치보일일이 왜 있을까요?잘 상의하셔서 꿈을 이루시길 응원합니다. 많이 덥네요. 건강하세요.
경북안동진일환
감사합니다
경기평택조우연
어머님(캐어)과텃밭농사·
어느 이상으로 농사를 지어야 생활이 가능합니다. 어머님도 아들이 고생하는거 보기 싫으셔서 그럴겁니다. 농사가 많지 않으시면 직장다니면서 주말에 텃밭가꾸는 방식도 좋을듯합니다
경기양주조현석
매사에 최선을 다하자~·
제 생각도 우연님의 글이 맞는 것 같네요
경기안산이진성
귀농 교육받구있음·
요새는열대과일도 좋아요 내년에는더뜨겁구 비도 많이와요
경북칠곡이성민
답변 고수
5직2농·
구할수 있으면 월 2백 고정수입 직장 다니면서 농사도 지으세요. 그래야 농사도 즐기면서 짓습니다.
저의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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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어머니의 여덟가지 거짓말. 이 이야기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시작(始作) 되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의 아들 이었습니다. 우리는 음식(飮食)조차 충분(充分)하지 않았습니다. 식사(食事) 시간이 되면 어머니는 종종 제게 당신의 밥그릇에서 밥을 덜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더 먹어라 얘야. 나는 배가 부르구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첫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제가 자랄 때, 인내심(忍耐心) 강한 어머니께서는 자주 시간을 내어 가까운 강에 고기를 잡으러 가셨습니다. 잡은 물고기로 제 성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영양가(營養價) 있는 음식(飮食)을 만들어 주시려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잡은 고기로 끓인 신선한 생선국은 제 식욕(食慾)을 돋웠습니다. 국을 먹는 동안 어머니는 제 옆에 앉아 제가 먹은 생선(生鮮)의 뼈에 남은 살을 발라 드시곤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젓가락을 사용하여 손대지 않은 다른 생선(生鮮)을 어머님께 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님은 곧바로 그 생선(生鮮)을 저한테 넘기며 "네가 먹어라. 나는 생선(生鮮)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두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그런 후, 제가 중학교(中學校)에 다닐 때였습니다. 학비(學費)가 필요하자 어머니는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성냥공장에서 성냥갑을 가져와 풀로 붙이는 일을 하셨습니다. 겨울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저는 아직도 주무시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작은 양촛불 아래서 잠을 이겨가며 성냥갑을 붙이는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어머니, 이제 그만 주무세요. 밤이 늦었어요. 내일 아침에도 일 나가셔야 하잖아요." 이렇게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웃으시며 "얼른 자거라. 얘야, 나는 피곤(疲困)하지 않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세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마침내 입시가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회사에 요청해 하루 쉬고는 저를 시험장에 데려다 주셨습니다. 태양(太陽)이 몹시 뜨거운 날인데도 그 무더위 속에서 끈질긴 어머님은 몇 시간이나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시험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어머니는 곧바로 저를 반갑게 맞이하시고는 시원한 물을 제게 따라주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땀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컵을 어머니께 건네 드리며 먼저 드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얘야 어서 마시렴. 나는 목마르지 않구나." 라고 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네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아버지께서 병(病)으로 돌아가시자 불쌍한 어머님은 가장(家長)의 역할(役割)을 하셔야 했습니다. 우리가 필요(必要)로 하는 것을 어머님 홀로 해결(解決)하셔야 했습니다. 우리 가족(家族)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고통(苦痛) 없는 날이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家族)의 상태(常態)는 점점 악화되었고, 우리 집 가까이 살던 친절한 삼촌이 가끔 도와주었습니다. 이웃들은 종종 어머니에게 재혼(再婚)하시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고집스럽게 그들의 조언(助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저는 더 이상의 사랑은 필요 없어요." 라고 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다섯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제가 학업(學業)을 마치고 직장(職場)을 얻고 나니, 어머니께서도 이제 일을 그만두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시장(市場)에 가서 몇 가지 야채를 파시면서 필요(必要)한 돈을 버셨습니다. 다른 도시(都市)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종종 어머님께 필요하신 데 쓰시라며 돈을 보내드렸지만 어머니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심지어 돈을 제게 다시 돌려보내기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내겐 돈이 충분히 있단다." 라고 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여섯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학사 학위(學位)를 받은 후, 저는 석사(碩士) 학위를 받기로 했습니다. 회사의 장학 프로그램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마침내 그 회사에 입사(入社)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남은 인생(人生)을 즐길 수 있도록 모시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사랑스러운 어머니는 아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나는 혼자 사는 게 편하구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이 어머니의 일곱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 어머니는 노년(老年)에 위암(胃癌)을 앓게 되었고 병원에 입원(入院)해야 했습니다. 저는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지만, 제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필하기 위해 고향(故鄕)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는 수술(手術)을 받고 나서 쇠약해진 몸으로 침대에 누워 계셨습니다. 너무나도 늙어 보이는 어머니께서 깊은 생각에 잠겨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미소(微笑)를 머금으려고 애쓰시는 어머님의 노력(努力)이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병이 어머니의 몸을 약화시킨 것이 분명했습니다. 어머니는 너무 연약하고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너무나 아팠습니다. 어머니는 간신히 힘을 모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말거라. 얘야... 나는 아프지 않단다." ​ 그것이 어머니의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거짓말이었습니다. 이렇게 여덟 번째 거짓말을 하시고는,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어머니는 영원히 눈을 감고 소천 하셨습니다. 참외를 특별히 좋아하시던 어머니가 너무나 그리운 아침, 맛있는 참외를 깎아 드리고 싶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사랑하는 하루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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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morning
♡ 우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 1989년~1997년 공중파에서 방송한 ‘우정의 무대’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군부대를 찾아가 군인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특히 ‘그리운 어머니’라는 코너는 인기가 높았습니다. 군부대에 복무 중인 군인 중 한 명의 어머니가 아들 몰래 해당 부대를 찾아와 사회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면 군인인 아들은 목소리만 듣고 어머니를 확인하고 맞추면 어머니를 등에 업고 그 자리에서 바로 포상 휴가를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면 무대 위로 장병들이 우르르 뛰어나와 너나 할 것 없이 “뒤에 계신 분은 우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라고 우겨대는 모습이 백미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늘진 표정의 한 장병이 “뒤에 계신 분은 우리 어머니가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장병의 어머니는 아들이 입대하기 일주일 전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그립고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머니’라는 말에 반응해서 그만 무대 위로 올라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대 앞으로 나온 다른 장병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보다, 어머니를 잃은 그 장병을 더 애절하게 안아주며 위로해 주었고 그 모습을 본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고 또 주어도 더 주지 못해 늘 안타까운 사람.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기 손이 다 닳아 없어져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 고향 집의 아랫목처럼 언제나 그립고 따뜻한 사람. 듣기만 해도 먹먹해지는 이름, 그 이름은 ‘어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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