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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 6-70년대 우리들의 공감시대 21 -

밀수란 관세를 회피하거나 금지품목을 수입 또는 수출하기 위해 비밀리에 물건을 운반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6-70년대에 밀수행위가 많았다.
치안도 경제도 사회도 불안전할 때라 세금을 조금이라도 아껴볼 셈으로 보타리 장수들이 많았다.
수입상품에 부과되는 관세를 피하기위한 수단이었다.
보따리장수는 밀수쟁이 아저씨와 밀수쟁이 아주머니가 있었다.
제가 근무했던 학교에도 매달 거의 일정한 날자에 밀수쟁이 아저씨 두사람이 다녀가곤했다.
나이드신 밀수쟁이 아저씨는 손수레에 커다란 허름한 가방을 실고와서 교무실 한쪽 구퉁이에 자리를 잡고 가방을 푼다.
시중에서 보기힘든 물건이나 소형전자제품, 손목시계, 화장품, 썬그라스, 팔찌, 양주, 성인욤품 등을 잠시 팔고 주섬주섬 짐을 싸서 손수레를 끌고 옆학교로 떠났다.
늦게 야간에 익산에 있는 원광대학교대학원여서 석사를 하면서 영어를 공부할 일이 있어서 워크맨이라는 일본제 내쇼날 소형녹음기를 밀수쟁이한테 구입해 영어선생님이 읽어주는 것을 녹음해서 읽혔다.
한때는 워크맨이 유행이라 젊은사람들이 많이 들고 다녔다.
또 다른 밀수쟁이는 정장을 바르게 입은 젊은 멎쟁이 신사였다.
늘 007가방 두개를 양손에 들고 다녔다.
나이드신 밀수쟁이보다 물건의 종류는 적지만 고급스런 물건을 가지고 다녔다.
쪼끄만 007가방이지만 물건을 다 끄집어내면 제법 많았다.
매달 찾아오는 밀수쟁이라 밀수품을 할부로 팔기도했다.
동네에는밀수쟁이 아줌마가 다녔다.
주로 화장품을 들고 다녔다.
꼬끼리밥솥, 헤어드라이기, 주방용 칼, 심지어는 밥공기까지도 들고 다니면서 팔았다.
어느집에 밀수쟁이 아줌마가 나타나면 동네 주부들이 다 모여서 밀수품을 구경하곤했다.
일본에서 생산된 코끼리밥솥은 솥에 밥을 짓고 하루가 지나도 색이 변하거나 냄새도 나지않아서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았었다.
어느날 김포공항에 마중을 나갔는데 보이스카웃 유소년들 일행이 단체로 일본여행을 다녀오는데 그 어린아이들 손에 코끼리밥솥이 안들고 들어오는 아이들이 없었다.
그만큼 국내에서 생산된 밥솥보다 기능이 훨씬 좋았었다.
하찮은 보온물통도 종일 뜨거운 물이 식지않고 전혀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밀수 아주머니는 밥솥도 보온물통도 들고 다니면서 팔았다.
제가 1974년 광주에서 군복무를 했는데 국군의 날 행사준비를 하느라 서울 여의도에 파견을 나갔다.
군부시절이라 국군의 날 행사는 엄청나게 큰 행사라 3개월전부터 준비를 했다.
10월 1일 대통령을 모시고 잠시 행사를 하는데 7월초부터 행사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전군에서 키 1m70이상인 장병들을 선발해서 제식훈련을 시켰다.
밥먹는 시간 빼고는 무조건 열과 오를 맞춰서 기계처럼 걷는 연습을 했다.
좌우로 24명씩 열병준비를 하는데 조금의 오차없이 걸어야하기 때문이다.
그 넓은 여의도광장을 몇바뀌를 돌면서 발을 맞췄다.
군용차 바뀌는 구두약으로 광을 냈고 탱크는 도색을 새로했다.
장병들 군복과 군화도 새것으로 다 보급되었다.
요즘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열병하는 모습과 같이 연습을 했다.
그날 하루를 위해서 거의 3개월을 준비했다.
저는 지휘부에 파견되어서 출퇴근하면서 업무를 했다.
그 때 비파(비공식 파견)라고했다.
명령없이 파견되었기 때문에 아무런 간섭도 받지않고 근무를 했었다.
이렇게 수고한 장병들은 부대에 복귀하면 무조건 25일간 포상휴가를 받았다.
그래서 저도 포상휴가를 받아 가을걷이를 도와 드릴 수 있었다.
