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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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창녕초이농장
감똘개를 아시나요?
어린시절 엄마가 아침 일어나면 소쿠리에 감꽃을 주워담아
먹으라고 주셨던
그옛날이 생각납니다
인천연수가인 5362
답변 고수
주말농부 10년차·
간장에 절여서 반찬으로 먹던 생각이 아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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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생각 💕 *나는 가난한 시골동네 에서 나서 자랐다 봄이 되면 우리 마을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큰 어 려움을 겪었다. *보리밥은 그나마 여유 있는 사람 얘기였다. 보 통은 조밥을 먹었는데 그 좁쌀도 떨어져 갈 때 쯤이 가장 배고프고 힘 들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계절 은 호시절이라 산과 들에 꽃이 피고, 앵두나무엔 주렁주렁 달린 앵두가 빨 갛게 익어갔다. 우리집 뒷마당엔 큰 앵두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 해에는 가지가 부러질 만큼 앵두가 열렸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등 교하는 나에게 엄마가 도시락을 주면서 그러셨 다. "오늘 도시락은 특별 하니 맛있게 먹거라." *점심시간이었다. 특별 해 봤자 꽁보리 밥이겠 거니 하고 도시락을 열 었더니 도시락이 온통 빨간 앵두로 가득 채워 져 있었다. *좁쌀마져도 떨어져 새 벽 같이 일어난 엄마가 땅에 떨어진 앵두를 주 워 도시락을 채운 모양 이다. *순간 창피했다. 나는 도 시락 뚜껑을 열어둔 채로 책상에 엎드려 소리죽여 울고 말았다. *아이들의 놀리는 소리로 교실이 떠들썩해지자 선생님이 다가오셨다. 상황을 판단한 선생님이 큰 소리로 외쳤다. "와~ 맛있겠다. 이 도시락 내 거랑 바꿔 먹자!” *그리고는 나에게 동그란 3단찬합 도시락을 건네셨다. 1단에는 고등어 조림, 2단에는 계란말이, 그리고 3단에는 여러 가지 반찬과 쌀밥. *나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눈 깜빡할 사이에 도시락을 비웠다. 먹으면서도 왜 그렇게 서럽게 눈물이 나던지.. 선생님께서도 앵두를 남김없이 다 드셨다. *그날 집에 오자마자 나는 도시락을 내던지며 엄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엄마! 차라리 도시락을 싸지 말지. 창피하게 그게 뭐야! *하지만 엄마는 듣는 둥 마는 둥 딴소리를 하셨다. “그래도 우리 아들 앵두 다 먹었네!” 나는 엄마가 밉고 서러워 저녁 내내 울다가 잠이 들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부엌에서 엄마의 설거지하는 소리에 깨어났다. 문틈으로 살짝 내다보니 내 도시락을 씻던 엄마가 옷고름으로 입을 틀어막고 어깨를 들썩이셨다. 울고 계셨던 것이다. *찢어지는 가난에 삶이 괴롭고 어려워도 내색하지 않던 울엄마.. *자식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시려고 울음마저도 숨죽여 울어야 했던 울엄마.. *자식에게 앵두 도시락을 싸줄 형편에 그 앵두라도 배불리 드셨겠는가! *엄마는 가끔씩 나에게 장난처럼 물으셨다. “나중에 크면 이 엄마에게 쌀밥에 소고기 사줄 거지?” *이제 내 나이 마흔이다. 결혼해서 그때 나만한 아들을 두었다. *쌀밥에 고기가 지천인 세상이고 쌀밥에 고기국은 서민들도 다 먹는 세상이 되었건만.. *그토록 씰밥에 소고기국을 먹고 싶어 하셨던 엄마는 이미 저 세상으로 가셔서 이 세상엔 안 계신다. 생각하면 그립고 죄송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난다. 엄마, 울엄마~~ 💕고향이 좋아 김상진💕 https://m.youtube.com/watch?v=7PGqEOe5Q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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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편지와 아들의 편지를 읽고 마음이 찡하고 나이 탓인지 눈가에 이슬이 맺히네요. 감동 글이라 올립니다. 1️⃣어머니의 편지📚 파란 보리알 한 사발을 작은 손가락으로 만들어 들고 온 어린 아들의 곱고 고운 정성에 나는 울었다. 