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부부가 피워 놓은 꽃 ♡
들여 문 계절의 끝.
까만 하늘을 뚫고 얼굴을 내민
달님이 비춰주는 초저녁 길을 따라
노란 달빛을 머리에 인 노부부가
봄이
먼저 도착해 있는 우동집 안으로
들어섭니다.
"여기 우동 두 그릇만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곧 가져다 드릴께요"
아직도
연분홍 순정을 간직해서인지
두 손을 꼭 잡고 들어온 노부부의
주문에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만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우왕좌왕하는
가게 안 풍경 속에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서 오시는
할아버지의 모습도 들어있었는데요.
"제가 가져다 드릴건데.....
손님이 갑자기 몰려와서 정신이
없네요."
혼자 동분서주하며 열심히 사는
그 모습조차도
그저 부러울 뿐이라며...
싱긋이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 있던 노부부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
두 그릇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테이블 사이로
드문드문 앉은 손님들에게도
음식을 가져다주는 바쁜 손놀림을 보며
"임자도 기억나지
우리도 젊을 때 돈가스집 하면서
저렇게 바빴던 거?"
"그럼요
마치 어제 일 같구만요."
노부부는
모든 날 모든 기억들이
추억이 되어진
자리를
기쁨으로 느낄 수 있었던 이야기들로
도란도란 깨를 볶고 계셨는데요.
고생은 되었지만
아등바등 바쁘게 살던 그때의
추억들을
우둥 국물에 넣어 드시고 난 노부부가
계산대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국물이 참 시원하고 좋네요."
두 손 꼭 쥔 사랑으로
황혼에 기울어
멀어지는 두 분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서서 바라보던
주인아주머니는
"에고....
내 정신 좀 봐...."
노부부가 앉았던 자리의 그릇들을
치우러 서둘러 다가가더니
탁자에 놓인 무언가에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다음에 와서 먹을 땐 머리카락이 없으면 훨씬 더 맛있을 것 같아요'
라고
쓰여진 메모지 안에는
가느다란
머리카락 한 올이 들어 있었습니다.
마음이 피울 수 있는
배려 꽃
한 송이와 함께.....
*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
https://youtu.be/AqYiqxDVMak?si=GyKcWr9552aZXff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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