그해 여름에 여수에서 가장규묘가 큰 밀수선박이 적발되었다.
그때 시세로 5억의 밀수품이 단속되었다.
엄청 큰 밀수사건이었다.
대부분 밀수품은 태우거나 매립해서 없애는데 그 밀수품을 여의도에서 수고하는 장병들한테 나누어주자는 국방부의 요청에 따라서 밀수품을 실은 수십대의 차량이 여의도 광장에 도착했다.
물론 사병한테 보급은 없었으며 하사관이상 장교들한테 나누게했다.
제가 근무했던 사무실에 밀수품이 배당이 되었다.
캔으로 된 환타, 연유, 커피, 초코렛 그중에 청자켓이 있었다.
그때 시중에서 청자켓은 대단한 인기였다.
군에 입대한다고 용돈을 많이 받았는데 제대하고 입을려고 청자켓을 그때 35,000원주고 사놓고 입대를 할 때였으니까 청바지나 자켓의 인기는 대단했다.
원래 청자켓은 미국 사람들의 작업복이라 했다.
Lee나 게스, 리바이스, 쌍마 등의 브랜드 청자켓은 그 때 당시는 엄청 귀한 청자켓이었습니다.
어쨌든 저한테도 리바이스 청자켓 한벌이 돌아왔습니다.
탄산음료인 환타도 커피에 타먹는 연유도 초코렛도 완전 신세계 맛이었습니다.
해외여행을 나가면 면세점이 있죠?
그 면세점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관세가 없어서 시중보다 저렴하게 구입하는 방법과 밀수품 가격을 거의 흡사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가 1989년에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면세점 매출액이 엄청 늘었다고한다.
90년 초반에 동남아 여행을 처음 나갔는데 홍콩이나 싱가폴은 자유항이라 시내에 있는 면세점 상품가격이 저렴했다.
그때 당시에 선그라스와 소형카메라 등은 대단한 인기상품이었다.
관세가 붙지않아서 물건값이 저렴했다.
특히 특별소비세가 부과되는 주류와 담배는 절반 가격에 가까웠다.
지금 생각하면 밀수행위는 웃기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밀수라해도 총기류, 화약류, 마약류 등 금수품목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故 삼성그룹창시자인 호암 이병철회장님께서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10가지 조언(助言) 중에
"말하는 것을 배우는데 2년이 걸렸지만
말하지 않는법을 익히는데는 60년이 걸렸다."있습니다.
대부분의 화는 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은 할수록 독이되며 스스로를 찌르는 무기가되기 때문에 할까 말까 할 때는 하지 마라 라는 뜻이겠지요?
말이 많으면 실수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또 쉽게 내뱉은 한마디가 상대방의 가슴을 찌르는 비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이들어 가면서 다시한번 고인의 조언을 되새겨봅니다.
어느 농부님께서 하신 말씀에 공감합니다.
밭에는 매일 가셔야 합니다.
식물은 동물과 달라 매우 예민합니다.
우리 말에 주인 발자국 소리 듣고 자란다고 합니다.
내방쳐두는 작물보다는 자주 들여다보는 작물이 잘 자라겠지요.
어제부터 중부지방에 많은 비가 내려서 비피해소식이 있네요.
저희 동네도 올 들어 가장 많은 비가내린다는 예보라 염려스럽습니다.
암튼 별 피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충북단양김정술
귀농 십년차 어설푼농부·
일기님 책임 지세요 ㅠ
장문이라 읽다가 감자조림 다 태웠어요
ㅠㅠㅠ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아고.
어쩌야 쓴대요?
그냥 끄적거리다보니 쓰잘떼기없이 길어졌ㅈ습니다.
어제도 비때문에 꼼짝 못하고 옛날 이야기를 썼습니다.
꼭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바람에 고추가 몇그루 옆으로 비스듬이 기울어서 말똑박고 묶어주고왔습니다.
참깨도 많이 고개를 숙이고 있네요.
내일은 고추에 탄저병 소독을해야겠습니다.
엊그제 시골집에 다녀왔는데 차단기가 내려가서 냉장고가 멈춰서 냉동실에 봄에 쑥을 뜯어 삶아서 넣었는데 다 변했어요.
아버지드릴 곰국도 5봉지나 있었는데
쑥은 어머니 제사 때마다 쑥인절미를 하거든요.
연한 쑥을 산골짜기에서 뜯었는데
너무 아깝네요.
왜 차단기가 내려갔는지?
모르겠어요.