고사리 같은 너의 두 손을 꼬옥 안아 주고 싶었지만 나는 너를 위해 매를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아주고 싶은 자식을 때려야만 했던 엄마는 가슴에 못을 박는 아픔이었다. 엄마를 생각하는 너의 마음 정말 고맙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ᆢ ~~~^^~~~ 어머니의 편지이다.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집에 먹을 것은 없고 엄마는 몹시도 아파서 방에 누워 앓고 계셨다. 굶고 누워만 계시는 엄마를 지켜만 볼 수 없어 보리밭으로 나갔다. 아직 여물지도 않은 파릇파릇한 보리 이삭을 손으로 잡았다. 남의 것을 훔치려니 손이 떨리고 무서웠다. 엄마를 위해 용기를 내어 한아름 뽑아다가 불을 피워 놓고 태워 익혔다. 태운 보리를 내 작은 손가락으로 비벼서 파란 보리알을 골라 하얀 사발에 담았다. 누워 신음(呻吟)만 하시는 엄마 앞에 조심히 사발을 들고 앉았다. “엄마, 이거라도 드시고 기운(氣運) 내세요.” 엄마는 힘들게 일어나 앉으시더니 내 손을 보시고 사발을 보셨다. 내 손은 까맣게 재가 묻어 있었다. “어서 나가서 매를 만들어 오너라.” 소나무 가지를 꺾어 매를 만들어 왔다. “굶어 죽더라도 남의 것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는 거야.” 바지를 걷어 올리고 많이 맞았다. 까칠까칠한 소나무 가지라서 아프기도 많이 아팠다. “엄마, 용서해 주세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도둑질 안 할게요.” 엄마를 위해 했던 일이 도리어 엄마를 슬프게 하고 말았다. 마음까지 아프게 한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려 울었다. “이대로 들고 가서 밭주인에게 사죄(謝罪)하거라” 사발 속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친구 달봉이네 집으로 갔다. 하얀 사발을 앞에 놓고 마당 가운데 무릎을 꿇었다. “달봉이 엄마, 용서(容恕)해 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달봉이 엄마는 깜짝 놀라 달려 나와 물으셨다. “난대 없이 이 사발은 뭐고, 용서는 무슨 말이냐?”  보리타작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달봉이 엄마는 나를 일으켜 세우시더니 내 다리부터 보셨다. 내 종아리를 보신 달봉이 엄마는 나를 안고 우셨다. “이 어린 자식이 무슨 죄야, 가난이 죄지. 너의 엄마도 참~.” 달봉이 엄마는 눈물을 닦으시며 보리알 사발에 쑥개떡을 담아 주셨다. “엄마 밥은 내가 만들 테니까, 너는 걱정 말고 가서 쑥떡이나 먹거라.” 먼 눈물 이야기로 시작한 나의 인생길~ 이 편지(便紙)를 볼 때면 어린 시절(時節) 어머니와의 추억(追憶)에 눈물이 맺힌다. 나는 어머님의 임종(臨終) 소식(消息)을 도쿄에서 들었다. 타국(他國)에 있는 자식을 기다리다 눈을 감으신 것이다. 갚아야 할 은혜(恩惠)가 산 같은데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신 지 어느새 18년이 지났다. 2️⃣ 아들의 편지📚 사랑 하나~ 정성 하나~ 눈물 하나~ 날마다 자식(子息) 나무에 물을 주어 푸른 동산을 가꾸어 주신 어머니 자식의 기쁨을 당신의 기쁨으로 자식의 슬픔도 당신의 슬픔으로 어머니의 발자국 마다마다에는 마를 수 없는 사랑이 가득 고여 있습니다. 힘든 농사일에 그토록 지치신 몸으로 자식에게는 곱게 곱게 입혀 주고 싶어서 깊어가는 밤~ 그 다듬이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직 닭도 울지 않은 이른 새벽 도시락을 만들어주시던 어머니 조용한 그 칼도마 소리 정겹게 들려옵니다. 자식을 위한 어머님의 땀방울~ 자식을 위한 어머님의 눈물~ 은혜의 강이 되어 지금 내 가슴속을 흐르고 있습니다. 제가 그토록 고향(故鄕)이 그리웠던 이유는 그곳에는 어머님이 살아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디서 그 사랑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걸어온 길 뒤돌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뻤던 날들보다 슬펐던 날들이 더 고왔습니다. 산과 들에 뻐꾹새 뜸북새 우는 산 마을 내 고향 그 새파란 보리밭으로 어린 소년 하나가 엄마를 부르며 달려갑니다. 지인이 보내준 글인데 너무 사랑.교훈.감동을 주는 글이라 퍼 나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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