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高捧)밥
MZ세대들에게는 고봉밥이란 낯선 고유명사겠지요?
6-70년대를 살았거나 시골에 고향을 둔 사람들한테는 익숙하고 정겨운 단어이겠습니다.
몸으로 농사일을 하다보면 배를 든든하게 채워야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고봉(高捧)은 곡식을 말이나 되로 되질하거나 그릇에 밥 등을 담을 때에 그릇의 전 위로 수북하게 가득 담는 방법입니다.
옛날에 사용했던 홉과 되와 말은 곡식의 부피를 표시하는 도량형중 척관법의 단위였습니다.
되는 1.8리터이고 말은 되의 10배인 18리터에 해당되며 홉은 되의 10/1의 단위입니다.
쌀 한 섬(石)은 180리터로 10말이 됩니다.
되는 거의 집집마다 있었는데 말은 동네에 막대저울과 함께 한개가 있어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곡식을 재고 바로 회관에 갔다 놓아야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바로 제자리에 갔다 놓았습니다.
요즘 아파트 입구에 카트가 준비되어서 참 편리하더군요.
사용하고난 후에 바로 제자리에 갔다 놓아야 다른 입주민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저희 집에 할머니 때부터 사용했던 되와 말, 누룩틀이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들깨 한말은 5-6k이고,
참깨 한말은 7-8k이고,
콩 한말은 16k정도로 무게가 나갑니다.
콩종류는 1되를 2k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저희 고향에서는 팥, 메주콩, 녹두 등 콩 종류와 들깨와 참깨는 되와 말로 판매하기도 합니다.
되나 말로 곡식을 계량할 때 틀위에 수북하게 올려서 담습니다.
고봉밥은 밥그릇 위로 수북하게 높이 쌓은 밥을 말합니다.
머슴밥이라고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밥그릇 전위에 올린 밥이 무너지지않게 손바닥에 물을 묻히시면서 꾹꾹누르고 토닥거리면서 고봉밥을 밥상에 올렸습니다.
밥상을 받은 일꾼들은 놋수저로 이리저리 고봉밥을 누르며 밥이 무너지지않게 용케도 잘 먹던 옛 모습이 그립습니다.
옛날 보릿고개시절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고봉밥은 소망이자 희망사항 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모자랄 때에 보리밥이든 무우밥이든 고봉밥상을 받을 수만 있다면 더없이 행복했을 때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적에 주말에 시골집에 내려가면 어머니께서는 늘 고봉밥을 주셨습니다.
먹을게 넘쳐나는 세상에 무슨 고봉밥이냐?고 하시겠지만 당신은 굶어도 자식들한테는 배부르게 먹이고 싶은 우리 부모님 마음이 고봉밥 한그릇에 담겨 있음이 얼마나 따뜻하고 정겨웁니까?
고봉밥의 유래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양반들은 밥을 두 그릇을 못먹는다해서 한번에 고봉밥을 올렸답니다.
그릇 전위에 소복한 밥을 먹고나면 남은 밥은 하인들이 먹었다고 합니다.
옛날 머슴들한테는 옷과 새경만해도 그렇지만 머슴이 먹는 삼시 세끼 끼니마다 단지만한 밥 사발에 꼬깔봉우리를 한 고봉밥을 내놓았고, 샛거리 먹을 것도 배고프지 않게 내 놓으셨습니다.
새경은 농가에서 한 해 동안 일을 한 대가로 머슴에게 주는 댓가로 돈이나 물건을 말하는데 저희집은 상머슴은 백미 15가마니, 어린 작은 머슴한테는 10가마니를 섣달에 지급했습니다.
머슴들은 새경을 받으면 동네 주막에 그 동안 밀린 외상값을 갚았습니다.
저희집에는 두명의 머슴이 있었습니다.
제가 군에서 제대할 때 1976년에 머슴살이가 사라졌습니다.
이때부터 어머니께서 두사람의 머슴이 했던 논밭일을 다 하셨습니다.
물론 소먹이는 없어지고 농사가 줄었습니다.
그래도 힘쎈 두 장년이 농사를 맏아서 지었는데 그 일을 어머니께서 도맏아서 하셨습으니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그래서 주말마다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일을 도와 드렸습니다.
그래도 남의 식구 삼시세끼 식사와 샛거리를 챙기는 것보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생을 삼시세끼 상차림을 하시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우리 식구끼리는 대충차려서 식사를 때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남의 식구가 있을 때는 그렇게 하진 못하잖아요?
먹던 밥상을 그대로 내줄 수는 없잖아요?
식구들은 수저와 젓가락만 내놓고 그 밥상에서 먹어도 되는데 일꾼들 밥상은 새로 차려야했습니다.
어찌보면 고봉밥은 정(情)이 듬뿍 담긴 밥그릇이 아니었나?싶습니다.
고봉밥은 1970년대에 정부에서 식량부족 사태가 일어나면서 공기밥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음식점에서 공기밥제공을 단속했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단지만한 하얀 밥그릇과 파란색 사발이 나무로 만든 사과상자에 담아서 창고 한켠에 쳐박혀있습니다.
날씨가 겨울답게 차갑습니다.
주말까지 더 차가운 날씨가 있다고 합니다.
날씨만큼이나 우리네 삶도 점점 차가워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로 아쉬었지만 성탄절과 년말에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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