단양 정술님께서 관심 갖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마에 건강하시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충북단양김정술
귀농 십년차 어설푼농부·
일기님!!!
감자 몇개 태운건 아무것도 아니네요
쑥이랑 곰국 어쩐대요?
정성으로 뜯었을텐대
아깝네요
전북장수고승현(장수하늘소)
저는 멋쟁이 007가방든분들만 기억됩니다.
제가 살던곳은 과거엔 유배지로 통하는 산골이라..
공감글에 감사드립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장수지역에 많은 비가 내렸다는데 별일 없으신가요?
비피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전북장수고승현(장수하늘소)
감사합니다
지금도 많은비가 내리고있고
산사태주의보 발려중이랍니다.별피해는 없는데 수시로 점검중이랍니다
고맙습니다 ^^
경북문경문경절임배추
랄랄라 농부 ·
감사합니다
옛날 이야기 잘읽엇습니다
장맛비가 걱정입니다
피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감사합니다.
조금씩 내리던 비가 갑자기 쏟아지네요.
문경지방에 비가 많이 내렸다는데
별일 없으신지요?
조용하게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강원원주이명신
글 쓰는 농촌 아낙·
갑자기 추억을 소환하시는걸 보니 일기님도 지나간 시간을 뒤돌아보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길게 글을 쓰시면 다 읽을 수가 없어요 바빠서요
일기님 글 공감하고 갑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혹시 카톡 메세지가 너무 길어서 읽기가 어려울 때 Tip 하나 드립니다.
특히 제가 보낸 메세지가 긴글이 많이 있지요.
이렇게해보세요.
카톡에서 긴 글이 왔을 때 메세지 아래 끝에 ^전체보기^를 클릭하면 우측 상단에 헤드폰 그림이 나옵니다.
이 헤드폰을 클릭 하면 노란색으로 표시 해 가면서 여성 아나운서가 글 내용을 읽어 줍니다.
건너 뛰고 보고 싶으면 그 부분을 클릭 하면 그 곳 부터 읽어 줍니다.
눈이 아프게 글 읽느라고 고생하지 마시고 귀로 들어보세요.
요즘 참 좋은 세상이구나!
새삼 느껴봅니다.
경기양주자연으로
자연으로 돌아가자...·
저희때는 밀수품은
못 보았습니다.
대신 야시시 비디오테잎 가지고 공장이나 회사주변에
쉬는시간을 어찌알고
찾아오더군요.ㅎ
회사건물 1층에 택시회사가 있었는데 기사분들이 단골이셨던거 같기도 하구요.
여튼 중남부지방쪽에
비가 많이 와서 걱정입니다.
피해들 없으시길 바랍니다.^^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고추랑 참깨가 비스듬하게 기울었어요.
고추는 말뚝을 박고 줄을 맸는데 너무 어우러지네요.
역시 농사는 하늘이 지어준다는 말 절대적입니다.
새볔에 텃밭에 나가볼까?했는데 가랑비가 내리네요.
전북전주박신양
밭에 자주 갈께요..
전북전주유일기
텃밭 농부·
오전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꽈리고추와 오이 가지는 쇠면 못쓰잖아요?
고추고랑에 물도 빼주고요.
장마피해가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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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 1989년~1997년 공중파에서 방송한 ‘우정의 무대’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군부대를 찾아가 군인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특히 ‘그리운 어머니’라는 코너는 인기가 높았습니다. 군부대에 복무 중인 군인 중 한 명의 어머니가 아들 몰래 해당 부대를 찾아와 사회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면 군인인 아들은 목소리만 듣고 어머니를 확인하고 맞추면 어머니를 등에 업고 그 자리에서 바로 포상 휴가를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면 무대 위로 장병들이 우르르 뛰어나와 너나 할 것 없이 “뒤에 계신 분은 우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라고 우겨대는 모습이 백미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늘진 표정의 한 장병이 “뒤에 계신 분은 우리 어머니가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장병의 어머니는 아들이 입대하기 일주일 전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그립고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머니’라는 말에 반응해서 그만 무대 위로 올라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대 앞으로 나온 다른 장병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보다, 어머니를 잃은 그 장병을 더 애절하게 안아주며 위로해 주었고 그 모습을 본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고 또 주어도 더 주지 못해 늘 안타까운 사람.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기 손이 다 닳아 없어져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 고향 집의 아랫목처럼 언제나 그립고 따뜻한 사람. 듣기만 해도 먹먹해지는 이름, 그 이름은 ‘어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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